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 9월| 현장의 목소리] 보건의료학생 매듭의 건강현장활동기

일터기사

보건의료학생 매듭의 건강현장활동기

보건의료학생 매듭은 7월 25일부터 7월 31일까지 ‘건강현장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건강현장활동은 크게 2가지 주제로 다녀왔는데, 첫 번째 노동자 건강권을 주제로 쌍용자동차와 유성기업 농성 투쟁에 결합했고, 두 번째 빈곤과 건강을 주제로 도화마을의 전철연 철거투쟁에 결합했습니다. 건강현장활동에 처음 참가한 새내기들의 시선과 생각을 담은 두 글을 이번 <일터>에 소개합니다. 첫 번째 주제에 대해서 쓴 글이 <아프게 새겨진 "사람"들의 기억> – 양문영 이고, 두 번째 주제에 대해서 쓴 글이 <건강현장활동이 준 선물> – 한정안 입니다.

아프게 새겨진 “사람”들의 기억

양문영

7월 25일부터 일주일간, 유난히도 비소식 없이 무더위만 익어가던 한여름, 보건의료학생 매듭에서 주최하는 건강현장활동(이하 건활)에 다녀왔습니다.
[노동자 건강권을 위협하는 구조조정과 불안정한 일자리에 반대합니다. 저소득층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강제 철거를 반대합니다.] 건활을 가능한 한 짧게 요약해본다면, 2012 건활 기조였던 저 두 줄일 것 같습니다. “왜 건강현장활동에 참가하세요?” 여는 강연에서 처음으로 던져진 화두입니다. “우리는 아프면 병원에 가고 의료진이 제공하는 치료를 받아 건강해집니다.” 얼핏 보면 당연한 이 문장에, 마디마디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 여는 강연이었습니다. “치료를 받으면 건강해집니까? 건강이란, 건강권이란 무엇입니까?” 이후 일주일간 저를 포함한 건활 첫 참가자들은 끊임없이 떠오른, 또는 현장에서 부닥친 질문들로 고민하고 공감하며 지식과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노동자 건강권과 교대제 세미나, 교대제 강연, 쌍용자동차 문화제와 간담회, 유성기업 문화제와 간담회는 건활 프로그램의 일부입니다. 이 일정들은 자료집을 처음 받아 들고 훑어볼 때까지는 저에게 있어 하나의 텍스트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제 21년 삶의 어떤 날들과도 달랐던 일주일을 되새겨보는 지금 시점에서는, 선명한 기억들에 실린 무게가 버겁기도 한 그런 날들로 읽힙니다. 글로, 강연으로, 다큐멘터리 영상물로,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로 일주일간 접했던 세상은 온통 낯설고, 제 이야기가 아닌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근처의 이야기였으며 제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리 낯설다 해도 같은 땅을 밟고 살아가는, ‘같은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건활을 통해서 배우고 듣고 목격했습니다. ‘건강권’이, 사람으로서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는 것을요.
복잡하게 얽혀진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 그 하나하나를 짚어볼 수 있는 식견이 없었던 저에게 가장 아픈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일까? 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돌아가는 것과 서류만 결재하면 주야 맞교대로 사람이 일하는 것, 그 둘은 제 눈에는 절대 같지 않게 보이는데, 제 상식과 건활에서 마주한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굳이 인간의 존엄이라는 거창한 말을 끌어오지 않아도, 상식적으로 돈의 영역이 아니어야 할 많은 것들이 돈으로 설명되고 있는 사회, 제가 보지 않았던, 혹은 보지 못했던 현실들. 그러나 이러한 현장들은 (역시나 돈과 힘의 논리로) 사람들의 눈과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가려져 있지요. 덕분에 찾아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직접 겪기 전까진 불편한 것들을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지낼 수 있습니다.
선전전 피켓을 처음 보았을 때, 강렬한 붉은색이 연상시키는 피만큼이나 푹 찔러오던 두려움. 용역과 특공대, 공권력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횡포. 그것들을 바로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고 인정하면, 그것을 외면함으로써 묵인해온 지금까지의 자신을 탓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강남대로에서 유성기업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하던 우리들을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을 보면서 한 노동자 분은 “저 사람들한텐 남 얘기야.”라며 웃으시더군요. 그 말씀을 듣고 제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무관심한 척 숨어버리는 저 사람들과, 제 모습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장을 입고 출근 시간에 강남 빌딩숲을 바쁘게 질러가는 사람들도, 건활 단체티를 입고 선전전을 하는 우리들도, 당연한 것을 보장받기 위해 조끼를 걸친 노동자분들도 다 같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건활은 답이 달려있지 않은 문제만을 저에게 한가득 안겨주었습니다. 수많은 불건강한 현장들, 지금 이 시각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문제들, 바람에 흔들리는 연약한 촛불과도 같은, 권리들, 사람들, 사람들. 그러나 또한 기억해봅니다. 촛불을 감싸던 종이컵과 그 종이컵을 감쌌던 제 손과 곁에 앉았던 사람들의 손을. 사람들의 마음을. 그 곳에서 배운 것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한 사람의 예비 보건의료인으로서, 뜨거웠던 그 밤의 촛불을 되새겨봅니다.

건강현장활동이 준 선물

한정안

짧다면 짧고, 길면 긴 보건의료학생 매듭의 건강현장활동(이하 건활) 일주일. 친구의 소개로 오게 된 건활에서 전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동운동’하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몸싸움하는 사람들’이 바로 떠오르던 저에게 일주일 동안의 건활은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노동자 건강권과 빈곤과 건강 세미나, 쌍용자동차와 유성기업 노동자분들과의 문화제와 간담회, 많은 강연들,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의 생각 교환과 토론. 사회운동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저에게 이런 여러 활동들은 많은 질문과 고민을 주었고, 그 후에도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런 일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일정 중 도화마을 철거민 분들과 같이 인천시청 앞에서 집회를 할 때 경찰을 본 적도 있고, 연대활동을 하다 삼성물산 앞에서 용역과 마주쳤던 적도 있습니다. 이때 느꼈던 은근한 두려움은 무엇이었을까요.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현실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일들을 한다고 바뀌는 것이 있을까?’ ‘혹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건활을 참가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각자 해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일 것입니다. 허나 이 낯설고 생소한 세상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날이 온다면 해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도화마을 주민들께서 만날 때부터 헤어질 때까지 계속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이런 데에 관심을 다 가지고 정말 고맙네. 우리나라의 미래들이 이런 곳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우리 때는 아닐지 몰라도 학생들 때에는 정당한 가치를 누릴 수 있게 되겠지.” 저희가 연대활동을 해서 불건강한 현장을 바꿀 힘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나 생명력 있는 계란은 생명을 수천 년 이어가겠지만 바위는 풍화되어 모래가 되어가는 것처럼 결국에는 생명력 있는 계란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에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처럼 건강 또한 가치를 매길 수 없습니다. 허나 제가 일주일동안 보고 느낀 세상은 제 상식과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사람의 건강을 돈으로 가치를 매기는 세상. 다른 사람의 인권이라고는 생각지도 않는 사람이 사는 세상. 예전의 제가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많은 사회문제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겠지요. 찾아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일상 속에서는 알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돈의 논리 때문이지요.
건활이 제게 선물해 준 것은 사회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슴을 가득 메운 답답함과 불편함을 주었습니다. 이 답답함과 불편함을 좀 더 많은 생각과 질문을 통해 없애나가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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