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투쟁을 되돌아보며

김명진 투쟁을 되돌아보며


지난 8월 13일 서울행정법원은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가 2003년 6월 10일 삼성 SDI 김명진 노동자에게 요양신청서 반려처분을 내린 것을 취소하고 ‘근막통증 증후군’ 상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99년 산재불승인 통보를 받고 삼성 SDI 사내 하청업체인 정우전자에서 강제 사직을 당한지 만 5년 만에 얻은 소중한 성과였다.
그동안 김명진 노동자는 본인의 질병이 직업병임을 확신하고 혼자서 4년을 버텨 왔고 작년 5월부터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대위’와 함께 울산과 언양을 오가며 시민 선전전과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 항의투쟁, 삼성 SDI 정문 앞 1인 시위 등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굳은 의지와 타협하지 않는 투쟁, 울산지역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으로 마침내 소중한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삼성 SDI 구조조정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

김명진 노동자는 19살에 삼성 SDI에 입사하였다. 주야맞교대, 잔업, 특근 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던 중 98년 9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하루아침에 비정규직 노동자로 처지가 바뀌었다.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하는 일은 똑같은데 하루아침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5분 이상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든 ‘근막통증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5년 동안 부자연스런 작업자세로 브라운관 보정작업을 하다보니 근육에 무리가 오고 만성피로가 쌓여 질병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냉정했다. 일을 하지 못하니, 더구나 회사의 산재신청 포기요구에도 굴하지 않고 산재신청을 하자 강제사직을 강요했다. 아픈 몸으로 매일 매일 회사에 맞서 싸웠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 후 회사 밖에서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 계속 되었다. 아르바이트로 치료비를 벌고 치료를 받고 다시 치료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하지만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억울함과 분노, 불안정한 요양과 생계의 압박은 김명진 노동자에게 질병의 호전이 아니라 질병 악화를 가져 왔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결국 작년에는 정서장애와 안과질환이라는 병을 더 추가로 얻게 되었다.
이런 어려움도 건강했던 본인이 이렇게 환자가 된 것은 직업병으로 인한 것이란 확신을 꺾지는 못했다. 결국 노동자 건강권 공대위와 다시 새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근로복지공단의 반노동자적인 태도로 다시 힘겨운 투쟁을 하다

2003년 5월 김명진 노동자는 근골격계 질환 소견을 다시 받았다. 브라운관 보정작업의 작업자세 사진과 본인 진술, 그동안 치료받았던 병원 진료기록과 각종 진단서에 근거하여 산업의학과 전문의에게서 업무관련성이 있음을 A4용지 두장에 빼곡히 소견을 받았다. 다시 한번 희망을 갖고 도전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역시 힘없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를 외면했다. 브라운관 보정작업을 하지 않은 지 4년이 지났고 의학적으로 볼 때도 업무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려처분을 했다. 더구나 추가상병으로 신청했던 ‘안구건조증’과 ‘적응장애’ ‘신체형장애’ 역시 업무상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본인의 진술을 무시하고, 작업자세와 작업환경을 무시하고, 전문의의 소견까지 근로복지공단은 너무나 쉽게 무시하였다.
이에 항의하며 공단 항의방문과 항의집회를 하고 시장에서, 회사 앞에서 김명진 노동자와 이를 지원하는 지역 노동자들의 투쟁은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반노동자적인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은 분노를 더욱 키웠고 투쟁의 의지를 모으게 했다. 1년을 그렇게 투쟁하였다.
결국 김명진 노동자의 투쟁은 법정에서 당당히 업무관련성을 인정받았다.

포기하지 않는 투쟁의지와 작지만 질긴 연대투쟁이 당당한 승리를 만들어 냈다

아직 근골격계 질환이 현장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광범위한 직업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이었지만 직감적으로 직업병임을 확신했던 노동자와 노동자의 요양과 재활을 책임져야 하지만 노동자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근로복지공단과 무노조 신화를 자랑하며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를 사지로 몰아 온 악랄한 삼성 SDI의 줄다리기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싸운 김명진 노동자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이미 2002년 SK 故 송은동 유족들이 132일 동안 흔들림 없는 투쟁을 통해 림프암을 직업병으로 인정받고 자본을 무릎 꿇게 했듯이 김명진 노동자의 투쟁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의 강한 투쟁의지를 보여준 생생한 사례이다.
또한 작은 힘이었지만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대위의 질긴 연대투쟁이 있었기에 소중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같이 하고자 했던 연대의 정신이 김명진 노동자를 버티게 한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서 김명진 노동자의 투쟁이 알려진 후 1년 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아픈 몸으로 거리를 헤매게 했던 울산지역 노동운동의 관심부족과 연대투쟁의 부족 또한 되짚어 봐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울산노동자신문 104호 노동과 건강

현미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