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민중의 건강권을 빼앗으려는가
― 노동자 민중과 시민 사회의 대 정권 투쟁을 촉구한다 ―
오늘, 참여정부의 국무회의는 경제자유구역내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
하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 법률안을 의결했다. 그야말로 이 정권은 “국가의
중요 정책으로서 범 정부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과 경제자
유구역의 성공적 조성을 위해서” 대단한 결단을 내린 셈이다. 오늘 국무회의
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 법률안 의결은 이렇듯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번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의결은 ‘의료 사유화’의 본격적인 시작
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대통령 선거 때 무엇이라고 했건, 지
난 2년 동안 일관되게 추진한 것은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민간의료보험 도
입 따위의 의료 사유화 정책이다. 공공의료 30% 확충이나 보험급여 70%선 확대
는 그저 구두선에 그치거나, 노동자 민중과 시민사회의 압력에 못이겨 시늉만
냈을 뿐이다. 애초 경제자유구역법이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지 않아 영리법인
의료기관 진출을 원천봉쇄했던 데에서 이번 개정안으로 바뀐 것처럼, 시민사회
의 여론에 밀려 철회한 기업도시법의 영리병원 허용 조항도 덧붙이려는 시도
가 다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둘째, 이 정권 스스로 자신의 사회정책 지향인 ‘참여복지’를 헌신짝 내팽겨
치듯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들은 스스로 복지의 보
편성, 국가의 책임, 국민의 참여라고 “참여복지”의 성격을 규정했다. 그러
나 이번 개정안 의결로 의료 사유화 정책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상, 복지의
보편성이나 국가의 책임은 이제 안중에 둘 필요도 없게 되었다. 노동자 민중
과 시민사회의 저항과 문제 제기가 없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부실한 우리나
라 보건의료는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민중, 대체형 사보험과 왜소한 건강보
험, 또한 이들과 짝을 이루는 극소수의 의료인과 다수의 의료인이라는, 이중
적 의료체계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입에 발린 얘기로 말하듯 다양
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닌 척하면서 사회를 분열시키고 다수를
배제하는 보건의료 체계로 나아갈 위험이, 이번 개정안 의결로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주요 보건의료 정책들이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가 아니라 재정경제부 등 경제 부처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첫 번째 사례가 기업도시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그림자를 얼씬거렸고 이
번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의결로 첫 걸음을 내딛은 영리법인 의료기관 개설
허용 문제였다. 이제 내년 8월로 예정된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상품이 출시되
면, 사보험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텐데, 이는 기존의 전통적인 논리
인 “다양한 의료수요 충족”을 넘어서 방카슈랑스 확대에 따른 보험산업의 활
로를 찾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한국의 보건의료 정책을 보려면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청와대나 재정경제
부 등 경제 부처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넷째, 정부의 이번 결정은 정책 과정이 합리성과 근거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계급의 시각과 이해에 기반한 힘의 논리, 세력 싸움이라는 점을
분명히하여 주고 있다. 재정경제부를 필두로 한 정부의 경제자유구역 정책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때로는 정보의 왜곡과 조작을 통해, 스스로 이미 정해놓
은 결론에 짜맞추기식으로 진행되어 왔음은 이미 우리 모두가 살펴본 바와 같
다.
여러 보건의료 단체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정책의 근거 없음을 주장하고, 심
지어 학계의 전문가들도 정책 결정 과정의 심각한 비합리성과 비전문성을 지적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은 이러한 우려와 문제 제기를, 때로는 묵살하고
때로는 단지 일부의 의견으로 치부하면서, 스스로 정해놓은 수순을 밟아온 것
이다. 결국 이러한 점들은 이 정권의 정책은 스스로가 특별히 봉사해야 할 누
군가가 있음을,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논리와 합리성이 아니라 오직 힘과 세력
으로 정책을 밀어붙여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셈 아닌가?
물론 정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이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고 잘못을
고칠 시간적 여유와 기회는 있다. 바로 국회에서의 개정 법률안 심의 과정이
다. 그러나 그 간의 경과에 비추어보건대 이들에게는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볼
수 있는 병식(病識)조차 없는 것만 같다. 어떻게 하겠는가? 일찍이 중국의 노
신은 “사람을 무는 개라면 땅에 있건 물 속에 있건 모조리 때려야 할 부류에
속한다.”고 했다. 이 정권 역시 이번 개정 법률안 의결로 국민의 건강권을 심
대하게 훼손하는 ‘사람 무는 개’와 마찬가지임이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어
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몽둥이로 흠씬 패줄 일이다.
노동자 민중과 시민사회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성실한 문제 제기와 설득을
통해 이 정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마음을 고쳐 먹을 일이다. 노무현 대통
령을 비롯하여 이 정권의 의료 사유화 정책에 관여했던 관료들과 국회의원의
이름 하나 하나를 반드시 기억해두고, 끝까지, 악랄하게, 그들의 과오와 책임
을 물을 일이다. 참여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
던 모든 이들은 이제 이 정권에 맞서 온 힘을 다해 싸울 일이다.
2004년 11월 16일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