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소리]공개도 안 할 반도체산업 일제조사는 왜 했나?

공개도 안 할 반도체산업 일제조사는 왜 했나?
뉴스추적 - 삼성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사망 그 후

윤보중 기자

2007년 3월 강원도 속초 태생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한 지 4년만의 일이었다. 황씨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라인 같은 공정에서 일하던 이숙영씨가 앞서 2006년 8월에 백혈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중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족들은 황씨의 죽음을 산재로 확신했고,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 지급을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그 해 8월경 산업안전공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했고, 차일피일 미뤄지던 역학조사는 9월경에 실시됐다. 4일간 실시된 조사에서 유족들은 공장 내부의 풍경이 죽은 황씨의 설명과 너무 다르다고 보고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7년 11월 20일. 민주노총, 건강한 노동세상, 다산인권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사회단체들이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들은 황씨의 죽음이 산재임을 주장하면서 역학조사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황씨 이외의 근무자와 퇴사자들에 대해서도 건강실태 등을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렸다는 제보가 잇따랐고 이 같은 지적에 힘이 실렸다.

2월초 노동부는 “전국 13개 반도체 제조업체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실태를 일제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제조사는 반도체 제조업 부문에서는 최초로 실시되는 것이었다. 노동부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S사에서 화학물질을 취급하던 근로자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주장이 제기됨에 따른 것”이라며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대책위는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에 13곳을 조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2월 중순경 대책위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관할 지방청에 확인한 결과, 각 지청들은 구체적인 계획조차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책위는 노동부를 추궁했고, 노동부도 이를 인정해 수정 지침을 내렸다. 기한에 구애받지 말고 규모에 따라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대책위는 사측과 협의된 조사는 사측에게 유리한 근거만 만들어 줄 것이라며, 불시 점검 등을 골자로 한 객관적 조사를 촉구했다. 이제 13개 반도체 제조업 노동자에 대한 건상 실태 결과는 3월 이후에나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공방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관할지청의 조사 방식 등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대책위는 모니터링 차원에서 관할지청 관계자에게 조사방법 등을 문의했지만 “노동부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이유로 개별적으로는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을 늘어놓았다. 2007년 10월 “역학 조사결과”만을 부르짖던 근로복지공단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대책위는 4월경 노동부의 일제조사 결과가 완료된 것으로 확인되자 일제조사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요구했다. 5월경 노동부는 일제조사 결과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개인정보’와 ‘영업 비밀’을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애초에 일제조사가 황씨의 산재 여부를 판가름하는 역학조사의 근거자료로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었다. 노동부 관계자에 따르면 “조사 내용이라는 것이 개별 노동자의 건강진단 결과 등 데이터일 뿐이며 어떤 상태를 기술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에 노동부가 10월 말로 예정된 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 결과 발표를 기다리라는 입장을 고수해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5월말 대책위는 노동부 입장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일부 정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등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는 조사방법이나 과정 등에 대한 검토가 없다면, 왜곡된 데이터 수집에 따른 왜곡된 결과 도출이 우려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동부는 이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측에서 일부 정보의 공개를 꺼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기존과 동일한 개인정보, 영업비밀이라는 답변에 기초했다.

대책위는 반도체 업체별로 △재직경력이 있는 근로자의 연도별, 직종별, 연령별, 성별 구성 현황 △주요 화학물질 취급현황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현황 △건강진단 및 작업환경측정 실시현황 △백혈병 발생 현황 등을 조사한 것에 “무슨 개인 정보가 있느냐”며 반박했다.

6월 말, 노동부는 대책위의 공개 질의에 대해 서면을 통한 공식 답변을 보내왔다. 역학조사가 실시된 2007년 9월로부터 무려 9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 답변에서 노동부는 반도체 소자 제조업체 13개소를 조사대상으로 하며, 지방노동관서 근로감독관과 한국산업안전공단 지도원이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자료를 요구하고 제출받는 방식으로 최대 6명의 인원이 4일간 조사를 실시했다고 전했다. 조사내용은 진행 중인 역학조사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며, 백혈병 잠재 위험요인 등에 대해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결국 2007년 6월에 접수된 황유미씨의 산재 건은 1년 이상 그 결정이 유보된 채로 올해 11월이 지나봐야 그 실체가 드러날 전망이다. 그동안 가족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오랜 투병 생활과 수술 비용 등으로 가계는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황씨 조모는 충격에 빠져 쓰러진 뒤 영영 일어나지 못했고, 모친은 신경쇠약 증세를 호소하고 있으나 변변한 치료조차 못 받고 있다.

대책위는 성명미상의 노동자들을 포함해 13명의 백혈병 발병자가 있음을 추가로 확인했다. 베게너육아종증과 같은 희귀병 사례를 포함해 6명의 기타 암 피해자도 있었다. 제보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사측의 산재 은폐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실제 미국, 영국, 대만, 중국 등에서 비슷한 환자 발생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유미씨의 죽음을 두고 산재인지 여부는 논란의 대상이지만, 반도체 노동자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월간 말 기사입력 : 2008-08-27 11:51:09
최종편집 : 2008-09-03 14:36:25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