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9월| A-Z노동이야기] 별일 아닌 듯 산다 – 시설노동자편

일터기사

다섯 번째 이야기
별 일 아닌 듯 산다
시설관리노동자 편
한노보연 후원회원 문창호
처음부터 이 일을 택한 사람은 없다
나는 건물시설관리노동자이다.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건 아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내려와 백수로 지내다, 어떤 선배와의 전화 한 통으로 전기기사 공부를 결심했다. 왜 전기기사였는지, 지금은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후 운 좋게 자격증을 취득하고 시설관리노동자로 취업하게 됐다. 나뿐만이 아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 처음부터 이 일을 택한 사람은 거의 없다. 한 형님은 공무원을 준비하다가 여러 번의 낙방 끝에 시설관리를 시작했다. 다른 형님은 자기 가게에서 닭을 튀기다가 여기로 왔고, 또 다른 형님은 IT업종에서 일했었다. 서로 했던 일들은 다르지만, 지금 하는 일이 처음부터 하고자 했던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같다.
어느 누가 백만 원대의 월급을 받으며 불규칙적인 교대근무를 서야 하는 용역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을까? 천장으로 기어 올라가 십 년 묵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변기를 쑤시다가 그래도 안 뚫리면 밑으로 내려가 오물을 토해내는 배관을 뜯어내야 하는 일을 누가 좋다고 할까?
여러 가지 두드러지는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굳이 좋은 점을 찾아보자면, 누구나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직이 잦아 회사도 딱히 사람 고를 처지는 아니고, 신체 건강하면 기본적인 일들은 처리가 되기 때문에 손쉽게 시설관리노동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청년백수부터 명예퇴직자까지, 사다리를 오르다가 미끄러진 사람과 사다리에 아예 오를 기회가 없었던 사람까지.
갑이 을을 창조하시니라
처음 취업해 출근한 데는 국립 공공기관이었다. 특이하게 산중에 위치해있고, 건물과 이를 휘감은 철책 사이의 쓸데없이 넓은 부지가 인상적인 곳이다. 첫 날, 선임자를 따라 용역대기실로 이동하며 처음 본 광경은 기괴했다. 지하로 들어서니 쇳소리 같은 소음이 계속 들려왔고, 공구와 자재들이 차곡차곡 정리돼있는 선반과 큰 덩치의 장비들 사이로 난 통로를 따라 걸으며, 다소 어두운 조명과 악취가 조금 섞인 듯 한 냄새에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건물에는 필수적인 전기실, 기계실은 대개 지하에 위치해있고, 시설관리노동자들도 거기에 상주한다. 건물이 신체라면 전기실, 기계실은 심장, 폐 같은 장기이며, 우리는 건물의 장기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내과의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의사와는 달리 구질구질하게 살아가지만.
그런데 공공기관에서의 일은 구질구질한 의사흉내만도 훨씬 못했다. 건물 안보다 밖의 부지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기관이 깔고 앉은 쓸데없이 넓은 임야는 끊임없는 일거리의 보고였다. 주중 하루마다 철책 옆길과 배수로의 낙엽들을 오후 내내 쓸어냈다. 또 잡초가 무성해지면 제초를 했고, 썩은 나무가 생기면 베어냈다. 죽일 놈의 잡초들! 매일 꼬박꼬박 해서 다 베고 나면 처음 시작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어떤 달은 방벽 같은 걸 보수한다고 2주 정도 시멘트 공구리만 친 적도 있었다. 잡초도 겸손해지는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대신 철책에 페인트칠을 했다.명색이 전기기사로 들어와 하는 일은 잡부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음부터 이런 곳은 아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직영으로 운영했다가 청소, 조경, 시설관리까지 통째로 민간위탁으로 넘겼다고 한다. 그래도 월급 줄고, 5년마다 새로 업체가 선정되고, 용역회사에서 매년 퇴사와 재입사를 요구하는 것 빼고는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기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이 사람이 보기에 용역이 하는 일 없어 보였는지 매일 업무보고를 하라 하고, 이런저런 환경정비를 직접 시키기 시작하면서 이리 됐다고 한다. 9시부터 18시까지의 일과가 정말 우리가 하는 일이 맞는지 싶은 일들로 빡빡하게 짜여졌다. 시설의 점검, 고장예방이 주이고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준비하며 대기하는 게 일이라 노동법 상으로도 감시단속적 근로로 분류되곤 하는 시설관리노동의 특성은 무시됐다. 여기에다가 곧 새로운 용역업체 선정을 앞두고 이래가지고 자리 지키겠어?”라는 관장의 한 마디에 오금이 저린 소장의 노예근성에 먹이사슬 맨 밑바닥의 고생은 배가됐다.
첫 직장은 도급계약은 실질적인 지배관계를 은폐한다는 다 알 법한 실상을 일말의 품위도 없이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싸구려 극장 같은 곳이었다. 또 이 진실을 밑바닥에서 저임금과 고용불안으로 버티어내는 게 바로 용역임을 알게 해줬다. 그러나 안다고 무엇이 바뀔까? 어느 따사로운 봄날에 관장의 명으로 대리석 계단에 납작 엎드려 약품으로 빛나도록 닦아내다가, 자존감도 함께 닦여나가는 듯해 결국 박차고 나왔다.
교대제의 감옥에 갇히다
그만두고 바로 다음날 출근한 곳은 대형마트의 용역회사였다. 대형마트는 시설관리, 청소, 보안, 주차를 각각 다른 회사로 용역 준다. 또 쓸데없는 부지도 없어 제초, 청소 같이 마구잡이 일은 안 할 것 같았다. 드디어 전기기사다운 일을 하는구나!
건물시설관리 일은 수변전·냉난방·보일러 설비 조작, 상태 검침, 전선로 포설·철거, 노후 램프·안정기 교체, 소방시설물·소방장비 점검, 세면대·변기 같은 위생설비 관리, 에너지 절약, 잠재위험 발굴, 영선, 도급공사 관리 등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일들을 처음으로 제대로 해보며 나름의 재미를 느꼈다. 특히 야간 순찰을 돌며 불필요한 전원을 내리고, 전기·가스 같은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들을 고민해 실행에 옮기며 마치 실천적 생태주의자가 된 듯 한 보람도 느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건 일 없으면 대기할 수 있고, 일일이 통제받지 않고 내가 주체가 돼 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점차 처음 같지 않고 지긋지긋한 곳으로 변해갔다. 여기서도 원청의 횡포가 있었다. 사다리를 탈 줄 모른다고 믿는 마트직원들을 대신해 천장에 광고판을 달아주었다. 도급계약상 하루 얼마 이상의 면적 페인트칠은 안 하게 돼 있다고 들었지만, 이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밥을 먹다가도 점장이 찾으면 지시를 받으러 뛰어갔다. 용역의 하늘은 월급 주는 회사가 아니라 근무지의 장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도 풀은 뽑지 않으니까 참을 만 했다.
참기 힘든 건 교대근무였다. 전의 직장에서처럼 감시반과 보수반으로 나눠져, 적어도 보수반은 주5일 정상근무를 하는 경우는 업계에서 예외적이다. 여기서는 팀장과 주임 밑의 기사들은 누구나 교대근무를 서야 했다. 9시부터 18시까지, 14시부터 23시까지, 19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등 여러 가지 근무형태가 맞물려 돌아갔다. 화나는 건 한 달에 휴무나 심야근무가 몇 번인지, 또 근무순서에 대한 납득할 만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었다. 대신 감단직 특유의 장시간 변형근로계약에 근거한 팀장의 자의적 근무 편성이 지배했다. 교대근무가 원래 힘들지만 규칙성이 없다는 건 더 힘들다. 심야근무가 연속할 때는 집에 와 자고 씻고 다시 나가는 게 전부이고, 모처럼의 휴무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에 바빴다. 심야근무라고 해서 밤새 눈뜨고 있지는 않다. 작업이 없을 때는 바닥에 종이박스를 깔고 자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 몸은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며 낡아가는 배터리처럼 흐물흐물해져 갔다. 그러면서 일이 아닌 다른 취미, 사회생활을 할 정신적, 육체적 여유도 사라져갔다. 전에 <일터>에 한 번 쓴 것처럼, “마치 어긋난 시간흐름 속에 혼자 유폐돼 살아가는 듯했다. 1년이 넘어가자 감옥 같은 교대제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오전에 잠들어 오후에 출근하기 위해 다시 눈 뜨는 걸 참아내는 게 미치도록 싫어졌다.
다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두면서 전에 직장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던 노동법 강좌에서 주워들은 것으로다가 회사에 따져, 아마도 재직자들 중 처음으로 연차휴가수당을 받아낸 건 작은 위안이었다. 노동법상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무시하고 보는 게 용역회사이다. 그들의 유일한 이윤창출 수단은 인건비 수탈이므로.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
이직의 결과는 그러나 이감에 불과했다. 짧은 경력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설관리직이란 어디나 비슷했다. 덜 인간적인 교대근무와 더 인간적인 교대근무 사이의 선택이었다. 다시 대형마트 시설관리가 됐다. 그래도 대우는 이제까지 중 가장 낫다. 월급도 오르고, 심야근무가 연속하지 않고, 근무순서도 규칙적이다. 용역회사에도 높낮이가 있고, 이직은 불만 해소의 비교적 쉬운 (그러나 일시적인) 해결책이다.
그런데 대형마트는 회사가 달라도 구조는 비슷한 것 같다. 마트는 갖가지 고용형태의 전시장이다. 마트 정규직, 마트 직고용 비정규직, 협력사 파견직, 용역, 알바, 자영업자 등 내가 아는 모든 고용형태가 다 출연한다. 그리고 서열이 있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정규직 중의 정규직인 마트 대졸 공채사원이 있다. 그 아래에는 마트 정규직이기는 하지만 올라가는 직급·직책에는 한계가 있는 일반 사원이 있다. 다음 밑이 마트 비정규직인 듯 하고, 협력사 파견직과 알바, 용역이 밑바닥에서 더 깔리지 않기 위해 다툰다. 이중에 공인된 꼴찌는 미화팀의 어머니들이다. 대개가 인정하는 가장 합리적인 서열 척도는 연봉이다.
사실, 일의 내용보다는 바라보는 시선과 대하는 태도가 우리의 기분을 좌우한다. 천장의 묵은 먼지가, 배수관의 오물이, 바닥의 타일이 더러운 게 아니라 갑과 을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눈빛과 말투, 태도가 더럽다. 같은 회사의 다른 부서 사이라도 이딴 식으로 대할까 하는 물음이 항상 머리를 맴돈다. 원청의 태도는 마트 전체로 퍼져나가, 모두가 우리를 싸구려 커피 자판기쯤으로 취급한다. 전기·기계 장비를 다루는 기술과 전문성이 아니라 부르면 뛰어 오는 개 같은 근성과 잡부의 모습, 줄여서 개잡부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 중 누구도 스스로를 개잡부라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 상의 차이가 불화를 일으킨다. 그러나 결국 성질을 죽여야 하는 쪽은 용역이다. 그래서 용역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은 용역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을은 을일뿐이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기분이란 전혀 좋지 않다. 어느 곳에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만 있다. 이는 내 무능함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동료들 누구나 부당함을 알고 화도 내지만, 별 일 아닌 듯 살아간다. 백만 원대 저임금도 별일 아니고, 중간에서 인건비 떼먹는 용역회사도 별일 아니고, 건강 해치는 교대근무도 별일 아니고, 원청의 부당한 지시와 괄시도 별일 아니다. 그래도 미화팀이 받는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받고, 대기업이 우리를 채용할 리는 없고, 근무시간에 적당히 농땡이도 칠 수 있고, 어딜 가서 대우 받을 처지는 아니니 참아줄 만하다. 그럭저럭 살만하다. 자기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아 여기저기서 모여든 사람들의 희망도 절망도 없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서로의 무능을 들춰내지 않는 좋은 동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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