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단식18일째] 영등포구치소는 재소자 폭행을 중단하라!!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죄인 취급을 해서는 안되고, 또한 죄인 취급을 받아서는 안된다!!

 영등포 구치소(소장 조영호 : 안상영 부산시장 구치소내 자살 시 부산구치소장)는 구치소 내의 규율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잘못된 영등포 구치소의 제도를 올바르게 고쳐 달라는 재소자를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양 손목을 뒤로 수갑을 채우고, 매트리스가 깔린 징벌방에 쳐넣고, 네명이 달라붙어 야만적인 폭행을 자행했다 합니다.

 그 피해 당사자가 비록 운동을 하다가 수감된 양심수는 아닐지라도, 영등포 구치소의 야만적인 폭거에 항의하여 전해투 정책위원 백철현 동지와 조직국장 강성철 동지, 구치소에 수감될 당시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전철연의 장석원 동지가 2월16일(월) 아침부터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돌입했습니다.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은 ‘영등포 구치소 옥중 투쟁위원회’를 조직하여,
- 노동자 민중 탄압을 중단하라!
- 비리 정치인 사면, 복권을 반대한다!
- 양심수를 석방하라!
- 영등포 구치소 내의 야만적인 재소자 폭행에 대해 사죄하라!며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전해투(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와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버스 노민추(전국버스 노동조합 민주화 추진위원회)는 위와 같이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반인권 행위를 자행하는 영등포 구치소를 타격하기 위하여, ‘구치소 내 인권유린과 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대책위’ 구성에 뜻을 같이 하는 단체와 연계하여 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04년 2월2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 02-2637-7437,  011-9489-9677  kcturdw@hanmail.net  http://kcturdw.jinbo.net )









 전해투 조직국장 강성철 동지는 지난해 8월31일 불심검문에 정당한 항의를 했다 하여, 정책위원 백철현 동지는 지난해 10월23일 삼성여객의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정당한 집회에 참가했다 하여 각각 영등포 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자본에 기생하는 부패한 노무현 정권은 총선 시기에 맞추어 비리 경제사범들을 전면적으로 사면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노동탄압에 의한 노동자들의 구속과 수배 등은 더욱 힘을 주어 우리 노동자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습니다. 또한 영등포 구치소에서는 아직도 폭력과 구타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단호히 거부하며 영등포 구치소에 있는 동지들은 ‘비리 정치인 사면,복권 절대 반대! 노동탄압으로 인한 구속,수배 해제! 노동자,민중 탄압 중단! 구치소 내의 재소자 폭행에 대해 사죄할 것!’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목숨을 끊어서라도 노무현 정권의 반인권 실상을 폭로하겠다며 2월16일(월)부터 전면 단식에 돌입했습니다.







- 아래 내용은 전해투 정책위원 백철현 동지의 2004년 2월11일 법정 최후진술서 내용입니다.



최후진술서




사건번호 : 2003고단 서부지원 형사 6단독
피 고 인 : 백철현 (영등포구치소 3487번)




현상의 왜곡과 본질의 은폐



1. 현상의 왜곡

 저의 직접적인 구속 계기가 된 사건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주장을 압축적으로 정리한다면 그것은 ‘현상의 왜곡과 본질의 은폐’라고 하겠습니다.

 먼저 지난 해 10월23일 삼성여객 앞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대한 구사대와 경찰의 왜곡된 주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버스사업장은 자본과 어용 노동조합이 긴밀하게 결탁해 있습니다. 이 결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버스사업장의 역사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버스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조직으로 건설된 것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의 군사쿠데타 이후 각 단체 해산 명령과 동시에 곧바로 중앙정보부에서 7개 산별노조를 위로부터 조직할 때 운수산별의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측 관리자들이 노조위원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87년 7,8,9월 노동자 대 투쟁 당시 버스사업장에서도 전국적인 총파업이 일어나면서 약간의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여전히 버스사업장에서의 노사관계는 70년대와 80년대의 전근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국가와 버스자본, 어용노조 이 3자가 결탁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버스사업장에서는 관리자가 직접 노조 위원장실로 찾아오거나 위원장을 사장실로 불러서 직접 돈을 건네면서 노골적인 유착관계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용노조는 조합비 횡령, 유용 등의 사기행위와 막대한 판공비로 수십년 동안 노조간부 지위를 유지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버스자본과 어용노조의 결탁, 비리 위에서 버스노동자들은 저임금, 비인간적 대우,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조건,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항하여 민주노조를 건설하려고 하는 활동가들에 대해서는 관리자와 구사대의 폭언과 폭력, 해고, 구속 등의 무자비한 탄압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저를 폭행혐의로 고소한 권○○은 선량한 노동자가 아니라 삼성여객 버스자본의 구사대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권○○의 뒤에는 사측의 노무관리 부서임을 자처하는 삼성여객 어용노동조합이 버티고 있습니다. 삼성여객 노조는 그 동안 버스현장의 민주화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투쟁하다가 해고당한 해고자에 대해서 “법적으로 해고는 정당한 것이다. 해고자가 노조의 말을 듣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해고를 방관,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직접적인 탄압을 자행해 왔습니다.

 10월23일 집회 당일에 권○○을 비롯한 구사대들은 집회장에 난입하여 난동을 피우고 사측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면담 대표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권○○의 저에 대한 고소는 이런 정황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용산 경찰서는 이런 상황에 개입하여 철저하게 삼성여객 자본의 편을 들었습니다. 경찰은 당시에 구사대의 집회 방해와 폭력행사를 묵인 또는 조장했습니다. 용산 경찰서는 이전에도 사측 구사대의 이민수 해고자에 대한 집단 폭행 건을 쌍방폭행으로 몰아가서 집단폭행을 당한 해고자에게 벌금이 떨어지게 했습니다. 심지어 직접적인 폭행 당사자가 이민수 해고자가 맞기만 했다고 진술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정황에서 볼 때 경찰은 사건의 중립자가 결코 아닙니다. 경찰은 당시에도 면담을 요청하던 우리 대오에게 집단 폭행을 자행하고 강제 연행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저를 폭행 치상혐의로 연행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집회시간 내내 인력을 배치하여 비디오 촬영과 사진 체증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해당사자 한편인 경찰내부의 증언에만 의존할 뿐 객관적인 물증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은 그 동안 노동자의 투쟁 현장에서 사진 채증과 비디오 촬영자료를 근거로 내세워 수많은 노동자들을 구속해 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그토록 애용하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것입니까? 따라서 저의 폭행혐의는 객관성을 상실했습니다. 만약 경찰 측 증인을 객관적인 증거로 내세운다면 저도 그만큼의 객관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경찰과 구사대의 증언 내용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2. 본질의 은폐

 지금까지 현상의 왜곡에 대해서 말했다면 지금부터는 본질의 은폐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법률은 보통 행위의 결과를 중심에 놓고 판단을 내리지만 행위의 원인과 배경도 근거로 활용합니다. 이것을 법률용어로는 정당방위, 과실, 미필적 고의 등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번 사건의 원인과 배경에는 직접적으로는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자간의 모순이 가장 압축적으로 집약되어 있습니다. 고도로 압축된 증기가 터져 나오듯이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는 자본과 노동의 투쟁의 중심 축을 형성하면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해고에는 주로 세 가지의 유형이 있습니다. 노동운동에 앞장서는 핵심적 활동가와 노조간부에 대한 징계해고, 경영상의 이유를 근거로 하는 정리해고, 이 정리해고를 빙자한 핵심 활동가에 대한 징계 해고성 정리해고가 그것입니다. 최근에는 세 번째 형태의 해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첫 번째가 전통적 유형의 해고입니다. 자본은 핵심적인 활동가들을 노동자 대중들과 분리시키고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해고라는 무기를 사용합니다. 자본가의 무기인 해고는 활동가 개인에게는 활동 근거지를 박탈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해고자와 그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는 폭력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권은 원직복직이 기대되지 않는 경우 금전보상제를 도입하고, 경영상의 이유를 근거로 한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노사관계법을 개악하여 해고의 천국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해고와 더불어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운동의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56%를 넘어섰습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800만 명을 상회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서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고 항상적인 고용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자본은 계약해지를 무기로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봉쇄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률이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10분의 1 정도되는 2.4%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초기에 성인 남성 숙련 노동자 중심이던 고용형태는 새로운 기계의 도입 등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미숙련 여성, 아동 노동이 증가하는 것으로 변모했습니다. 자본은 여성, 아동 노동의 고용확대를 통해 비용절감뿐만 아니라 성인 남성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조건을 하락시키고 노동자의 단결을 분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성, 아동노동은 부차적인 노동형태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이 주변부 노동의 위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부차적인 고용형태가 아니라 압도적이고 일반적인 고용형태가 되어 자본 축적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은 비정규직 고용의 증대로 비용절감과 시장 상황에 따른 노동력의 유연한 이용이 가능하게 되었고, 노동시장의 분할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분열야기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확산시킴으로써 정규직 노동자를 공격하는 물질적 근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본은 정규직의 고 임금이 비정규직 확대의 주범이라고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협약 자체가 임금삭감과 비정규직 같은, 반 실업상태에 놓이는 불완전 노동을 확산시키게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모순 해결의 단초가 오히려 모순을 확대,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실업의 원인으로 경직화된 노동이 주범이라며 노동의 유연화를 주장하는 자본의 모습을 보면 이를 잘 알수 있습니다. 심지어 ‘카드위기’의 원인마저도 ‘강성노조의 불법파업이라는 도덕적 해이’로 돌리는 자본의 뻔뻔함을 볼 때, 부르주아적 실업해법이 얼마나 노동자에게 공격적일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목적은 “자본을 가능한 최대로 증식시키는 것, 다시 말하면 가능한 한 최대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것, 따라서 가능한 한 최대 규모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본의 지상명령은 그 자체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초과착취하여 생존권을 박탈하고 억압과 고통으로 몰아넣는 폭력에 다름 아닙니다.

 지금까지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제각각 나누어서 이것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삼성여객에서는 이 분리된 모순들이 ‘비정규직 해고’라는 단일한 모순으로 결합되어 상호모순을 심화시키는 ‘악의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23일 저는 해고와 비정규직이라는 억압과 폭력에 맞서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따라서 은폐된 사물의 본질을 살펴본다면 저의 행위는 지극히 정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증명되지도 않은 폭력을 이유로 저를 구속시켰습니다.



3. 무엇이 현상을 왜곡하고 본질을 은폐하는가?

 경찰과 검찰에 의한 저의 구속은 결국 버스자본을 이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버스자본의 수탈과 억압을 강화케 하여 버스노동자들의 억압적이고 열악한 삶을 온존시키고 관리자와 구사대의 폭력과 어용노조의 파렴치한 작태를 정당화, 영구화시키는 반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에 의해서든 직업적 관성에 의해서든 상관없이 공안검사의 사법적 조치는 버스노동자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폭력행위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공안 검사 스스로 가장 두려워해야 할 역사에서 차지하는 개인의 위치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른바 법치는 정당성과 공정성을 상실했습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수사는 “법은 한 줌도 안 되는 일만인의 최상층 부르주아 앞에서 진실로 평등하다.”라고 고쳐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대중적 탄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의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의 승소율이 5% 미만이고 이중 구속되는 자본가는 단 몇 명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자본가의 해고 조치의 60%이상이 정당한 해고로 판결이 납니다. 자본가의 부당노동행위가 명백한 행위이고 부당해고가 단지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남발되는 자본의 악의적 수단임에도 이렇게 극심한 불균형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5%의 승소율은 자본주의 법률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가장하면서 “법에 호소하라.”는 기만적 태도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근대법의 기초가 된 나폴레옹 법전의 약 2,000개 조항 중 800개 가까운 조항이 사유재산의 보호를 명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법률은 교묘한 수사로 자신의 계급적 본성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존 켈리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사상은 분명, 법률 체계가 체계적이자 근본적으로 사유재산권을 옹호하는 편파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물신화된 요소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파면할 사용자의 권리에 대응하여, 노조를 조직하고 산업적 생동을 취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갖고자 하는 노동계급의 요구에 대한 역사적 양보를 포함한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조결성권과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은 불완전하지만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성과에 따라 부르주아 계급이 양보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자본주의 제도인 보통선거권 조차도 1830년대부터 부단히 투쟁한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성과입니다. 부르주아 계급은 이마저도 재산에 따른 차등선거권, 여성의 투표제한으로 전면적으로 허용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이 양보조치가 자본의 배타적 소유권과 권리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자본은 이를 되돌리려고 끊임없이 시도해 왔습니다. 최근의 집시법 개악과 파업권을 한층 더 분쇄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노사관계법 개악 기도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결국 법은 본질적으로 자본과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계이고, 사법부는 이를 집행하는 기구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는 사법기구를 통해 노동자 투쟁을 억압하고 단죄해 왔습니다. 파시즘은 자신들이 만든 법을 뛰어 넘어 무단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 파시즘의 존재는 자본주의 국가의 폭력성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통치의 특정한 형태에 있다고 왜곡하기도 합니다.

 지배계급의 피지배 계급에 대한 폭력은 통치형태와 상관없이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본질적 성격입니다. 동의와 설득은 이 본질의 일시적 외피에 불과합니다. 자본주의의 원시적 축적기나 자본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가 심화되면 폭력적, 억압적 요소는 더욱 강화됩니다. 결국 파시즘은 자본의 위기시기에 등장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제 3자 개입금지법, 국가보안법, 집시법, 직권중재,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 등 대표적인 노동악법은 자본의 착취를 극대화하고 노동자 투쟁을 탄압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어 왔습니다. 이렇게 자본과 국가는 그물망 같은 악법 조항들을 만들어 놓고 이 악법에 걸려든 노동자들을 불법과 폭력 이데올로기로 악선동 하면서 해고, 구속, 수배 등의 탄압을 해 왔던 것입니다.

 지난해에도 사법체계는 손배, 가압류를 통한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폭력과 200여 명이 넘는 노동자에 대한 구속이라는 인신적 폭력을 통해서 자본가 정권의 반 노동자 정책의 주구를 자처해 왔습니다. 최근 자행되고 있는 건설일용노조에 대한 검찰의 탄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률이 지배와 피지배 계급에 대한 억압의 수단인 것은 바로 총자본의 이해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법은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부르주아 의회기구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4. 자본주의의 부패와 기생성은 과연 청산될 수 있는가?

 오늘날 독점자본은 금융자본으로서 전 사회에 대한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최근 터져 나오고 있는 기업의 비자금 조성, 불법 정치자금 제공과 측근 비리는 독점자본과 정치인, 관료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구속된 일부 정치인들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불법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데 왜 나만 구속하는가?”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차떼기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건네 받은 한나라당의 불만도 “왜 편파조사를 하느냐?”에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한나라당에 비해 건네 받은 불법 정치자금이 적은데 왜 똑같은 취급을 하느냐?”며 ‘부당한 양형’에 불만을 보이고 있습니다. 막대한 정치자금을 건넨 재벌은 자신들도 “정치권의 강압적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정치자금을 전달”했기 때문에 정치권은 약탈자이고 자신들은 피해자임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자본은 수 십년 동안 불법 정치 자금을 제공하고 세금혜택, 자금지원, 사업상 유리한 정보취득, 불법묵인, 관급 공사 수주 등으로 막대한 혜택과 이권을 누리며 성장해 왔습니다.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자본에 의한 직접적인 매수와 자신들의 계급적 기반에 근거한 친자본적 이데올로기, 신념 등에 의해서 친자본적 법률을 제․개정하고 자본의 이해에 철저하게 복무해 왔습니다. 반 노동자적인 법률의 물적 기초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물적 기초의 핵심 고리 중의 하나가 바로 부패와 비리인 것입니다. 사법부는 이러한 기초 위에서 제․개정된 법률에 근거한 법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부패자금은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해서 나온 잉여가치의 일부입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잉여가치가 부패를 낳고 이것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악법이 되어 희생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짓입니다.

 현재 부패와 비리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치개혁 논의가 전 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자본은 특혜와 막대한 이익의 원천인 정치자금 제공이 이제는 기술적 경쟁력 저하와 비용낭비의 원인이라고 하면서 정치개혁 논의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본주의는 반 부패선언, 정치인 개개인의 사퇴와 교체, 정치개혁법, 부패방지법 제정 등으로 부패 청산과 정치개혁이 가능하다는 기대와 환상을 대중들에게 불어넣고 있습니다. 

 92년 이탈리아에서는 마니폴리테(깨끗한 손)라 불리는 부패 청산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92년 한 해 동안 3천여 명의 정치인, 관료, 자본가들이 구속되고 하원의원 25%인 177명이 검찰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부패 청산 움직임은 과거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재벌출신 정치인인 베를루스코니가 집권하게 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왔을 뿐입니다. 일본에서도 92년 6월 자민당 부총재의 정치자금 수수 사건이 불거지면서 정치인들에 대한 막대한 뇌물제공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부패한 자민당이 선거에서 패배했으나 94년 6월 자민당이 재집권하면서 자본가 단체인 경단련의 정치자금을 제공받은 사건이 터져 정치개혁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투명한 기업경영으로 소문난 미국 기업은 지난 해 엔론, 월드컴, GE 등 핵심 기업들의 분식회계와 사기로 점철되었습니다.

 “2001-2002년 겨울 엔론의 몰락은 이 회사의 회장 사무실에서부터 은행, 회계법인, 보험회사를 통해 워싱턴 깊숙이 그물처럼 뻗어 있는 사기의 고리를 드러냈다.…이 금융 스캔들을 조사했던 의회 청문회의 의원 248명중 무려 212명이 엔론이나 엔론의 회계삼사를 맡았던 아더 앤더슨 회계법인한테서 돈을 받은 사실이 들통났다.”

 이처럼 정치자금 제공이 합법화되어 있다는 미국에서도 거대 군수산업에서의 비리혐의가 터져 나오고 있고, 의회에서의 입법은 독점자본의 로비와 매수 등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의 상층 정치인들 대부분은 특정기업 출신이거나 특정기업과 유착해 있습니다. 측근비리와 정치자금 수수혐의를 받고 있는 노무현 정권은 고작 1년 전 만해도 ‘희망돼지’로 상징되는 깨끗한 선거가 치러지고 곧 부패 정치가 청산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부패와의 기생성은 자본주의의 고유한 현상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만연한 부패와 비리를 근본적으로 청산할 수 없습니다. 자본은 정치자금이 기술 경쟁력 상실과 비용 낭비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뇌물 제공으로 인해 얻는 특혜와 이익이 더 크다면 기회비용 때문에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사기와 뇌물제공은 금융자본이 정치권, 사법부, 언론, 종교, 시민사회단체, 심지어 노조 등 전 사회에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핵심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관료와 정치인들은 독점기업 출신으로 직접적으로 인적 결합이 되어 있거나 기업의 장래 이사회 직위 보장, 기업의 주식 소유 등으로 간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관료와 정치인은 기업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동일시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본은 혼인제도를 통하여 대자본간, 관료, 정치인과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부르주아적 신성함이 자신들의 정략적 이해관계 앞에서 매매혼으로 철저히 모독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과 이 사회의 지배계급은 총체적인 부패와 비리 등 불법 행위로 인해서 지배의 정당성을 상실했습니다.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대중의 환멸과 냉소, 대안부재로 인해 간신히 연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각종 선거는 이미 50% 투표율을 넘나들고 있고, 과반수 이상의 대중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없습니다. 나머지 지지자들도 소극적, 체념적 지지에 머무르면서 대의정치의 근간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 세탁이 화폐의 어두운 과거를 지우듯이 다가오는 4월 총선은 대중들의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의 기억들을 잠시나마 망각의 강속으로 밀어 넣을 것입니다. 이 망각의 강속에서 또 다시 새로운 부패와 비리가 솟아날 것입니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인 노무현 정권은 국가보안법의 온전과 집시법 개악, 테러방지법 제정과 파업권 봉쇄시도, 제국주의 전쟁 참여 결정 등으로 인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조차도 추동해 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는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피 억압 계급만이 유일하게 완전한 민주주의를 추동해 낼 수 있는 진보적 계급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계급은 계속적으로 압살 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노동자들의 일련의 죽음은 정권과 자본의 노동자 탄압에 의한 자본주의의 타살입니다. 노무현 정권은 폭압적인 노동자 탄압에 죽음으로 저항하던 노동자들에 대해서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라는 극언을 해댔습니다. 하지만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극단적인 야만의 시대는 지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야만의 자본주의 시대에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은 바로 자본가들 자신인 것입니다. 검찰의 저에 대한 구속조치는 자본과 정권의 노동자 탄압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재판정은 저에게 “폭력행위에 대한 구속과 실형은 불가피하다.”라는 단순논리를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본 재판정이 저에게 실형을 선고한다면 그것은 법률이 지배계급의 억압과 지배의 수단이라는 저의 신념과 확신을 더욱 더 공고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본 재판정이 ‘현상의 왜곡과 본질의 은폐’라는 진실을 직시하여 저를 석방한다면 이것은 억압과 지배의 수단이라는 자본주의 법률의 계급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재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저의 최후 진술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2월1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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