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살고 싶어라”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전 기자회견

활동소식

“살고 싶어라”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전 기자회견

“살고 싶어라”
=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전 기자회견 =

○ 일시 : 2023년 11월 9일(목) 오전 11시
○ 장소 : 국회 정문 앞

사회 : 이용우 노조법 2, 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여는 발언 : 남재영 목사, 운동본부 공동대표
편지글 낭독 : 고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 부인이 보내온 편지
낭독자 강민욱 택배노조 조합원, 손해배상 피해 당사자
연대 발언(1) : 이은주 정의당 국회의원
현장 발언(1) : 최병승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
2013~2014년 현대차 울산공장 송전탑 296일 고공농성 및 손해배상(20억, 이자 포함 40억) 당사자, 현재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고등법원 계류 중
현장 발언(2) : 한상균 전 쌍용자동차지부장
2012~2013년 쌍용차 평택공장 송전탑 굴뚝 171일 고공농성 및 손해배상(47억, 이자 포함 100억) 당사자, 현재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고등법원 계류 중
현장 발언(3) : 김진아 KEC지회 수석부지회장 / KEC 손해배상 당사자
연대 발언(2) : 민현기 직장갑질119 원청갑질특별위원회 노무사
직장갑질119 제보 사례를 통해 본 원청의 지배개입의 현실
퍼포먼스 : 손해배상 가압류 풍선을 <노란봉투법> 주사로 터뜨리는 퍼포먼스
특별사진전

<국회의원회관 전시>
11월14일(화), 16일(목)~17일(금) 국회의원회관 1로비(1층)

붙임1)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 누님의 편지
붙임2) 특별사진전 20선 사연
붙임3) 발언문

 

<살고 싶어라>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전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20년 전 1월 9일 호루라기 아저씨로 불렸던 배달호는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서 분신 자결했습니다. 회사는 그와 동료들에게 75억 원을 가압류했습니다. 배달호는 분신 전날 퇴근하면서 수도꼭지를 사서 고장 난 수도꼭지를 교체한 뒤 아내에게 ‘배달호 45만원’이라고 쓴 봉투를 건넸습니다.

“아이들에게 힐리스(바퀴달린 신발)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 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2003년 10월 17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자결한 김주익 전 지회장이 남긴 유언입니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조합원 180명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150억대 손해배상 소송을 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노조 간부 7명은 살고 있는 집까지 가압류를 당했습니다. 그는 70m 크레인 위에서 목숨을 끊었고, 그를 따라 곽재규 조합원이 도크에 몸을 던졌습니다.

배달호 김주익 자결 20년이 지났지만, 오늘도 노동자들은 손해배상의 폭력 앞에서 쓰러지고 있습니다. 정리해고와 손해배상 가압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30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0.3평 철제감옥에 갇혀 하청의 억울한 현실을 세상에 알린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470억 원이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손해배상을 당했습니다.

손해배상 20년, 죽음 내몰린 20년입니다.

“대한민국 노동법은 자본을 위한 법이고 하청 비정규에게 생색만 내는 노동법이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90%가 불법파견 근로현장에 투입되다 보면 직영노동자에게 작업지시 받는다. 작업하기 더럽고 어렵고 힘든 곳은 하청노동자에게 투입시킨다.”
“부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진실된 노동의 대가가 보장되는 일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04년 2월 14일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가 쓴 유서입니다. 당연히 정규직을 써야 할 자리에 비정규직 사내하청을 사용하고, 정규직이 버린 안전화와 장갑을 끼고, 정규직의 절반도 되지 않는 임금을 받으며 대한민국 2등 국민으로 살아가는 하청 인생은 20년이 지났지만 바뀌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은 목숨을 끊거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김소연은 공장 옥상에 올라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94일 단식농성을 벌였습니다. 2019년 한국도로공사 비정규직 도명화는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았는데도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라 98일 동안 싸워야 했습니다. 2023년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와 연대한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경찰 곤봉과 방패에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리며 끌려갔습니다.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입니다.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노동자들은 ‘살고 싶어서’ 곡기를 끊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는 ‘살고 싶은’ 노동자들을 외면했습니다. 국회는 원청회사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고, 노동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완화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하청노동자의 절규에 화답해야 합니다.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특별사진展을 여는 이유입니다.

1. 배달호
2003년 1월 9일 두산중공업 손해배상 가압류에 맞서 분신 자결

두산중공업 배달호는 호루라기 아저씨로 불렸다. 집회가 있을 때마다 호루라기를 불며 참여를 독려했기 때문이다. 호루라기 아저씨는 2003년 1월 9일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서 분신 자결했다. 그의 나이 50. 차 안에 두 장의 유서를 남겼다.

두산그룹은 2000년 12월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뒤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해 파업을 유도하고, 파업을 빌미로 노조 파괴를 시도했다. 조합원 61명 고소·고발, 9명 구속, 6명 수배, 18명 해고, 8명 정직 등 89명 징계, 65억 손해배상 청구, 조합비 10억, 부동산 12억, 임금 53억 등 75억 원을 가압류했다.

노조 결성 초기부터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2002년 교섭위원을 맡았던 배달호는 파업과 관련해 구속된 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임금이 가압류돼 분신 당시까지 6개월 동안 한 푼의 월급도 집에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는 다른 지역으로 가면 가압류를 해제해준다는 회사의 회유를 거부하고 싸웠다.

배달호는 분신 전날 퇴근하면서 수도꼭지를 사서 고장난 수도꼭지를 교체한 뒤 아내에게 ‘배달호 45만원’이라고 쓴 봉투를 건넸다.

2. 김주익 곽재규
2003년 10월 한진중공업 손해배상 노조탄압에 맞서 고공농성 128일 만에 자결,

2002년 당기순이익 239억, 조남호 회장 일가 79억을 배당한 한진중공업은 임금 동결, 650명 해고, 노조 간부 20명 7억4천만원 손해배상·가압류를 했다. 김주익 지회장 등 7명은 집까지 가압류를 당했다. 김주익이 받은 마지막 월급 총액 165만원. 세금과 가압류 73만원를 뗀 실수령액 13만 5080원이었다.

2003년 6월 11일 폭우가 쏟아지던 새벽 김주익은 혼자 100톤짜리 지브 크레인, 35m 상공의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갔다. 김주익은 “나의 무덤은 85호 크레인이다. 너희들이 내 목숨을 달라고 하면 기꺼이 바치겠다”며 버텼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바퀴 달린 신발)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 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했는데 그 약속조차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그는 고공농성 129일 만에 자결했다.

김주익의 자결소식이 전해지자 흩어졌던 조합원들이 다시 모였고, 김주익의 죽음을 괴로워하던 곽재규 조합원이 10월 30일 도크 바닥 아래로 몸을 던졌다. 두 영혼을 보내고서야 정리해고와 손해배상이 철회됐다.

3. 정인열
2007년 10월 코스콤 사내하청 고공농성

2000년 대학 졸업 뒤 스물세 살의 나이에 코스콤에서 일했다. 계약은 코스콤과 했는데 월급은 아이티네이드라는 하청업체에서 나왔다. 정인열은 두 회사가 무슨 관계인지 몰랐다. “경력 쌓고 월급만 잘 나오면 괜찮지”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2007년 코스콤 사보에 실릴 정도였다.

2007년 5월 코스콤 비정규직노조를 만들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회사는 노조원을 모두 해고했다. 그는 마포대교 북단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철탑에 올라가 ‘불법 해고 철회,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 20일 넘게 곡기를 끊어 쓰러지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코스콤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했고, 법원도 74명 중 66명에 대해 정규직 지위를 인정했다. 파업 475일 만인 2008년 12월28일 노사가 ‘직접고용 무기계약’에 합의했다. 조합원 76명 중 65명이 직접 고용됐고, 11명은 ‘추후 합의’ 통보를 받았다.

“전엔 학벌·외모 차별을 당하면 ‘내가 못나 그런 거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요. 지금은 그런 차별이 잘못된 걸 알고, 바꿔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이의 노동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의 가치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4. 김소연 유흥희
2008년 6월 기륭전자 사내하청 고공 단식농성 94일

2002년 김소연은 위성라디오와 네비게이션을 수출하는 기륭전자에 입사했다. 정규직은 소수의 관리자뿐이었고, 제품을 생산하는 250명은 모두 비정규직이었다. 시끄럽다고 해고하고, 일이 느리다고 잘렸다. 문자 한 통으로.

2005년 7월 5일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를 만들었다.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지만 회사는 벌금 5백만 원을 납부하는 것으로 책임을 면했다. 조합원들은 8월 24일부터 55일 동안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공장 점거 파업을 벌였다. 김소연 분회장이 구속됐고, 조합원들은 계약해지로 해고됐다.

2006년 8월 1차 단식농성을 시작으로 서울시청 조명탑 고공농성, 구로 송전탑 고공농성, 일미민미술관 고공농성에 이어 2008년 6월 11일부터 기륭전자 정문 옥상에서 김소연 94일, 유흥희 67일 단식농성을 벌였다. 2010년 포크레인 고공농성에서 정규직 복직 노사합의가 이루어졌다. 1895일만이었다.

그러나 기륭전자 회사는 야반도주했고,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도주한 본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는 기업을 넘어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2014년 12월 서울 신대방동 기륭전자 빌딩에서 청와대까지 ‘비정규직 법·제도 폐기’ 오체투지를 벌였다.

5. 오미선
2008년 8월 KTX승무원 사내하청 고공농성

철도청은 항공사 승무원과 같은 ‘지상의 스튜디어스’라며 KTX 승무원을 모집했다. 경쟁률은 2004년 13대1, 2005년은 무려 136대1이었다. 철도공사로 바뀌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며 홍익회라는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노무현 정부의 ‘취업 사기’였다.

승무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철도청은 350명을 정리해고했다. 2008년 8월 27일 새벽 5시 서울역 인근 서울고속철도 열차승무사업소 내 40m 높이의 조명철탑에 올라가 3주 동안 싸웠다. 오체투지, 108배, 점거농성 등 승무원들의 극한 투쟁이 이어졌다. KTX승무원은 기륭전자·이랜드·코스콤 노동자들과 함께 여성 비정규직의 상징이 됐다.

2010년 서울중앙지법, 2011년 서울고등법원은 철도공사가 승무원들의 사용자라고 판결했고, 밀린 임금도 지급하라고 했다. 그런데 2015년 2월 대법원은 철도공사의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았고, 받았던 임금을 모두 갚아야 했다. 복직을 기다리던 해고 승무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시도한 ‘재판 거래’ 희생양이었다.

2018년 7월 철도노조와 코레일은 2006년 정리해고된 이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한 KTX 해고 승무원 180여 명을 경력직으로 특별채용하는 데 합의했다. 4526일만이었다.

6. 김진숙
2011년 1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고공농성 309 희망버스

2010년 12월 한진중공업은 400명 정리해고 계획을 통보했다. 이미 사내하청 노동자는 소리도 없이 잘려 나가고 있었다. 7년 전 김주익이 죽음으로 막은 정리해고 태풍이 영도조선소를 덮쳤다. 2011년 1월 6일 김진숙은 김주익이 있던 85호 크레인에 홀로 올랐다.

한진중공업은 희망퇴직을 거부한 생산직 290명에게 정리해고 통보했고, 172명을 해고했다. 김진숙은 85호 크레인에서 트위터로 세상과 소통하며 부당한 정리해고를 알렸다. 시민들은 공분했고, 김진숙을 응원했다. 2011년 6월 11일 1차 희망버스를 탄 시민들이 공장 담벼락을 넘어 85호 크레인 아래서 김진숙과 연대했다. 5차례 희망버스의 힘으로 정리해고를 철회됐고, 김진숙은 308일 만에 살아서 내려왔다.

10년 후 김진숙은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서울 청와대까지 ‘희망 뚜벅이’ 행진을 했고, 시민들이 함께 걸었다. 마침내 해고 37년 만에 복직했다.

7. 천의봉 최병승
2012년 10월 현대자동차 손해배상 사내하청 고공농성 296

왼쪽 바퀴는 정규직,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만드는 현대자동차. 정규직이 쓰다 버린 장갑과 안전화를 얻어쓰고,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 2004년 노동부가 9234개 공정 1만 명의 하청노동자에게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아무도 정규직이 되지 않는 나라.

6년을 기다려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본다는 판결이 나왔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해 11월 15일 1000명의 하청노동자가 울산공장 1공장을 점거하고 정규직화를 요구했지만, 자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에게 120억 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됐다.

그로부터 2년 후 천의봉 최병승은 울산공장 앞 송전탑에 올랐다. 고공농성은 현대차 비정규직 희망버스로 이어졌고, 296일의 싸움은 정규직화 투쟁의 밑거름이 됐다. 3년 후 부족하지만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내하청 정규직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손해배상은 취하되지 않았고, 오늘도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8. 오수영 여민희
2013년 2월 재능교육 고공농성 202

학습지 교사는 대한민국에서 노동자가 아니었다. 특수고용직이라는 특수 신분. 노조를 만들었지만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노조에 회사 업무를 방해하지 못하게 했고, 회사는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을 마음대로 해지했다.

기륭전자가 가지고 있던 비정규직 최장기 투쟁사업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2013년 2월 6일 오수영 여민희 두 조합원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 성당 종탑에서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고공농성 202일, 거리농성 2076일 만에 노사가 12명 원칙 복직과 단체협약 원상회복에 최종 합의했다.

합의안이 단체협약 원상회복이 빠졌다며 복직을 거부한 유명자와 박경선은 서울시청 앞 환구단에서 싸움을 이어갔다. 2015년 9월 11일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거리농성 2822일 만에 원직 복직에 합의했다.

그러나 220만 특수고용노동자는 오늘도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9. 이정훈 홍종인
2013년 10월 유성기업 이정훈 홍종인 노조탄압 손해배상 고공농성 256

노조 파업 유도→ 직장폐쇄→ 용역경비 투입→ 경찰력 투입→ 노조 핵심 간부 구속 → 기업노조 설립

2010년 2월 경북 경주 발레오만도에서 시작한 이명박 정권의 ‘노조 파괴 대작전’은 2011년 5월 유성기업을 무너뜨렸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밤에는 잠 좀 자자”며 파업에 들어가자 이명박은 “연봉 7000만원 받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인다”고 비난했고,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을 무너뜨렸다. 유성기업의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노조 파괴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났다.

2013년 10월 13일 이정훈 유성기업 영동지회장, 홍종인 아산지회장이 부당노동행위 진상규명과 사용자 처벌을 요구하며 충북 옥천톨게이트 인근 22미터 광고탑에 올라 256일 동안 싸웠다. 2013년 12월 검찰은 현대차와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복해 노조에서 재정신청을 했고, 2015년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이 기소됐다. 회사가 만든 유성기업 제2노조가 무효라는 판결과 유시영 회장 징역 1년 6월 선고 판결이 이어졌다.

노조 파괴와 손해배상에 맞선 10년의 싸움은 승리했지만, 2016년 3월 조합원 한광호씨가 목숨을 잃었다.

10. 차광호
2014년 6월 스티케미칼 정리해고 손해배상 고공농성 408

스타케미칼은 한국 최대의 폴리에스터 생산업체인 한국합섬을 인수해 운영하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2013년 일방적으로 폐업했다. 차광호는 11명의 동료들과 스타케미칼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를 만들어 고용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싸웠다.

노동자를 쫓아내고 설비와 부지를 분리 매각해 ‘먹튀’하려는 회사를 막는 방법은 고공농성밖에 없다고 생각한 차광호는 2014년 5월 27일 45m 높이의 공장 굴뚝에 올랐다. 308일 최장기 고공농성이었던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지도위원의 기록을 깨고 408일을 버텼다.

노사는 스타케미칼의 모회사인 스타플렉스가 설립하는 법인으로 11명 전원 고용을 보장하고, 노동조합을 승계하고 활동을 보장하며, 민형사상 소송과 고소고발을 취하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다시 하늘로 올라야 했다.

11. 김정욱 이창근
2014년 12월 쌍용자동차 김정욱 이창근 정리해고 손해배상 고공농성 101

2009년 2464명 정리해고. 77일 공장 점거파업과 86일 굴뚝농성. 정권의 폭력 진압과 살인적인 손해배상 가압류는 파업 노동자들의 목을 조였다. 파업이 끝나자 해고자들이 하나둘 목숨을 끊었다. 2012년 4월 22번째 죽음 직후 서울 대한문에서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최후의 보루였던 대법원은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박근혜 사법농단이었다.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끈이 끊어졌다. 2014년 12월 13일 김정욱과 이창근이 70미터 공장 굴뚝에 올랐다. 101일 굴뚝의 외침은 사회적 여론과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 회장의 대화를 끌어냈지만, 복직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2018년 6월 해고와 손해배상으로 고통받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30번 째였다. 해고노동자들은 다시 대한문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2018년 9월 18일 해고 9년 만에 노사정 합의로 전원복직을 이뤘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의 손해배상은 오늘도 쌍용차 노동자를 괴롭히고 있다.

12. 최정명 한규협
2015년 6월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손해배상 고공농성 354

2014년 9월 법원은 기아차가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사용자이기 때문에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기아차는 판결에 불복했고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 중 극히 일부만 특별 채용하겠다고 했다. 2015년 6월 11일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 위로 올라갔다.

가림막도 없는 두 평 하늘감옥에서 최정명, 한규협은 363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기아차는 두 사람을 해고하고, 전광판 업체는 5억7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농성을 중단하고 내려오자마자 경찰에 연행됐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행히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고공농성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집에 있는 가전제품과 가구에 압류 딱지가 붙었다. 금액이 70만원 정도인데, 법원에서 사람들이 집에 와서 경매를 했다. 자동차에도 압류를 걸었고, 모든 금융 계좌도 압류해 금융 거래를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고공농성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사람들이 보내준 돈도 압류당했다. 최정명 한규협은 대법원 판결로 정규직이 됐다.

대법원 판결 이후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됐지만, 파업농성에 대한 손해배상, 가압류는 오늘도 노동자들을 목죄고 있다.

13. 김재주
2017년 9월 전주 택시노동자 고공농성 510일

택시노동자 김재주는 2017년 9월4일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 올랐다. 비닐 한 장으로 영하 20도 맹추위와 폭설을 버텼고, 다음 해 여름 100년 만에 찾아온 폭염과 열대야로 밤잠을 설쳤다. 2016년 2월5일 전주시와 택시 노사가 월급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지만, 합의가 파기되자 김재주가 하늘에 올랐다.

2000년 1월 시행된 전액관리제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고, 3회 시정명령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하지만 전주시청은 합의 당사자로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사업주는 불법을 계속하며 농성 중단을 요구했다. 희망버스와 시민들의 연대가 이어졌다.

510일 최장기 고공농성의 기록을 세우고 노사는 전액관리제 시행에 합의했다.

14. 박준호 홍기탁
2017년 11월 파인텍 박준호 홍기탁 정리해고 고공농성 426

홍기탁과 박준호는 차광호의 408일 굴뚝 고공농성 합의로 스타케미칼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충남 아산에 만든 파인텍으로 복직해 2016년 1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파인텍은 생계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단체협약도 체결하지 않았으며, 기계를 빼내 공장을 폐쇄했다.

2017년 11월 12일 홍기탁과 박준호는 파인텍 모회사 스타플렉스 사무실이 보이는 75m 높이의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랐다. 촛불로 당선된 문재인 정부는 ‘노사 간의 문제’라며 외면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다르지 않았다.

시민사회가 나섰다. 오체투지, 희망버스에 이어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였다. 홍기탁 박준호도 75m 고공에서 곡기를 끊었다. 3년 간 고용보장 등에 합의했고, 둘은 426일 만에 땅을 밟았다.

15. 도명화
2019년 6월 한국도로공사 사내하청 고공, 본사농성 97/145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첫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한다. 우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문재인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무늬만 정규직인 자회사 입사였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도로공사의 정규직임을 인정받았고, 대법원 판결만 남은 상태였다. 2019년 6월30일 자회사를 거부한 1500명이 해고됐다. 해고되는 날 새벽 도명화 지부장과 여성노동자 42명이 서울의 관문이자 한국도로공사의 상징인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 올라 98일 동안 싸웠다. 다른 조합원들은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였다.

2019년 8월29일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았지만, 공사는 정규직화를 거부했다. 200명의 조합원들이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145일 동안 노숙 점거농성을 벌였다. 회사의 고소, 고발, 손해배상 소송에 맞서 217일 간의 투쟁 끝에 공사 직접고용을 쟁취했다.

16. 이상규
2021년 8월 현대제철 사내하청 본사 농성 50일

법원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현대제철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현대제철 노동자가 맞다고 판결했다. 고용노동부도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사내하청 공정은 근로자파견법의 기준으로는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현대제철은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14개 업체를 폐업한 후 자회사를 만들었다.

노조는 불법파견 사죄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022년 8월 23일부터 10월 13일까지 53일동안 파업을 벌였다.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입회 하에 현대제철, 하청업체, 노조 등 3자간 특별협의를 개최했고, 점거농성 해소와 공장 정상화에 합의했다.

그러나 현대제철은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파업에 참여했던 노동자 1인당 1000만 원씩 246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7. 김인봉
2022년 2월 CJ대한통운 손해배상 본사 점거농성 19

택배업계 1위 CJ대한통운에서 택배를 배송하는 노동자들은 CJ대한통운 직원이 아니었다. 근로계약이 아닌 ‘업무위탁계약’을 썼기 때문이었다. CJ대한통운의 지시를 따라 택배를 운송했지만, CJ대한통운을 상대로 교섭도, 파업도 할 수 없었다. 택배기사의 과로사가 잇따랐지만, 원청은 뒷짐만 졌다.

2020년 서울행정법원은 CJ대한통운과 직접 업무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택배기사들도 노조법 상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교섭 대상이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을 확인한 판결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원청은 교섭에 나오지 않았다.

CJ대한통운에 과로사 문제 해결과 대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던 택배노조 김인봉 사무처장과 조합원들이 2022년 2월 10일 본사를 점거해 19일 동안 진짜 사장에게 대화를 요구했다. 정권은 노조 간부들에게 구속영장을, 원청은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20억 원을 청구했다. 원청은 2018년에도 16억 손해배상을 청구했었다.

원청 대화 요구 → 거부 → 강경투쟁 → 고소고발, 손해배상.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원청이 교섭에 나오면 악순환은 해결된다.

18. 유최안
2022년 6월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감옥농성 31

대우조선해양 하청 용접공은 소조립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중조립, 대조립, 피장, 매가피 순으로 단계를 거치는데 단계별로 임금이 20%씩 높아졌다. 최고의 기술자로 인정받아 탑재에서 일하면 월급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지금 대우조선해양 하청 용접공의 월급은 월 250만원에 불과했다. 상여금을 점점 깎더니 7년 만에 월급이 30% 줄었다. 최고의 용접공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2022년 6월 2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빼앗아 간 임금 30%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유최안 하청노조 부지회장은 6월 22일 ‘반똥가리배’ 한 척의 탱크탑 바닥 철판을 용접해 가로-세로-높이 1미터의 ‘철제감옥’을 만들어 휘발유와 신나를 들고 감옥 안으로 들어가서 용접을 했다. 일어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상태, 몸을 반으로 접어서 누워야 하는 0.3평에서 31일을 버티며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다. 그의 동료 6명은 탱크탑 20미터 높이의 스트링거에 올라 고공농성에 했다.

파업이 끝나자 회사는 하청노동자들에게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연봉 4500만원을 받는 노동자가 1000년을 갚아야 하는 금액이다.

19. 하이트진로
2022년 8월 하이트진로 비정규직 손해배상 고공농성 25

국내 최대 주류업계 하이트진로의 술을 운송하는 화물노동자들은 15년간 동결된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2022년 6월 2일 파업을 벌였다. 법적인 교섭 대상은 맥주·소주 운송 위탁을 맡은 자회사 수양물류였지만, 하이트진로 원청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양물류는 파업 참가자 100여명의 계약을 해지하고 2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화물연대 하이트진로 조합원 100여명은 2022년 8월 16일 오전 7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하이트진로 옥상 광고판과 1층 로비를 점거했다. 건물 옥상 ‘참이슬 프레시’ 광고판에 ‘손배가압류 철회, 전원복직 현수막을 걸었다.

9월 12일 고공농성 25일 만에 하이트진로와 수양물류는 손해배상·가압류,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계약해지된 조합원 130여명 전원 복직에도 동의했다. 운송료 문제는 하이트진로 원·하청과 노조가 3자 협의체를 꾸려 앞으로 대화하기로 했다.

원청이 교섭에 나오면 대화로 해결된다.

20. 김준영
2023년 5월 포스코 사내하청 고공농성 2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노동3권 중 쟁의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노조를 만들고 교섭할 수는 있지만, 원청의 하청사 바꿔치기로 대체근로가 합법이기 때문에 쟁의권을 행사할 의미가 없다. 그래서 포스코 보고 이 분쟁을 해결하자고 하면, 하청사 노사 문제에 공식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 한다. 그러면 하청사 쟁의에도 개입하지 말라고 하면 조업 차질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다고 한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온전하지 않은 노동3권이 이 투쟁을 400일 넘게 만든 근원적 이유다.”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준영 사무처장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전남 광양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은 400일 넘게 천막농성과 투쟁을 했지만, 하청업체는 노조를 무시했다. 하청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자 포스코는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김준영은 광양에 내려와 사측과 대화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2023년 5월 29일 밤 11시 김준영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 도로 7m의 높이 망루에 올랐다.

경찰은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을 폭력 연행했다. 5월 31일 새벽 5시 15분 경찰은 망루에 올라 진압봉으로 김준영의 신체와 머리를 수 차례 가격했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뒤에도 경찰봉으로 폭행했다. 진압 과정에서 머리와 다리를 크게 다쳤지만, 법원은 그를 구속했다.

2023년 대한민국 하청노동자의 현실이다.

20231109_손배하청20년_기자회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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