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빵 한 조각도 죄책감 없이는 먹을 수 없는 나라 (22.10.20)

기고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밤샘 노동을 하던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 개’였다. 프레스기로 노동자들의 손가락을 제품과 함께 잘라 가며 수출하던 나라에서는 그랬다. 10대 여공들이 잠을 쫓는 약에 풀어진 눈으로 시다판에 피 섞인 가래를 토하며 옷을 짓던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있으나 마나 했던 근로기준법 준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불살라야 했다. 강남 벌판에 쑥쑥 올라가는 아파트들이 늘어갈수록 공사판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노동자들도 늘었고, 부러지고 부서진 노동자들의 뼈로 골조를 세우는 나라였다. 열일곱 소년노동자가 온도계와 압력계를 만들다 수은과 유기용제 중독으로 죽어 가고, 노동자 수백 명이 이황화탄소로 쓰러지고 미쳐 가도 독재의 그늘을 감출 올림픽은 축제가 돼야 했다. 그나마 일터와 세상이 조금씩 나아진 것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뭉치고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 거리로 나서기 시작하면서였다. 이 나라의 꼴이 그나마 제대로 잡힌 것은 그런 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동 덕택이었다.

노동자들이 일군 호황은 금융정책을 망친 정치, 거기에 기대 은행 빚으로 과잉투자에 골몰한 기업, 돈 벌기 만만한 나라로 만들려는 국제자본이 초래한 외환위기로 무너졌다. 노동자들은 맨몸으로 공장 밖으로 쫓겨났다. 남은 노동자들은 엄청난 노동강도로 골병에 시달렸다. 쫓겨났던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오기 위해 작업복과 명찰을 바꾸고 비정규직, 하청노동자가 돼야만 했고 더 위험하고 궂은일을 감수해야 했다.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일상적 구조조정과 살인적 노동강도가 불러온 골병, 근골격계질환의 고통에 시달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이 다시 뭉쳐 거리로 나서기 시작해서야 외환위기 극복이 누구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인지 돌아보게 됐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분절화 흐름은 되돌리지 못했고 어긋난 정책과 정치로 고착돼 갔다. 위험은 불안정 노동자들에게로 계속 흘러내려 쌓였다. 더 위험해진 이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권력 없는 노동자, 비정규직, 여성·청소년·고령·이주 노동자들이었다.

전문읽기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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