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탄핵론’에 대한 비판글입니다.
많은 논쟁거리를 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글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중(필자의 해석으로는 다수가 중간계급)들의 탄핵반대 시위는 민주주의와 계급투쟁을 예비하는 중요한 정치학교의 성격을 지닌다....
물론 현재의 시위가 액면 그대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아니며 그것과 연결짓는데 어려움이 있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중의 한계이자 정치적 상태이다. 나아가 모든 시위가 우리의 입맛대로 반신자유주의로 환원되어 져야 하는가? 오히려 이러한 대중적 분노와 자발적 형태의 정치진출의 물결을 타고 반신자유주의, 민중민주주의 투쟁의 수로로 모아가는 것이 좌파정치의 역사적 임무가 아닌가?
현재의 투쟁이 이후 반신자유주의 투쟁으로 전화되어야 하며, 또 탄핵반대 투쟁과정에서도 이를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접속시키기 위한 구체적 계기를 찾아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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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에 대한 올바른 정치적 접근과 '민중탄핵론' 비판 #1
남구현,이해영,최형익 (한신대 교수) 읽음: 95
작성일: 2004년03월23일 19시19분26초
1.
현재의 탄핵정국은 대부분 인정하듯이 다가올 선거에서 의회 다수권력을 빼앗길 상황에 처해있던 수구세력이 몰락의 위협, 그 공포를 과장한 나머지 자행한 합법을 가장한 의회쿠데타 이자 설익은 '테르미도르의 반동'기도이다. 부르주아 정치이론적으로만 본다면야, 탄핵은 부르주아 정치 국가권력의 양대 축인 국회권력과 대통령 권력이 충돌한 사태에 지나지 않으며 그 절차 역시 철저히 합헌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정치 혐오증에 젖어 있던 일반 대중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아래로부터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온 나라를 탄핵반대 시위로 들끓고 있는 것일까? 그 형식에 있어 탄핵 반대, 민주 수호, 국회 해산 등으로 집약될 수 있는 대중적 공분은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의원들을 향해 있다. 따라서 현재의 탄핵반대 시위는 얼핏 보기에 계급적 프리즘으로 잘 잡히지 않으며,
지난 김대중 국민의 정부, 현재 노무현 참여정부 들어 집중적 공세에 시달렸던 노동자 운동 내부, 특히 좌파 일각에서의 양비론 혹은 민중 탄핵론 제기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들며, 현재 사태를 바라보는 정세관, 나아가 실제로 전략 전술을 세워 정세 개입적 차원에서 운동을 전개하는 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2.
현재 사태의 핵심이 과연 민중탄핵을 주도하는 좌파일각의 주장처럼 탄핵반대 시위가 단지 빈사상태에 빠진 노무현과 열우당을 기사회생 시킨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두 가지 점으로 나누어서 분석해 볼 수 있다. 먼저, 탄핵 전에 노무현과 열우당이 빈사상태에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결과로 볼 때, 열린우리당은 이미 제1당으로 올라서 있었다. 야당 내부 분열사태와 함께 이러한 추세가 탄핵을 감행한 배경임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이 빈사의 상태에 빠진 것을 탄핵사태를 두고 하는 말일 텐데, 결국 민중탄핵론을 주장하는 입장의 배경은 이처럼 사실상 탄핵찬성과 동일한 생각의 연장에 있다.
한마디로, 한민당이 단행한 의회쿠데타에 대해, 노동자 계급의 주적이자 신자유주의 개혁정권인 노무현이 탄핵 당할 바에야 우리가 잃을 게 아무 것도 없으며, 따라서 탄핵 역시 반대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좌익공론적이며, 정치적으로 유해하고 무책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말하지 않겠다.
만일 이러한 우리의 비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노무현 탄핵찬성'을 전면에 내거는 게 정직한 활동가의 태도일 것이다. 사실 그게 민중탄핵론의 내밀한 핵심 아닌가? 사실 대중적 수준 그리고 현실정치적으로 '민중탄핵론'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2중대'가 싫어, 수구반동적 한나라-민주장-자민련의 '2중대'를 자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3.
과거 같았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을 의회쿠데타는 이제 의회소동으로, 탄핵정국은 탄핵 게이트로 넘어가고 있다. 쿠데타가 해프닝으로 변질되게 하도록 한 결정적 주역은 수십만 대중들의 단호한 직접행동이었음을 명백하다. 한마디로, 대중들의 직접 정치행동이 빈사에 빠진 노무현 정권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구해낸 게 현 사태의 규정적 핵심이다.
그것이 친노로 귀결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오히려 부차적 문제다. 이제 탄핵을 둘러싼 입장표명의 시점은 물 건너간 게 사실이다. 탄핵정국은 총선정국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이제 탄핵찬반 내지 민중탄핵을 내세운다고 해서 사태가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다. 그것이 이번 사건이 갖는 한계점이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여전히 이러한 사태에 대해 좌파의 무능함이 여실히 증명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어째서 대중들은 대규모 정치적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 정치적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가? 상식적으로 4월 15일이면 총선이 있을 것이고 그때 열심히 투표해서, 노무현과 열린 우리당을 구해주는데 그치면 될 것 아닌가? 어차피 노무현 정권의 복권과 노무현 지지를 바란다면 말이다. 하지만, 대중은 오히려 그러한 표 찍는 기계에 머무르지 않고, 무엇보다 '합법, 합헌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말이 아닌 몸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사태의 번뜩이는 혁명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현재 탄핵사태는 노무현지지 여부를 떠나 좌파 혹은 진보적 정치가 적극적으로 활용으로 그 정치적 외연을 넓히고 대중들에게 현재의 사태를 정확히 인식하도록 선전, 선동 조직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한마디로 좌파 입지를 제고할 수 있는 열린 정치공간이었다. 투쟁이 있는 곳에, 투쟁하는 대중이 있는 곳에 좌파가 함께 함은 지극히 당연한 요구 아닌가.
4.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중들의 탄핵반대 시위는 민주주의와 계급투쟁을 예비하는 중요한 정치학교의 성격을 지닌다. 미군에 죽임을 당한 효순, 미선 양에 대한 추모 반미시위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좌파 일각의 대응은 그러한 태도를 취하기는커녕 탄핵반대가 신자유주의 개혁파시즘에 자리를 내주는 것 내지 몰계급적 입장이라고 비판하였다.
물론 현재의 시위가 액면 그대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아니며 그것과 연결짓는데 어려움이 있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중의 한계이자 정치적 상태이다. 나아가 모든 시위가 우리의 입맛대로 반신자유주의로 환원되어 져야 하는가? 오히려 이러한 대중적 분노와 자발적 형태의 정치진출의 물결을 타고 반신자유주의, 민중민주주의 투쟁의 수로로 모아가는 것이 좌파정치의 역사적 임무가 아닌가?
보다 정직하게, 좌파가 현재의 탄핵사태 그리고 대중적 반대시위에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이대로라면 우리는 대중의 정치적 의식을 진두지휘하며 앞서 나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꽁무니를 따라 잡기에도 바쁠 것이다.
'신자유주의=파시즘'이라는 등식 역시 현실의 복잡한 제 관계들을 가리는 극히 단순화되고 과장된 도식일 뿐이다. 오히려 이 도식을 통해 지난 20세기 좌파 사회운동사의 가장 치명적인 역사적 오류 가운데 손꼽히는 1920년 말 - 30년대 초의 '사회파시즘 테제'라는 우울한 경험이 연상되는 것은 웬 일인가. 임박한 히틀러 파시즘의 위협 앞에서 당시 독일공산당은 사민당을 히틀러 파시즘과 동일시하는 사회파시즘론을 공식입장으로 천명한 바 있고, 그것이 좌파 모두의 공멸로 귀결되었음은 익히 알려진 있는 사실이다.
이 좌익소아병적 사회파시즘론이 국제운동사에서 공식적으로 극복되는 계기가 이른바 1935년 디미트로프의 통일전선론이었다. 따라서 현 노정권과 그 지지세력을 한 움큼으로 싸잡아서 '신자유주의 개혁파시즘'으로 단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오류이자, 실천적으로 위험한 것이다. 통전이전 단계로 좌파이론을 퇴보시키고, 고립을 자초하는 그래서 실천적으로 정치적 자살로 이어지는 관점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민중탄핵론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노무현정권=파시즘이라는 도식은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마치 구체적 현실인 것으로 상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나아가 만에 하나 노정권이 파시즘화될 경우 필연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대중운동의 역할과 가능성을 아예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또한 중간계급에 대한 정교한 계급론적 문제설정을 망실함으로써,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라는 진보적 정세분석론의 원칙과 전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어쩌면 이야말로 '모기잡기위해 도끼를 휘두르는' 겪이 아닌가.
5.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좌파운동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탄핵찬성주장, 나아가 민중탄핵 제안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현재의 투쟁이 이후 반신자유주의 투쟁으로 전화되어야 하며, 또 탄핵반대 투쟁과정에서도 이를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접속시키기 위한 구체적 계기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의견을 같이한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탄핵반대 주장과 이후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치는 것은 전혀 대립, 모순된 일이 아니며, 적극 연동되어 있음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 오히려 전자, 즉 현재의 민주주의 투쟁의 적극적 개입은 반노무현,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전개하는데 모순됨이 없으며, 오히려 이의 대중적 확산에 대단히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탄핵반대를 위해 집결한 대중이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에 동의하고, FTA에 찬성하며, 이라크파병을 지지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
많은 논쟁거리를 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글에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중(필자의 해석으로는 다수가 중간계급)들의 탄핵반대 시위는 민주주의와 계급투쟁을 예비하는 중요한 정치학교의 성격을 지닌다....
물론 현재의 시위가 액면 그대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아니며 그것과 연결짓는데 어려움이 있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중의 한계이자 정치적 상태이다. 나아가 모든 시위가 우리의 입맛대로 반신자유주의로 환원되어 져야 하는가? 오히려 이러한 대중적 분노와 자발적 형태의 정치진출의 물결을 타고 반신자유주의, 민중민주주의 투쟁의 수로로 모아가는 것이 좌파정치의 역사적 임무가 아닌가?
현재의 투쟁이 이후 반신자유주의 투쟁으로 전화되어야 하며, 또 탄핵반대 투쟁과정에서도 이를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접속시키기 위한 구체적 계기를 찾아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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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에 대한 올바른 정치적 접근과 '민중탄핵론' 비판 #1
남구현,이해영,최형익 (한신대 교수) 읽음: 95
작성일: 2004년03월23일 19시19분26초
1.
현재의 탄핵정국은 대부분 인정하듯이 다가올 선거에서 의회 다수권력을 빼앗길 상황에 처해있던 수구세력이 몰락의 위협, 그 공포를 과장한 나머지 자행한 합법을 가장한 의회쿠데타 이자 설익은 '테르미도르의 반동'기도이다. 부르주아 정치이론적으로만 본다면야, 탄핵은 부르주아 정치 국가권력의 양대 축인 국회권력과 대통령 권력이 충돌한 사태에 지나지 않으며 그 절차 역시 철저히 합헌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정치 혐오증에 젖어 있던 일반 대중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아래로부터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온 나라를 탄핵반대 시위로 들끓고 있는 것일까? 그 형식에 있어 탄핵 반대, 민주 수호, 국회 해산 등으로 집약될 수 있는 대중적 공분은 대통령을 탄핵한 국회의원들을 향해 있다. 따라서 현재의 탄핵반대 시위는 얼핏 보기에 계급적 프리즘으로 잘 잡히지 않으며,
지난 김대중 국민의 정부, 현재 노무현 참여정부 들어 집중적 공세에 시달렸던 노동자 운동 내부, 특히 좌파 일각에서의 양비론 혹은 민중 탄핵론 제기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들며, 현재 사태를 바라보는 정세관, 나아가 실제로 전략 전술을 세워 정세 개입적 차원에서 운동을 전개하는 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2.
현재 사태의 핵심이 과연 민중탄핵을 주도하는 좌파일각의 주장처럼 탄핵반대 시위가 단지 빈사상태에 빠진 노무현과 열우당을 기사회생 시킨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은 두 가지 점으로 나누어서 분석해 볼 수 있다. 먼저, 탄핵 전에 노무현과 열우당이 빈사상태에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결과로 볼 때, 열린우리당은 이미 제1당으로 올라서 있었다. 야당 내부 분열사태와 함께 이러한 추세가 탄핵을 감행한 배경임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이 빈사의 상태에 빠진 것을 탄핵사태를 두고 하는 말일 텐데, 결국 민중탄핵론을 주장하는 입장의 배경은 이처럼 사실상 탄핵찬성과 동일한 생각의 연장에 있다.
한마디로, 한민당이 단행한 의회쿠데타에 대해, 노동자 계급의 주적이자 신자유주의 개혁정권인 노무현이 탄핵 당할 바에야 우리가 잃을 게 아무 것도 없으며, 따라서 탄핵 역시 반대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좌익공론적이며, 정치적으로 유해하고 무책임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말하지 않겠다.
만일 이러한 우리의 비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노무현 탄핵찬성'을 전면에 내거는 게 정직한 활동가의 태도일 것이다. 사실 그게 민중탄핵론의 내밀한 핵심 아닌가? 사실 대중적 수준 그리고 현실정치적으로 '민중탄핵론'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2중대'가 싫어, 수구반동적 한나라-민주장-자민련의 '2중대'를 자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3.
과거 같았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을 의회쿠데타는 이제 의회소동으로, 탄핵정국은 탄핵 게이트로 넘어가고 있다. 쿠데타가 해프닝으로 변질되게 하도록 한 결정적 주역은 수십만 대중들의 단호한 직접행동이었음을 명백하다. 한마디로, 대중들의 직접 정치행동이 빈사에 빠진 노무현 정권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구해낸 게 현 사태의 규정적 핵심이다.
그것이 친노로 귀결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오히려 부차적 문제다. 이제 탄핵을 둘러싼 입장표명의 시점은 물 건너간 게 사실이다. 탄핵정국은 총선정국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이제 탄핵찬반 내지 민중탄핵을 내세운다고 해서 사태가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다. 그것이 이번 사건이 갖는 한계점이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여전히 이러한 사태에 대해 좌파의 무능함이 여실히 증명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어째서 대중들은 대규모 정치적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 정치적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가? 상식적으로 4월 15일이면 총선이 있을 것이고 그때 열심히 투표해서, 노무현과 열린 우리당을 구해주는데 그치면 될 것 아닌가? 어차피 노무현 정권의 복권과 노무현 지지를 바란다면 말이다. 하지만, 대중은 오히려 그러한 표 찍는 기계에 머무르지 않고, 무엇보다 '합법, 합헌적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말이 아닌 몸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사태의 번뜩이는 혁명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현재 탄핵사태는 노무현지지 여부를 떠나 좌파 혹은 진보적 정치가 적극적으로 활용으로 그 정치적 외연을 넓히고 대중들에게 현재의 사태를 정확히 인식하도록 선전, 선동 조직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한마디로 좌파 입지를 제고할 수 있는 열린 정치공간이었다. 투쟁이 있는 곳에, 투쟁하는 대중이 있는 곳에 좌파가 함께 함은 지극히 당연한 요구 아닌가.
4.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중들의 탄핵반대 시위는 민주주의와 계급투쟁을 예비하는 중요한 정치학교의 성격을 지닌다. 미군에 죽임을 당한 효순, 미선 양에 대한 추모 반미시위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좌파 일각의 대응은 그러한 태도를 취하기는커녕 탄핵반대가 신자유주의 개혁파시즘에 자리를 내주는 것 내지 몰계급적 입장이라고 비판하였다.
물론 현재의 시위가 액면 그대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아니며 그것과 연결짓는데 어려움이 있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대중의 한계이자 정치적 상태이다. 나아가 모든 시위가 우리의 입맛대로 반신자유주의로 환원되어 져야 하는가? 오히려 이러한 대중적 분노와 자발적 형태의 정치진출의 물결을 타고 반신자유주의, 민중민주주의 투쟁의 수로로 모아가는 것이 좌파정치의 역사적 임무가 아닌가?
보다 정직하게, 좌파가 현재의 탄핵사태 그리고 대중적 반대시위에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이대로라면 우리는 대중의 정치적 의식을 진두지휘하며 앞서 나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꽁무니를 따라 잡기에도 바쁠 것이다.
'신자유주의=파시즘'이라는 등식 역시 현실의 복잡한 제 관계들을 가리는 극히 단순화되고 과장된 도식일 뿐이다. 오히려 이 도식을 통해 지난 20세기 좌파 사회운동사의 가장 치명적인 역사적 오류 가운데 손꼽히는 1920년 말 - 30년대 초의 '사회파시즘 테제'라는 우울한 경험이 연상되는 것은 웬 일인가. 임박한 히틀러 파시즘의 위협 앞에서 당시 독일공산당은 사민당을 히틀러 파시즘과 동일시하는 사회파시즘론을 공식입장으로 천명한 바 있고, 그것이 좌파 모두의 공멸로 귀결되었음은 익히 알려진 있는 사실이다.
이 좌익소아병적 사회파시즘론이 국제운동사에서 공식적으로 극복되는 계기가 이른바 1935년 디미트로프의 통일전선론이었다. 따라서 현 노정권과 그 지지세력을 한 움큼으로 싸잡아서 '신자유주의 개혁파시즘'으로 단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오류이자, 실천적으로 위험한 것이다. 통전이전 단계로 좌파이론을 퇴보시키고, 고립을 자초하는 그래서 실천적으로 정치적 자살로 이어지는 관점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나아가 민중탄핵론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노무현정권=파시즘이라는 도식은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마치 구체적 현실인 것으로 상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나아가 만에 하나 노정권이 파시즘화될 경우 필연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대중운동의 역할과 가능성을 아예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또한 중간계급에 대한 정교한 계급론적 문제설정을 망실함으로써,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라는 진보적 정세분석론의 원칙과 전제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어쩌면 이야말로 '모기잡기위해 도끼를 휘두르는' 겪이 아닌가.
5.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좌파운동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탄핵찬성주장, 나아가 민중탄핵 제안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현재의 투쟁이 이후 반신자유주의 투쟁으로 전화되어야 하며, 또 탄핵반대 투쟁과정에서도 이를 반신자유주의 투쟁과 접속시키기 위한 구체적 계기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의견을 같이한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탄핵반대 주장과 이후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치는 것은 전혀 대립, 모순된 일이 아니며, 적극 연동되어 있음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 오히려 전자, 즉 현재의 민주주의 투쟁의 적극적 개입은 반노무현,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전개하는데 모순됨이 없으며, 오히려 이의 대중적 확산에 대단히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탄핵반대를 위해 집결한 대중이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에 동의하고, FTA에 찬성하며, 이라크파병을 지지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