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ㅣ12월ㅣ칼럼] 사진 속의 그/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일터기사



사진 속의
그/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선전위원 푸우씨

2011년 11월 13일 오후 시청광장.
“삼성 반도체에서, 삼성을 비롯한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유해화학물질로 죽지 않아야 합니다. 노동자 대회에 함께 한 동지 여러분, 그리고 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관심과 지지와 응원이….” 대오를 향해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흩뿌려 진다.
화창한 날씨 속에 진입로에 커다란 무대장치와 부스를 차려놓고, 하얀 방진복을 입은 반올림 활동가들이 노동자대회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어느 때보다 목소리를 높인다. 유인물을 나눠주는 손도 무척이나 빨라진다.
광장 앞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대회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대오가 조금씩 늘어난다. 그럴수록 깃발을 따라, 앞 사람의 행렬을 따라 무심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늘어난다. 그렇지만 그만큼 부스에 다가와 서명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불어나고, 질문도 늘어난다.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이 안된 건가요?”
“법원 판결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긴거 아니에요?”
삼성반도체 고 황유미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후 시작된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6월 23일 행정법원이 고 황유미씨와 고 이숙영씨의 죽음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그녀들의 죽음의 원인이 된 백혈병이 산업재해라고 판결했지만 아직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4년간의 싸움의 과정에서 알려진 피해자만 150여명, 그 중 최소 사망자만 60명.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의 규모와 사망자의 숫자는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 싸움은 끝을 알 수 없다.

사진 속의 그와 그녀들의 외침
이번 반올림의 선전전에도 인물 사진이 전시됐다. 사진속에 담긴 한참 젊고, 건강한 이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사진들은 반도체 전자산업에서 희귀질환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영정이다.
사진의 하단에는 그와 그녀들이 일했던 곳, 태어난 해와 그들의 사망 당시 나이가 담겨있다. 하나 같이 20, 30대 초중반에 백혈병을 비롯한 희귀질환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는 처절한 외침이 그들과 함께 한다.
오며 가며, 영정을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 숙연해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사진속의 그와 그녀들은 무표정하다. 활짝 웃는 사진은 커녕 미소를 머금은 모습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래도 생전에 찍어놓은 증명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사용됐기 때문일게다.
사진을 찍을 당시와 그/그녀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본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누군가는 사진 속에 다부진 꿈을 담았을테고, 누군가는 아직은 불확실하지만 뭔가 해보자는 각오를 담았을터인데. 너무나 짧은 그네들의 삶이 무엇보다 아쉽다.
그/그녀들은 대부분 없는 집에서 태어나,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이 영글어가기를 희망하며 공장에 취업했다.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던 그들이다. 따라서 그네들이 진입했던 삼성반도체나 그와 비슷한 전자산업체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경제위기니 실업이니, 이런 얘기들이 넘쳐나는 시기에 그들은 모두가 부러워 하는 꿈에 공장에 들어간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입사 후 그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몹쓸병에 걸렸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너무 젊어 아픔이란 것, 고통이란 것, 투병이란 것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나이에 그와 그녀들은 힘겹게 병마와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그들 중 일부는 아직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언제인지 모를 자신의 죽음을 기다려야 하고, 누군가는 아픈 몸과 장애를 가진 몸으로 가족에게 평생을 맡긴채 살아가야 하는 처지해 놓여져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더 이상 일하는 곳에서 자신들과 같이 희생되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고 절절히 말한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반올림, 피해자와 가족들은 사진 속의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매번 그렇게 싸워왔다. 그리고 사진 속의 주인공들의 삶이 녹아있는 노동현장과 아직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삶과, 온기, 일상이 나눠지기를 바라며
이번 노동자대회를 맞아, 사진 속 주인공들 중 일부의 삶이 담겨 있는 소중한 책이 출판됐다. 자칫 잊혀질 그네들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더 알려지고, 세상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 다행이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희정, 2011.11, 아카이브)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이 책은 책 스스로도 소개하고 있지만 “반도체 노동자들의 신음이자 절규”이다.
오늘 부스에서 150여권의 책이 부스에 찾아온 사람들의 손에 전달됐다. 그들이 책을 통해 확인한 반도체 전자산업 피해노동자들의 삶이, 입과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래 본다. 그들의 삶과, 온기와, 일상이 나눠질 수 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래본다.
“지난번에도 봤는데, 삼성 싸움 하시는 분들은 항시 여기에 자리 잡으시네요?”
“진짜 징하고, 독합니다. 우째 이리 자리를 잘 잡는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목을 잡아, 더 효과적으로 사안을 알리려고 반올림 활동가들은 매번 큰 대회가 있을 때마다 몇시간 일찍 광장에 자리를 잡고, 짐을 부려왔다. 오늘도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차곡차곡 짐을 챙겨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또 보입시데이~”
지역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위해 올라왔던 사람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며 말을 건넨다. 바람이 꽤 차가웠던 날, 뒤켠에서 오뎅과 함께 쓴 소주 한잔을 들이켰는지 작별 인사를 건네는 이들의 얼굴이 벌겋다. 이들의 작별인사가 달갑지만은 않다. 내년에 또 보자는 건, 이 싸움이 내년에도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니 말이다. 사실 작별의 인사를 건네온 그들의 싸움도, 아니 싸움을 떠나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처지도 내년이나 그 후년이나 진배없을테니 그것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래도 진득한 내일을 기약하는 작별인사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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