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노동자신문] 현중하청노동자 근골격계 산재승인

현중하청노동자 근골격계 산재승인

소지공 조광한씨- 근골격계 집단요양 하청노동자로 확산하는 계기 되어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로서는 처음으로 직업성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산재요양 승인이 내려졌다.
5월 25일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소지공(파워
그라인더공)으로 14년간 일해 온 조광한씨(원호기업)가 지난 3월 13일 신청한
산재요양을 승인했다. 조광한씨의 병명은 대표적인 근골격계 질환의 하나인
‘주관절외상과염’.

‘블랙리스트’ 공포 때문에 발병 후 3년 넘도록 진통주사만 맞아

조광한씨는 지난 89년 유진기업에 입사한 이래 현 원호기업에 이르기까지 10여
개 사내 하청업체를 거치며 현대중공업에서 파워그라인더 노동자로 일해 왔다.
조광한씨가 그라인더 작업에 따른 반복된 진동으로 왼쪽 팔꿈치 관절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껴 처음 병원을 찾은 것은 2001년 12월. 그때부터 조광한씨
는 진통주사를 맞고 일을 하다가 다시 통증을 참을 수 없게 되면 또 진통주사
를 맞는 식으로 치료 아닌 치료를 해 왔다.
그러나 처음 6개월 주기로 맞던 진통주사의 간격이 점차 줄어들어 1개월 간격
으로까지 좁혀지고, 마침내 올해 들어서는 진통주사를 맞아도 통증이 사라지
지 않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당시 상황에 대해 조광한씨는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산재신청을 내서 제대
로 치료를 받고 복귀하고 싶었지만, 블랙리스트에 걸려 일자리마저 잃을까봐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산재신청을 낸 하청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에서
일할 수 없게 된다는 공공연한 ‘비밀’ 때문에 ‘골병이 들면서도’ 산재신청
을 할 수가 없었던 세월이었다.

공개조합원 선언 후 산재요양 신청 - “하청 노동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광한씨는 지난해 11월 임금삭감에 맞서 소지공 노동자들이 자발적으
로 집단 작업거부에 나섰을 때 떠밀리다시피 ‘비공식 대표’를 맡게 되면서
전환의 계기를 맞이한다.

소지공들의 작업거부 투쟁은 사흘만에 흐지부지되면서 패배했지만, 당시 투쟁
을 거치며 새로 눈을 뜨게 된 조광한씨는 지난 2월 박일수 열사가 ‘하청 노동
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분신한 직후 진용기씨와 함께 공개 조합원 선언
을 하면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억압받고 차별받는 현실과 하청노조
가 당하는 탄압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만천하에 알려내는 결단을 하게 된다.

공개된 하청노조 조합원은 곧바로 해고당하던 현실이었지만, 박일수 열사 분신
으로 조성된 첨예한 국면을 활용하여 당당하게 공개 조합원으로 나선 조광한씨
는 하청노동자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자신들
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그 일환으로 근골격계 산재요양 신청에
나선다.
“하청노동자도 근골격계 직업병 승인을 받을 수 있고 산재요양 후 당당하게
현장에 복귀할 수 있다”는 실례를 만들어 내겠다는 결심이었다. 공개조합원
선언까지 결단한 조광한씨에게 더 이상 블랙리스트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달여 우여곡절 끝에 얻어낸 산재승인, ‘요양 후 현장 복귀’라는 절반의 과
제 남아

소속 업체에서 “소지공 일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견을 내는
등 산재신청으로부터 두 달여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조광한씨는 결
국 산재승인을 얻어냈다. 일단 목표의 절반은 이룬 셈이다.
그러나 소속 업체가 5월 15일자로 사실상 해고를 의미하는 ‘계약만료 통보’
를 보내온 것처럼, 조광한씨에게는 산재요양 이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로 다시 일할 수 있기까지 또다른 절반의 투쟁이 남아 있다. (산재신청 기간
해고는 근로기준법 위반)
이와 관련 조광한씨는 “하청노동자도 산재요양하고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
는 선례를 꼭 만들어 내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하청노동자의 산재 문제, ‘노동운동의 관심’과 ‘당사자들의 자신감’ 있어

최근 몇 년 동안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집단요양 신청과 산
재승인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근골격계 집단요양 신청은 대부분
정규직 노동자들로 한정되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수준
이 정규직에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조광한씨의 이번 근골격계 산재승인은 근골격계 집단요양이 현대중공
업 사내하청 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까지 확산되는 계기가 되어
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광한씨 또한 “골병들고 망가지면서도 산재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하청 노동
자들의 현실을 극복하는 데 노동운동의 관심이 모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
다”고 심경을 밝혔다.
조광한씨는 아울러 “하청노동자들 스스로도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의 권리를
당당하게 찾아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울산노동자신문)

사금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