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현자노조신문 컬럼 3개

연구소 원 '구라'인 아!이구가 작성한 4월29일자, 6월3일자, 6월17일자 컬럼게재글임.


'살맛나는 일터', 우리의 요구와 행동에 달렸다(2004. 04. 29일자)


2004년 5월 1일. 114주년 세계노동절이다. 세계적으로 노동절의 역사는 폭압적 탄압을 뚫고 싸워온 투쟁의 과정이었다. 이땅 역시 예외가 아니다.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절이다. 올해도 노동절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정치선언이 있을 예정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서 '살맛나는 일터' 나아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결의이리라.

민주노총은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전개할 노동절 투쟁에 '①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전쟁 중단, 파병 철회 ② 비정규직 정규직화·차별 철폐 ③ 노동탄압 분쇄와 노동3권 강화 ④ 노동자 건강권 쟁취 및 노동안전 보장 확보 ⑤ 사회공공성 강화와 사회개혁 ⑥ 대책없는 개방과 구조조정 중단' 등을 6대 핵심과제로 제출했다. 노동자 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 신자유주의를 거꾸러트릴 실천과제로 선언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분쇄투쟁! 투쟁하는 주체들과 노동자 민중이 풀어야 할 당면과제이다. 대한민국 뿐아니라 전세계 도처에서 노동자 민중의 요구와 저항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대중행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살맛나는 일터'는 노동조합 투쟁쪼끼에 있는 판에 박힌 '구호'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현장통제 아니 세상통제에 맞서서 살아야 하는 모든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2003년에 이어 죽음으로 저항했던 열사정신을 계승하려는 현장의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놓쳐서는 안된다. 허나 신자유주의 분쇄를 위한 핵심요구에 대한 투쟁주체들의 이해와 결의는 불균등한 것이 현실이다. 또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총단결 정신을 실현하고 투쟁으로 요구를 선언하는 장이 아니라, '제한된 자율'아래 '폴리스 라인'에 갇힌 평화로운(?) 행진에 그쳤던 최근의 노동절투쟁을 반복할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걱정에 그치거나 누굴 탓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소위 '계급투표'에 의해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에 대한 과도한 대리주의적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을 현장의 '자판기 집행부' 만들 듯 정치의 자판기로 왜곡해서는 안될 일이지 않은가.

전체 노동자의 희망터인 현장은 그리 녹녹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살맛나는 일터'가 아니다. 당장 멈춰야 할 골병과 죽음 그리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 통제가 판을 치는 현장인 것이다. 현장투쟁을 실천할 노동자들의 요구와 행동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지고, 집행부와 현장조직 활동가들이 대리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터'를 살맛나게 만드는 일을 누가 대신해 줄 수 있겠는가. '일터'와 '세상'을 바꾸는 것은 별개의 것인가. 아니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 민중 쥐어짜기로 돌파하려는 '자본'의 세상과 일터를 엎어버려야 한다. '살맛나는 일터와 세상' 건설이야말로 전체 노동자가 쟁취해나가야 할 '실리'이지 않은가.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 그리고 살인적 노동통제에 정면으로 맞서서 쟁취해야 할 진정한 '실리'이다. 그 성패는 자본의 일터와 세상을 분쇄할 현장투쟁의 일상적 주체를 여하히 만들어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노동절 투쟁의 장에서 전체 노동자가 '살맛나는 세상'만들기를 결의하고 선언하자. '살맛나는 일터'를 만들 요구와 행동의 주체를 세우는데 집중하자.



소위 '상생'을 넘을 노동자 민중의 요구와 주체를 조직하자(2004. 06. 03일자)


'자유, 평등, 평화, 사랑'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최근 미영 제국주의 주도아래 폭력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이라크 침략전쟁을 생각하면 더욱 절절하다. 하루 하루를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공세라는 폭력에 골병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현장노동자들을 확인하면서 절실함은 극해 달한다. 노동자 민중 사회구성원 절대다수가 실질적으로 원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리라. 실제 노동자 민중은 사람으로서 누리고 가꾸어야 할 '그 가치'를 위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보다 '이윤'을 절대선으로 삼는 자본은 아무리 연중행사나 이벤트로 생색을 낸다한들 어찌 근접이나 할 수 있단 말인가.

최근 제도정치권내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상생' 또한 예외는 아니다. 자본은 '상생'을 실질적으로 이뤄낼 수 없다. 가치중립적 혹은 정치중립적 정권인양 하는 노무현대통령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착취와 억압 그리고 차별을 양산하는 악의 축인 자본주의의 현재적 모습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에 맞서지 않고서는 그저 헛된 '구호'일 뿐이다. 현장의 살인적 노동강도를 근본적·현실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 어찌 '상생'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탄핵정국에 이어 요즘 소위 '상생'을 국정2기의 핵심 기조로 삼는 노무현정권이 뜨고 있다.  총선과정에서 확보한 정국 주도권으로 '개혁과 상생', '대화와 타협'의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도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권도 아니고 친노동자 정권도 아닌, 노사균형과 노사상생의 정책을 꾸준히 펼쳐나갈 개혁정권임을 강변한다. 새삼스럽거나 놀랄 일이 아니다. 파병을 결정하고, 역대정권중 최고로 노동자를 구속하고, 경제특구법 관철로 이땅 전체를 자본특구화하고, 한일 투자협정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추진으로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고, 개별자본의 야만적인 폭력을 방조하여 노동자 민중투쟁과 요구를 방치하고 죽음으로 저항케 만드는 등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반노동자적이었던 행태가 갑자기 없었던 일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늘은 한손으로 가릴 수 없다. 눈을 감고 안보겠다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이리라.

손뼉은 부딪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던가. 증명이라도 하듯이 국회는 상생의 정치를, 민주노총은 개혁의 정치를, 민주노동당은 상생의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 정점에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합의되었다. 눈가리고 아웅한다고 될 일인가. 아니다. 자본과 정권의 '상생'은 자본과 임노동 관계를 중심으로 이윤을 절대선으로 삼는 착취와 억압 그리고 차별을 전제로 한 것일 뿐이다. '상호존중과 공동의 룰 그리고 승복의 원리'를 유난히 강조한다. 그 핵심은 화해할 수 없는 자본과 임노동 관계를 왜곡하고, 사회구성원에 대한 부담전가와 제한적 참여보장을 '세계화' 대세아래 지속하며, 이윤보다 인간을 추구하는 노동이 세상을 만들어 나갈 가치와 전망을 없애서, 분열과 갈등을 먹고사는 자본에 맞서 단결과 투쟁의 과정에서 주체로 서나가려는 노동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현장의 절박한 현실 요구를 모아 실질적인 노동자 정치를 실현할 주체형성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할 터다. 실질적 '상생의 실현'은 노동해방의 또다른 표현일 때 가능하다.



6월 노동자 총력투쟁,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쏟아야(2004. 06. 17일자)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6월 총력집중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늘상 그랬듯이 파업투쟁이 지속되면서, 언론매체들은 연일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는데 혈안이다. 어찌나 똑 같은 소리만 해대는지. '쌍욕'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민주노동당의 10명의 국회의원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과 요구 그리고 행동에 대한 정당성과 절박함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언론매체만 유독 그런 것이 아니다. 자본과 정권의 태도 역시 한결같다. 마치 작전회의라도 한 듯이, "한번 해 볼테면 해보자"는 식이다. 이대로는 해외로 생산공장을 옮길 수밖에 없고, 아예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란다. 세계적 대세인 신자유주의 개혁 추진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양보 아니 희생을 쬐끔만 더 감수하라고 한다. 정작 책임있는 대화와 해결은 뒷전으로 하고 말이다. '자본의 그늘아래 살려면 알아서 기어'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구조화된 '빈곤'과 '노동의 불안정화' 때문에, 스스로 '골병'을 감내하면서 잔업특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의 일주체로 서야 한다고 강변한다. 양념으로 '이기주의 이데올로기'까지 뿌리면서. 신자유주의만이 살길이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라는 큰 틀아래 '상생'을 하자며 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자본과 정권 그리고 언론의 태도 속에 노동자 전체가 움켜쥐어야 할 답이 숨어있다. 6월 노동자 투쟁의 다양한 요구 전체를 꿰뚫고 있는 '신자유주의 분쇄'가 그것이다.

6월 노동자 투쟁의 주요요구를 살펴보자.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쟁취, 주5일제 전면실시, 파병철회 등 신자유주의가 양산해낸 위기에 대한 노동자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구성원 전체를 벼랑끝으로 내모는 '빈곤'과 '노동의 불안정화' 나아가 '죽음'까지를 양산한 '신자유주의'에 맞장을 떠서 끝장을 보자는 의지와 결의를 담은 요구들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인데, "소탐대실"해서야 되겠는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꼼꼼하고 냉정하게 점검하고, 스스로를 곧추 세워야 한다. 6월 노동자투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사실 노동과 자본의 힘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현장이 무너졌다고 탓하고, 조합원의 투쟁동력을 이유로 숨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총력집중투쟁을 하려면 뻔(?)해서는 안된다. 투쟁주체들인 조합원이 예상하는 그런 투쟁요구와 전술 그리고 결과를 뛰어넘을 계획과 역량배치가 절실하다. 우선 투쟁요구에 대한 대중적 승인을 조직하자. 수없이 많고 다양한 투쟁요구를 노동자 전체의 요구로 묶어세울 투쟁의 집중점을 일치시켜야 한다. 상층 집행간부들만이 결의한 투쟁은 일정박기/대중동원/성과주의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강력한 대중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나대신 싸워주는 집행부에 면피용으로 참여하고, 근태협조가 보장된 일상활동에만 참여하며, 부질없는 투쟁출정식으로는 위력적인 대중행동을 만들 수 없다. 핵심은 60만 조합원중 최대한 다수의 노동자들이 일상투쟁의 주체로 서는 것이다. 현차 노동자들도 혼신의 힘을 쏟아, 임투승리 뿐아니라, 현장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올곧게 세우는데 집중해야할 터다. '임투요구안 100% 쟁취'보다 '신자유주의 분쇄를 위한 일상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현장을 바꿨다.'라는 소식을 바라는 것은 현장을 모르는 헛된 기대일까.

아!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