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일보] 대형점 서비스직 여성들은 '머슴녀?'

대형점 서비스직 여성들은 '머슴녀?' 
휴식공간 태부족…우울증·하지정맥류등 질환 심각
적절한 휴식과 정기진료등 근로 기본권 보장 시급 
 
 2009년 06월 09일 (화)  윤혜미 기자  hongilzum@suwon.com 


서비스직 근무자들의 근로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는 오래전 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이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아직도 제자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하는 고단한 그들을 만나보았다.   

사례1. 수원 모 백화점 의류 매장에 근무하는 김모(26·여)씨는 얼마 전 병원에서 ‘하지정맥류’ 판정을 받았다. 하지정맥류는 다리의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겨 발병하는 혈관질병인데, 하루에 8시간이상 서있는 서비스직 여성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사례2. 수원 시내 모 대형 백화점 직원용 여성 휴게실.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쇼파 10개가 놓여져있다. 여성 직원들은 아픈다리를 부여잡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백화점의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직원용 휴게실은 을씨년스럽다.

사례3. 수원시내 P치과 건물 내 계단. P치과에 근무 중인 치위생사 최모(31·여)씨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얼마 전 치과는 환자 유치를 위해 내부를 리모델링 했다. 환자에게는 쾌적한 대기공간이 생겼지만, 최씨는 휴식 공간을 잃었다. 최씨는 어쩔 수 없이 계단에 잠시 나와 한숨을 돌렸다.

● 책임만 있고, 권리는 없는 ‘가족경영’

기업들 사이에 가족친화경영이 각광받으면서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이자 ‘가족’인 직원들의 근무환경은 그들을 주인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서비스직 여성의 근로환경은 더욱 그렇다.

‘서서 일하는 서비스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자’는 캠페인이 몇 해 전부터 있었지만,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직원용 의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한모(29·여)씨는 “주인, 가족이라 추켜세워 직원이 더 의욕적으로 일하기를 바라면서, 정작 회사는 효율적인 근무를 위해 필요한 휴식 공간을 외면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직원에게 책임만 주고 권리는 빼앗는 것과 같다”며 울분을 토했다.   
   
● 80명이 쉴 자리는 단 세 곳   

점심시간 수원에 있는 모 백화점 계단에 여성들이 모여앉아 있다. 이들은 이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다. 점심시간 식사를 빨리 마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러 직원용 휴게실에 갔지만, 앉을 자리가 없어 계단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 내부에는 각 층마다 직원용 휴게실이 있다. 각 층의 휴게실에는 3명이 앉을 수 있는 쇼파가 하나씩 있다. 백화점의 각 층은 적게는 40개 많게는 50개의 매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각 매장마다 2~3명의 직원이 배치돼 있다.

그렇다면 한 층에서 적어도 80명은 근무하는 셈이다. 그러나 직원에게 제공되는 휴식공간은 단 세 자리에 불과하다. 

이는 다른 백화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원에 있는 또 다른 대형 백화점에는 직원들이 주차장에서 자동차 매연을 맡으며 피로를 덜어내고 있다.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하루종일 까탈스러운 고객을 상대하며 지친 그들이 한숨 돌릴 수 있는 곳은 주차장 뿐이다. 

● 74.6% 근육통 생기고, 일부는 우울증에도 시달려

최근 국가인권위원가 백화점 판매사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백화점근무 직원 절반 정도가 각종 신체 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 중 74.6%가 근육통, 65.9%는 무릎․관절 질환, 58.4%는 요통 디스크, 47.4%는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한 일부 서비스직 여성은 우울증으로 정신과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A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일하는 박모(38·여))씨는 “나보다 어린 손님들이 반말을 한다거나 손님은 왕이라는 식으로 직원에게 무례하게 하는 손님도 많지만, 회사에서는 무조건 친절만을 강요한다”면서 대인기피증이 생길정도라고 말했다.
 
● 기업의 인식 전환 필요

노동현장에 있는 서비스직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충분한 휴식 시간과, 공간확보, 정기적인 정신과 진료이다.

텔레마케터 유씨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와 불평에 대해서도 공손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우울증이 생겨 가까운 사람에게는 공격적으로 변했다"며 "회사에서 상담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해 업무상 스트레스가 질병으로 확대되는 일이 없도록 대책마련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비스직 여성의 휴식공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하루 종일 서서 근무해야 하는 근무여건도 문제점으로 지적된 지 오래다. 정부는 지난 2003년부터 장시간 서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틈틈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를 두도록 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용 휴게실 증강 및 근무지 의자배치 계획에 대해 문의 전화를 했지만, 백화점 측은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답변을 회피해 직원의 근무환경 개선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했다.

또 다른 백화점은 40~50평의 충분한 휴식 공간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직원용 휴게실을 더 넓힐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기자가 직접 찾아가 본 결과 거짓임이 드러났다.

눈 대중으로 봐도 백화점에서 밝혔던 평수에 크게 못미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출과 직결된 고객을 위한 공간은 쾌적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가족'이라 부르는 직원들의 공간에는 무관심한 기업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관계자는 “기업이 아직도 절대 의자는 안 된다는 생각, 정부에서 의자를 놓으라고 하니까 적당히 명목상의 의자를 놓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기업의 의식 전환 없이는 진정한 서비스직 여성의 인권 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단언했다.

권선구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한 여성(36)의 말은 우리사회에 많은 생각과 고민을 던져준다.

하지정맥류와 비뇨기과 질환으로 4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는 그녀는 "퇴직할때 보니 폐품처리 되는 기분이었다"며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의 모습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