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ㅣ12월ㅣ특집] 금속노동자 수면건강실태 및 관련 노동환경조사 결과

일터기사

금속노동자 수면건강실태 및 관련 노동환경조사 결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김 정 수

<사진제공 = 금속노조 선전홍보실>
입사 이후 수년간 주야간 맞교대근무를 하면서 잠을 제대로 못자 고생하던 한 노동자가 있었다. 너무 심해 수면제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잠을 자기 어려웠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다보니 낮에 깨어있는 것도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러던 중 노동조합 전임 간부를 맡게 되었다.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잠을 자기 시작하니 불면증이 거짓말 같이 사라졌다. 전임을 마치고 현장에 복귀하고 나서 얼마 후 악몽 같은 불면증이 다시 찾아왔다. 이 노동자는 자신의 불면증이 업무, 즉 주야간 맞교대근무와 관련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단지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다는 이유로 불승인을 내렸다. 다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초 법원에서 이 노동자의 불면증이 주야간 맞교대근무와 관련성이 높다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금속노조는 주야간 맞교대근무로 인한 수면장애가 금속 노동자들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하고 금속노동자의 수면건강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야노동 및 장시간노동을 철폐하기 위한 근거와 교대근무 개선안을 마련하기위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및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본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각 지부별로 인원수 비율로 설문지 배포하였다. 교대근무자의 경우 배포된 4125부 중 1773부가 수거되어 43.0%의 수거율을 보였고, 비교대근무자의 경우 배포된 500부 중 267부가 수거되어 53.4%의 수거율을 보였다. 설문조사 내용은 기초적인 인적사항, 근무형태 및 근무시간, 수면장애 증상(수면의 질, 주간 졸림증, 불면증) 및 관련질환, 교대근무 실태 및 개선 방안 등이었다.
본 조사에서 교대근무자의 수면 장애 관련 지표 점수가 비교대근무자에 비해 상당히 높아서, 수면의 질이 좋지 못하고 주간졸림증과 불면증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야노동이 수면의 질을 악화시키고 주간졸림증과 불면증을 유발시키는 중요한 요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교대근무자 뿐만 아니라 비교대근무자들에서도 수면 장애 관련 지표 점수가 상당히 높았는데, 이는 살인적으로 강화된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 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 고용에 대한 불안, 이러한 불안과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음주, 흡연 등의 생활습관이 수면을 방해하고, 수면의 질이 악화되는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사회문화적 현상의 하나로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교대근무 이외에 수면 장애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으로는 나이와 근속년수, 출퇴근 시간, 작업형태, 하루노동시간 등이 있었다. 나이가 많아지고 근속년수가 길어질수록 수면장애 증상 점수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교대근무로 인한 수면장애 증상이 업무 이외의 사회적 활동이 활발하고 가계와 가사 및 육아에 대한 부담이 큰 20대와 30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교대근무로 인한 수면장애 증상이 심각한 혹은 그로 인해 여러 가지 건강상의 장해를 가지게 된 노동자들의 경우 비교대근무로 전환하거나 조기 퇴사했기 때문(건강근로자 효과)인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출퇴근 시간이 길어질수록, 컨베이어 라인 조립 작업을 하는 경우, 하루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수면장애 관련 증상이 심각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건강문제와 수면부족 및 수면방해가 현행 주야 2교대 근무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초과노동을 하는 이유로는 연장근무수당 없이는 생활이 힘들고, 당장 생활은 어렵지 않지만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두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이는 대부분의 금속 노동자들이 낮은 기본급에 시급제로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잔업과 특근이 생활임금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원하는 근무형태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상시주간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가장 많았는데, 이는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가 주간연속2교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교대근무 자체의 폐지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근무형태가 주간연속2교대로 전환된다고 할 때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순서대로 두 가지를 응답하게 했을 때, 노동시간 단축을 빌미로 임금이 삭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응답한 경우와 교대제 전환으로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응답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상의 조사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교대근무를 하는 노동자에서 발생한 수면장애의 경우 업무관련성이 매우 높을 가능성이 많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수면장애를 업무관련성 질환으로 전혀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시급히 관련 법령과 지침을 개정해서 교대근무로 인한 수면 장해를 업무관련성 질환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편 앞으로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을 포함하여 교대 근무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와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주야 2교대 근무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수면을 포함하여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대 근무제도 개선의 최종적인 목적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개선할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몸과 삶, 필요와 요구가 가장 최우선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자신의 건강과 삶의 질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심야노동, 장시간 노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생활 임금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감안할 때, 교대 근무제도 개선 과정에서 생활임금이 충분히 보장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행 임금제도의 개선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일부 사업장에서 도입되고 있는 월급제 등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무 형태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노동강도가 강화되어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이 악화되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적정한 작업 강도 설정과 인력 투입 혹은 재배치가 반드시 노사공동의 합의 기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필요와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장 노동자들이 가장 원하는 근무 형태는 상시 주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교대 근무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바로 자본의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불필요한 교대 근무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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