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노말헥산 농도측정 겉핥기 드러나

노말헥산 농도측정 겉핥기 드러나

한겨레 2005.01.16(일) 18:36


노동부, ㄷ사 조사결과 기준치 초과불구 조치 안취해


타이 여성 노동자들의 집단 하반신 마비 증세는 해당 사업주와 당국이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을 외면한 채 형식적인 작업환경 측정을 하면서 장기간 방치한 결과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합법적 외국인 노동자마저 피하는 이런 유해물질 취급 사업장에는 불법 체류라는 신분상 약점을 지닌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중돼 있어 피해 가능성은 더 크다는 지적이다.

◇ 부실한 작업환경측정=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42조는 작업장에서 노동자가 작업시 발생되는 소음과 분진, 노말헥산과 같은 유해화학물질 등의 유해인자의 노출을 막기 위해 매년 2차례 작업환경 측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은 해당 사업장이 노동부 지정 측정 대행기관을 선정해 측정 결과를 노동부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부는 ㄷ사의 경우 “작업환경 측정은 했다”고 밝혔지만, 부실 측정이라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말헥산을 사용하는 작업장 안 공기 중 농도 기준치는 50ppm으로, ㄷ사 작업장의 지난해 측정치는 이보다 높게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들을 진료한 안산중앙병원 조해룡 원장은 “이들이 하반신 마비라는 현재와 같은 다발성 신경장애를 일으키려면 적어도 작업장 안 공기 중 노말헥산 농도가 54~200ppm 상태에서 1년여 정도는 노출되어야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작업환경 측정은 이뤄졌지만 부실 측정 결과, 장시간 노말헥산에 중독됐다는 지적이다.

◇ 왜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인가?=이번에 노말헥산에 의해 다발성 신경장애 판정으로 확인된 노동자는 경기 화성시 ㄷ사의 타이 노동자 5명과 비슷한 증세를 지니고 귀국한 3명,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 안 ㅅ사의 중국 노동자 3명 등 모두 여성이다.

이들은 검사실 등의 밀폐된 공간에서 ‘백라이트’와 같은 엘시디 부품을 노말헥산이 주원료인 세척제로 장시간 세척하는 일을 해왔다. 박태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싼 임금에 장시간 앉아서 비교적 쉽게 일할 수 있는 노동인력이다보니 유해물질을 다루는 국내 영세 사업자가 선호한다”고 말했다.

◇ 외국인 작업관련성 질병 늘어난다=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주로 3D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직업병 발생현황은 2000년 20명, 2001년 16명, 2002년 15명, 2003년 34명, 2004년 6월 말 현재 15명이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작업 관련성 질병은 2000년 11명, 2001년 15명, 2002년 10명, 2003년 34명, 2004년 6월 말 현재 12명으로 나타나는 등 점차 작업 관련성 질병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홍용덕 김기성 기자ydhong@ha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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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질식 점검으론 사태 재발 못막아”






정밀한 작업환경 측정 제도 보완장치 시급
‘노말헥산’ 밝혀낸 박태순 씨 인터뷰

“이주 노동자들이 유해물질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사용자(회사) 쪽의 부도덕한 행태 못지않게 사업장 안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여부에 대한 정부의 안일하고 부실한 지도·점검 때문입니다.”

3년 전 중국 여성 노동자 3명이 앓던 ‘정체불명’의 병을 5개월여 동안 추적해, 처음으로 노말헥산 중독에 의한 ‘다발성 신경장애’임을 밝혀낸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안산지역협의회 박태순(47·사진·대열보일러 노조위원장) 의장은 “노동부가 전국 노말헥산 취급사업장 367곳을 대상으로 특별점검을 벌이기로 한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해 ‘제2, 제3의 노말헥산 중독’을 막을 수 없다”면서 “유해물질 중독 재발을 막기 위해선 제조업체 작업환경 측정에 대한 제도적 보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989년부터 경기 안산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해온 박 의장은 2002년 5월 반월공단 안 반도체부품 제조공장을 다니며 극심한 신경통을 호소하는 쉬안슈인(51) 등 중국 여성 노동자 3명을 만났다. 그는 당시 같은 회사의 다른 노동자들이 ‘하반신에 힘이 빠지고 어지러움증에다 팔목이 저려 방 안에서 기어다니며 생활하고 있다’는 증언을 듣고 직업병임을 의심해 같은해 6월5일 안산노동사무소에 진정을 내고 추적에 들어갔다.

수사관처럼 300장이 넘는 조사기록을 만들어가며 이들의 작업과정을 조사한 박 의장은, 이들이 1.5평 크기의 밀폐된 작업장에서 노말헥산으로 반도체부품을 닦아내는 일을 해왔고 함께 일했던 다른 노동자 3명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박 의장은 이들이 일하는 사업장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작업환경측정’도 받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결국 같은해 10월 이들은 안산 고대병원에서 ‘노말헥산 중독에 의한 다발성 신경장애’란 판정을 받고 현재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박 의장은 “노말헥산은 다른 세척제보다 3배 가량 가격이 비싼데다, 원청업체가 이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이 납품되면 ‘불량 판정’을 내리는 일이 잦은 것으로 안다”면서 “원청업체에 대한 유해물질 사용 강요 여부도 조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산/김기성 기자 rpqkf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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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데려가 치료해줘요” 눈물의 호소


[오른쪽사진]경기 화성시 향남면 요리 ㄷ사에서 일하다가 노말헥산에 중독돼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를 앓고 있는 한 타이 여성 노동자가 지난해 12월 초순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아 임시숙소에 들어가고 있다. 이 여성 노동자는 지난달 13일 안산중앙병원에 입원해 현재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제공


“사장님, 나 한국에 데려가 치료해 주세요”

16일 타이 방콕을 찾은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박천응 목사는 “경기 화성시 ㄷ사에서 일하다 노말헥산에 중독돼 고통을 받고 있는 타이 노동자 까따이(25·여)가 한글로 적은 글을 받아 보고는 눈물이 났다”고 이날 <한겨레> 기자와의 국제 전화통화를 통해 말했다.

까따이는 노말헥산 중독 사실을 모른 채 고통을 받다 지난달 11일 귀국한 ㄷ사의 타이 여성 노동자 3명 가운데 1명이다. 그는 2003년 5월 한국에 입국한 뒤 출국하기 직전까지 7개월 동안 ㄷ사에서 일해왔다.



노말헥산 중독 타이노동자 방안 쳇바퀴 생활
여성3명 17일 입국예정…검찰 본격수사 나서



까따이는 자신들을 국내에 귀국시켜 치료받도록 하기 위해 지난 15일 타이에 입국한 박 목사 일행과 이날 방콕에서 만났고, 박 목사로부터 한국에 남아 있는 동료인 타이 노동자들이 병원으로부터 ‘노말헥산에 의한 다발성 신경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 목사는 “까따이가 한달 전 자신의 나라로 돌아온 뒤 한번도 방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고 말했으며 어린애처럼 아장아장 걷고 있다”면서 “식사와 용변문제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해결해 왔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까따이 등 병에 걸려 귀국한 이들 3명의 타이 노동자들은 회사가 마련한 비행기표만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ㄷ사가 타이 여성 노동자의 집단 발병 사실을 숨긴 채 이들을 조기 귀국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박 목사는 “회사 쪽이 발병 이후 타이 노동자들을 계속 산재가 아니라 ‘공상’으로 처리해 산재 발생 사실을 은폐해 왔다”고 말했다.

박 목사 일행은 까따이 외에 시리난(37)과 러짜나(30) 등 나머지 2명의 타이 여성 노동자도 주타이 한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소재를 파악 중이라며, 소재가 확인되는 대로 이들 3명과 함께 17일 오후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또 노동부는 타이 여성 노동자들의 집단 하반신 마비 사건과 관련해 해당 ㄷ사에 대한 조사 결과, ㄷ사는 유해물질을 다루는 업소인 만큼 작업환경 측정을 했다고 밝혔지만 일부 빠진 항목이 발견되는 등 작업환경 측정이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동부 관계자는 “다발성 신경장애 판정을 받은 이들에 대한 건강검진 기록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물론 이들이 노말헥산을 사용하는 유해물질 취급 사업장이었음에도 실제로 이들의 작업환경을 제대로 측정되지 않아 그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또 이날 산재의료관리원 안산중앙병원에 근로감독관들을 보내 타이 여성 노동자 5명을 상대로 작업환경과 발병증세, 근로시간과 함께 이들이 받은 임금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한편, 수원지검 공안부는 노동부 수원지방노동사무소와 경기 화성경찰서 관계자들과 함께 대책회의를 열고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검찰은 “ㄷ사의 안전규정 준수 여부 및 기타 부당노동행위 등을 조사해 위법사항 발견시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사업주를 형사처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안산·수원/홍용덕 김기성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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