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뉴스]"환자 돌보다 감염, 성희롱 당하기도…"

"환자 돌보다 감염, 성희롱 당하기도…"
 
[죽음의 파수꾼-간병인]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루 일당 5만원에 목숨담보
 
임민희 기자 
 
남편과 사별, 사업실패 등 가장으로서 자녀학비, 생계비 책임지기 위해 40∼60대 중고령 여성들 간병일 시작해

정씨 “불면증, 안구건조증, 근골격계 질환 등 각종 직업병 안고 살아…MRSA 등 항생제 내성균 감염돼 1년간 일을 그만두기도… 옴에 걸린 환자 돌보다 전염 사례 비일비재, 환자로부터 성희롱 당해도 대응방법 없어”

간병인들은 저임금과 주 144시간이라는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40∼60대의 여성노동자들로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거나 사업실패로 가계를 책임져야 할 경우 자녀 학비와 생계비를 벌기 위해 간병일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력이나 기술이 없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 파출부와 간병일이기 때문이다. 정금자(58)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간병인분회장 또한 이와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정 회장은 남편의 사업실패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세 아이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1993년 간병일에 뛰어들었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과 만난 그녀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시작한 일이 훗날 OO대병원 간병인 노조를 설립하고 무료소개소를 운영, 관리하는 대표자의 길을 걷게 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고 감회를 밝혔다.

“남편이 사업을 실패한 후 방황을 겪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학교에 보내야 하고 공과금은 계속 나오는데 토큰 값도 없어 쩔쩔매던 시기였다. 남편의 방황이 계속되면서 나라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처녀시절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간병일을 시작했다.”

8개월간의 투쟁이 만든 무료소개소

정 회장은 1993년부터 10년 동안 간병일을 했다. 당시 서울대병원에서는 간병인력에 대한 직영운영을 했고 그녀는 OO대병원에서 치료(외래진료)를 받고 있는 중증 환자를 재택간호했다. 이후 97년에는 OO대병원 간병인 공채에 지원해 채용됐다.

그러나 2001년부터 병원에서 무료소개소를 폐쇄한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이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그녀는 다른 간병인들과 뜻을 모아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간병인분회의 전신인 상조회를 조직했다. “노조설립을 할 수 있는지 노동청에 가봤는데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만들 수 없다는 거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다니며 자문을 구했고 민주노총과 변호사를 만나보니 노동자 3명만 있으면 노조설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우리끼리 회비를 모아 상조회를 만든 후 서울대병원 노조를 통해 간담회를 열어 관련자들에게 무료소개소 폐쇄 소문에 대한 진상을 추궁하면서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OO대병원 간호과장으로부터 상조회를 없애면 무료소개소를 폐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해체를 했지만 1년 후 병원 측은 간병인에 대한 구조조정(정리해고)을 진행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병원 측은 간병인들을 수시로 불러‘일을 잘 못한다’,‘환자로부터 민원이 들어왔다’는 등의 이유로 간병인들을 하나 둘씩 정리 해고해 나갔으며, 2003년 8월 31일 전체 간병인들에게 “무료소개소 폐지할 테니 유로소개소에 다시 등록해 일을 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는 것.

정 회장과 간병인들이 서둘러 무료소개소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폐쇄된 후였다. 그녀를 비롯한 12명의 간병인들은 “무료소개소를 노조에서 직접 운영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병원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병원 측에서 병원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농성대오는 국가인권위원회(18일)와 노동청(3일) 등으로 자리를 옮겨 투쟁을 계속했다.

“무료소개소가 폐지된 후에 △△△와 □□□□라는 유료소개소가 들어왔다. 간병인들이 농성을 계속하니까 경비, 수간호사, 부원장, 원장까지 동원돼 우리를 강제로 쫓아냈다. 심지어는 환자나 보호자들한테까지‘저 간병인을 쓰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우리는 병원의 인권탄압과 부당행위를 국가인권위에 제소하는 등 8개월 동안 강도 높은 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병원에서도 무료소개소를 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현재 OO대병원에는 약손엄마(무료소개소, 노조운영)와 YWCA, ◇◇◇유료소개소) 등 3개의 업체가 들어와 있다. 정 회장은 “병원측이 노동조합 이름으로는 안 된다고 해 할 수 없이 자활후견인 단체인‘약손엄마’의 이름을 빌려 무료소개소로 복귀하게 됐다”며 “우리가 좀 더 힘이 있었다면 노조 단독으로 병원에 들어가 임금교섭도 하고 파업도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녀는 남편의 도움과 자식들의 믿음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간병인 노조를 설립하고 8개월이란 긴 시간을 투쟁할 때 남편은 집회에서 발표할 연설문을 밤새워 써주는 등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고.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아이들을 시골에 있는 친가에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엄마의 뜻을 따라주었다는 것. 지금은 노조활동을 하는 엄마를 가장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간병일을 할 때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나 삐삐도 없어 사고 후 며칠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직장암 환자를 간병하고 있었는데 내 개인적인 일로 병실을 비울 수 없기 때문에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토요일이 돼서야 시골에 내려갈 수 있었지만 다음날 바로 올라와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병원 노동자로 인정돼야

정 회장은 100여 명의 노조원들과 함께 노조활동을 해 나가고 있으며 무료소개소를 운영하며 간병일을 알선·관리하고 있다. 그녀는 노조가 있어 소개업소의 횡포가 그나마 덜하다고 했다.

노조에서 유료업체가 간병인들로부터 20만∼40만원의 등록비를 받고 월 회비로 5만원을 걷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는 실태를 적발해 노동부에 해당업체를 불법공급으로 고발했던 것. 그 이후부터는 지레 겁을 먹은 소개업체들이 노조원들에 한해 3만원 미만의 월 회비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OO대병원 외의 소개업체에서 들어온 간병인들의 경우 아직도 5만원 이상(올해는 6만원으로 인상)의 월 회비를 납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또한 유개소 대부분이 교육비, 책값으로 돈을 받지만 제대로된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 회장은 열악한 근무여건으로 인해 간병인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어깨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은 상시적으로 안고 있으며 불면증과 안구건조증 등 각종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일이 많다는 것. 어떤 간병인의 경우 피로누적으로 인한 면역력 약화로 MRSA 등의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돼 고열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1년 간 일을 그만둬야 했다. 또한 옴에 걸린 환자를 보호자의 말만 믿고 일반 병실에서 지내게 해 병실 환자는 물론 4명의 간병인들이 옴에 걸린 일도 있었다.

간병인들은 6일 동안 병실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밥과 김치를 싸오지만 더러는 환자가 먹고 남긴 밥을 모아 먹다 병에 전염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었다. 그녀는 “환자를 간호하다 병을 얻어도 산재보상을 받을 수 없기에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할 뿐더러 생계를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간병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씁쓸함을 자아냈다.

그녀는 간병인들이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보니 환자들이 간병인들을 성희롱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일부 환자(할아버지)들은 간병인을 자신의 몸종 정도로 여겨 돈으로 유혹을 한다는 것. 또한 보호자와 환자들이 간병인을 불신해 모함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간병인들은 이런 일을 당할 때면 정말 막막함을 느낀다고 호소하고 있다"며 "정규직이라면 문제를 삼을 텐데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라 병원에서도 나 몰라라 하기 때문에 그냥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정 회장은 “우리는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다”며 “노조에서는 간병인으로서 자긍심과 전문성을 키워주기 위해 월 1회씩 월례회와 실무교육(질병, 질환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가슴속에 담아왔던 말로 인터뷰를 마감했다.

“우리의 어린 자식들도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버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일해 번 단돈 5만원이 우리에게는 생명줄이다. 간병인들의 소박한 바람이 헛되지 않도록 병원에서 직접 고용을 하든지,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고용을 해 노동자로서의 기본 권리를 보장해 줬으면 한다.”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