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노동자''노말헥산중독사건 한겨레 특집보도

'타이노동자''노말헥산중독사건 한겨레 특집보도



[한겨레신문] 큰병 든 몸보다 쫓겨날까 더 걱정



‘노말헥산’ 중독 하반신 마비 노동자에 들어보니


“공장에서 그렇게 위험한 일인 줄 알았으면 안 시켜야지요.”

13일 경기 안산시 일동 안산중앙병원에서 만난 수말리(29·사진)는 “내 병이 다발성 신경장애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약 없는 치료를 받아야 할 그는 불법체류자다. 타이 방콕에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나컨라 찻시마라는 시골에서 1년3개월 전 ‘돈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곧 ㄷ사 검사실에서 1년간 일해온 그는 “아주 냄새가 독해서 어떤 사람은 검사실에서 쓰러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타이 사람들은 기분이 안 좋은 경우나 멀미가 날 경우 ‘야동’이라는 약을 코에 대는데 작업장에서 눈이 따갑거나 쓰러지면 이것을 코에 마시고 나서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매달 100여만원 안팎의 월급이었지만 80여만원은 고향에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수말리는 자신의 몸보다 더 큰 걱정이 앞선다. 불법 체류자이다 보니 곧 쫓겨나는 것은 아닌가 해서다. 타이에서 나올 때 400만원을 브로커에게 주고 왔다는 그는 “아직 빚도 갚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400만원은 타이 돈으로 14만바트. 대졸 초임자의 월급이 3천∼4천바트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불법체류자 신분 입국때 진 빚도 못갚아



그는 “몸이 아파 지난해 12월부터 그나마 송금을 하지 못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남편과 3년 전 이혼한 뒤 친정에다 아들(초등 4학년)과 딸(초등 2학년)을 맡기고 왔지만 친정 부모는 80살이 넘어서 노동력이 없는데다 자기가 돈을 보내지 않으면 과자를 들고 노점상을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불안해했다. “회사에서 몸이 너무 아팠지만 고향에다 편지해서 약을 보내달라고 해서 먹으며 참았어요. 제가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 가족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데, 이렇게 불법 체류자로 밝혀졌으니…어떻게 되나요.” 끝까지 침울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안산/홍용덕 기자 ydhong@ha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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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위험성 알고도 방치 의혹




노동무 노말핵산 367개 사업장 특별점검

노동부는 경기 화성시의 타이 여성 노동자 5명한테서 ‘다발성 신경장애’(앉은뱅이병) 증상이 발생한 사건(<한겨레>13일치 1면 참조)과 관련해, 전국 367개 사업장의 노동자 2600여명이 비슷한 환경에 노출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들 사업장을 상대로 특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노동부는 일차로 문제가 된 경기 화성시 ㄷ사에 13일 근로감독관과 산업안전관리공단 직원들을 보내 특별조사에 들어갔다.

노동부는 이번 집단 산업재해를 유발한 유기용제 ‘노말헥산’이 다른 사업장에서도 허술하게 취급되고, 대부분 피해자가 외국인 노동자들일 것으로 보고 있다.

송영중 노동부 산업안전국장은 “노말헥산에 의한 다발성 신경장애 발병업체인 ㄷ사에 대해 작업환경 측정, 특수건강진단 및 개인보호구 지급 등 산업보건상의 조처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법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문제의 노말헥산으로 세척작업을 하는 작업장에는 타이 출신 여성 노동자 8명만 일했고, 이 가운데 파타라완(30)을 뺀 다른 이들은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연수기한을 넘긴 불법 체류자”라고 덧붙였다.

또 ㄷ사는 12일 <한겨레>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척제로 쓰이는 노말헥산이 신체에 이런 악영향을 주는지 사전에 몰랐다”고 해명했으나, 타이 여성 노동자 5명이 안산중앙병원에 입원(2004년 12월20일)하기 5개월여 전에 ㄷ사는 노말헥산 사용을 중단하고 독성이 없는 세척제로 대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ㄷ사는 노말헥산에 중독된 외국인 노동자들의 증상과 위험성을 알고서도 스스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그대로 방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주로 이런 위험한 작업현장에 투입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노말헥산을 사용하는 전국 367개 사업장에 대해 직업병 예방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특별점검을 하기로 했다. 이런 사업장에 일하는 노동자 수는 모두 2600여명인 것으로 노동부는 추정했다.

한편, 노동부 관계자는 “장애판정을 받은 타이 여성 노동자에게는 불법체류를 했더라도 산업재해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치료비와 장애등급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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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없이 12시간 노출”

편집 2005.01.13(목)


△ 노말헥산이 든 세척제에 중독돼 다발성 신경장애를 앓고 있는 타이 노동자들이 13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일동 안산중앙병원 병실에서 자신들의 증세를 밝히고 있다. 안산/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회사서 가운만 줘
무슨 약품인지도 몰라
병원 단 한차례 다녀와
손가락까지 마비


13일 오후 타이 여성 노동자 8명이 노말헥산에 중독돼 하반신 마비증세를 일으킨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요리 엘시디·디브이디 부품업체인 ㄷ사. 회사 쪽은 노동부의 현장조사에 맞춰 아침부터 몰려든 기자들의 취재를 한사코 거부했으나, 결국 오후에 검사실의 문을 열었다.

검사실은 입구에서부터 강한 화공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너비 3.5m, 길이 8~9m, 높이 2.5m의 밀폐된 검사실 안에는 양쪽으로 책상이 놓여 있었고 빈 책상 위로는 형광등이 줄지어 켜져 있었다. 사방이 온통 막힌 컨테이너 같은 느낌의 방이었다.

환풍기는 천장에 매달려 있었지만 검사실 안의 독한 냄새를 빼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바로 이 방에서 일하다 노말헥산에 중독된 타이 여성 파타라완(30)은 “보통 아침 8시30분부터 밤 10시에서 11시까지 일했고, 휴일에도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아무개 공장장은 “세척제로 사용하는 ‘노말헥산’이 유독성이 강한 줄 몰랐다”며 “정전기로 인한 화재 발생을 우려해 지난해 8월부터는 친환경적 세척제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회사 관계자는 “노말헥산이 유독성 물질이라는 것을 공장장이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입마개를 쓰기만 해도 줄일 수 있었던 피해였는데, 안전 불감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ㄷ사 검사실을 둘러본 뒤 이곳 공장에서 일하던 타이 여성 노동자들 세 사람이 입원한 경기도 안산시 일동 산재의료관리원 안상중앙병원 203호를 찾았다. 얼굴이 가무잡잡한 다섯명의 타이 여성이 병상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대부분이 앉은 자리에서 바로 일어서기 어려울 만큼 하반신 마비증세로 입원한 이들이다.

한국말을 잘하는 파타라완에게 “노말헥산으로 제품을 검사하며 닦을 때 냄새가 나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파타라완은 “플라스틱 제품을 검사할 때 기름 같은 액체로 닦으라고 해서 그대로 했어요. 제품을 닦을 때 나쁜 냄새가 났어요”라고 말했다. 파타라완은 링거 버팀목에 의존해야 간신히 걸을 정도로 하반신 마비가 심각한 상태다. 최근에는 손가락으로도 증세가 번져 물건도 잘 들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파타라완이 그의 어머니와 함께 경기 화성시 향남면 요리 ㄷ사에서 일한 것은 3년째다. 그가 맡은 일은 회사 검사실(세척실)에서 일명 ‘백라이트’로 불리는 엘시디·디브이디 부품의 얼룩이나 때를 지우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일 손으로 만지는 액체가 무엇인지는 한 번도 물어본 적도,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그는 “회사에서 작업 중에 쓰라고 마스크나 보호안경을 준 적이 없었다”며 “그냥 회사에서 준 하얀 가운 하나만 걸치고 일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일어서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하다 동료들이 쓰러지기도 했는데, 잠시 쉬었다가 괜찮으면 다시 일했다”며 “처음에는 나 혼자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동료들도 비슷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런 증상을 보인 때는 지난해 10월에서 11월 사이다. 제3세계 의료지원활동 단체인 ‘사랑의 봉사단’ 이현애 간사는 “어려움을 겪는 타이 노동자들이 도움을 받을 곳은 타이인을 위한 교회 정도인데,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쉬지 못해 이 교회에도 나오지 못했다”며 “다른 타이인들로부터 고립돼 증세가 더욱 악화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반신 마비증세를 보인 타이 여성 노동자 8명 가운데 t수말리(29·여) 등 4명은 지난 11월 회사를 나와서 인근 마을에 방을 얻어 집단생활을 했다. 그러나 나머지 4명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자신들의 숙소 대신 회사 안의 한국인 기숙사 2층에서 쉬고 있었다. 이들은 “거동이 불편해 밥을 동료 타이 노동자들이 받아다 주고, 용변을 보러 갈 때도 업어서 다녔다”고 말했다.

이 사이 이들이 병원에 갔던 것은 단 한차례뿐이었다. 회사 쪽은 “회사 유관 병원인 오산의 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지만 특별한 이상 증세는 없다고 해서 다시 회사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뒤늦게 추언총 등 타이 여성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6일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타이 노동자들의 등에 업혀 안산의 ‘파로스 태국인 교회’로 실려왔다. 이들은 병이 생긴 지 두 달이 다된 12월13일에야 안산의 중앙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한국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던 5명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고통을 못 이겨서 회사가 마련한 귀국 비행기를 타고 지난해 12월11일 타이로 귀국한 씨리난(37·여) 등 3명은 마비증세가 온몸으로 번졌으나 현재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김남숙 선교사는 “씨리난 등 타이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하면 너무 고통스러워하면서 울음만 쏟아낸다”고 말했다.


안산 화성/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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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착용 법규 무시-안전의식 마비




△ 노말헥산이 든 세척제로 노동자들이 작업을 했던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의 한 엘시디·디브이디 부품 제조업체 작업장. 화성/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담당의사 “치료법 없고 최소 2년 지나야 정상으로”


“이번에 집단 발병한 ‘다발성 신경장애’는 매우 위험한 화학물질인 ‘노말헥산’에 아무런 보호장구도 없이 노동자들을 그대로 노출시킨 결과입니다.”

타이 여성노동자 5명의 다발성 신경장애를 밝혀낸 산재의료관리원 안산중앙병원 조해룡(52·사진) 원장은 “법에서 정한 일정한 원칙만 지켰어도 노동자들이 이처럼 위험한 병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말헥산이 어느 정도 위험한가?

=다발성 신경장애를 일으키는 노말헥산은 주로 공업용 세척제와 타이어 접착제 등의 소재로 쓰이고 있는데, 반창고를 만드는 회사에서도 이 물질을 사용한다. 워낙 광범위하게 쓰이는 공업용 물질이지만 노출되면 상당한 위험성이 있다. 노말헥산이 들어간 소재가 눈에 들어갈 경우에는 망막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도 있다.

-전국에 비슷한 업체가 300개가 넘는다는데 이런 곳도 위험하지 않은가?

=노말헥산에 의한 신경장애는 밀폐된 공간에서 보호장비 없이 장기간 노출될 경우 발병하는만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위험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문제가 된 현장에서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데?

=위험성 때문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에는 이 물질에 대한 직접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장갑과 얼굴보호용 장구는 물론 심지어 방독마스크까지 쓰도록 규정돼 있다. 일본과 핀란드에서도 각각 10여명이 이 물질에 노출돼 집단 발병한 사례가 있어 이 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을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대로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농약에 중독되면 해독제 등을 이용해 치료와 회복을 기대하지만, 다발성 신경장애는 인위적 방법으론 안 되고 대소변 등 인체의 자연적인 대사작용으로만 회복이 가능하다. 최소 2년이 지나야 마비된 신체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신경조직에 큰 영향을 주는 질병인만큼 철저한 사전 예방과 사후 요양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사례는 없었나?

=2002년 시화공단에서 일하던 불법체류 중국동포 3명이 고대 안산병원에서 다발성 신경장애 판정을 받았는데, 제대로 치료가 안 돼 최근 2명이 재요양을 하고 있다. 안산/김기성 기자 rpqkf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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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도 산재보상 가능




△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의 한 엘시디·디브이디 제조업체 공장 정문 앞에서 공장 관계자들이 보도진과 이야기하고 있다. 화성/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유기용제 ‘노말헥산’으로 피해를 본 외국인 노동자들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이들은 대부분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일 가능성이 높지만 산업재해 인정을 통한 보상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을 산재보험 적용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장에서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는 노동자라면 불법체류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산재 승인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사업장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일단 산재로 인정되면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에게 산재보상금을 먼저 지급한 뒤 사업장에 구상권을 행사한다.

일차적으로 산재 여부를 판정하는 기관은 근로복지공단이다. 물론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결정에 대해 노동자는 행정소송을 낼 수 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산재로 인정이 되면, 노동자는 우선 입원치료비와 휴업급여(입원기간 동안 받을 수 있었던 평상시 임금의 70%)를 받게 된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후유장애가 남으면 보상금도 받을 수 있다. 장애 정도에 따라 14등급이 매겨져 최고 1474일분에서 최저 55일분의 임금이 지급된다.

이와 함께 사업주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서울행정법원의 한 판사는 “체류의 합법성 여부를 떠나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근로계약이 체결됐으면 사용자는 근로자를 위험상황에서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말했다. 산재를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위험요인을 알리지 않고 보호장비를 챙겨주지 않았다면 그러한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책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만 현행법이 손해배상금과 산재보상금의 이중수령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민사상 불법책임에 따른 배상금액을 노동자가 온전히 받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산재보상금으로 5천만원이 지급되고 민사소송을 통한 배상액수가 7천만원으로 결정된다면, 노동자가 사업주에게서 실제 받을 수 있는 배상금은 산재보상금 5천만원을 뺀 2천만원이 된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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