[13년|5월|특집]굴뚝에서 아파트형 공장으로―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보건 은?

일터기사

(3) 굴뚝에서 아파트형 공장으로―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보건 은?
– 서울근로자건강센터의 필요성과 역할

한노보연 상임활동가 흑무

더 이상 ‘구로공단’이라는 호칭을 쓰는 이는 없다. 2호선 ‘구로공단’역은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가리봉’이라는 이름도 ‘가산디지털단지’로 옷을 갈아입었다. 옛 구로공단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면서 겉모습은 첨단의 시대에 맞게 변화했지만,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여전히 굴뚝시대와 다름없다. 숫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전보건과 관련된 정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현실만을 보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특징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는 11,092개의 기업이 존재하며, 일하는 노동자의 수는 142,280명에 달한다. 여기에 배후지역을 포함하면 약 20만 명이 일하고 있는 대규모 국가산업단지이지만, 300인 이상 사업체가 7개에 불과할 정도로 중소사업장이 많다. 도․소매업, 출판․영상․방송․정보서비스업,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사업 관리․지원서비스업 등의 노동자 비중이 전체 공단의 62.9%에 달해 타 공단에 비해 비제조업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2010년 산업재해자 98,645명 중 약 81%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였고, 300인 미만 사업장을 포함하면 전체 재해의 약 94%에 이른다.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자 선임의 의무가 없어 법적 규제로부터 벗어나있는 데다가, 중소영세사업장의 특성상 노동자들의 안전보건문제 개선을 위한 힘을 쏟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중소영세사업장은 안전보건의 ‘사각지대’이며 다시 말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또 다양한 업종이 공단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다양한 안전보건 상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연구에 따르면
2010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경기서부지도원(관할지역 : 안산, 시흥, 안양, 군포, 의왕, 과천, 광명)은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 박종태 등에게「사업지속성과 접근성 향상을 위한 지역사회 진단」이라는 주제의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당시 연구팀에서 사업주 및 안전보건관리자를 대상으로 사업체요구 조사와 집단 인터뷰를 진행하였는데, 그를 통해 드러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몇 가지 실태를 살펴보면,

① 건강진단 후 발견된 유소견자에 대해 ‘개인에게 맡기고 회사차원에서 관리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태도는 경기반월시화산업단지(11.6%) 및 서울디지털산업단지(12.5%), 경공업(11.7%) 및 비제조업(15.8%) 사업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았고,

② 3년간(2008~2010) 정부기관(고용노동부 및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기술지원이나 시설개선자금을 지원받은 경험이 있는 사업장은 9.4%에 불과했고,

사업장 수
수혜 여부
지원받은 적 있다
지원받은 적 없다

%

%
전 체
1,232
236
19.2
996
80.8
산업단지*
경기반월시화
313
90
28.8
223
71.2
서울구로디지털
256
24
9.4
232
90.6
경남김해
251
56
22.3
195
77.7
대구성서
176
26
14.8
150
85.2
광주하남
144
17
11.8
127
88.2
충남아산
92
23
25.0
69
75.0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정부지원 현황

③ 3년간(2008~2010) 산재 및 공상근로자 발생경험은 4.7%로 매우 낮게 나타났는데, 이는 경기반월시화산업단지의 14% 수준으로 경기반월시화산업단지에 비해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적어 업무상사고의 발생 또한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제조업을 포함한 다양한 업종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질병이 상당 부분 은폐되고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사업장 수
발생 여부
발생한 적 있다
발생한 적 없다

%

%
전 체
1,250
278
22.2
972
77.8
산업단지*
경기반월시화
322
112
34.8
210
65.2
서울구로디지털
257
12
4.7
245
95.3
경남김해
254
68
26.8
186
73.2
대구성서
181
31
17.1
150
82.9
광주하남
144
35
24.3
109
75.7
충남아산
92
20
21.7
72
78.3
3년간 산업재해 및 공상 노동자 발생 경험

④ 안전보건문제 중요성 인식에 측면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가 43.2%로 평균(53.0%)보다 낮았으며,

⑤ 3년간 산업재해예방 시설개선 투자 경험도 25.6%로 가장 낮았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2010년 확인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건강검진을 통해 유소견자로 확인된 노동자에 대한 사업장 차원의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정부기관의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며, 산업재해는 드러나지 않고 은폐․축소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와 안전/보건관리자의 인식수준이 낮은 곳이다.

2011년 조사에서도
2011년 서울남부지역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에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는 것이 확인된다. 단적으로 안전보건 교육 및 사업장 내 위험정보 제공 여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30%만이 현 사업장에서 안전보건 교육을 받았다고 답했고, 34%만이 사업장 내 위험 정보를 제공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소음, 분진, 유기용제를 비롯해 단순반복작업 또는 정적인 자세로 인한 위험,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근무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서비스업에서 관찰되는 감정 노동 등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안전보건상 위험요인 등 다양한 안전보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산업단지보다 많은 노동자가 일하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노동자에게 어떤 안전보건의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서울남부지역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의 조사가 이 지역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실태에 대한 거의 최초의 자료였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해 정부도 모르고, 사업주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에 대해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온전히 안녕한 상태를 말한다고 정의한바 있다. 이에 비춰보면, 구로지역 노동자들은 몹시 건강하지 않은 상태이며 건강하기 위한 시도와 모색 또한 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 필요할까
‘예방’이라는 말을 들어본 노동자가 있을까. 보호구나 유해물질에 대해 따져보거나 반복작업에 시달리는 나의 몸, 직무스트레스의 문제에 대해 아는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이 지역 노동자들은 몸과 마음이 심각하게 상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방문해 개인적으로 치료받고 있고, 문제의 원인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현장개선? 참으로 별나라 이야기다.
무엇이 필요할까. 서울남부지역 노동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교육과 정보제공은 물론, 사업장 개선을 위해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이 2% 밖에 되지 않는 지역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역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두어 법적으로 보장된 권한을 뛰어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건강센터를 두어 개인별 건강상담과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할 것이라 예상되는 근골격계질환의 물리/운동치료와 직무스트레스 등 심리상담 등을 제공하고 보건관리가 되지 않는 소규모사업장에 대한 교육과 상담 등의 산업보건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노동안전보건의 요구들 중에 가장 요긴한 것부터 우선순위를 선정해 배치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안전보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중소영세 사업장은 관리감독 등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실질적인 안전보건 권리 보장에 부응해야 할 기구의 설립은 절실한 문제이며, 제조업을 비롯한 다양한 업종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권리 보장을 위한 지역 노동자 공동의 요구로서도 근로자건강센터는 유효할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작년 하반기 「노동법은 지켜라」 캠페인을 진행하며 3대 요구 중 하나로 ‘근로자건강센터 설립’을 제기하며 지역노동자 3천여 명의 서명으로 요구를 전달했고, 금천구청과 구로구청, 노동부 관악지청, 지역 사용자단체 등과 함께 논의해왔으며 지난 4월 말, 드디어 서울 근로자건강센터가 문을 열었다.

노동안전보건의 물꼬를 트자
근로자건강센터가 지역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안전보건상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근로자건강센터가 구로․금천 지역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 관리되지 않는 작업환경에 대한 개선, 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터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계기를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딘가 아프고 힘들어 센터를 방문한 노동자에게 1차적으로 ‘무슨 일을 하시느냐’고 묻는 기관이 생긴 것이니 말이다.
구로금천지역에서 근로자건강센터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는 차차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며느리도 모르는’ 이 지역의 안전보건 실태 조사를 통해 지역진단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노동안전보건의 물꼬를 트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로자건강센터의 역할과 운영, 방향 등에 대해 지역 주체와의 지속적이고 긴밀한 소통, 지역 노동자의 참여 모색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건강센터가 노동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역 안전보건 거점의 하나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타 지역의 사례를 보더라도 근로자건강센터가 지역의 의미 있는 안전보건의 거점이 될 것인가의 가능성은 바로 이 지점이 관건이 되어왔다. 따라서 이를 위해 근로자건강센터 차원에서는 지역 노동안전단체 및 활동가와 문제의식 교류를 위한 의식적 접근이 필요하며, 해당 단체 및 활동가 역시 ‘어떻게 하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새싹을 키운다는 자세로 근로자건강센터에 대한 애정 있는 조언과 공동사업을 제안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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