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4|칼럼] 화학물질 누출사고와 삼성 백혈병 사건의 유사성

일터기사

화학물질 누출사고와
삼성 백혈병 사건의 유사성

한노보연 부산소장 김영기

최근 연속적으로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작년 구미 불산 누출사고를 시작으로 금년 1월 27일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불산 누출사고, 3월 22일 SK하이닉스 청주공장의 염소가스 누출사고, LG실트론 구미공장의 불산, 질산 등이 섞인 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3월 28일 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는 다시 벤젠 등이 포함된 감광액 1리터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구미, 삼성 반도체, LG실트론 등에서 누출된 불산의 경우, 처음 문제가 되었던 구미 불산 누출사고 당시 그 위험성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초기 대처가 매우 부실하였다. 그러나 불산은 일종의 산으로서 산성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염산보다 부식성이 크다. 따라서 액체 불산이나 고농도의 불산 증기가 피부에 닿으면 하얗게 탈색되며 물집이 잡힌다. 눈에 닿으면 각막이 파괴되거나 혼탁해진다. 흡입한 경우 입속 점막이나 상기도에 물집이 잡히며 심하게 부풀어 오른다. 목구멍이나 기관지는 경련을 일으킨다. 허파꽈리 등에 물이 차서 호흡이 곤란해지는 폐부종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산의 경우 노출된 부위에 부식을 일으키는 것으로 끝이지만 불산은 다른 산과 달리 피부를 뚫고 조직 속으로 쉽사리 침투해 강력한 전신적 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 피부를 뚫고 혈액 속으로 들어간 불산은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부정맥과 심장마비를 유발할 수 있다. 이것은 불소 이온이 몸속의 칼슘이온과 결합하기 때문이다. 칼슘 이온은 인체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 중요한 생리 기능을 수행하는데 불산이 칼슘과 반응해 불화칼슘을 만들면 핏속의 칼슘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저칼슘혈증이 발생한다. 이를 보충하려고 칼륨이 방출되면 고칼륨증, 저마그네슘증 등이 생긴다. 손바닥보다 넓은 면적에 불산 화상을 입으면 전신중독의 위험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불산 관리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국내에 불산 취급이 허가된 곳은 반도체 공장뿐이다. 반도체 공장은 첨단 시설이어서 충분히 안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 당국은 불산 취급·관리를 사실상 반도체 업체에 위임했다.
그러나 최근 누출사고가 반도체 같은 전자산업에 집중된 것은 정부의 믿음과 어긋나게 기업들이 허술하게 관리하였음을 보여줬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유독물질을 협력사에 맡기고, 담당자 한 명이 82개 업체를 관리했다고 한다. 일부 기업은 유독물질 보관 탱크에 노후 중고 배관·밸브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이번 사건조사에서 2000여건의 안전 규정을 위반한 것이 드러났지만 부과받은 과징금은 2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 탓에 기업들은 안전 규정을 무시하기 일쑤다. 법을 지키는 것보다 이를 무시하고 벌어들이는 이익이 훨씬 더 큰 탓이다.
최근 전자산업에서의 일련의 화학물질 누출사고를 보면 삼성 백혈병 사건이 떠오른다. 정부와 관련 기업에서는 전자산업이 소위 청정산업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누출사고를 보면 사람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갈 수 있는 독성 위험물질이 다수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자산업이 무공해 산업이라는 주장은 전문가적 관점에서 볼 때도 명백한 거짓말이다.
또 누출 사고 10시간 가까이 늑장 보고, 보호구 지급, 사고 당시 가스 외부 배출, 경찰 조사 방해 등 사건 덮기에만 급급한 삼성의 모습은 백혈병 등 직업병을 문제제기 했을 때 보여주었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문제제기가 되어서야 라인을 개선하였고, 라인을 개선한 뒤에 수많은 돈을 주고 외국의 전문 조사기관을 초청하여 삼성의 작업환경이 백혈병과는 관련이 없음을 주장하려고 노력했던 모습 말이다. 이미 문제가 되었던 과거의 유해작업라인은 다 없앤 이후의 조사는 무의미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누출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것은 삼성만이 아니다. 다른 기업도 은폐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자기 회사 노동자뿐만 아니라 주변 주민들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었던 누출 사고 은폐를 시도했던 것은 사람보다 이윤이 먼저라는 자본주의 기업의 본성을 폭로하고 있다.
삼성의 유명한 광고카피 문구 중에 “또 하나의 가족”이 있다. 국민을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기업이 어떻게 이리도 무책임하고 비정할까? 이 기업의 광고카피에 나오는 ‘가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과 다른 모양이다. 국민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여긴다고 주장하지만 불산누출사고, 삼성 백혈병 사건을 통해 삼성이 보여주는 행동은 국민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극한에 이른 기업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행태는 묵과할 수 없는 지경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의 존엄함을 무시하고 철저한 자본의 논리만을 펼치며 책임회피하기에 바쁜 기업은 결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될 수 없다.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은 이런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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