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3월|칼럼] 노동자의 현장권력,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일터기사

노동자의 현장권력,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한노보연 선전위원 최종배

10년도 훨씬 넘은 오래 전 일이다. 입사 동기 한 명이 갑자기 퇴사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상급자가 “당신은 여기에서 진급할 생각 마라.”는 말에 자극받아 극단적인 결정을 했다고 한다. 노동조합이 존재했지만, 노동조합 가입은 생각해 볼 여지조차 없었던 친구는 막막한 마음으로 한두 달을 보내다 조용히 다른 곳을 찾아 갔다.
사람은 존재감과 소속감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존재감은 업무수행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주관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소속감 또한 자신이 소속한 집단에서 기대와 신뢰를 받을 때 생성되고 유지된다.
이런 사실을 힘을 가진 자와 힘을 가지지 않은 자들은 다르게 받아들이고 활용한다. 힘을 가진 자는 ‘일을 제대로 해야’한다는 전제에서 생산성과 충성심을 요구한다. 소위 ‘회사가 잘 돼야 직원들도 잘 된다’는 이데올로기를 맹신하며 생산성과 이익에 반하는 모든 것을 조직의 이름으로 부정하고 탄압한다.
노동자들은 그런 굴레에 저항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해 왔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이라는 최상위 규범을 투쟁으로 쟁취해 왔다. 그리하여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힘과 권위를 방패로 자본의 무자비한 칼날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86~87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동안 자본은 노동자의 거대한 분노와 힘에 놀라 노동자의 많은 정당한 요구들을 수용했다. 수많은 구속과 열사들의 희생 속에서다. 그러나 곧 자본은 정권을 등에 업고 다시 침탈해 왔고, 거대조직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경고 정도는 그들에게도, 조합원에게도, 일반국민에게도 작은 메아리조차 만들어내지 못 하고 있다.
자본은 전 방위적으로 법과 제도를 바꾸어 왔다. 이에 고무된 현장통제 또한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간에게 모멸감을 주는 시스템을 운영하며 치명적인 가해능력을 습득하고 축적해 온 현장통제의 문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보통의 인간은 모멸감을 느낄 때 건강, 적응, 행복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혼란, 불안감, 소외감에 빠지게 된다. 자본이 분류하는 기준의 적절, 부적절을 떠나 노동자의 개개인이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한 명, 또는 수 명의 노동자가 상급자로부터 “반드시 잘라버리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노동조합과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본의 전체적인 공격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지만, 그 자 스스로의 왜곡된 자존감과 무능력을 보상받기 위해 직위를 이용하여 노동자에게 엄격한 위계질서와 충성문화를 강요하는 행태에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가?
세계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나치들은 유태인을 수용소에 몰아넣으며 잔혹한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자행했다. 과도한 중노동, 헐벗음과 굶주림, 질병, 폭행이 일상적으로 자행된 물리적인 폭력이었다. 나치는 수용자들 간의 대화를 일절 금지하고, 이름 대신 번호로 호칭했다. 식판을 혀로 닦게 하는 방법으로 설거지를 대신하게 하면서 정신적 붕괴를 통해 미래에의 실낱같은 희망, 삶에의 의지를 꺾었다. 수용되기 전 한 번도 그런 만행을 겪지 못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정신이 먼저 붕괴된 채 쓰러져갔다.
물리적이건, 정신적이건 노동조건 저하는 우선 대상이 현장의 노동자다. 현장에서 단체협약이라는 최상위 규범을 침탈하는 망언과 폭언이 발생했을 때 노동조합 집행부는 즉각 현장을 조사하고, 자본에게 경고를 가하여 향후 같은 상황이 발생되지 않도록 집행간부와 대의원 등 조직을 동원하여 대처하는 것이 상식이라 믿는다. 대응력이 미약한 현장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결국에는 망언과 폭언을 넘어 저항하는 노동자 개개인에게 도를 넘는 징계권을 행사한다. 상급자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측의 징계라는 날 선 칼날 앞에 저항하는 노동자가 서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현장탄압의 모범이 되고, 기준이 된다.
그럼에도 현장에서의 대응의 내용과 절차에 대해 적절성 여부를 지적하며 어렵다 하든지, 현장의 문제는 현장이 해결해야 한다든지, 현장의 전체 결의를 모아 집행부에 전달해야 한다. 등의 논리로 일관하는 노동조합이라면 현장의 붕괴를 용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노동자로서의 존재감과 조합원으로서의 소속감에 연동된 노동조합의 힘, 현장권력! 그것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품고 있는 알들이 있는 둥지를 향해 다가오는 포식자를 어떤 어미새가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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