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연대(구. 미래연대) 기관지에 실렸던 글을 옮겨보았습니다. 노안운동의 방향성을 바로 세워나가는데 매우 유익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꼭 읽으보시기 바랍니다. -정래-]
산재보험범 개악을 저지하고
노동자 건강권 쟁취투쟁을 확대하자!
지난 해 12월 29일 노동부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은 노사정위원회 산재보험발전위원회 합의문을 근거로 한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이번 합의를 통해 ‘산재보험 도입 40여년 만에 전반적인 제도개선을 이뤄냈고 노사정 협력정신을 제고하여 협력적 노사관계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냈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 합의안, 그리고 그것이 근거한 산재법 개정안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후퇴시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을 더 어렵게 하고 급여를 축소하며 산재노동자들의 저항을 차단하기 위한 함정과 장벽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노사정위원회의 본질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정부와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을 포섭하고 무력화하기 위해 구성한 기만적인 덫에 불과하다. 이 기만적인 덫의 본질을 감추기 위해서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 여러 단체, 여러 노동운동 조직을 끌어들이려 한다. 그들의 단골손님들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서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개량주의 관료들이다. 노동조합 간부들이 자본으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는 대가로 자본의 손발이 되어 현장의 노동자를 배신하고 투쟁을 가로막는 것처럼, 개량주의 관료들도 이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노동자대중의 권리를 팔아먹는 대가로 자본주의 사회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출세를 보장받는다. 이번 산재법 개정 과정은, 노사정위원회에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자본가의 들러리를 서주는 꼴이 될 뿐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고 있다.
산재법 개악의 배경
정부는 각종 사회보험의 적자를 부자들의 주머니가 아니라 노동자와 가난한 민중의 주머니를 털어서 해결하려 한다. 정부는 국민연금 적자를 이유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고 급여는 대폭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번 산재법 개악에서도 정부는 이런 의도를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자본가들은 산재보험이 2003년부터 적자가 나고 있고, 법정적립금(4조 원)보다 2조 4,000억 원이 부족하며 적자를 메우기 위해 9% 안팎의 보험료를 올려왔지만 이대로 가면 2010에는 적립금이 고갈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면서 이러한 적자의 책임이 요양기간이 길고 급여가 많아서, 그리고 노동자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협박한다.
이것은 정말 적반하장이며, 오히려 강도가 큰 소리 치는 격이다. 우리나라는 노동부 통계만 보더라도 하루에 7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고 있다. 1년 평균 9만여 명이 산재를 당하고 있으며 2,500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고 약 30,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재로 인해 장애인이 되고 있다. 즉 하루에도 100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장애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산재 장애인의 사회복귀율을 보면 원직장 복귀는 30% 미만이며 재취업, 자영업을 포함해도 40% 선을 넘지 않는다(물론 이러한 통계는 산재보험 급여를 신청한 사람들을 기초로 한 통계다. 산재를 신청하지 못한 사람들을 다 같이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산재발생율, 사망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한 마디로 노동자에게 산재는 치명적이며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전체가 심각한 위협을 겪게 된다.
게다가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나고 노동강도가 강해지면서 병들고 다치고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경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고,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더욱 가혹하게 쥐어짜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것은 자본의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기에 스스로 이것을 선택하는 자본가는 없다. 그 결과 산재는 더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더 가혹하게 덮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산재율이 어마어마하게 높고, 산재 노동자에 대한 구제책이 형편없다는 점을 무엇은 보여주는가? 한마디로 산재보험 재정 적자의 원인은 ‘현장의 대단히 열악한 노동조건, 즉 살인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이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명확하다. 자본가들이 ‘산업안전 시설에 대폭 투자하게’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일하게 올바른 해결책에 대해서는 정부와 자본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다. 노사정위에 참여하는 어용 단체들도 이 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들 모두는 산재보험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산재 신청 요건을 강화해서 ‘다치고 병들어도 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본가들의 돈주머니를 지켜주고 더 많은 돈으로 채워주려 발악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외치며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피눈물을 강요하고 있다. 이번 산재법 개악안은 한마디로 죽고 다치더라도 한 푼도 지불하기 싫고 모든 책임은 노동자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사장들의 비정한 심보를 반영하고 있다.
산재보험은 자본가들이 보험료를 지불하도록 되어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 체제라지만 죽어라고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도저히 정당하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므로 보험료를 올리는 것, 보험급여를 확대하는 것은 자본가들의 부담을 키운다. 그런데 자본가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선 수조,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즉 국민의 재산)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투입하는 정부이지만, 노동자의 목숨을 구제하는 산재보험기금 앞에서는 단 한 푼도 지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즉 수천억 원, 수조 원의 막대한 재산을 갖고 있는 자본가들이 그 재산의 일부라도 날리는 것 앞에서는 무한한 동정심을 내보이는 정부이지만,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어나가며 아파 신음하는 이 절박한 현실 앞에서는 아무런 동정심도 갖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고, 자본가정부의 본질이다.
이 정부는 자본가들의 돈주머니를 아주 조금이라도 털어서 산재보험 재정을 확충하는 대신 자본가들의 부담을 줄이고 산재노동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할 뿐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승인 처리과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근로복지공단은 재정안정을 이유로 승인실적을 통제, 관리하고 있다. 산재 승인이 많이 나면 재정적자가 악화된다! 그러면 사장들이, 정부가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병들어 다치고 죽는가에 상관없이 자본가들의 이윤, 자본가정부의 재정을 보호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진정으로 중요하다! 그 방법은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승인받기가 쉽지 않은 산재 판정을 더 최소화하고, 죽어나갈 병이 아니라면 쉽게 산재 치료를 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산재환자들이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스스로 나가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에 대해 사업주들이 이의제기를 하고 그래서 심사시간이 길어지고 자본가들의 압력이 커지면 산재노동자들은 지쳐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산재법 개악안의 핵심 내용인 부분휴업급여제도 신설, 고령자 휴업급여 축소, 요양기간 연장요건 강화, 사업주 이의제기권 명문화 등은 사장들과 정부의 이러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여기에 장기화되는 경제불황 속에서 실업자는 대폭 늘어나고 비정규직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열악한 현실을 노동자 착취 강화에 이용하고자 하는 사장들의 계획이 한 몫 거들고 있다. 더 싼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 늘어나자 자본가들은 산재환자들 대신 더 건강하고 더 싼값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자를 찾기가 쉬워졌다. 산재법 개악에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자본가들이 더 싼 임금의 노동자를 사용하기 쉽게 하기 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가령 급여를 축소하고 요양을 어렵게 해서 산재노동자들의 원직 복귀를 막는 것이다. 산재 환자들을 길거리로 내쫓고 더 싼 임금에 부려먹을 수 있는 비정규직을 채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산재법 개악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자.
산재법 개악의 구체적 항목
먼저 사업주의 이의제기권을 도입하였다. 입법예고에는 빠져 있으나 시행령에 포함시키려는 이 내용은 산재신청을 가로막는 중대한 독소조항이다. 사업주의 의견청취를 명문화한 것인데 이렇게 되면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산재승인을 가로막기 위해 온갖 자료와 정보를 제시할 것이다. 그 결과 승인 기간이 자연스레 길어질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다양한 형태의 압력을 넣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수많은 사업장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을 막기 위해 전환배치와 해고를 포함한 악랄한 탄압을 하고 있는데, 사업주의 이의제기권마저 도입된다면 이것을 이용한 탄압까지 더해질 것이다. 종합해 볼 때, 사업주의 이의제기권은 산재 신청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또한 업무상 재해의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이 명백한 질병’이라고 업무상 재해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직무스트레스 또는 산재로 인한 고통과 자살 등을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산재의 범위를 대폭 축소시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근골격계 질환, 정신질환, 뇌심혈관계 질환을 아예 제외시키려 할 것이다.
정부는 전문가로 구성된 업무상질병위원회를 신설하여 업무상 재해 판정에 대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이 위원회에 노동자들이 개입할 여지는 사실상 없기 때문에 현행 자문의 제도의 확대복사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전승인권과 심사권이 여전히 근로복지공단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이 위원회는 결국 객관성과 공정성을 마련한다는 명분하에 근골격계 투쟁의 성과마저도 무력화시키며 승인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고 더욱 제한할 것이다.
또한 산재법 개정안은 산재 환자의 요양을 제한하며 통제하고 있다. 요양기간을 연장하려면 주치의의 진료계획서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치료기관 및 의사의 권한을 강화시켜 주는데, 공단과 자본가들이 의사에게 수많은 압력을 넣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산재 노동자의 권리는 축소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또한 전원요양(의료기관을 옮겨서 요양하는 것)의 경우도 이유를 명시하게 하고 사전승인을 받게 하며 공단이 직권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산재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조건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산재노동자들은 병원 옮기는 문제에서 이중의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게 될 것이다. 또한 산재요양 중 추가로 병이 발생하거나 최초 요양시 확인하지 못한 추가 질병이 나타났을 때 추가상병(추가로 나타난 병)을 신청할 수 있는 요건을 제한했다. 그리고 장해 재판정 제도를 신설했는데, 본인이 자발적으로 원할 경우가 아니라 공단의 직권으로 2년 후 3년 이내 1회 재판정을 통해서 급여 지급을 변동시킬 수 있게 했다. 장해급여 및 연급지급액을 삭감하기 위해서다. 또한 공단의 지시를 위반한 경우에 공단에서 보험급여의 지급을 제한할 수 있게 되어 공단의 권한이 막강해졌다. 이를 통해 산재노동자들을 더욱 강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어 산재노동자들을 더욱 마음대로 주무르려 하는 시도다. 이것은 산재 노동자들을 강제로 치료를 종결해야 하는 막다른 상황에 내모는 것으로 연결된다.
뿐만 아니라 각종 보상급여를 축소하고 있다. 60세 이후의 고령자에 대해 휴업급여를 65세까지 매년 4%씩 감액하도록 했다. 이것은 나이가 많고 열악한 처지에 있는 고령 노동자들에게 가차 없이 칼을 대는 것이다. 나이 드신 노동자들은 질병의 위험이 높고 힘든 일을 하시며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열악한 임금을 받고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한 번 산재나 병에 걸렸을 경우 장기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고령노동자의 휴업급여를 삭감한다는 것은 나이든 노동자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것이 맨 날 입만 열면 고령화 사회 대책 운운하는 정부가 나이든 노동자들을 대하는 방식이다. 또한 재요양시 휴업급여도 최초요양기준이 아니라 재요양 직전 임금의 70%로 삭감했다. 이렇게 되면 산재노동자들은 생계부담 때문에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재요양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번 개악안에는 부분휴업급여제도가 신설되었다. 부분휴업급여 제도는 통원 치료 중 일을 하면서 주기적으로 치료하면 휴업급여를 부분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이것은 치료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장 복귀를 강요하도록 만들 것이다. 자본가들은 ‘일하면서 치료하라’고 압박할 것이다. 특히 저항의 힘이 미약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아프고 힘들더라도 강제로 일을 하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최악의 경우 산재노동자의 병이 악화되는데도, 산재노동자가 일을 하면서 치료를 받는다는 명분하에 자본가들이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서 현장의 노동강도가 전체적으로 강화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산재법 개악안에 의료, 재활 서비스를 확충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먼저 산재환자의 의료비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요양승인 이전에 발생하는 의료비는 국민건강보험으로 우선 처리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업무상 질병으로 판단되는 환자는 그 기간 중 본인이 일부 부담하는 건강보험료에 대해 1,000만 원 한도에서 대부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설사 산재승인이 아직 나지 않더라도 산재보험기금으로 치료하고 나중에 정산하도록 해야 한다. 즉 산재처리는 ‘선치료, 후보장’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산재환자가 그 비용을 잠시라도 부담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게다가 ‘우선 자가부담, 후 지급청구’의 원칙은 몸이 아파도 치료비가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또한 정부는 직업재활 급여를 선전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진정한 이익과는 한 참 거리가 멀다. 우선 이것은 산재노동자의 원직장 복귀 의무화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것은 산재환자를 원직 복귀시킨 사업주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그나마 원직 복귀를 촉진한다는 것인데 결국 자본가들을 돕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원직장 복귀 의무를 회피할 것이고, 받아들이는 경우는 정부로부터 받는 수많은 혜택 때문일 것이다. 결국 산재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키고, 모든 부담을 국민(즉 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는 생색내기용 정책 한 두 가지를 끼워 놓고 나머지는 전부 자본가를 위한 개악안으로 채워 넣고 있다. 그런데 더욱 눈여겨보아야 하는 지점은 지금까지도 산재보험법의 적용대상에서 영세사업장, 건설현장의 열악한 노동자들은 제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저항하는 조직노동자들, 자기 권리를 지키려는 산재노동자들에게 일정한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대신(하지만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조차도 대폭 줄이려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 건설노동자들에게는 아예 산재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전체 산업재해의 70%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전체 사망재해의 50%는 건설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덤프, 레미콘 노동자,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들, 한마디로 산재에 의해 가장 크게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다. 실제로 작년에 원진노동건강연구소와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이 운수업 특수고용노동자(덤프연대) 48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산업재해율(노동법상 산재보상이 가능한 비율)은 매년 8%로 일반 사업장의 0.7%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산재보험 적용을 받은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산재보험의 전면 적용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기 단사의 건강권 쟁취투쟁을 넘어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관점에서 산재보험 개악 저지와 전면 개혁,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완화, 산재보험 적용 범위를 모든 노동자들로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펼쳐 나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장의 단결과 투쟁을 만들어내기
산재법 개악저지 투쟁은 현장에서의 노동자건강권 쟁취투쟁, 현장통제권 쟁취투쟁과 맞물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할 때만 제대로 확대될 수 있다. 강화되는 노동강도, 부족한 인력, 개선되지 않는 작업환경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파괴하고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자본가들의 현장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지만 현장의 자신감과 투쟁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조합주의와 실리주의가 현장 깊숙이 스며들고 고용불안의 위기감이 노동자들을 휘감으면서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건강권 쟁취 투쟁 역시 쪼그라들고 있다.
현장에서 산재가 터져도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관심을 크게 갖지 않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분열되어 있고 쉽게 자신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동료가 아프거나 산재를 당해도 함께 고통을 나누고 싸워나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나한테 피해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산재를 제기했다가 짤리지는 않을까,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은 커지고 있다. 투쟁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전체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산재, 한 부서의 산재도 노동자 전체의 문제로 받아 안고 부서를 뛰어넘어 함께 싸우려는 단결의 정신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산재를 당한 개인과 부서의 일로 마무리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또한 강화되는 노동강도 때문에 산재가 계속 발생할 때 인력충원과 노동시간 단축의 방향으로 단호하게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포기하는 실리주의 경향이 현장투쟁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명백한 산재가 발생했음에도 노동조합이 나서 공상처리 수준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한마디로 산재의 원인을 근절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산재가 발생한 뒤 그것의 처리에만 급급한 ‘언 발에 오줌누기 식’ 대응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정규직 인력충원을 통한 ‘노동자들을 병들게 만드는 열악한 현장노동조건의 개선’을 분명히 제기하고 싸워나가기보다 산재 요양의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투입해 메우거나 아예 산재환자의 작업량을 동료들에게 전가하는 것을 방치하는 어이없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산재를 발생시키는 조건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함으로써 더 많은 산재를 불러오는 파산적 대응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끼리의 분열은 지속되고 노동강도는 강화되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고 쓰러지게 된다. 하지만 인력충원이나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대안을 붙잡지 못하는 경우 또다시 비정규직 투입이나 임금인상으로 마무리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산재를 신청하는 노동자들도 자신감이 사라지고 언제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회사나 공단의 압박과 통제에 무너지게 된다.
이에 반해 자본가들은 노동자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자신들의 현장통제를 무너뜨리고 결국에는 이윤을 줄일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경쟁의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본은 인력충원이나 노동시간 단축을 할 생각이 거의 없으며 산재문제에서도 훨씬 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본가들은 산재를 은폐하고 산재문제가 집단적 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을 이용해 승인율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현장에 물리치료실을 설치하고 그것을 통해 산재를 감추거나 산재를 줄일 수 있을 것처럼 사기를 치기도 한다. 나아가서 그들은 근골격계 집단요양과 같은 집단적 투쟁에 대해서 ‘집단이기주의’, ‘회사를 망하게 한다’며 강력하게 대처한다. 인력충원을 하지 않음으로써 산재노동자들과 동료들 사이를 분열시키고자 발악한다. 이런 분리책동에 맞서 인력충원으로 맞받아쳐야만 현장노동자들 사이의 단결을 사수할 수 있고, 산재요양투쟁을 더 저변화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장의 노동자들이 철저한 동료애로 단결할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하며 스스로 현장을 통제할 수 있도록 훈련해 나가야 한다.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 노동강도 완화투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유일한 생존 기반인 노동력을 보호하고 유지하며, 나아가서 노동자해방을 위한 투쟁능력과 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투쟁이다. 만약 이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조차도 불가능하며, 노동자해방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 능력을 보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를 위한 첫 출발은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노동강도를 낮추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투쟁을 현장에서부터 조직하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니라 ‘다치고 병들기 전에 노동환경을 확 바꿔내는 투쟁’을 현장에서부터 활발하게, 적극적으로, 대담하게 전개해야 한다. 충분한 안전시설을 마련하고 쾌적한 노동환경을 보장하며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등의 가장 기본적인 현장투쟁 요구에 충실히 하는 것이 그 해법이다. 이것을 위해 현장의 주도권을 우리가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작업중지권을 비롯하여 노동자에게 안전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바로 생산을 중단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현장통제권을 우리 노동자들이 움켜쥐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자가 병이 들건 말건, 노동자가 죽어나가건 말건 이윤을 위해 생산을 멈추지 않는 자본의 탐욕에 타격을 가하면서 노동자 건강권 쟁취, 노동해방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해방으로 전진할 필요성
노동운동의 거듭되는 후퇴는 노동자의 건강, 산재문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운동이 조합주의와 실리주의에 갇히면서 미조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산재문제는 그야말로 방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변변한 안전장비조차 없이, 작업의 위험성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가장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급속히 산재가 늘어나고 있고, 산재의 양상도 더 처참해지고 있다.
산재노동자 10명 중 6명이 1년 미만으로 일한 노동자다. 이들은 대부분 조직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다.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위치에 있는 고령 노동자, 여성 노동자의 산업재해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재해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 결과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99년부터 꾸준히 증가했다. 산재 사망자 수는 99년 2,291명에서 2005년에는 2,493명으로 증가했다. 산재자 수도 꾸준히 증가해 99년에는 5만 5,405명이었으나 2004년에는 9만 4,924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거의 전시 상황에서나 발견될 법한 이런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은 노동자 투쟁을 통해 제거되어야 한다! 이 가공할 만한 ‘합법 살인체제, 합법 폭력체제’는 노동자 투쟁을 통해 확 쓸어버려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착취자들 사이의 전쟁의 도구가 되어 총알받이로 전쟁터에 투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 똑같이, 착취자들 사이의 무한경쟁의 도구가 되어 ‘산업전사’로 몸이 망가지고 죽어나가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산재법 개악을 저지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적용받으며 충분한 치료를 통해 재활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는 것, 그리고 현장투쟁을 통해 산재를 예방하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4월 임시국회에서의 산재법 개악 처리에 맞서, 상대적으로 저항 능력이 있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산재법 개악 저지투쟁을 힘차게 시작할 때, 비록 작은 힘이라도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싸움을 힘차게 벌여 나갈 때, 노동운동은 열악한 노동자들의 지지와 지원을 받으면서 더 큰 계급적 단결을 이뤄낼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건강권 쟁취 투쟁은 자본주의 이윤경쟁체제를 넘어서는 노동해방의 전망과 뗄 수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노동과정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쥐어짜는 과정이며, 이 자체가 노동자의 건강과 근본적으로 대립된다. 노동강도가 완화되면 자본가의 이윤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필사적으로 노동강도를 강화하려고 한다. 이에 맞선 노동자 투쟁에 자본주의 체제는 해고와 폭력, 잔인한 테러와 악법, 교묘한 언론조작으로 대답한다.
자본주의는 사람이 아니라 이윤이 우선이며, 결국 노동자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체제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자들은 이윤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착취자들의 탐욕의 재물이 될 수밖에 없다. 생산의 목적이 다름 아니라 생산자들, 노동자들 자신의 생존과 번영의 토대가 되는 사회가 되어야, 노동자의 건강은 비로소 제대로 보호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윤을 최고의 목적으로 추구하는 소수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노동하는 전체 사회성원들의 공동재산으로 탈바꿈시켜내야 한다.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자신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며, 작업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자주관리위원회가 노동과정을 스스로 통제할 때만 노동자의 건강권은 비로소 완전하게 획득될 수 있다. 이 때 노동의 목표는 자본가들의 이윤증대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삶의 개선이 될 것이며, 작업과정은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 착취과정이 아니라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생산과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 하에 운영되는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안전한 작업장 건설에 발 벗고 나설 것이며, 조그마한 위험시설도 즉각 개선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엄청난 열의와 창조력을 발휘해서 쾌적한 작업환경을 만들고, 작업과정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적합하게 재조직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 노동자들은 고통스런 강제노동의 과정이 아니라 기쁨의 원천이 되는 자발적 과정으로 노동과정을 재조직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강도는 지속적으로 약화될 것이며, 노동시간도 획기적으로 단축될 것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다치고 병들며 죽어나가는 전쟁터와 같은 노동환경은 ‘지옥’과도 같은 것으로 취급되면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나아가서 기술과 과학교육, 노동이 함께 접목된 사회시스템을 만들어, 평생 반복되는 동일한 종류의 단순노동 때문에 노동자의 몸이 망가지는 일을 제거하면서 다면적으로 발전한 노동자를 탄생시킬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현장의 주인이 될 것이며, 노동은 전쟁과도 같은 고된 노력의 과정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발적이며 유쾌한 자기실현의 공간이 될 것이다. 산재법 개악 저지투쟁, 노동자 건강권 쟁취투쟁은 바로 이와 같은 노동해방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산재에 맞선 투쟁, 그리고 산재의 원인을 현장에서 제거하는 투쟁으로 현장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나아가서 그 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노동자의 힘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자!(끝)
산재보험범 개악을 저지하고
노동자 건강권 쟁취투쟁을 확대하자!
지난 해 12월 29일 노동부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은 노사정위원회 산재보험발전위원회 합의문을 근거로 한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이번 합의를 통해 ‘산재보험 도입 40여년 만에 전반적인 제도개선을 이뤄냈고 노사정 협력정신을 제고하여 협력적 노사관계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냈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 합의안, 그리고 그것이 근거한 산재법 개정안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후퇴시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을 더 어렵게 하고 급여를 축소하며 산재노동자들의 저항을 차단하기 위한 함정과 장벽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노사정위원회의 본질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정부와 자본가들이 노동운동을 포섭하고 무력화하기 위해 구성한 기만적인 덫에 불과하다. 이 기만적인 덫의 본질을 감추기 위해서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 여러 단체, 여러 노동운동 조직을 끌어들이려 한다. 그들의 단골손님들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서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개량주의 관료들이다. 노동조합 간부들이 자본으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는 대가로 자본의 손발이 되어 현장의 노동자를 배신하고 투쟁을 가로막는 것처럼, 개량주의 관료들도 이런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노동자대중의 권리를 팔아먹는 대가로 자본주의 사회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출세를 보장받는다. 이번 산재법 개정 과정은, 노사정위원회에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자본가의 들러리를 서주는 꼴이 될 뿐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고 있다.
산재법 개악의 배경
정부는 각종 사회보험의 적자를 부자들의 주머니가 아니라 노동자와 가난한 민중의 주머니를 털어서 해결하려 한다. 정부는 국민연금 적자를 이유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고 급여는 대폭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번 산재법 개악에서도 정부는 이런 의도를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자본가들은 산재보험이 2003년부터 적자가 나고 있고, 법정적립금(4조 원)보다 2조 4,000억 원이 부족하며 적자를 메우기 위해 9% 안팎의 보험료를 올려왔지만 이대로 가면 2010에는 적립금이 고갈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면서 이러한 적자의 책임이 요양기간이 길고 급여가 많아서, 그리고 노동자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협박한다.
이것은 정말 적반하장이며, 오히려 강도가 큰 소리 치는 격이다. 우리나라는 노동부 통계만 보더라도 하루에 7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고 있다. 1년 평균 9만여 명이 산재를 당하고 있으며 2,500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고 약 30,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재로 인해 장애인이 되고 있다. 즉 하루에도 100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장애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산재 장애인의 사회복귀율을 보면 원직장 복귀는 30% 미만이며 재취업, 자영업을 포함해도 40% 선을 넘지 않는다(물론 이러한 통계는 산재보험 급여를 신청한 사람들을 기초로 한 통계다. 산재를 신청하지 못한 사람들을 다 같이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산재발생율, 사망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한 마디로 노동자에게 산재는 치명적이며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전체가 심각한 위협을 겪게 된다.
게다가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나고 노동강도가 강해지면서 병들고 다치고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경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고,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더욱 가혹하게 쥐어짜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것은 자본의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기에 스스로 이것을 선택하는 자본가는 없다. 그 결과 산재는 더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더 가혹하게 덮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산재율이 어마어마하게 높고, 산재 노동자에 대한 구제책이 형편없다는 점을 무엇은 보여주는가? 한마디로 산재보험 재정 적자의 원인은 ‘현장의 대단히 열악한 노동조건, 즉 살인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이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명확하다. 자본가들이 ‘산업안전 시설에 대폭 투자하게’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일하게 올바른 해결책에 대해서는 정부와 자본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다. 노사정위에 참여하는 어용 단체들도 이 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들 모두는 산재보험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산재 신청 요건을 강화해서 ‘다치고 병들어도 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본가들의 돈주머니를 지켜주고 더 많은 돈으로 채워주려 발악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외치며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피눈물을 강요하고 있다. 이번 산재법 개악안은 한마디로 죽고 다치더라도 한 푼도 지불하기 싫고 모든 책임은 노동자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사장들의 비정한 심보를 반영하고 있다.
산재보험은 자본가들이 보험료를 지불하도록 되어 있다. 아무리 자본주의 체제라지만 죽어라고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도저히 정당하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므로 보험료를 올리는 것, 보험급여를 확대하는 것은 자본가들의 부담을 키운다. 그런데 자본가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선 수조,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즉 국민의 재산)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투입하는 정부이지만, 노동자의 목숨을 구제하는 산재보험기금 앞에서는 단 한 푼도 지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즉 수천억 원, 수조 원의 막대한 재산을 갖고 있는 자본가들이 그 재산의 일부라도 날리는 것 앞에서는 무한한 동정심을 내보이는 정부이지만,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어나가며 아파 신음하는 이 절박한 현실 앞에서는 아무런 동정심도 갖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고, 자본가정부의 본질이다.
이 정부는 자본가들의 돈주머니를 아주 조금이라도 털어서 산재보험 재정을 확충하는 대신 자본가들의 부담을 줄이고 산재노동자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할 뿐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승인 처리과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근로복지공단은 재정안정을 이유로 승인실적을 통제, 관리하고 있다. 산재 승인이 많이 나면 재정적자가 악화된다! 그러면 사장들이, 정부가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병들어 다치고 죽는가에 상관없이 자본가들의 이윤, 자본가정부의 재정을 보호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진정으로 중요하다! 그 방법은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승인받기가 쉽지 않은 산재 판정을 더 최소화하고, 죽어나갈 병이 아니라면 쉽게 산재 치료를 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산재환자들이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스스로 나가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에 대해 사업주들이 이의제기를 하고 그래서 심사시간이 길어지고 자본가들의 압력이 커지면 산재노동자들은 지쳐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산재법 개악안의 핵심 내용인 부분휴업급여제도 신설, 고령자 휴업급여 축소, 요양기간 연장요건 강화, 사업주 이의제기권 명문화 등은 사장들과 정부의 이러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여기에 장기화되는 경제불황 속에서 실업자는 대폭 늘어나고 비정규직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열악한 현실을 노동자 착취 강화에 이용하고자 하는 사장들의 계획이 한 몫 거들고 있다. 더 싼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 늘어나자 자본가들은 산재환자들 대신 더 건강하고 더 싼값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자를 찾기가 쉬워졌다. 산재법 개악에는 이런 현실을 반영하여, 자본가들이 더 싼 임금의 노동자를 사용하기 쉽게 하기 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가령 급여를 축소하고 요양을 어렵게 해서 산재노동자들의 원직 복귀를 막는 것이다. 산재 환자들을 길거리로 내쫓고 더 싼 임금에 부려먹을 수 있는 비정규직을 채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산재법 개악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자.
산재법 개악의 구체적 항목
먼저 사업주의 이의제기권을 도입하였다. 입법예고에는 빠져 있으나 시행령에 포함시키려는 이 내용은 산재신청을 가로막는 중대한 독소조항이다. 사업주의 의견청취를 명문화한 것인데 이렇게 되면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산재승인을 가로막기 위해 온갖 자료와 정보를 제시할 것이다. 그 결과 승인 기간이 자연스레 길어질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다양한 형태의 압력을 넣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수많은 사업장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을 막기 위해 전환배치와 해고를 포함한 악랄한 탄압을 하고 있는데, 사업주의 이의제기권마저 도입된다면 이것을 이용한 탄압까지 더해질 것이다. 종합해 볼 때, 사업주의 이의제기권은 산재 신청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또한 업무상 재해의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이 명백한 질병’이라고 업무상 재해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직무스트레스 또는 산재로 인한 고통과 자살 등을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산재의 범위를 대폭 축소시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근골격계 질환, 정신질환, 뇌심혈관계 질환을 아예 제외시키려 할 것이다.
정부는 전문가로 구성된 업무상질병위원회를 신설하여 업무상 재해 판정에 대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이 위원회에 노동자들이 개입할 여지는 사실상 없기 때문에 현행 자문의 제도의 확대복사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전승인권과 심사권이 여전히 근로복지공단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이 위원회는 결국 객관성과 공정성을 마련한다는 명분하에 근골격계 투쟁의 성과마저도 무력화시키며 승인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고 더욱 제한할 것이다.
또한 산재법 개정안은 산재 환자의 요양을 제한하며 통제하고 있다. 요양기간을 연장하려면 주치의의 진료계획서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치료기관 및 의사의 권한을 강화시켜 주는데, 공단과 자본가들이 의사에게 수많은 압력을 넣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산재 노동자의 권리는 축소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또한 전원요양(의료기관을 옮겨서 요양하는 것)의 경우도 이유를 명시하게 하고 사전승인을 받게 하며 공단이 직권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산재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조건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산재노동자들은 병원 옮기는 문제에서 이중의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게 될 것이다. 또한 산재요양 중 추가로 병이 발생하거나 최초 요양시 확인하지 못한 추가 질병이 나타났을 때 추가상병(추가로 나타난 병)을 신청할 수 있는 요건을 제한했다. 그리고 장해 재판정 제도를 신설했는데, 본인이 자발적으로 원할 경우가 아니라 공단의 직권으로 2년 후 3년 이내 1회 재판정을 통해서 급여 지급을 변동시킬 수 있게 했다. 장해급여 및 연급지급액을 삭감하기 위해서다. 또한 공단의 지시를 위반한 경우에 공단에서 보험급여의 지급을 제한할 수 있게 되어 공단의 권한이 막강해졌다. 이를 통해 산재노동자들을 더욱 강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어 산재노동자들을 더욱 마음대로 주무르려 하는 시도다. 이것은 산재 노동자들을 강제로 치료를 종결해야 하는 막다른 상황에 내모는 것으로 연결된다.
뿐만 아니라 각종 보상급여를 축소하고 있다. 60세 이후의 고령자에 대해 휴업급여를 65세까지 매년 4%씩 감액하도록 했다. 이것은 나이가 많고 열악한 처지에 있는 고령 노동자들에게 가차 없이 칼을 대는 것이다. 나이 드신 노동자들은 질병의 위험이 높고 힘든 일을 하시며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열악한 임금을 받고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한 번 산재나 병에 걸렸을 경우 장기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고령노동자의 휴업급여를 삭감한다는 것은 나이든 노동자들을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다. 이것이 맨 날 입만 열면 고령화 사회 대책 운운하는 정부가 나이든 노동자들을 대하는 방식이다. 또한 재요양시 휴업급여도 최초요양기준이 아니라 재요양 직전 임금의 70%로 삭감했다. 이렇게 되면 산재노동자들은 생계부담 때문에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재요양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번 개악안에는 부분휴업급여제도가 신설되었다. 부분휴업급여 제도는 통원 치료 중 일을 하면서 주기적으로 치료하면 휴업급여를 부분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이것은 치료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장 복귀를 강요하도록 만들 것이다. 자본가들은 ‘일하면서 치료하라’고 압박할 것이다. 특히 저항의 힘이 미약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아프고 힘들더라도 강제로 일을 하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최악의 경우 산재노동자의 병이 악화되는데도, 산재노동자가 일을 하면서 치료를 받는다는 명분하에 자본가들이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서 현장의 노동강도가 전체적으로 강화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산재법 개악안에 의료, 재활 서비스를 확충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먼저 산재환자의 의료비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요양승인 이전에 발생하는 의료비는 국민건강보험으로 우선 처리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업무상 질병으로 판단되는 환자는 그 기간 중 본인이 일부 부담하는 건강보험료에 대해 1,000만 원 한도에서 대부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설사 산재승인이 아직 나지 않더라도 산재보험기금으로 치료하고 나중에 정산하도록 해야 한다. 즉 산재처리는 ‘선치료, 후보장’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산재환자가 그 비용을 잠시라도 부담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게다가 ‘우선 자가부담, 후 지급청구’의 원칙은 몸이 아파도 치료비가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또한 정부는 직업재활 급여를 선전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진정한 이익과는 한 참 거리가 멀다. 우선 이것은 산재노동자의 원직장 복귀 의무화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것은 산재환자를 원직 복귀시킨 사업주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그나마 원직 복귀를 촉진한다는 것인데 결국 자본가들을 돕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원직장 복귀 의무를 회피할 것이고, 받아들이는 경우는 정부로부터 받는 수많은 혜택 때문일 것이다. 결국 산재노동자들의 처지를 악화시키고, 모든 부담을 국민(즉 노동자들)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는 생색내기용 정책 한 두 가지를 끼워 놓고 나머지는 전부 자본가를 위한 개악안으로 채워 넣고 있다. 그런데 더욱 눈여겨보아야 하는 지점은 지금까지도 산재보험법의 적용대상에서 영세사업장, 건설현장의 열악한 노동자들은 제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저항하는 조직노동자들, 자기 권리를 지키려는 산재노동자들에게 일정한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대신(하지만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조차도 대폭 줄이려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 건설노동자들에게는 아예 산재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전체 산업재해의 70%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전체 사망재해의 50%는 건설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덤프, 레미콘 노동자, 학습지교사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들, 한마디로 산재에 의해 가장 크게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다. 실제로 작년에 원진노동건강연구소와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이 운수업 특수고용노동자(덤프연대) 48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산업재해율(노동법상 산재보상이 가능한 비율)은 매년 8%로 일반 사업장의 0.7%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산재보험 적용을 받은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산재보험의 전면 적용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된 노동자들이 자기 단사의 건강권 쟁취투쟁을 넘어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관점에서 산재보험 개악 저지와 전면 개혁,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완화, 산재보험 적용 범위를 모든 노동자들로 확대하기 위한 투쟁을 펼쳐 나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장의 단결과 투쟁을 만들어내기
산재법 개악저지 투쟁은 현장에서의 노동자건강권 쟁취투쟁, 현장통제권 쟁취투쟁과 맞물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할 때만 제대로 확대될 수 있다. 강화되는 노동강도, 부족한 인력, 개선되지 않는 작업환경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파괴하고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자본가들의 현장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지만 현장의 자신감과 투쟁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조합주의와 실리주의가 현장 깊숙이 스며들고 고용불안의 위기감이 노동자들을 휘감으면서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노동자건강권 쟁취 투쟁 역시 쪼그라들고 있다.
현장에서 산재가 터져도 남의 일이라 생각하고 관심을 크게 갖지 않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분열되어 있고 쉽게 자신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동료가 아프거나 산재를 당해도 함께 고통을 나누고 싸워나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나한테 피해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산재를 제기했다가 짤리지는 않을까,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은 커지고 있다. 투쟁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전체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산재, 한 부서의 산재도 노동자 전체의 문제로 받아 안고 부서를 뛰어넘어 함께 싸우려는 단결의 정신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산재를 당한 개인과 부서의 일로 마무리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또한 강화되는 노동강도 때문에 산재가 계속 발생할 때 인력충원과 노동시간 단축의 방향으로 단호하게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포기하는 실리주의 경향이 현장투쟁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명백한 산재가 발생했음에도 노동조합이 나서 공상처리 수준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한마디로 산재의 원인을 근절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산재가 발생한 뒤 그것의 처리에만 급급한 ‘언 발에 오줌누기 식’ 대응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정규직 인력충원을 통한 ‘노동자들을 병들게 만드는 열악한 현장노동조건의 개선’을 분명히 제기하고 싸워나가기보다 산재 요양의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투입해 메우거나 아예 산재환자의 작업량을 동료들에게 전가하는 것을 방치하는 어이없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산재를 발생시키는 조건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함으로써 더 많은 산재를 불러오는 파산적 대응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끼리의 분열은 지속되고 노동강도는 강화되면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고 쓰러지게 된다. 하지만 인력충원이나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대안을 붙잡지 못하는 경우 또다시 비정규직 투입이나 임금인상으로 마무리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산재를 신청하는 노동자들도 자신감이 사라지고 언제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회사나 공단의 압박과 통제에 무너지게 된다.
이에 반해 자본가들은 노동자건강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자신들의 현장통제를 무너뜨리고 결국에는 이윤을 줄일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경쟁의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자본은 인력충원이나 노동시간 단축을 할 생각이 거의 없으며 산재문제에서도 훨씬 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본가들은 산재를 은폐하고 산재문제가 집단적 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을 이용해 승인율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현장에 물리치료실을 설치하고 그것을 통해 산재를 감추거나 산재를 줄일 수 있을 것처럼 사기를 치기도 한다. 나아가서 그들은 근골격계 집단요양과 같은 집단적 투쟁에 대해서 ‘집단이기주의’, ‘회사를 망하게 한다’며 강력하게 대처한다. 인력충원을 하지 않음으로써 산재노동자들과 동료들 사이를 분열시키고자 발악한다. 이런 분리책동에 맞서 인력충원으로 맞받아쳐야만 현장노동자들 사이의 단결을 사수할 수 있고, 산재요양투쟁을 더 저변화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장의 노동자들이 철저한 동료애로 단결할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하며 스스로 현장을 통제할 수 있도록 훈련해 나가야 한다.
노동자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 노동강도 완화투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유일한 생존 기반인 노동력을 보호하고 유지하며, 나아가서 노동자해방을 위한 투쟁능력과 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투쟁이다. 만약 이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조차도 불가능하며, 노동자해방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 능력을 보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를 위한 첫 출발은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노동강도를 낮추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투쟁을 현장에서부터 조직하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니라 ‘다치고 병들기 전에 노동환경을 확 바꿔내는 투쟁’을 현장에서부터 활발하게, 적극적으로, 대담하게 전개해야 한다. 충분한 안전시설을 마련하고 쾌적한 노동환경을 보장하며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등의 가장 기본적인 현장투쟁 요구에 충실히 하는 것이 그 해법이다. 이것을 위해 현장의 주도권을 우리가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작업중지권을 비롯하여 노동자에게 안전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바로 생산을 중단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현장통제권을 우리 노동자들이 움켜쥐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자가 병이 들건 말건, 노동자가 죽어나가건 말건 이윤을 위해 생산을 멈추지 않는 자본의 탐욕에 타격을 가하면서 노동자 건강권 쟁취, 노동해방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노동해방으로 전진할 필요성
노동운동의 거듭되는 후퇴는 노동자의 건강, 산재문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동운동이 조합주의와 실리주의에 갇히면서 미조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산재문제는 그야말로 방치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변변한 안전장비조차 없이, 작업의 위험성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가장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급속히 산재가 늘어나고 있고, 산재의 양상도 더 처참해지고 있다.
산재노동자 10명 중 6명이 1년 미만으로 일한 노동자다. 이들은 대부분 조직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다.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위치에 있는 고령 노동자, 여성 노동자의 산업재해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산업재해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 결과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99년부터 꾸준히 증가했다. 산재 사망자 수는 99년 2,291명에서 2005년에는 2,493명으로 증가했다. 산재자 수도 꾸준히 증가해 99년에는 5만 5,405명이었으나 2004년에는 9만 4,924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거의 전시 상황에서나 발견될 법한 이런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은 노동자 투쟁을 통해 제거되어야 한다! 이 가공할 만한 ‘합법 살인체제, 합법 폭력체제’는 노동자 투쟁을 통해 확 쓸어버려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착취자들 사이의 전쟁의 도구가 되어 총알받이로 전쟁터에 투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 똑같이, 착취자들 사이의 무한경쟁의 도구가 되어 ‘산업전사’로 몸이 망가지고 죽어나가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산재법 개악을 저지하고 모든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적용받으며 충분한 치료를 통해 재활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는 것, 그리고 현장투쟁을 통해 산재를 예방하고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4월 임시국회에서의 산재법 개악 처리에 맞서, 상대적으로 저항 능력이 있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산재법 개악 저지투쟁을 힘차게 시작할 때, 비록 작은 힘이라도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싸움을 힘차게 벌여 나갈 때, 노동운동은 열악한 노동자들의 지지와 지원을 받으면서 더 큰 계급적 단결을 이뤄낼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건강권 쟁취 투쟁은 자본주의 이윤경쟁체제를 넘어서는 노동해방의 전망과 뗄 수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노동과정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쥐어짜는 과정이며, 이 자체가 노동자의 건강과 근본적으로 대립된다. 노동강도가 완화되면 자본가의 이윤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필사적으로 노동강도를 강화하려고 한다. 이에 맞선 노동자 투쟁에 자본주의 체제는 해고와 폭력, 잔인한 테러와 악법, 교묘한 언론조작으로 대답한다.
자본주의는 사람이 아니라 이윤이 우선이며, 결국 노동자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체제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자들은 이윤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착취자들의 탐욕의 재물이 될 수밖에 없다. 생산의 목적이 다름 아니라 생산자들, 노동자들 자신의 생존과 번영의 토대가 되는 사회가 되어야, 노동자의 건강은 비로소 제대로 보호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윤을 최고의 목적으로 추구하는 소수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노동하는 전체 사회성원들의 공동재산으로 탈바꿈시켜내야 한다.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자신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며, 작업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자주관리위원회가 노동과정을 스스로 통제할 때만 노동자의 건강권은 비로소 완전하게 획득될 수 있다. 이 때 노동의 목표는 자본가들의 이윤증대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삶의 개선이 될 것이며, 작업과정은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 착취과정이 아니라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생산과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 하에 운영되는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안전한 작업장 건설에 발 벗고 나설 것이며, 조그마한 위험시설도 즉각 개선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엄청난 열의와 창조력을 발휘해서 쾌적한 작업환경을 만들고, 작업과정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적합하게 재조직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 노동자들은 고통스런 강제노동의 과정이 아니라 기쁨의 원천이 되는 자발적 과정으로 노동과정을 재조직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강도는 지속적으로 약화될 것이며, 노동시간도 획기적으로 단축될 것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다치고 병들며 죽어나가는 전쟁터와 같은 노동환경은 ‘지옥’과도 같은 것으로 취급되면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나아가서 기술과 과학교육, 노동이 함께 접목된 사회시스템을 만들어, 평생 반복되는 동일한 종류의 단순노동 때문에 노동자의 몸이 망가지는 일을 제거하면서 다면적으로 발전한 노동자를 탄생시킬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현장의 주인이 될 것이며, 노동은 전쟁과도 같은 고된 노력의 과정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발적이며 유쾌한 자기실현의 공간이 될 것이다. 산재법 개악 저지투쟁, 노동자 건강권 쟁취투쟁은 바로 이와 같은 노동해방 사회를 만들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산재에 맞선 투쟁, 그리고 산재의 원인을 현장에서 제거하는 투쟁으로 현장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나아가서 그 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노동자의 힘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자!(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