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곧은소리]일 중독 권하는 CEO 대통령

[곧은소리]일 중독 권하는 CEO 대통령 
 
 2008년 04월 17일 (목)  이김춘택  webmaster@idomin.com 
 
 
이른바 'CEO 대통령'이라 불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무원들이 야단법석을 벌이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그 시작은 대불공단 전봇대 사건이다. 대통령이 인수위 회의에서 탁상행정의 표본으로 지적하자 3일 만에 전봇대가 뽑혔다. 하지만, 과연 전봇대 몇 개 뽑아서 물류운송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한마디에 난리법석

다음은 화성서부경찰서 임시 개서 사건. 행정안전부 업무보고 때 대통령의 지시가 있자 애초의 계획을 급히 앞당기느라 컨테이너를 이용한 임시 경찰서가 문을 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어찌 됐건 주민들의 치안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뒤이어 벌어진 고속도로 톨게이트 사건. 대통령이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하루 통행량이 220대밖에 되지 않은 톨게이트의 낭비를 지적하자 국토해양부와 한국도로공사는 그 톨게이트를 찾느라 난리가 났다. 보름 뒤, 하루 통행량이 282대로 가장 적은 문평 톨게이트가 울며 겨자 먹기로 지목됐고, 이어 12개 톨게이트 46명 직원의 감축안이 발표됐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46명의 노동자가 졸지에 해고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일이 재벌기업 경영자 스타일이 몸에 밴 이명박 대통령의 권위주의가 빚어낸 웃지 못할 해프닝이라면, 좀 더 심각한 사례도 있다.

안산시의 한 주민센터가 24시간 민원업무를 보는 것을 "국민을 섬기는 자세"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칭찬하자, 곧 다른 시도에서 안산시를 따라할 것을 밝혔고 행정안전부에서도 24시간 민원 서비스를 전국 주요 도시에 확대 시행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또다시 많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주야 2교대 근무와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주민센터를 24시간 운영하면 이용하는 주민들은 편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의 건강은 크게 위협받게 된다. 특히 주민센터는 여성 공무원이 많은데, 주·야간 교대근무, 장시간노동, 야간노동은 본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모성보호 차원에서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단적인 예로 오랜 세월 교대근무를 했던 노동자들은 수명이 13년 줄어든다는 연구도 있다.

실제로 화제가 된 안산시 주민센터는 4명의 공무원이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하루 14시간을 일하고 있다고 한다. 1주일에 무려 70시간 노동을 하는 것으로 주40 시간 노동이 보편화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가히 살인적인 노동시간이다. 1주일 연장 근로의 한도를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53조를 위반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24시간 노동관'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선자 시절 GM대우 부평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대한민국 모든 기업이 24시간 2교대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이 회의시간을 아침 8시 이전으로 당기는 바람에 하급 공무원들은 아침 6시 출근을 위해 새벽잠을 설친다는 '얼리버드 Early Bird' 현상이나 '월화수목금금금', '노 홀리데이'라는 말이 언론에 회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자들은 대통령이 24시간 노동을 권장하지 않더라도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OECD 고용전망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2006년 연평균 노동시간은 2357시간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 특히 연평균 노동시간이 2000시간을 넘는 OECD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고 하니 장시간노동으로는 단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셈이다.

24시간 일하라는 대통령

툭하면 노동귀족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받는 현대자동차는 과로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한 해 17명에 달하는 등 24시간 2교대 근무의 문제점이 심각해 야간노동을 없애기 위한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이 노사간의 최대 현안이 되어 있다. 한편, 외국 학자들은 한국의 장시간노동을 '일 중독'이라는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좀 더 일찍, 좀 더 오래, 가능하면 24시간 내내 일하는 것을 선(善)으로 여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노동관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이다. 7%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산에 구멍을 내고 강바닥을 파헤쳐야 하며, 노동자에게 일 중독을 권장해야 한다고 믿는 CEO 대통령에게 국민이 5년 동안 시달려야 할 것을 생각하니 참 걱정스럽다.

/이김춘택(금속노조 마창지역금속지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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