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한노보연
[공모전] Diary – 손나연, 신유진, 이주희 (2021 제2회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발간보고서
[공모전] 우리가 함께 안다는 것 – 남보경 (2021 제2회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발간보고서

우리가 함께 안다는 것
나는 작년 6월 초, 알바를 구했고 두 달 반가량의 짧고도 고된 노동을 하고 알바를 그만두었다. 내가 알바를 구하기 전부터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알바를 구하거나 이미 하고 있었다. 학교도 다니고 있고 고등학생이라 당장 입시 문제가 제일 시급했던 나에게는 시간적 여유도 없고 엄마도 강하게 반대하는데 굳이 알바를 구할 이유가 없었다. 아마 작년 초까지 계속 그런 생각을 해오던 도중, 어느 날 엄마, 아빠와 갈등이 심하게 일어났다. 그로 인해 독립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나는 이미 알바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알바를 구하는 가게는 항상 있지만, 청소년을 고용하는 가게는 손에 꼽는다. 알바 어플에 들어가 ‘나이제한 없음’으로 검색을 해도 항상 ‘청소년은 고용 안 함’을 내건 가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청소년은 아는 지인을 통해 알바를 구하거나, 가족들의 일을 돕지만 가끔 나처럼 운 좋게 청소년을 고용하는 곳을 만나 알바로 채용이 되기도 한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친구들이 여러 가게에 전화를 돌리고 ‘청소년은 구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을 때 다섯 가게도 안 되어 나를 고용하겠다는 곳을 만났기 때문이다. 알바가 구해졌을 때는 정말 너무 신이 났다. 나도 이제 사회인이 된 기분이 들었고 돈을 열심히 모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자는 생각도 하며 한창 들떠있었다. 일이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잘하게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현실은 꽤 달랐다.
나를 고용한 곳은 여러 매체에서 힘들다며 떠드는 고기 집이었고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크게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다. 처음 일을 배울 때만 해도 내가 하는 건 거의 없었고 같이 일하는 알바생이 대부분을 하며 일을 가르쳐 줬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자연스럽게 나도 잘 하게 되겠지, 인정받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시간이 점점 지나며 실수를 해서, 포스기에 주문 찍는 걸 깜빡해서, 너무 느려서 등등의 이유로 혼이 나는 날들만 늘어갈 뿐이었다. 날이 가며 점점 일하는 능력이 늘어가고 육체적인 힘듦은 익숙해져 갔지만 날이 갈수록 혼나는 일이 늘어갔다. 처음에는 실수를 해서 혼이 났다면 나중에는 실수를 전혀 하지 않아도 느리다고 혼이 나고, 상을 꼼꼼히 안 닦는다고 혼이 나고, 손님이 없을 때에는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고 혼이 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제일 억울하게 혼이 났던 건 사장님이 그릇을 높게 쌓아놓지 말래서 그대로 했는데 나중에 사모님이 왜 그릇을 충분히 높게 쌓아놓지 않았냐고, 아직도 자기가 가르쳐줘야 하냐며 혼을 냈을 때다. 그때는 아무리 열심히 해보려 노력해도 자꾸 하나씩 까먹는 스스로가 너무 미웠었다.
알바를 하며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일이 처음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고, 실수하는 게 당연한데 매일 혼나며 스스로가 많이 위축되고 월급을 받을 때도 괜히 눈치가 보여서 쩔쩔맸다.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일을 하고서도 내가 돈을 받는 만큼의 일을 하는지 항상 고민하고 자책했다. 실제로 나와 같이 일했던 오빠는 내게 “네가 알바라는 자각이 있어야 해. 나도 알바이긴 하지만 돈을 주면 그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일을 해야지.”와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일을 하고도 돈을 떼어먹힐 뻔하고, 근로계약서도 못 쓰고, 주휴수당도 못 받고, 아팠을 때 욕을 한참 들어먹었다. 한번은 불판을 들고, 숯불 통을 맨손으로 잡았다가 손가락에 꽤 크게 화상이 난 적이 있다. 가만히 있어도 손가락이 너무 뜨겁고 아파 차가운 물을 컵에 담아 계속 잡고 있었지만 다른 일을 하느라 손을 떼면 금세 다시 손이 아파서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손가락 조금 다쳤다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말을 하면 또 혼이 날까 너무 눈치가 보여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다.
또 한 번은 정말 크게 아팠던 적이 있다.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목이 부어 죽도 두 입 먹다가 못 먹을 정도로 아팠었다. 학교도 이틀이나 빠졌었는데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었지만 코로나 걱정도 있어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장님한테 전화해보니 떨떠름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했다. 병원에 가도 약만 처방해주고 열이 안 내리면 다시 오라는 말만 들어서 특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약을 먹어도 열이 안 내리며, 나는 두 번째 전화를 해야 했다. 사장님은 ‘그냥 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열나는 거 병원에 입원해서 링거 맞으면 금방 내리는데 왜 아무것도 안 했냐.’, ‘토요일에 갑자기 빠진다고 하면 대타도 없는데 그러면 어쩌냐.’ 등등 내가 아픈 걸 꾀병이라 치부하며 소리를 지르며 내게 화를 냈다. 나는 너무 억울해 눈물을 흘리면서 아니라고 해봤지만 믿질 않아서 결국 전화를 끊은 뒤 내가 갔던 병원에서 처방받았던 약 봉투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기까지 했다.
멀쩡하던 내가 갑자기 열이 나고 몸살이 났던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갑자기 고된 노동을 하게 돼서 몸에 무리가 되서 열이 났던 거라고밖에 추측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아팠던 것에 대해 사장은 걱정은커녕 내가 꾀병을 부리는 건 아닌지 의심만 잔뜩 했다. 더 슬펐던 건 내가 그 당시에 했던 생각들이다. 아파서 하루, 이틀 빠졌다가 잘리는 건 아닌지, 또 혼이 나진 않을지 너무 무서워 전화도 겨우 했었다. 왜 아픈데 아플 걸 미리 알고 미리 연락해야 하고, 열이 펄펄 끓어도 꾀병이 아니라는 걸 애써 증명해야 하고 내가 푹 쉬고 나을 수 있도록 보장받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하나, 둘씩 의문이 쌓이며 나는 겉핥기로만 알고 있던 근로기준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게 된다. 비록 내가 일했던 곳은 근로기준법상 5인 미만 사업장이었지만, 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사장이 약속한 시각만큼 일을 시키지 않고 일이 없다고 일찍 퇴근시키면 그만큼의 돈도 다시 받을 수 있었고, 근로계약서를 안 쓰는 것도 불법이고, 청소년은 밤 10시 이후부터 오전 6시까지의 야간 근로도 불법이고, 야간에는 야간수당이라고 원래 급여의 1.5배를 줘야 하며 알바라도 생리휴가에 퇴직금도 받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것들이 있었다. 청소년은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액이나 위약금을 정하는 계약도 청소년을 대상으로는 불법이었다.
나는, 그리고 나와 같은 청소년들은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들을 ‘모르고’ 살았다. 알바하며 주휴수당이란 것을 받아본 청소년은 아마 극소수 중에서도 극소수일 것이다. 보통의 청소년들은 주휴수당이라는 게 있는지도 잘 모르고 5인 이상 사업장과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사업장의 기준이 나누어지며 5인 이상 사업장이면 다양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얼마나 억울한 현실인가? 법을 잘 알지 못하면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을 못 받고 내가 쉴 수 있는 날에 쉬지 못하고 아파도 내 돈으로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청소년은 상대적으로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청소년이 최대 몇 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지, 어디서 일하지 못하는지, 그리고 근로계약서의 개념 정도까지만 가르친다. 5인 미만 사업장과 5인 이상 사업장이라는 게 있고, 주휴수당은 어떤 사업장이든 관계없이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으면 노동부에 찾아가 진정을 넣거나 민사소송을 걸 수도 있으며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월급 400만 원 미만 근로자를 대상으로 무료로 소송을 지원하고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보험 급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산재보상보험법 등 노동자를 위한 법이 다양하게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차이다. 내가 얼마만큼의 돈을 받을 수 있는지 보다 중요한 건, 내가 앎으로 인해 내 권리를 보장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도 근로기준법이란 것을 모를 때에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이 그저 시다들이 덜 힘들게 그들을 도와주는 것에서 그쳤지만, 근로기준법이란 게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는 달라졌다. 아는 게 있으니 힘이 생긴 것이다. 결국 그가 살아생전에는 원하는 바를 못 이뤘지만 자본가들이 그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꼭 개선해준다는 거짓말이라도 하게 만든 것은 그가 아는 게 생겼고 그로 인해 무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앎이란 그런 것이다. 안다는 것은, 그저 머릿속에 있음으로 제 역할을 다하는 게 아닌, 그것을 꺼내어 쓸 때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근로기준법만 알면 끝나는 걸까? 주휴수당만 받아내면 끝나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한다. 당장 우리가 다니는 학교의 청소노동자, 급식노동자 등의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저 멀리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의 농성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어떤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 그들의 삶은 곧 우리 삶이다. 우리는 누구나 노동을 하고 살아간다. 그 말인즉슨, 내가 노동자로 살아가는 한 다른 노동자가 천시 받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저 사람들의 삶이 곧 내 삶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싸우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한다. 당장은 주휴수당 못 받은 것으로 끝나겠지만 나중에 가면 퇴직금도 못 받을 수 있고, 내가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천대받을 수 있고, 직장에 들어가 최저시급도 못 받으며 일을 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알고서야 비로소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사실 다른 사람의 삶까지 알아야 한다는 말은 엄청나게 생뚱맞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사람의 삶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성인인 노동자들에 비해 어리다고 더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다. ‘어리니까 잘 모르겠지, 어리니까 그냥 고분고분하겠지.’ 등등. 이런 차별적인 생각들이 청소년 노동자들의 무지와 어우러져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욱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게 만든다.
특히나 여성 청소년 노동자들은 성희롱을 들어도 꾹 참고 넘겨야만 하는 상황을 많이들 겪게 된다. 나도 알바를 했었을 때 같이 일했던 오빠가 불편한 상황을 수도 없이 만들었지만, 그때마다 그냥 웃으며 넘겨야만 했다. 일하는 첫날부터 내게 성적인 이야기들을 수차례 해왔고 나는 그 상황이 무지하게 힘들었다. 웃으며 대하는 것도, 내 몸에 손을 대는데도 그러지 말라고 하지 못하는 것도, 집에 따라오지 말라고 할 수 없는 것도.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일까 생각하고 고민하게 했다. 그렇다고 마냥 그에게 벽을 칠 수는 없었다. 우선 그는 사장의 조카였고, 일을 잘했다. 그래서 내가 등갈비를 어떻게 자를지 모른다거나 예약 손님이 왔을 때 상을 어떻게 차려야 하는지 헷갈린다거나 찌개류가 나갈 때 어떤 반찬이 나가야 하는지 헷갈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내게 모르는 게 있으면 다 물어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혼나지 않게, 그리고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면서 내게 성적인 얘기들을 꺼내고 집 가는 길을 허락 없이 따라오고 자꾸 불편한 얘기들을 해서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혹은 나보다 더 심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해도 알바를 하는 곳은 작은 사업장이라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특히나 심한 일이 아닌, 어디 가서 말하면 그게 성희롱이냐 할 것 같은 일,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일들은 밖으로 꺼내어 이야기하기도 꺼려진다. 이게 여성 청소년 노동자의 현실이다.
나는 알바를 하며 가게에서 겪었던 많은 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고 매일 욕먹고 첫날부터 성적인 얘기를 들어야 했고 내가 집 가는 길을 같이 일하는 오빠가 따라왔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로 인해서 내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학습지 노동자로 일하며 유령회원으로 인해 자신의 월급이 부당하게 깎이는 경험을 겪은 엄마의 일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 주변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에 더 눈이 가게 되었다.
청소년 노동자가 겪는 차별, 여성 노동자가 겪는 차별 등 직장 내에는 여러 차별이 있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작은 관심일지도 모르고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겠지만, 내가 알고 내 엄마가 알고 내 옆의 사람들이 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게 바로 연대이며 우리가 앎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함께 앎’으로써 함께할 수 있고, 우리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싸울 수 있다. 싸우지 않더라도 덜 외로울 수 있고, 일터에서 더 당당해질 수 있다. 아주 작은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전과 후는 아주 단단하고 얇은 유리벽이 그 사이를 가르고 있다. 분명히 다르다. 알기 전과 후는, 우리가 모르고 외면해오고 있던 것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이 모든 것들을 알게 되었기에 함께일 수 있다. 청소년 노동자의 알 권리는 그렇게 실현된다고 믿는다.
[논평] 사업장 이동의 자유, 이주노동자 주거권 및 건강권 보장에 미흡한 정부 대책관계부처 합동 ‘외국인근로자 근로여건 개선방안’ 발표에 부쳐(21.03.02)
활동소식

[논평] 사업장 이동의 자유, 이주노동자 주거권 및 건강권 보장에 미흡한 정부 대책
관계부처 합동 ‘외국인근로자 근로여건 개선방안’ 발표에 부쳐
3월 2일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공동으로 외국인근로자 근로여건 개선 대책이 발표되었다. △농어촌 이주노동자 입국 즉시 지역건강보험 가입, 지역건강보험료 경감 △이주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업장변경 사유 확대 △주거환경개선 이행기간 부여 등의 내용이다. 우리는 이번 대책이 일부 진전된 내용은 있으나, 이주노동자와 이주인권운동 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권리보장에는 매우 미흡하며,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다운 권리실현에 미달하는 내용이라고 본다.
첫째, 농축산어업에서 사업자 등록이 없는 사업장에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기존에 입국 6개월이 지나야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는데 정부는 이번에 이를 입국 후 즉시 가입으로 바꾸었다. 당연한 조치가 늦게나마 실시되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종사하는 업종 중에 가장 열악한 농축산어업의 사업자 등록이 없는 사업장에도 ‘직장건강보험’가입을 허용하라는 오랜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열악한 사업장의 노동자를 더 두텁게 보호해야 심각한 차별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질텐데 근본적 해결방안은 외면된 것이다. 사업자 등록이 있는 사업장에만 고용허가를 부여하든지, 사업자 등록이 없어도 직장건강보험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
한편, 지역건강보험가입자 외국인에 대해서는 가입자 평균보험료를 내게 하는 잘못된 정책 때문에,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가 노동시간 대비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건강보험료는 월 13만원을 넘게 내야 하는 상황도 수정되지 않았다. 다만 농어촌지역 건강보험료 경감 대상에 포함시켰을 뿐이다. 이를 감안해도 여전히 10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농어업인 건강보험료 지원사업에도 포함시킨다고 하나 이는 예산확보 문제가 있으므로 올해 당장 실효성을 가지긴 어렵다. 가장 열악한 처지의 이주노동자가 임금대비 제일 높은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지역건강보험료를 가입자 평균보험료로 납부하게 하는 정책이 시정되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이주노동자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를 일부 확대했다. 숙소 용도가 아닌 불법 가설 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한 경우와 농한기 및 금어기에 권고퇴사한 경우, 사용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사업장에 중대재해가 발생하거나, 외국인근로자가 3개월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신체적·정신적 부상 또는 질병이 발생한 경우를 추가했다. 그리고 임금체불 인정 기준을 완화하여 현행 기준을 2개월 이상 연속되는 기준으로 정했다. 또한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이주노동자 전용보험 미가입의 경우도 사유로 추가하고, 사용자 외에 직장동료, 사업주의 배우자(동거인 포함) 또는 직계존비속으로부터의 성폭행 피해도 긴급 사업장 변경 사유로 포함했다. 그러나 이렇게 변경 사유를 일부 확대하는 식으로 해서는 역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전히 이러한 사유들은 이주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며, 변경 신청이 된 이후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많게는 수개월동안 노동자는 사업장에서 사업주의 압박에 고통을 겪어야 한다. 왜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사직할 자유조차 없어야 하는가.
노동부는 사업장 변경을 자유롭게 하면 임금과 노동조건이 좋은 곳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을 사업장 변경 제한의 가장 큰 이유로 내세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고용허가 사업장은 제한되어 있기에 몰릴 수가 없다.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가 무한정 자리가 날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더욱이 같은 고용허가제 하에서 특례고용허가제로 되어 있는 방문취업제(H-2) 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이 자유롭다. 유독 일반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문제제기가 거세질 때 정부가 임시방편적으로 사유를 하나둘씩 추가하는 방식만 취하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생기는 것 아닌가. 미봉책만 쓸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인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셋째, 주거환경 개선을 한다는 명분으로 농어업 숙소 개선 이행기간을 6개월 부여했다. 이행기간을 부여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지만 이 기간을 명분으로 해서 기존 가설건축물 숙소를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물론 숙소 개선이 이행기간 내에 마무리되지 않을 시 재고용허가를 취소하고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허용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제재 역시 이후에 모든 숙소를 정부가 실제로 철저히 점검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여전히 비닐하우스 바깥의 가설건축물에 대해서는 지자체에 신고필증을 받으면 숙소로 활용 가능하다는 입장이다보니 포천시같은 지자체에서는 아예 연말까지 유예기간을 둔다고 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규정한 근로기준법 주무부처로서의 역할을 포기할 생각인가? 지자체들이 농업주들이 근본적인 숙소개선을 하지 않아도 대략 눈감아주는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지 심각한 우려가 든다. 숙소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정부는 원칙적으로 가설건축물을 하우스 안이든 밖이든 규제를 하고, 지자체와 부처들이 함께 숙소개선 지원을 해야 한다. 이행기간 설정, 농업주들의 개선 방기, 지자체의 관리감독 소홀과 묵인을 통해, 실질적 개선 없이 겉핥기식 조치가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그나마 이러한 미흡한 대책도 이주노동자들의 희생과 이주인권단체들의 문제제기와 지속적인 대책마련 요구 활동으로 인해 나온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故속헹님의 죽음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피해와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온전한 권리보장을 실현하는 길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과 손잡고 함께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2021년 3월 2일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공모전] 유니폼 – 홍정은(2021 제2회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발간보고서

2021 제2회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콘텐츠 공모전 “알권리, 안전을 외치다” 수상작
유니폼
홍정은
추운 바람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는 하굣길. 담요로 치마 위를 덮어 추위를 피하는 여학생, 삼삼오오 모여 피시방을 가자며 소리를 지르는 남학생, 그런 학생들을 횡단보도 앞에서 통제하는 경비 아저씨 그리고 차를 가지고 와 자신들의 딸, 아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님. 예인은 그런 것들을 부러워했다. 친구들과 모여 하교 하는 것도, 친구들과 피시방을 가는 것도, 부모님이 데리러 오는 것도. 예인은 하지 못하니까. 예인은 학교가 끝나면 유일하게 가족으로 남은 동생을 찾으러 가야 하니까. 그리고 돈을 벌러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향해야 했으니까.
예인 학생, 종일반이 끝나서 유인이는 돌봄 교실에 가 있어요 – 유인이 선생님
유인의 선생님한테서 문자가 왔다. 예인은 그 문자를 보자 급하게 유인의 유치원 쪽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머릿속에서 부러움은 지우고 현실을 생각하며 볼을 무섭게 스치는 차가운 바람을 뚫고 걸어간다. 띵-! 문자가 하나 왔다. 예인은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문자를 본다. 문자를 본 예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늘도 그런 예인이 마음을 아는 걸까 어두운 하늘 위로 눈이 퐁퐁 내리기 시작한다.
예인아, 너 일찍 와서 일 좀 도와라. – 사장님
예인은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은 상관도 안 쓴다는 듯 얼굴을 더욱 찡그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사장에게 알겠다는 문자를 보낸 뒤 눈 때문에 물기 어린 핸드폰을 소매로 대충 닦고 교복 재킷 속 주머니에 깊게 넣는다. 발걸음을 돌린다. 교실에 혼자 남을 유은을 생각하며 걷던 발걸음을 자신을 기다리며 화를 낼 사장 수희에게로 향한다. 차가운 바람이 분다. 차가운 바람은 예인의 볼을 파고든다. 하얀 눈이 예인의 머리에 녹는다. 예인은 그런 차가운 바람과 눈에 고개를 목도리 속으로 파묻으며 걸음을 빨리할 뿐이다. 얼마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걸었을까, 목도리를 뚫고 들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목도리 속으로 파묻은 볼은 빨개졌고 머리에 닿자마자 녹는 눈에 머리는 꽤 축축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예인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다.
어느새 편의점 앞이다. 예인은 일그러져 있는 자신의 표정을 그제야 인지했는지 애써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다.
띠링~
– 어서 오세요! CS17입니다~!
사장 수희는 예인이 들어오는 종소리를 듣자 손님인 줄 알고 미소를 활짝 피우며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예인인 것을 확인하고 활짝 피웠던 미소를 지운다.
– 아 예인아 좀 빨리빨리 좀 다녀라! 나 약속 있는데 늦었잖아!
– 저 아직 근무시간 아닌데요……. 사장님이 부탁하셔서,
– 아– 모르겠고 나 간다~ 물건 들어오면 잘 정리하고 알았지?
사장 수희가 자신이 입고 있던 유니폼을 예인의 품으로 던지며 가방을 들고 편의점을 나선다. 예인은 그런 수희가 떠밀 듯 던지고 간 유니폼을 잡고 카운터로 들어간다. 카운터로 들어간 예인의 얼굴은 아까 애써 입꼬리를 올리던 노력이 무색할 만큼 다시 일그러져 있었다. 이번엔 얼굴을 애써 다시 풀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한숨만 쉴 뿐이었다. 예인은 한숨을 쉬며 학교 마크가 그려져 있는 교복 자켓을 벗고 편의점 마크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었다.
유니폼을 입은 예인은 편의점을 둘러본다. 아무 소리 없이 매대를 환하게 비추는 형광등 불빛만 있는 편의점은 예인의 얼굴처럼 적적하다. 예인은 그런 적적함이 싫은지 노래를 틀어 편의점의 적적한 분위기를 없애본다. 그리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첫 일은 시재 점검하는 것이다. 예인은 포스기를 열며 자신의 첫 시재 점검, 부모님 허락확인은커녕 근로 계약서조차 쓰지 않았던 알바 첫날을 회상해본다.
첫날 오자마자 인상을 잔뜩 쓰며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8천 원 밖에 못 준다고 뻔뻔하게 말하던 사장 수희, 매대를 밝게 비추던 형광등, 편의점 문에 달린 종을 딸랑이며 들어오는 손님들, 예인은 어수선한 그 속에서 복잡하기만 한 포스기 다루는 법을 배웠다. 예인은 자신이 첫날 어리숙하고 서툴렀지만 잘 해냈다며 안심을 했다. 하지만 안심을 하기 무색하게 문제가 생겼다. 예인 타임 정산에서 8천 원이 비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수희는 바로 예인에게 잘못을 따졌고 예인이 그 8천 원을 물어내기로 하였다. 그래서 최저시급조차 못 받는 예인은, 한 시간에 8천 원만 받는 예인은, 알바 첫날 월급에서 8천 원이 까였다. 그렇게 알바 첫날 끙끙대며 어수선한 편의점에서 1시간 동안 열심히 일했던 것은 없었던 일이 된 격이었다. 그 이후에도 정산이 잘 안 맞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역시나 그럴 때마다 사장 수희는 예인의 월급에서 빈 돈을 깠다.
나중에 예인이 알게 된 사실로는 정산 속 돈이 비었다는 사실을 수희에게 알린 것도 백명이었으며, 정산 속 빈 돈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백명이었다는 것이었다. 예인은 그 사실을 알고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백명에게 따지지도, 사장인 수희에게 일러바치지도 않았다. 그냥 집에 있는 동생을 생각하며, 자신의 통장에 줄어드는 잔고를 생각하며, 침묵하고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일할 뿐이었다.
띵-! 문자가 오는 알람 소리에 옛날 회상을 하던 예인이 번쩍 정신을 차린다.
언니야 오늘 늦게 오는 거야?ㅠㅠ – 돌봄교실 선생님
예인의 동생이었다. 동생의 문자를 본 예인은 고개를 떨군다. 아까 바로 데리러 간다는 게 수희의 부름에 얘기조차 못 하고 혼자 교실에 머물게 한 게 미안한 모양이다. 입술을 뜯으며 예인은 그냥 늦는다고 문자를 할까 생각하다, 혼자 있을 동생과 늦게까지 자신의 동생을 돌봐줄 선생님께 미안해 전화를 걸어본다.
– 여보세요?
– 네 선생님 저 유인이 언니인데요. 혹시 유인이 한 번만 바꿔주실 수 있으실까요?
– 언니??
– 어 언니야, 바로 일하러 왔어 미안해.
– 아냐…. 나 여기서 기다릴게
– 알아서 좀만 기다려– 끝나고 바로 갈게.
예인은 의기소침해진 유인의 목소리를 걱정한다. 그리곤 돌봄 선생님께 자신이 갈 때까지만 봐달라며,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를 한다. 유인의 선생님과 전화를 끊은 예인의 표정이 한결 나아진다. 예인은 한시름 놓았다며 살포시 웃으며 포스기를 닫는다. 그리곤 카운터에서 나와 또 다른 일을 한다. 새로 들어온 물건 수량 체크하기, 매대가 비어있으면 물건 채워 넣기, 꽉 채워져 있는 쓰레기통 비우기 등을 말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허나 사람들 상대하는 것이 어려울 뿐.
오늘같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손님들은 계속해서 온다. 원래 진상이 오는 날에는 진상만 오는 건지 오늘따라 힘든 손님들만 온다. 앳된 얼굴로 카운터에 서 있는 예인에게 다짜고짜 반말로 이거 달라 저거 달라 명령하는 사람, 초저녁부터 술을 먹고 들어와 술주정하는 사람, 아이와 같이 와서 교복을 입고 일을 하는 예인을 보며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안 그러면 저 언니처럼 어릴 때부터 이런 일 하는 거야.’라며 다 들리게 말하는 사람까지 이러한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예인의 앞에 나타났고 예인의 얼굴은 그때마다 수척해졌다.
예인은 오늘도 그런 사람들은 몇 번이나 스쳐 보내고, 매대를 정리하고, 매장 청소를 했다. 그리곤 시계를 본다. 지금 시각은 오후 10시 드디어 퇴근 시간이었다. 예인은 포스기를 열고 정산을 한다. 그리곤 백명을 기다린다. 하지만 백명은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밖의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고, 내리는 눈은 이제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찰을 돌기 위해 순찰차를 몰고 거리를 도는 경찰까지 보인다. 그런 바깥의 풍경을 보는 예인은 초조해지기 마련이다. 예인은 그런 순찰차를 보며 의자에 걸려있던 교복을 숨긴다. 사장이 불러 일찍이 일을 시작해 다른 때보다 힘들었고, 거기다 늦은 밤에 자신을 기다릴 동생에 걱정만 늘어가는 것이었다. 예인은 결국 오지 않는 백명에 사장 수희에게 전화를 건다.
– 뚜…뚜…뚜….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는 수희였다. 예인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편의점 전화기로 백명에게 전화를 건다. 연결음이 가는 내내 예인의 다리는 쉴 틈 없이 떨고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백명은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 네 저 CS17 편의점 전 타임 임예인이라고 하는데요,
– 아 뭐야 사장인 줄 알고 놀랐네!
– 지금 제 타임이 끝나는 데 안 오셔서 전화 드렸거든요….
– 아 지금 가고 있어, 아 좀만 기다려–
– 빨리 와주세,,,
뚜…뚜..
예인은 끊긴 전화기를 들고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쉰다. 그리곤 가방을 싸기 시작한다. 이때 예인의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는 사장 수희였다.
– 여보세요
– 예인아 전화했네?
– 네 그게, 다음 타임 알바생이 안 와서요.
– 에이 뭘 그런 거로 전화를 하니, 좀만 기다리면 올 텐데
– 지금 10시도 넘었고 동생도….
– 아니다. 마침 잘됐네, 나 너한테 할 말 있었다.
할 말이 있다는 수희의 말에 예인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 네?
– 다른 게 아니라 다음 주부터 알바 안 나와도 될 것 같다.
갑작스러운 해고통보에 예인은 한숨이 덜컥 나온다. 마치 편의점 전체가 침체되는 것처럼 순간 조용해지기까지 했다.
– 다음 주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니 이게 무슨 말이세요?
– 최저시급이 더 오른다네 나도 사정이 힘들어 어쩔 수 없다.
– 원래 저 최저시급에 못 미치게 주셨잖아요-!
– 그건 너도 동의하고 시작한 거였잖아….
– 저 억울해요. 저 오늘도 그렇고 초과근무수당 받은 적도 없고 정산 빌 때마다. 제 실수 아닌데도 제 월급에서 깎였는데 갑자기 다음 주부터 나오지 말라니 무슨 소리세요?!
– 예인아 청소년 받아주는 편의점 몇 없다. 그냥 이때까지 일한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
– ….
– 그럼 다음 주부터 안 오는 거로 알고, 이번 주 월급까진 통장으로 넣어줄게
뚜…. 뚜… 뚜….
전화가 끊겼다. 예인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카운터 의자에 털썩 앉는다. 예인은 한숨을 땅이 꺼질 듯 내뱉고, 고개는 땅에 처박힐 듯 떨어뜨린다. 띠링~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 들어온다. 핸드폰을 급히 자켓 깊숙이 넣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손님은 온다. 허나 백명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예인은 허망한 눈빛으로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손님의 물건을 계산한다. 손님이 나가고 예인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곤 편의점 로고가 박혀있는 유니폼을 벗고 학교 마크가 새겨져 있는 교복 자켓을 입는다. 띠링~! 편의점 종소리가 울리고 가방을 멘 예인이 편의점 밖으로 나간다. 아직도 백명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예인은 개의치 않는다. 예인은 자켓 깊숙이 놓여있던 핸드폰을 꺼내 유인에게 전화를 건다.
– 여보세요? 언니?
– 어 언니야. 언니 일 끝나서 이제 집에 갈게–
– 언니 빨리와~~!!
– 알았어 얼른 갈게
뚜… 뚜… 뚜..
어둑어둑한 밤하늘 위로 흰 눈이 내려온다. 예인의 검은 머리통에도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인다. 유인과의 전화를 끊은 예인은 살짝 울먹인다. 눈에 살짝 고인 눈물을 훔치며 애써 입꼬리를 올려본다. 아까 편의점에 들어올 때와 같이 말이다. 그리곤 사장 수희에게 전화를 건다.
– 사장님 저 예인이에요. 저 잘리는 거 아니고 제가 그만두는 거예요.
예인은 울컥했다. 바람에 흔들려 소리를 내는 편의점의 종, 여전히 매대를 밝게 비추는 형광등의 잔상, 그리고 그런 밝은 편의점 밖에 서 있는 예인이다. ‘사장님 저 예인이에요…….’ 이 오래 작은 응어리 하나가 터지니 봇물이 터지듯 말이 쏟아져 나왔다.
– 저 여기서 1년 넘게 일했으니까 퇴직금 주세요. 또 제가 지금까지 못 받았던 주휴수당, 추가 근무수당 다 주세요. 안 주시면 저 다 신고할 거예요… 근로 계약서 안 쓴 처음부터 부당해고하는 것까지 모두….
– 야-! 예인아 그게 무슨 말….
뚜… 뚜…. 뚜…
전화가 끊겼다. 이번에는 예인이 먼저 끊은 것이다. 아직도 추운 바람이 분다. 어쩌면 아까보다 세게 부는 것 같다. 눈도 아직 내린다. 길가에는 눈이 쌓였다. 예인은 가방을 다시 고쳐 매고 목도리에 볼을 파묻는다. 하지만 고개를 움츠리진 않는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뻔뻔하기만 했던 수희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이내 머릿속에서 수희의 얼굴을 지워본다. 예인의 핸드폰은 계속 울린다. 하지만 예인은 받지 않는다. 자켓 깊숙이 핸드폰을 숨기지도 않는다. 전화벨이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 눈을 밟으며 유인에게로 갈 뿐이다.
[공모전] 책임은 이겨내면서 지는 것 – 배건효 (2021 제2회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발간보고서

2021 제2회 청소년 노동안전보건 콘텐츠 공모전 “알권리, 안전을 외치다” 수상작
책임은 이겨내면서 지는 것
배건효
“야, 정신 안 차리고 뭐해!”
벼락같은 고함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성난 얼굴을 한 팀장님이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내 옆에는 어느 새 옮겨야 할 제품들이 한 가득 싸여 있었다. 팀장님이 한 마디 더 할 새라 아무 대답 없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또 그 사이에 잠시 딴 생각을 한 모양이다. 요즘은 몸도 힘들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굉장히 많이 받는다. 분명 공장 일은 기계와 함께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람들이 참견을 또 얼마나 하는지… 그래서 어제도 늦게까지 형에게 신세 한탄을 하다가 그만 새벽이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처음 이곳에 왔던 날만 해도 나의 기대와 희망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사장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무뚝뚝해 보였지만 더 친해지고 싶었던 팀장님이 공장 탐방을 시켜주었다.
나는 당분간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바로 100m 부근에 있는 가정집에서 숙식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나를 가장 끌리게 만들었다. 그곳은 사장님의 자녀분들이 살았던 집으로 지금은 보다시피 일하는 노동자들의 숙소로 제공되고 있다. 비록 외딴 곳이긴 하지만 월급으로 이만큼 많이 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숙식도 제공해주다니.
무슨 일을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았지만 식품 공장에서 하는 일이어야 봤자 어느 정도 되겠냐는 심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4주간의 시간이 흘렀고 건강한 몸으로 들어왔던 나는 어느 새 몸무게가 8kg이나 빠져, 힘없는 노예가 되어버렸다.
상표가 찍혀있는 포장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도중 배에서 신호가 왔다. 아무래도 늦잠을 잔 바람에 급히 먹었던 우유가 탈이 났나보다. 이곳은 더 이상 친절히 가르쳐 주는 학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쉬는 시간도 없다. 아직 점심시간까지도 40분가량이 남아 있었다. 아까 전에 팀장님께 눈초리를 한 번 받은 터라 쉽사리 포장실을 나가기가 꺼려졌다. 게다가 평소에 부상이 아닌 이상 어떤 사유로도 일을 멈춘다면, 변명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에 설득은커녕 이해를 바라기도 불가능하다. 불편한 마음에 안절부절하고 있으니 배 속에서는 더욱 난리가 났다.
그러던 중 머릿속에서 뒷문이 떠올랐다. 포장실은 공장 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위치하고 있지만 배달차가 싣고 가기 위해서 뒷문이 마련되어 있다.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평소에는 꽁꽁 잠궈 두고 있었기에 문을 여는 데에만 1분이 걸렸다. 드디어 포장실을 나선 뒤 곧장 화장실로 직행했다. 공장 바로 옆에는 사무실 건물이 있는데 그 안에 두 칸짜리 화장실이 전부다. 지금은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시간대라 다행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정도 힘든 점은 사실 매우 약과다.
처음에는 모든 게 의아했다. 화장실이 떨어져 있던 것도 나에게는 마치 옛날 시골집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위생을 위해서라는 말을 듣고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내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이곳에 왔구나.’
하지만 애초에 내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을 뿐더러 해보지 않은 일을 잘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막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나온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그들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으며 심부름꾼으로 전전했다. 그렇게 점차 익숙해질 무렵부터 갑자기 노동량이 확 늘었다. 웬만한 물건 옮기기는 모두 나의 몫이었고 모두가 함께 하면 순식간에 끝나는 일도 나 혼자 남아서 다 옮겨놓고 가야했다. 조금은 억울했지만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없다’라고 생각하며 한 몸 바치고 일했다. 그럴수록 나의 체력과 인내심은 떨어져 갔다.
오늘은 모처럼 쉴 수 있는 주말이라 늦잠을 자고 있었다. 갑자기 벨소리가 들려 핸드폰을 보니 알람이 아닌 팀장님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아보니 갑작스레 공장에 누수가 생겼는데 와서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가장 가까이에 살면서 주말에도 혼자라 할 게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불려갔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아서 업체를 부르지 않고 팀장님과 나, 그리고 마찬가지로 근처에 있던 아저씨 두 분이서 해결하기로 했다. 아직 시설에 대해서 잘 모르던 나는 또 다시 심부름꾼이 되어 3km나 떨어져 있는 철물점에 다녀와야 했다. 따스한 햇살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지만 지칠 대로 지쳐있던 몸이라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그렇게 물건을 사가지고 왔는데 누수처리는 이미 다 되어 있었다.
“마침 사무실에 있는 걸로 해결했어. 아, 이건 또 보관했다가 다음에 쓰면 되니까 이리 줘.” 팀장님이 내 손에 있던 봉지를 낚아채고는 사라졌다.
나는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공장을 둘러봤다. 그렇게 시끄럽고 정신없으며 항상 뜨거운 김과 밝은 불빛으로 가득 차 있는 공장인데 지금은 고요한 적막 속에 덩그러니 남겨지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람도, 기계도 모두 멈추어 버린 이 시간, 나의 의미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나’ 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쳐서 아무 생각이 다 드는 거라고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는데 팀장님이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는 주위에 물이 새어 나온 자국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너 저거까지 닦고 가지 않을래?”
“팀장님, 오늘은 너무 힘듭니다. 알아서 마를 것 같은데 혹시라도 제가 더 도울 게 있다면 내일 알려주세요.”
더 이상 의욕이 남아 있지 않았던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런데 말을 마치자마자 팀장님이 벌컥 화를 냈다.
“아니 별로 힘든 일도 하지 않는 주제에 무슨 생색이야? 너만 힘들어? 어, 어?”
그리고는 정말 한 대 칠 기세로 나에게 다가왔다.
“죄..죄송합니다.”
“너, 이거 다 닦고 가. 알았어?”
“네에…”
결국 또 불의에 굴복하고 말았다. 걸레로 물기를 닦고 있자니 문득 내 신세가 초라해졌다. 나의 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푸른 초원 속에 던져진 한 마리의 새끼 사슴에 불과했다. 아니지, 여긴 초원도 아니다, 그야말로 전쟁터다, 전쟁터. 그렇다고 이곳의 대장을 찾아가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며칠 전 나는 사장님을 직접 찾아갔다. 업무와 관련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했다.
“그래도 자네가 지금 안전한 게 어디야~ 나 같으면 이렇게 안전하고 건강하게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하겠어.”
나에게 건네는 무언의 압박이자 마치 스스로에게 동의를 구하는 듯한 뻔뻔함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야 했다.
‘그래, 안전한 게 최고지. 왜 공사장에서도 안전을 제일이라 하겠어.’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를 하긴 했지만 작업환경이 안전한 건지 아니면 내가 더 조심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상쾌한 바람과 함께 어느덧 노을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억울한 마음은 금세 어디로 가버리고 뿌듯함으로 가득 차 만족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사건은 머지않아 터졌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지만 곧 연휴가 시작될 터라 이번 주는 4일만 출근을 하면 되었다. 하루가 이렇게 크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도 노동을 하면서야 알게 되었다. 기대와 설렘이 더해지자 의욕도 살아났다. 오늘은 평소보다 15분이나 일찍 할 일을 끝내고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점심을 배식해주시던 아주머니도 나를 보며 깜짝 놀라셨다.
“어이구, 이게 무슨 일이야. 오늘은 1등이네, 1등~”
자리에 앉아 모처럼 여유 있게 식사를 했다. 일할 때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쉬는 시간만 되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오후 작업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일이 수월하고 잘 풀리니까 시간도 빨리 흘러갔다. 어느 덧 5시, 청소시간이 되었다. 청소는 기계 분리 및 세척과 바닥 정리 정도이다. 나도 한 번쯤 호스를 잡고 강력하게 뻗어나가는 물줄기를 느껴보고 싶었지만 호스를 연결하고 바닥을 쓰는 것까지가 나의 몫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일로 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너, 물청소 해볼래?”
평소에 로망이 있었던 지라 기쁨에 겨워 대답했다.
“네! 잘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호스는 나의 손에 쥐어졌고 고대했던 손잡이를 누르자 그에 보답하듯 물줄기가 시원하게 터져 나왔다. 내 키보다 높은 기계를 향해서 물을 뿌리고 바닥의 이물질들을 배수구 쪽으로 몰아내기도 하면서 즐겁게 청소를 했다. 차례차례 물청소를 하며 지나가다가 혼합기가 아직 그대로인 걸 보았다. 주로 양념과 반죽을 배합시키는 용도로 사용하는데 지금껏 멀리서 지켜봐왔던 것을 가까이서 보니까 신기했다. 혼합기도 예외 없이 나의 물줄기를 맞았다. 그런데 안쪽에 끼인 찌꺼기가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호스를 끈 뒤 팔을 쭉 뻗었다.
그 때 뒤에서 팀장님의 벼락같은 외침이 들렸다.
“야!!! 너 거기서 뭐해!”
‘무슨 일이지’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몸이 휘청하더니 무게중심이 앞으로 쏟아졌다.
운동신경이라고는 1도 없다고 생각한 채 살아왔건만 그 순간에는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었던지 순식간에 몸을 비틀어 오른손을 갖다 댄 뒤 뒤로 넘어졌다. 다리가 풀리고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팀장님과 선배님들이 곧장 달려왔다.
여러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야, 너 정신 나갔어?”
“뭐하는 짓이야!”
“어디보자, 괜찮냐?”
호통과 고함소리가 들리던 와중에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가 귀속에 박혔다.
“오..,오른손이…”
‘응? 내 오른손?’하며 들어 올렸는데 그것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사이에 있어야할 엄지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어…어… 이거 뭐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손에서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다가 갑자기 고통과 충격이 몰려왔다.
“으아아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 눈에 띄었다. 하나, 둘 기억이 맞춰지면서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마취가 아직 덜 풀렸는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또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것은 사고 일어나고, 이틀 후였다. 팀장님을 통해 사건의 경위를 쭉 들을 수 있었다.
혼합기를 담당하던 선배가 마침 자리를 비웠을 때 내가 혼합기를 보고는 가까이 다가갔고, 혼합기가 멈춰 있더라도 청소할 때는 반드시 전원을 끈 뒤에 만져야 하는데 그런 걸 알 리가 없던 내가 무심코 다가간 것이다. 때마침 팀장님이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엄지손가락뿐만 아니라 상체가 빨려 들어갈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게 조심했어야지…쯧쯧”
팀장님은 이 한 마디를 남긴 채 병실을 나갔다.
뒤이어 사장님이 오셔서 나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요.”
뭐가 괜찮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놀란 내 마음이 괜찮아 진건지, 아니면 엄지손가락의 상태가 괜찮거나, 다행히 죽지는 않아서 괜찮다는 건지 스스로도 알 길이 없었다.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던 사장님이 돌연 진지한 얼굴을 하고선 말했다.
“자네, 이번 일이 누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나?”
묵직한 한 마디였다. 기계를 가만 내버려두었던 선배, 물청소를 시켜주었던 팀장님, 그리고 조심성이 부족했던 나의 모습이 차례로 지나갔다.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게, 내가 얼마 전에 얘기하지 않았나. 안전이 최고라고.”
그 순간 내 머릿속에도 답이 떠올랐다. ‘내가 왜 안전하지 못했나’ 그건 나의 부주의도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었다. 책임은 애초에 안전하다고만 말하고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공장에게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일들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아는 게 없으니 방법을 몰랐고 그로인해 매번 혼나고 피해를 보았다. 문득 회사에 처음 들어올 때 작성했던 계약서가 떠올랐다. 계약기간, 업무 장소, 임금 등은 세세하게 살펴보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관한 업무 내용이나 작업 환경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주말에도 불려나가 무급으로 일을 하고 노동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빈번했지만 중요한 건 그 와중에도 나는 모른다는 것이었다. 여태 나는 그게 나의 잘못이라 생각했고 일을 하면서도 의식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나에게는 알권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위험한 게 ‘무엇’인지 몰랐고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며 그 모든 위험을 미리 알려줄 ‘누군가’가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다시 한 번 알권리를 떠올려 보았다. 몰라서 생기는 안전문제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접 겪어보았다.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앎으로써 노동자의 권리를, 알권리를 행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알아보자, Law동건강]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문제점 / 2021. 02
일터기사
[알아보자, Law동건강]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문제점
조영훈/회원, 노무사
1.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
대표적인 유연근무제 중 하나가 근로기준법 제51조의 탄력적 근로시간제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말 그대로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사용자의 입장에서 탄력적으로 활용하여 일정 기간의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근로시간으로 맞추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늘리고 줄이는 제도이다
2020. 12. 9.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에서 “단위기간이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인 탄력근로제 신설”한다고 밝혔다.2) 이 제도는 근로기준법 제51조의2에 반영되었다.
2.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문제점
기존의 2주 단위와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 역시 노동계에서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비판의 요지는 크게 건강권과 재산권의 측면에 있다. 먼저 이 제도가 노동자의 생체리듬을 깨고 특정 주에 장시간 노동을 하게 하여 뇌심혈관계질병, 정신질병 등의 과로성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 고시(제2017-117호)에 따르면 만성과로의 경우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64시간을 넘거나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60시간을 넘으면 업무와 질병 간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보고,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넘으면 업무와 질병 간의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평가한다. 단기과로의 경우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량이나 시간이 12주 간의 1주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되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를 말한다.3)
그런데 기존 탄력적 근로시간제 하에서는 1주 근로시간이 2021. 7. 1. 이전에는 최대 80시간까지 가능하다. 근로시간에 관한 2018. 3. 20. 개정 근로기준법(15513호)이 5인 이상 사업장에도 적용되는 2021. 7. 1. 이후에도 최대 64시간까지도 근로시킬 수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특정주에 현재는 80시간까지, 2021. 7. 1. 이후에도 64시간까지의 장시간 노동을 용인하고, 특정주의 근로시간이 30% 이상 증가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정부가 업무상 뇌심혈관계질환 산업재해를 사실상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불러일으킨다.
더욱이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의해 6개월을 단위기간으로 하여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한 사업장의 경우, 12주 동안 52시간 근로가 가능하게 된다. 이는 뇌심혈관질병 인정 기준에 관한 고용노동부 고시(제2017-117호)에서 정한 업무와 질병 간의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보는 경우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2주 또는 3개월 이내 기간에서 평균 주40시간을 넘지 않으면, 연장근로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바, 실질임금이 저하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56조는 연장근로 등에 대하여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에는 일일 근로시간이 법정시간인 8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신체에 무리가 따르므로 그에 대해 가중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법취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하에서는 특정주의 연장근로에 대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연장근로가산수당이 지급되지 않아 문제이다. 또한 근로시간을 줄인 특정주에 대해서는 평균임금의 70% 이상의 휴업수당이 지급되어야 할 것이나, 이 역시 탄력적 근로시간제 하에서는 지급되지 않아도 된다.

3.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문제점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시행되면 위의 문제점에 더하여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먼저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도입 요건이 완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기존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사전에 확정해야 한다. 그러나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기간이 장기간임을 고려하여 기존의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사전 확정하는 것에서‘주별 근로시간’을 사전 확정하는 것으로 기준이 완화되었다. 또 기존의 제도가 사전 확정한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변경하려면 다시 근로자대표와의‘합의’절차를 거쳐야 하는 데 반해, 신설 제도는 근로자대표와의‘협의’만으로 변경이 가능하게 되어 사용자 입장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근로일별 근로시간은 2주 전에만 통보하면 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이에 기존의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비해 신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도입요건이 완화되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도입률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임금보전방안과 관련한 문제이다. 기존 제도에서는 근로기준법 제51조 제4항의 임금보전방안의 강구가 어떠한 벌칙 규정도 없어 훈시규정에 불과하다고 비판받아온 점을 고려하여, 신설 제도에서는 동법 제51조의2 제5항에서 임금보전 방안 신고를 의무화하였다. 신설 제도에서는 임금보전방안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사용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게 된다. 그러나 이 또한 형사처벌 조항은 아니다.
임금보전 방안이란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으로 이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받을 수 있었던 노동자의 연장근로수당 규모를 보전하는 방안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임금보전’이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받게 되는 연장근로수당 전체인지 혹은 일부인지가 분명치 않다. 극단적인 예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손실된 임금이 100만원인데 이 중 사용자가 1원만 보전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신고해도 임금보전 방안 신고를 준수한 것으로 고용노동부가 인정할 것인지 의문이다. 이와 같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임금보전의 구체적 기준이 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한편 임금보전방안도 근로기준법 제51조의2 제5항 단서에 의해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하면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 역시 걱정되는 점이다.
한편 신설제도에서는 근로일간 11시간 휴식시간 보장 조치를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였다고 하는데, 근로일간 11시간 휴식이라면 전날 22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9시에 출근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과연 “충분한 휴식권의 보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이조차도 근로기준법 제51조의2 제2항 단서에 의해 천재지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불가피한 경우에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하면 이에 따를 수 있다. 역시 걱정스러운 지점이다.
1) 현행 2주 단위와 3개월 단위가 있고, 2021. 4. 6.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 단위가 추가 시행될 예정이다.
2) 고용노동부, 「노동조합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등10개 개정 법률안 국회 본회의 통과」(2020.12.9.), 6면.
3) 한편 위 고용노동부 고시의 기준에서 사용하는 “업무시간”이라는 개념은 근로시간보다 넓은 개념이다. 근로복지공단의 「뇌혈관질병·심장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지침」(지침번호2018-2호)에 따르면 ““업무시간”은 근로계약상의 “근로시간”과는 다른 개념으로 업무를 위한 준비 및 정리 시간을 포함하여 사용자의 지휘·감독 하에 놓여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4) 고용노동부,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2018.6.), 18면; ‘주52시간제’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에서는 1주간의 근로시간을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는 고용노동부의 해당 가이드에 적힌 문구 그대로를 인용한다.
[만평] 그림자 노동… / 2021.02
일터기사
[현장의 목소리] 고용노동부, ‘나는 이 농장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서약부터 받아-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 인터뷰 / 2021.02
일터기사
[현장의 목소리]
고용노동부, ‘나는 이 농장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서약부터 받아-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 인터뷰
정경희/선전위원
영하 18도 한파가 몰아친 지난해(2020년) 12월 20일 경기도 포천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출신의 ‘속헹’씨는 전기가 끊긴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다가 숨졌다.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에서 활동 중인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를 만나 이주노동자의 노동과 주거환경으로 인한 문제를 자세히 들으려 1월 14일 낮 12시경 안산 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았다.
지구인의 정류장은 처음에 이주노동자에게 영상 제작 교육으로 문을 열었다가, 캄보디아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를 전해 듣고 그때부터 상담을 하며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최근 언론에서 속헹씨의 부검 결과 간경화와 식도정맥류가 있었다는 경찰 발표를 보도했다. 입국 시 건강했던 속헹씨가 간경화가 발생하게 된 경위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이유, 영하 18도 속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식도정맥류가 파열된 직접적 이유가 제대로 밝혀져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진행 중인지 물었다.

“수소문해서 함께 일한 노동자랑 어렵게 통화가 됐어요. 속헹씨 숙소의 누전차단기가 계속 떨어졌다는 거예요. 누전차단기 스위치가 오래 떨어져 있다가 잠깐 올리면 10분쯤 있다 또 떨어지고. 금요일 밤에는 5명 중 3명이 춥다고 먼저 나가고, 나머지 2명이 남아 잤는데 밤새도록 거의 눕지를 못했대요. 한 사람이 나가서 올리고 돌아오면 떨어져서 또 한 사람이 나가서 올리고 돌아오고. 전기를 너무 많이 쓰면 그럴 것 같아 ‘냉장고, 세탁기, 다른 전기장치 다 뺐는데 그래도 안 올라갔어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경찰이 타살이나 코로나 여부만 염두에 두고 이런 내용은 조사를 안 했어요. 동료와 금요일 밤새도록 차단기 올리다 밤을 새고 토요일 저녁엔 이 동료도 인근 친구 집에 가면서 속헹씨에게 같이 가자고 했는데 ‘괜찮아 여기 있을게’ 했대요. 동료노동자는 오후 4시경에 돌아왔는데, 객혈 흔적은 속헹씨랑 둘이 쓰던 방에 있었고, 주검은 동료가 혼자 쓰는 조금 작은 방에서 발견됐대요. 그 방 차단기가 잘 안 떨어지고 우풍도 적어서 좀 더 따뜻했다는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도 사업주는 난방장치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얘기를 해요. 대사관에서는 국가 간 외교적 관계를 핑계 삼아 관행에 따라 빨리 수습해서 보낸 것 같은데 아직 산재유족급여 신청이 안 이루어진 것이 확인되고 있어요.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할 수 있도록 도와야죠.”
식도정맥류를 파열시킨 혈압상승의 직접 원인이 강추위 속 고장난 난방시설이라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한데 환경 관련성 조사를 애써 피하는 고용노동부, 캄보디아대사관과 동료의 증언이 있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고용주 모두 책임이 있는 집단이다. 김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사람을 옥죄고,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데만 급급한 고용허가제가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사업주에 종속시키는 제도예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의사표현을 할 수가 없어요. 나랑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가 죽었고 시신을 본 사람들이에요. 유골함도 유족에게 보내고 위로의 말도 전해야죠. 또 유가족이 여러 얘기를 물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심신이 매우 피곤하고 트라우마가 있을 텐데 그런 관리는 전혀 안 돼요. 항의를 했더니 고용주는 오히려 저희와 동료들과의 접촉을 막고 있어요. 고용노동부가 24일에 가서 한 일은 ‘나는 이 농장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는 한글 양식을 써서 서명을 받은 거였어요. 고용허가제는 그렇게 공고하게 운영되고 있어요. 차분하게 동료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위로받고 휴식할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죠.”
속헹씨를 발견했던 주변 노동자들에 대한 트라우마 치유 지원이 되어야 할 텐데 현재 상황이 어떤지, 심층적인 인터뷰가 계속 진행되어야 자세한 정황들이 밝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안 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고용주, 노동부, 제도가 막고 있는 걸로 봐야죠. 보도가 나가니 저희는 접근을 차단당했고, 외부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까 부천에 있는 트라우마센터에서 한 번 상담하고, 두 번 더 하기로 했어요. 가만히 있었으면 그런 조치들도 없었겠죠.”
농촌이주노동자 주거환경의 문제는 2017년 이주노동자 숙소와 대기실 컨테이너 화재로 인한 사건들, 지난해 여름 홍수 시 이재민의 80%가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던 이주노동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비정상적인 주거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주거문제를 주거권으로 접근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아요. 이주 노동자를 불러왔으면 살 곳에 대한 준비를 해야하잖아요. 해마다 6만 명씩 합법적으로 들어오고, 또 그 만큼씩 돌아가거든요. 고용허가제는 국가가 독점적으로 인력을 알선해서 노동자가 다른 데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묶어놓고, 만일 나가면 미등록 체류자로 만드는 시스템이에요. 그럼 그 안에라도 생명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은 있어야 할 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없다는 거죠.
2017년에 생긴 ‘숙식비 징수지침’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 전에는 월급이 110만 원인데 집값이 50만 원인 경우도 많았어요. 근데 그런 집이 농수로 위에 컨테이너인 숙소였어요. 이것을 이주노동자들이 담아온 영상으로 봤고, 노동부에 몇 차례 얘기했어요. 임금에서 숙소비를 떼게 하면 안 된다고 진정했는데 고용감독관이 ‘이건 근로기준법 관련사항이 아니어서 조사 못 한’대요. 숙소 문제는 노동부가 해결 못 한다면서. 계속 문제기를 하자, 2017년에 노동부가 소위 ‘외국인 근로자 숙식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이란 것을 내놓았어요. 그리고 그 후에는 근로기준법 제10장에 기숙사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고요.
그런데 위 지침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기숙사인지 아닌지 여부’를 명확하지 않게 숙소 제공에 대한 징수지침으로만 해놓은 거예요. 이번에 비닐하우스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크게 불거지니까 지금에서야, 명확하게 고용주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다시 미루고 처벌을 하겠다고 하는데 시정지시를 내리는 거 말고는 별 대책이 없어요. 여전히 부당한 지침은 그대로 남겨두고요.”
이주노동자단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고용법을 개정해 면적, 냉난방시설, 소방시설 등 12개 기준을 마련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기숙사 시설개선 명령을 1만 1000곳에서 받았지만, 조치에 나선 비율은 0.3%에 불과했다는 보고가 있다. 시정지시에도 개선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처벌규정이 있다기보다, 농지법 위반은 원상복구명령을 하는 거예요. 근로감독관은 사법경찰권이 있고, 경찰은 속헹씨가 살았던 농막이 6평 이상이라는 것에 대해서만 조사했다고 해요. 시당국에서 미등록 건물 관리를 해야 하는데 미루는 형국이에요. 처벌도 과태료 30만원 정도라고 들었어요. 노동자가 생활할 최소한의 주거권은 국가 시행 사업이니 노동부가 기본적으로 책임 있다고 봐요.
최근 발표한 통계를 보면 고용허가제 노동자 25만 명 중 70%는 온전한 집이 아니라 컨테이너든 샌드위치 패널이든 임시가설숙소에서 살고 있다는 거예요. 고용노동부는, 2017년 처음에는 말 그대로 ‘비닐하우스’만 막았어요. 전체 숙소의 1%였어요. 속헹씨의 숙소는 숙소 종류의 30%에 해당하는, 안에는 샌드위치패널 조립물이 있고 그 바깥을 까맣게 덮은 비닐하우스거든요. 올해 1월 노동부는 개선안이랍시고 ‘비닐하우스가 없는 임시가설 숙소는 된다’고 하고 있어요. 이것은, 다시 말하면 비닐하우스만 벗기면 샌드위치패널과 컨테이너는 상관없게 되는 미봉책인 거죠.
이주노동자가 낯선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소개자인 노동부가, 20살 이주노동자가 밭만 있는 농지나 임야에서 어떻게 자고 먹고 씻고, 문화생활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필요한 장치는 무엇인지 안내를 해야하잖아요. 그런 게 없으니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의존해야 하고, 더욱 예속될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부터는 건강보험도 지역건강보험료를 내야 해요. 속헹씨도 12만 원씩 냈어요. 월급 130만~150만 원인데 한국 건강보험료 평균액으로 부과를 한 거예요.”
근본적으로 고용허가제가 노동허가제로 바뀌려면 노동부, 사업주가 바뀌어야 한다. 당사자나 문제를 인식하는 단위에서 끊임없이 제기하고 사회화하는 것이 필요할 텐데 대책위의 향후계획에 대해 들었다.
“속헹씨가 지금의 제도 내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을 받고, 정부가 최소한의 이주노동자 주거권에 대한 미봉책이라도 잘 시행하게 해야죠. 70%의 주택문제에 대해서 지자체, 노동부가 노동자 생명권이 위협받지 않게 하려면, 한국 사람들이 야채가 비싸서 덜 먹더라도 농촌이주노동자의 피와 뼈를 갈아 넣지 않게 해야 해요. 노동시간 같은 것들이 전부 감춰져 있는 것도 큰 문제예요. 근로계약서에는 전부 하루에 8시간 일한다고 되어 있지만, 한 달에 이틀 쉬고, 10시간 노동이 기본이라는 거예요.
대책위는 속헹씨 사망사건에 대한 대응을 하면서, 고용허가제의 부당함을 다시 짚고, 농촌이주노동자 주거문제에 대해 노동부가 제대로 책임지고 조치할 수 있게 정책감시와 압박을 계속 하는 활동을 진행해야겠죠.”
김이찬 대표는 노동자가 힘들더라도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공부하고 서로 목소리를 모으고, 혼자 말할 수 없는 문제는 나눠서 연대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다며, 그래야 적어도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을 일터 독자에게 나누고 싶다고 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나온 농촌이주노동자의 적나라한 이야기들을 지면상 모두 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담지 못한 이야기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시길 권한다.
[연구리포트] 사무금융노동자의 정신질환 사태 / 2021.02
일터기사
[연구리포트]
사무금융노동자의 정신질환 사태
김영선, 이유민, 정지윤, 류한소, 김지안, 최민, 장순원, 박경환/연구팀
1. 들어가며
<사무금융 노동자 업무상 정신질환 실태 및 대응 연구>는 증권, 여수신, 보험 등 사무금융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정신질환 실태 조사로 2020년 3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됐다. 금융업 전체의 정신질환 상태를 다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기사분석, 설문분석, 면접분석을 활용했다. 이는 정신질환의 추세, 실태, 의미를 다면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기사분석은 30여 년 간 미디어화된 금융노동자 자살 사건(109건)을 대상으로 자살의 분포와 추세를 파악했다. 설문분석은 조합원 1181명을 대상으로 정신질환 양상을 기술하고 집단별 차이를 구체화했다. 면접분석은 조합원 16명의 인터뷰를 통해 정신질환의 독특한 분포가 조직의 구조적 요인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2. 기사분석: 추세
금융노동자의 자살 추세를 보면, 전체적으로 가파른 증가세(90년대 22건에서 2000년대 32건, 2010년대 55건)를 보였다. 특히 2010-2013년(6건, 7건, 7건, 14건)과 2004-2005년(10건, 6건)의 시기가 유독 높았다. 지점 통폐합이나 인력 감축 등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크게 작용한 바다.
자살 사건 가운데 업무관련성 자살의 비율을 시기별로 보면, 90년대 22건의 자살 가운데 업무관련성 자살은 9건(40.9%)이었다. 대부분 은행 노동자의 자살 사건이었다. 2000년대 32건의 자살 가운데 업무관련성 자살은 12건(37.5%)으로 증권 노동자의 자살이 많은 수를 차지했다. 2010년대 55건의 자살 가운데 업무관련성 자살은 26건(47.3%)이었다. 업무관련성 자살 사건이 경향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업무관련성 요인으로는 실적 압박과 연관된 내용들이 많았다. 이런 경향은 특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리고 증권 노동자의 자살 사건에서 두드러졌다.
금융노동자의 자살 사건을 다룬 기사에는 유달리 불법적 관행과 연관된 내용들이 많았다. 차명계좌, 지인계약 같이 업무 관행, 불법적 요소, 실적 압박 간의 경계가 모호하고 뒤엉키면서 발생한 사건들이다. 불법이 방조된 채 실적을 채워야 하는 업계 관행이 꽤 빈번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법적 관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기사에서 불법적 관행이 재현될 때 많은 경우 실적 쥐어짜기 시스템이 유발한 자살 ‘맥락’은 누락되고 만다. 이렇게 위법적 요소가 미디어화 될수록 자살은 개인 문제로 귀착되고 위법적 관행을 방조하는 실적 쥐어짜기는 재생산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살을 유발하는 맥락으로서의 실적 중심주의 조직문화나 경영방식을 면밀하게 문제화해야 하는 이유다.
3. 설문분석: 실태
사무금융 노동자의 정신건강 지표는 ‘빨간불’이다. 고위험음주 및 업무 후 정신적 지침을 호소하는 비율이 매우 높았고, 직무스트레스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비율이 모든 업종에서 50% 이상이었으며, 감정노동 관련해서는 조직의 보호체계를 통해 지지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90% 이상이었고, 감정부조화를 겪는 비율은 80%에 달했다. 또한, 대부분 직장 내 성적·정신적 폭력영역, 고객의 정신적·성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25개 예시에 대해 90.4%가 직장 내 괴롭힘을 한 번 이상은 경험했다.
둘째, ‘성과 압박’은 사무금융 노동자의 특징적인 위험 요소로 확인됐다.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요인에서 가장 많은 빈도를 보인 것은 “영업·업무 성과에 대한 압박”이었고, ‘업무적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에 압박을 느낀다’는 항목에서 80% 이상, ‘불법적인 행위를 해서라도 성과를 내고 싶을 때가 있는가’라는 항목에는 26.4%가 ‘있었다’고 답했다. 또한 성과 압박과 자살 간의 상관분석을 통해 성과 압박이 자살이라는 위험도 높은 상태와 관련성이 높게 나타났다.

정신건강 지표가 전반적으로 빨간불인 가운데, 업종별·직무별 위험의 정도는 달랐다. 첫째, 업종별로는 ‘여수신’의 경우 성과 압박에 대해 가장 높은 부담을 보였고, 특히 여성의 불안, 우울, 자살 생각·계획·시도 비율이 가장 높았다. ‘보험’의 경우 감정노동의 측면에서는 직장 내 지지체계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가장 높았고, 감정부조화를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다. 특히 남성의 경우 불안, 우울, 자살 생각·계획·시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증권’의 경우 불법적인 일을 해서라도 성과를 올리고 싶은 성과 압박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다.
둘째, 직무별로는 ‘본사 관리 및 지원’에서 여성의 우울 비율이 가장 높았다. ‘지점현장 관리 및 지원’은 정신적 지침이 가장 많은 직무였으며, 관계갈등 및 직무불안정에서 가장 높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남성의 불안, 우울, 자살 생각·계획·시도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본사 영업’의 경우 성과 압박을 95%가 경험하고 있었다. 또한 폭력에서 직장 내 정신적·성적 폭력도 높지만 무엇보다 고객의 신체적 폭력에 상당히 노출되어 있었고, 감정노동에서는 ‘직장 내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100%였다. 한편, 여성의 경우에는 자살 생각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직무였다. ‘지점 현장 영업 및 보상’의 경우에는 ‘성과 압박을 느낀다’는 응답이 95%를 차지했고, ‘불법적인 일을 해서라도 성과를 내고 싶다’는 응답이 43.7%로 매우 높았다. 그리고 감정노동 측면에서 감정부조화를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불안 및 자살 시도가 높은 비율을 보였다. ‘콜센터’의 경우에는 업무의 어려움 정도를 추정하는 보그지수에서 14.2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보였고, 정신적 지침에서도 90.3%나 되는 응답자가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한 직무스트레스 항목 중 직무불안정과 직무요구가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으며, 폭력 측면에서 고객의 정신적·성적 폭력의 경험이 93.1%로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전산 IT’에서는 직장 내 성적·정신적 폭력에 대해 70%나 응답했고, 여성의 경우에는 다른 직무에 비해 자살 생각이 50%로 가장 높았다.
4. 면접 분석: 의미
첫 번째 키워드 ‘성과 압박’. 사무금융 노동자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성과 압박이었다. 2000년대 초반 성과급제 도입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발견되는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은 성과를 위한 ‘자기 착취’를 노동자들이 내면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증권업의 경우, 노동자들의 자살은 증권업 자체의 ‘리스크’를 개별 노동자가 감수하는 구조에서 발생하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위험에 대한 불안 정도가 높고, 24시간 계속되는 전지구적인 금융시스템 아래에서 증권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불면에 자주 시달린다. 보험업의 경우, 귀책사유 없이 금감원에 접수되는 소비자들의 ‘억지 민원’ 탓에 많은 노동자들이 공황장애를 호소했다. 한편, 성과 압박 체제는 저성과자 프로그램이 이름만 바뀐 채로 지속되는 모양새였고, 여성들에게 각오나 포기를 요구하는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와 꽤 친화적이었다.
두 번째 키워드 ‘욕 먹는 값’. 보험 보상 노동자들은 죄송함을 달고 살고 있었고, 증권 노동자들은 고객 손실까지 사비로 보전하며, 지점 관리 및 지원직 노동자들은 지점에서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사과해야 하는 등 저자세를 취해야 했다. 이들의 친절과 사과는 성과 압박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업장은 미미한 대응으로 일관한 탓에 보호장치가 부재한 형국이었다.
세 번째 키워드 ‘괴물을 키우는 구조’. 상사의 괴롭힘은 관리자의 개인적 속성이 아니라 성과 압박이라는 체제와 연관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과중한 업무부여, 승진 누락, 실적 몰아주기 등 조직 차원의 ‘합리적’ 방식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미시적인 관계 폭력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넷째, 기술 변화 차원. 지점 관리 및 지원직 노동자들은 지점 축소 및 통폐합으로 극심한 노동강도를 호소했다. 신기술 변화의 이면에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강조한다. 노동환경의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당장 느끼지 않은 직종이라 하더라도 불안감에 휩싸여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신금융’ 상품 개발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잖게 발견됐다.
마지막으로, 대응과 지지의 언어들. 직무스트레스에 대한 대응이나 지지가 조직적이라기보다는 취미 등의 개별적인 전략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낙인에 대한 우려로 정신질환의 치료 자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졌다. EAP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홍보 부족, 실질적인 접근의 어려움, 회사에 알려질 것에 대한 우려를 지적했다. EAP 프로그램은 정신건강의 문제를 호소하는 노동자를 위해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이지 최대한의 조치는 아닌 것이다.
5. 개선 방안
첫째, 회사별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 체계 수립. 정신건강 문제가 전반적으로 심각하지만, 개별화된 대응이 빈도 높게 발견됐다.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 찾기, 필요한 자원 제공하기, 정신질환 앓고 있는 구성원의 적응 돕기 등 관련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체계 수립을 위해 우선 정신질환 문제가 조직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업종별, 직무별, 성별 다양한 원인 차이가 발견되는데, 이를 위한 실태 조사, 대안 토론 조직, 조합원 교육 등의 후속 조치도 요구된다. 서울교통공사의 ‘힐링센터’를 모델 삼은 ‘사업장 기반 정신건강 전담 기구’ 설치도 유효하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포괄적인 체계 마련과 동시에 고위험군(남성 자살 시도 3.6%, 여성 자살 시도 5.5%)에 대한 예방 프로그램도 절실한 상황이다.
둘째, 실적주의에 기대지 않은 금융노동 모색. 성과 압박과 자살 생각·계획·시도 간의 상관성이 높았던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적주의 체계가 핵심 스트레스 요인이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성과평가와 분배원칙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가 생각하는 공정한 성과평가 기준 마련, 평가위원회 구성, 사업장별 평가방식에 대한 공개토론 등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조직 차원의 영업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위험도가 높은 상품 개발이나 공격적인 영업 방식 대신에 안정적인 운용 방식을 통해 직무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상품 개발이나 영업 방식에 대한 노동자 관점의 평가 또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의 전략 및 정책 수립과 관련해 노조 간부 대상의 교육이 우선 실시되어야 한다. 일종의 정신건강 관련한 공감도와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이다. 또한 업종 전체의 ‘평균치’를 높이기 위해 법제도를 실질화해야 한다. 산별노조로서의 역할로 금융노동자들의 ‘공통적인 고통’을 매개로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법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작업 중지·대피’를 삽입하거나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위험성평가’를 금융업에 적합하도록 개발하는 사업을 우선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