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그늘, 직업병_부산일보기사

'문송면군을 기억하십니까?' 1988년 7월 당시 15세였던 문송면군은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짧은 삶을 마감했다. 사인은 수은중독으로 인한 직업병. 온도계 제조공장에 입사한 지 불과 두달 만에 찾아 온 비극이었다. 이 어린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직업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싹텄다. 관계법 개정,산업안전보건연구원 발족 등의 조치가 잇따랐다. 그러나 그 후 17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나 노동자들의 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직업병 판정기관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동의 그늘인 직업병의 실태와 현행 진단체계의 문제점 그리고 대책 등을 시리즈를 통해 짚어본다.
 

 
# 직업병이란

한 자동차 부품 조립회사의 7년차 직원 김모(34)씨. 오른쪽 팔꿈치에 극심한 통증이 와 병원을 찾았다. 주로 오른팔만으로 하루 10시간씩 볼트 조이는 일을 한 탓이었다. 증상은 4년 전부터 나타났으나 파스를 붙이면서 지내왔다. 진단결과는 단순반복작업으로 인한 중증의 퇴행성관절염이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질병치료를 미루다 심각한 상황을 맞는 노동자들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인제대 부산백병원 산업의학과 김정원 교수는 '노동자들을 상담해 보면 대부분 김씨와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다. 아프지만 당장 죽을 병 같지는 않아 차일피일하다 병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직업병으로 판정 받는 일은 그리 원활치 않다. 직업병은 사실 판단하기가 애매하고 복잡하다. 진폐증과 소음성 난청처럼 간단한 엑스레이검사나 청력검사만으로 알아낼 수 있는 질환도 있지만,그렇지 않은 질환이 더 많다. 직업성 암과 근골격계질환 같은 만성질환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를 충족조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1.노동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유해요인을 취급하거나 이에 폭로된 경험이 있을 것 2.유해인자의 폭로 정도가 질병 또는 건강장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인정될 것 3.유해인자로 인해 특이한 임상증상이 나타났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될 것 등이다.

다만,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는 있다. 흔히 직업병이라고 하면 질환의 원인이 100% 직무와 관련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직업병연구센터 강성규 소장은 '질환이 직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면 즉,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면 직업병으로 인정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 우리나라 직업병의 현 주소

우리나라는 통계상으로만 보면 선진국들에 비해 발병 건수가 훨씬 적다.

지난 1995~97년 한국 독일 미국 영국 스웨덴 등의 직업병 인정 자료를 살펴보자. 나라별로 인구 수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이를 보정한 후 직업병 수를 비교해 보면,한국에 비해 독일은 8.2배,영국은 5.4배,미국은 23.9배,스웨덴은 46.7배나 높은 실정이다. 선진국들이 거의 인정하지 않는 뇌심혈관계질환을 제외한다면 독일은 10.7배,영국은 7.1배,미국은 31.5배,스웨덴은 61.6배로 더욱 높아 진다.

제조업 등 2차산업의 비중이 이들 국가들에 비해 훨씬 높은데도 직업병 수가 적게 나타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의 노동환경이 이들보다 우월하다는 뜻일까?

김정원 교수는 '한국의 직업병은 진폐증과 소음성난청이 주를 이룬다. 독일도 엇비슷하지만 한국엔 거의 없는 피부질환과 폐암·악성중피종을 포함한 호흡기질환이 24%나 차지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1년에 2차례 실시하는 특수건강진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의 직업병 현황파악 자료로 쓰이는 특수건강진단의 경우 진폐증과 소음성난청을 제외한 다른 질환을 발견해 내는 데는 무력한 실정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노동계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한 근골격계질환의 경우만 해도 정기적인 특수건강진단 항목에서 빠져 있다. 고신대병원 산업의학과 김진하 교수는 '1차검사 때 간이 나빠보이는 페인트공이 있었다. 유기용제 피폭량을 알아보려면 초음파검사를 해 봐야 하는데 기껏 2차 검사에서 피검사와 소변검사,엑스레이검사를 하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초음파검사는 노동자가 자비를 들여서 해야 하고 검사 항목의 경우는 근로복지공단에서 기준을 미리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특수건강진단의 경우 검사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의사 1~2명이 당일치기로 노동자 300여명을 검사하는 게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예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직업병은 보상 등 사후관리보다 사전 역학조사를 통한 사업장의 유해인자 축소 방식이 상책인데,현재의 시스템상으로는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개별 사업장의 역학조사는 노동자의 요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사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사업주들은 역학조사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고 그래서 현장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있다.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김병훈 사무차장은 '한 단위사업장 노조에서 유해화학물질을 들고 역학조사센터를 찾아가 성분 분석을 의뢰했지만 노사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부산대병원 산업의학과 강동묵 교수는 '미국처럼 노조나 노동자 3인 이상이 의뢰하면 역학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관련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우·임태섭기자 tslim@busanilbo.com

자문단=부산대병원 강동묵·동아대병원 김정일·    고신대병원 김진하·인제대병원 김정원     산업의학과 교수




김정원 1

댓글 1개

불량토끼님의 댓글

불량토끼
에, 노동안전보건뉴스로 복사해놓았습니다. 앞으로 관련기사가 있으면 저어기 위에 소식>노동안전보건뉴스에 등록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