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삼성 취업규칙 비공개 결정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규탄성명서

근로조건 명시한 취업규칙을 ‘삼성의 영업기밀’이라며

비공개 결정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을 강력히 규탄한다

삼성LCD노동자 고 김주현 사망 50일 넘도록 삼성 처벌은커녕, 삼성의 퇴직금 미지급 법위반에 대한 시정명령도 하지 않고, 취업규칙마저 삼성의 영업기밀이라며 비공개 결정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삼성 인사부서란 말인가?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 설비엔지니어로 일하며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야간 교대노동과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 비인간적인 조직문화 때문에 우울증을 앓다 결국 1월 11일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한 고 김주현님! 그가 사망한 지 50일이 지났다.

1월 3일에도 같은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한 노동자가 있었는데도 삼성은 기숙사 안전관리를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또한 고 김주현님이 사망 당일 무려 네 차례나 자살시도를 하는 동안 그 모든 과정이 기숙사 CCTV에 낱낱이 기록되었으며 이를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는데도 삼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삼성에게 포획된 경찰은 유족에게 이런 삼성의 과실이 기록된 부분을 생략한 CCTV 편집본만을 되풀이하여 보여주었고 유족들이 끈질긴 진상조사 요구 끝에 사망 10여일이 지나서야 간신히 CCTV 원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과 경찰만 이 사건의 진실을 덮으려 한 게 아니었다

노동자 보호기관이어야 하는 노동부는 한 술 더 떠서 ‘삼성전자의 취업규칙은 법인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정보공개심의위원회까지 열어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고 김주현님의 유족은 1월 18일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장시간 근로, 휴게·휴일 미부여, 피부병 유발 화학물질 노출환경, 우울증 환자에 대한 무리한 업무복귀, 기숙사 설비 안전관리 위반 등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에 대하여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특별감독이 아니라 개별 진정사건으로 처리하여 수사를 시작했고, 수사가 진행 중이던 2월 8일 유족들은 고인의 근로조건 파악을 위한 기본문서인 취업규칙과 기숙사 규칙, 화학물질 등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10일 이내에 답해야 하는 정보공개 처리기한까지 연장하고 불필요한 정보공개심의위원회까지 열더니 결국 정보공개 청구 20일 만인 지난 2월 28일, 고인의 49재 추모제 직전에 ‘취업규칙을 비롯한 모든 문서가 삼성의 영업기밀’이라며 비공개 결정을 통보해왔다.

근로기준법에는 ‘상시 10인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가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을 명시한 ‘취업규칙’을 작성하여 노동자들에게 게시, 비치, 주지시킬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취업규칙은 반드시 노동부에 신고하여 노동부가 사업주의 법위반 등을 감시하고 지속적으로 관리감독 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93조 등). 이런 법 규정에 따르면, 취업규칙이란 공개되어야 하는 문서로서 영업기밀에 해당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게시, 비치해야 하는 문서를 영업기밀이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취업규칙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이는 고인의 유족이자 진정사건의 당사자이다. 망인의 노동조건과 삼성의 법위반 여부에 대해 노동부에 수사를 의뢰한 직접적인 이해관계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취업규칙을 비공개결정한 것은 노동부가 경찰과 더불어 명백히 삼성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한편, 노동부는 삼성의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현재 고인의 사망 50일이 지나도록 삼성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날마다 일인시위를 하며 “죽은 내 아들의 피땀이다. 퇴직금을 당장 내놔라”며 유족들이 목놓아 절규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근로기준법 상 금품청산의무(근로기준법 제36조-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에는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 밖에 일체의 금품을 지급하여야 한다)에 대한 명백한 법 위반이다. 그런데 노동부는 일찍이 수사과정에서 유족의 진술을 통해 이런 삼성의 법 위반 사실을 파악했으면서도 삼성 측에 시정명령조차 내리지 않고 있다.

유족들은 삼성을 처벌해달라고 노동부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지 삼성의 인사팀이나 홍보팀 노릇을 해달라고 의뢰한 것이 아니다. 유족들은 고인의 장례조차 치루지 못하고 날마다 경찰과 노동부, 삼성전자 본사와 LCD공장 앞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다. 생업마저 등지고 빈소에서 밤을 지새운지 50일이 넘었다. 그동안 유족들의 몸은 하루하루 쇠약해져가고, 고인의 시신은 부패가 진행되고 있다.

명명백백한 법 위반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삼성이 영업기밀이라고 우기면 무엇이든 다 영업기밀이라고 주장하는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그 천박하고 부끄러운 행태를 우리는 결단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에 길이 기록되게 할 것이다.

고인이 지켜본다! 노동부는 책임을 다하라!!

2011년 3월 3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삼성백혈병 충남대책위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