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직장내 성희롱은 '산업재해'다

[일다]직장내 성희롱은 '산업재해'다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과 예방은 아직까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직장내 성희롱 피해 구제를 위해 다양한 해결 방안이 나올 필요가 있다. 그 중 하나로, 직장내 성희롱 고통으로 인한 피해와 후유증을 ‘산업재해’로 보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성차별적 노동현실에서 ‘산업재해’와 ‘산업안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관련 기사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직장내 성희롱을 고용상의 성차별 문제로 보고 이에 대한 예방과 규제를 위해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률 등 관련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와 후유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의 피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여성의 안전과 건강 위협


"신념이나 확신의 저조, 불안, 두려움, 공포, 분노, 수치심, 신경증, 우울증, 불면증, 자존심 손상"


성희롱으로 인해 피해 여성은 신체적 외상 이외에도 우울증, 불면증, 스트레스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등의 피해를 호소한다. 그러나 많은 수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보복성 인사조치를 받는 현실이다. 사고 이후에도 남아서 피해자의 삶을 괴롭히는 이 후유증과 고통은,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직장내 성희롱은 여전히 '폭력'이나 '차별'이 아닌 말 그대로 '희롱'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성희롱 피해자들이 고통 받는 정신적, 신체적 증상을 "성희롱 증후군(sexual harassment syndrome)"이라 하여, 장기간 성희롱으로 고통 받는 피해자의 심리적 증상과 신체적 질병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반면, 피해자의 이러한 고통이 '성희롱 피해'임에도 불구하고 성희롱을 문제화하기 어려운 우리 현실에서, 피해 사실은 더욱 비가시화되고 은폐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후유증이 여성이 노동을 수행하는데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즉, 직장내 성희롱은 여성노동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유해한 작업환경을 만들고 있다.


여성노동자가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로 인해 궁극적으로 피해자가 노동을 지속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직장내 성희롱은 노동권 침해일 뿐 아니라, 건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성희롱 증후군’, 업무상 사유에 의한 것


'산업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부상ㆍ질병ㆍ신체장해 또는 사망"(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조 1항)을 의미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상법)의 정의에서 산업재해를 판단하는 기준은 우선 '업무상 사유에 의한' 것인가 여부다.


직장내 성희롱은 ‘직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인 고용환경 안에서 발생하는 사고이기 때문에 업무와 관계된 문제다. 이렇듯 업무와 관련해 성희롱이 발생했다면, 이는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의 경우에도 그것이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고 보는 협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연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일과 관련해서 상의할 게 있다”면서 업무와 관련한 이유로 불러내어 성희롱 한 경우에도 업무와 무관한 행위로 볼 수 있는가?


직장내 성희롱은 직장 안에서 발생할 뿐 아니라 밖에서 사적인 만남을 가장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관계 자체는 업무 관계로 인해 맺어진 것으로, 그 사건은 ‘직장’을 매개로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업무와 무관하게 보고 개인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업무관련성을 매우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업무관련성, ‘업무상 사유’에 대한 판단은 적극적으로 해석돼야

한다.


두 번째 판단기준은, 상병과 업무와의 관련성이 '상당한 인과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판단하는 데는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합리성에 근거해서 이뤄진다. 이 기준에 의한 산업재해만이 산재보상법의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


성희롱으로 인해 피해자가 겪는 무력감, 자존감 상실, 우울증 등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외에도 위장장애, 두통, 치통, 목이나 등의 통증 등 성희롱 피해 이후에 나타나는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성희롱 증후군’으로 표현한다. 이는 성희롱으로 인한 피해가 성희롱 사건과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직장내 성희롱 피해는 업무와 ‘상당 인과관계’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굴뚝 재해’로 인식됐던 산업재해 개념 넓혀야


이와 같이 직장내 성희롱은 "업무 과정에서 인간에 의해 근로자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부상당한 것"이다. 따라서 직장내 성희롱 피해도 분명히 산업재해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산업재해 보상은 현재 단 한 건에 불과하다. 2000년 부산 새마을금고 사건에서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신체 상해로 산재보상을 받은 건 뿐이다.


우리나라는 건설, 제조업 등에서 발생하는 추락, 절단 등의 사고나 질병과 같이 주로 '굴뚝 산업'에서 발생한 사고나 질병을 위주로 산업재해 보상을 해왔다. 이러한 내용의 산업재해가 최근까지도 전체 산업재해 보상 내용에서 70% 이상을 차지한다.


산업재해를 굴뚝 산업 위주로만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해, 사무직 노동자의 문서작업, 상사, 동료, 고객과의 관계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 과중 노동의 부담, 오랜 작업에서 오는 질병 등은 사실상 산업재해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5-6년 전만 해도, 특수하게 설치는 사람 정도가 산재 신청을 할 뿐, 대부분은 산업재해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정도로, 산재보상 제도는 노동자가 피해 구제를 위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로 여겨지지 않는다.


산업재해가 대규모 사업장, 제조업 등 남성 노동자에게 재해 위험이 가장 높다는 데 집중돼 오면서, 여성의 재해율은 평균 10% 내외로 보고되고 있다. 산업재해 통계는 성별 통계가 구축되지 않아 정확한 여성 산업재해 비율을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노동부가 1999년까지 정리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여성의 산업재해 비율은 최고 12.17%로 기록되어 있다.


산업재해 비율의 현저한 성차는 단순하위 사무직, 판매, 서비스직에 집중돼 있는 여성의 노동현실을 간과해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의 경우 성별 권력관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기 쉽지만, 대인관계에서 오는 폭력과 같은 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 받기는 쉽지 않다. '폭력, 기타 행위'로 분류되는 산업재해는 아직까지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재보상법의 정의로는 충분히 직장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를 제도적으로 적용한 사례가 극히 드물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직장내 성희롱이 '성별화된 부적절한 노동환경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작업은, 여성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직장내 성희롱 예방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


<다음 기사 예고: 직장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보기 위한 조건>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http://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최이윤정 기자
 
사금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