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 알아보자, LAW동건강]자녀 건강손상, 산재로 규정한 산재보험법 의미와 내용

일터기사

자녀 건강손상, 산재로 규정한 산재보험법 의미와 내용

이성민 회원, 노무사

 

2009년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에게 발생한 집단적인 태아 건강손상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임신한 15명의 간호사 중, 6명만 건강손상 없이 자녀를 출산하였고 5명은 유산, 다른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였다.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질병·장해·사망만을 의미한다며 부지급 결정을 하였다. 노동자가 업무 중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선천성 질병을 가진 자녀를 출산한 경우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간호사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 2020년 4월 29일 대법원은 업무상 유해요인으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2021년 12월 9일 업무상 재해로 인한 자녀의 건강손상에 대한 보상 등 내용을 담은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의 시행일은 공포일로부터 1년 후인 2023년 1월 12일이다.

자녀 건강손상을 산업재해로 규정한 개정 산재보험법의 내용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91조의12(건강손상자녀에 대한 업무상 재해의 인정기준) 임신 중인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제37조제1항제1호ㆍ제3호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해인자의 취급이나 노출로 인하여, 출산한 자녀에게 부상, 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그 자녀가 사망한 경우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건강손상 자녀의 업무상 재해 판단 역시 유해인자의 취급이나 노출 여부를 살펴 이루어진다. 구체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유해요인은 시행령에 위임하였으며, 현재 고용노동부가 시행령을 준비 중이다.

태아의 건강손상은 원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거나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사정이 존재한다. 이를 고려해 엄격한 입증 요구를 약화하고, 다양한 유해요인을 포괄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특히 화학물질이나 물리적 유해요인만이 아닌 장시간 노동·부담작업·업무 스트레스 등 인간공학적인 요소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입안 과정에서 일부 개정안이 인간공학적 요인으로 인한 질병 발생을 건강손상 자녀의 업무상 재해 범위에서 배제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어 비판받은 바 있는데,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법 시행 전 출산한 건강손상 자녀에 대한 소급적용

개정법은 법 시행일 이후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 적용한다. 다만, 제한적이나마 과거 피해자들에게 소급하여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부칙 제2조 (건강손상자녀의 보험급여 지급에 관한 적용례)
제36조 제1항 및 제91조의12, 제91조의13 및 제91조의14의 개정규정은 이 법 시행일 이후에 출생한 자녀부터 적용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 법 시행일 전에 출생한 자녀에게도 적용한다.
1 . 이 법 시행일 전에 제36조 제2항에 따른 청구를 한 경우
2. 이 법 시행일 전에 법원의 확정판결로 자녀의 부상, 질병·상해의 발생 또는 사망에 대한 공단의 보험급여지급 거부처분이 취소된 경우
3. 이 법 시행일 전 3년 이내에 출생한 자녀로서 이 법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에 제36조 제2항에 따른 청구를 하는 경우”

오랜 시간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온 피해자들은 이 규정을 통해 법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시행일 이전 출산한 자녀라도 시행일 전 보험급여를 청구하거나, 시행일 전 3년 이내에 출생한 자녀로서 이 법의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2026년 1월 11일) 보험급여를 청구한다면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더 많은 피해자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이는 자녀 건강손상에 대한 산업재해 신청 내용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알려질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일 때문에 고통을 겪은 2세 질병 피해자들이 당해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건강손상 자녀에게 적용되는 산재보험법상 보험급여의 범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6조 제1항
(중략) 제91조의12에 따른 건강손상자녀에 대한 보험급여의 종류는 제1호의 요양급여, 제3호의 장해급여, 제4호의 간병급여, 제7호의 장례비, 제8호의 직업재활급여로 한다.”

자녀의 건강손상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도 산재보험법상 보험급여의 적용은 요양급여, 장해급여, 장례비 등 일부로 제한된다. 생계유지에 있어 기본적인 휴업급여나 유족급여는 적용대상이 아니다. 참고로 건강손상 자녀의 장해등급 판정은 만 18세 이후에 실시하며, 장해급여와 장례비 보상은 법상 최저보상기준금액에 따른다.

섣부른 걱정일까. 개정법의 제한된 보험급여만으로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선천성 질병을 가진 자녀가 언제까지나 자녀로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들은 장래에 노동자가 될 수 있으며, 생계를 부양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보호 수준이 협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 현재 운영 중인 산재보험법상 보상 유형을 넘어, 피해자들을 실효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의 도입은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가령, 태아산재법 연구단계에서 제시된 ‘부모돌봄 휴업급여’처럼 피해자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의견들이 대표적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한 자녀 건강손상은 제외

개정법은 적용 범위를 ‘임신 중인 근로자’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아버지가 업무상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자녀의 건강손상이 발생한 경우 개정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개정의 기초가 된 대법원 판례가 태아가 근로자인 모(母)와 단일체일 때 발생한 재해의 경우를 산재로 인정한 것이기에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다만, 법 개정 과정에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생물학적 가능성, 역학적 근거 등을 지목하며 아버지의 일로 인한 태아산재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비록 이번 개정에 포함되지 못하였으나, 보호의 범위 확대를 위한 지속적인 법 개정 요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피해자들의 마음이 모여 새로운 길이 생겼다는 점에 안도했다. 우려스럽거나, 아쉬운 내용이 눈에 밟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비어있는 부분은 피해자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채워가야 한다. 안 되는 이유를 찾기보단 이 법이 필요한 이유에 집중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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