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 알아보자 LAW동건강] 과로산재 인정기준, 다시 논의가 필요할 때

일터기사

과로산재 인정기준, 다시 논의가 필요할 때

이건우(회원, 노무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심근경색으로 인해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가 최근 5년간 30% 이상 증가했다. 뇌심혈관계질환은 현재 한국 사람의 사망원인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사망원인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위험한 질환이다. 뇌심혈관계질환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전조증상(어떤 일의 징조로서 나타나는 현상)이 없거나, 있더라도 미미해서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법)에서는 노동자들이 과로로 인해 뇌심혈관계의 이상이 발생한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보상을 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발생한 질환이 과로에 의한 것인가를 입증하기란 절대 쉽지만은 않다.

산재법에서 규정하는 과로란

당연하지만 법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법이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산재법 또한 마찬가지다. 산재법에서는 과로를 그 특성에 따라 급성 과로, 단기 과로, 만성 과로로 구분하고 있다. 급성 과로의 경우 질환이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24시간 이내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가할만한 ‘사건’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 단기 과로의 경우 질환 발생일을 기준으로 가까운 일주일과 이전 12주를 비교하여 업무시간이 30% 이상 상승했는지를 주로 본다. 만성 과로의 경우 질환 발생 기준 이전 12주간의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 이상인지 아닌지가 주된 판단기준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업무시간의 길이만을 기준으로 하여 과로를 판단하였으나 법원에 의해 근로복지공단의 인정기준이 부정된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공단은 업무시간 외에도 업무부담 가중요인 또한 과로 인정기준으로 포함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업무시간의 길이는 공단에서 판단하는 주된 기준이며,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산재보상에 대한 기대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과로 기준, 이대로 괜찮나?

상기한 바와 같이 공단은 업무시간을 주된 기준으로 판단한다. 다만 이러한 기준이 깊은 고민에 의해 설정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다. 매년 2,000건이 넘는 뇌심혈관계질환을 심의하고 결정해야 하므로, 정량적인 판단기준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는 바이다. 다만 정량적인 기준 외에 정성적인 기준 또한 중요하지만, 이에 관한 판단은 여전히 부수적인 수준에 그치고 만다. 정량적인 요소와 정성적인 요소에 대한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또한 공단의 업무시간에 대한 인정기준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되어있다. 과로의 판단기준이 되는 업무시간은 근로시간과는 다른 개념이다. ‘엄밀한’ 근로시간을 포함하는, 근로시간보다 더 큰 개념이다. 즉 작업을 준비 및 정리하는 시간 등의 작업을 위해 투입되는 시간들의 총체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1주 52시간의 업무시간은 법정근로시간을 현저히 상회하는 양이며, 근로시간 산정의 기준이 되는 12주의 기준 또한 지나치게 길게 설정되어있다. 주말에 쉬었다는 이유로, 명절에 쉬었다는 이유로, 연차휴가를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업무시간이 감소하여 인정기준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라면 산재 인정은 더욱 멀어진다.
직업, 업종, 작업내용, 작업강도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다. 같은 업무시간 일지라도 업종에 따라 작업내용에 따라 현장에 따라 업무 강도는 달라진다. 또한 연령에 따라 같은 업무를 수행하였다 하더라도 신체에 가해지는 피로도와 회복력이 다를 수 있다. 공단의 과로에 관한 판단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시간 입증은 노동자의 몫이라는 것도 산재 인정에서 방해로 작용하고 있다. 뇌심혈관계질환의 경우 산재 진행은 가족들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재해자는 병상에 있거나 사망한 상태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유족들은 허망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망자의 노고를 위해서도 산재 과정을 진행한다. 산재 인정에 필요한 자료 대부분은 회사가 보유하고 있고, 회사는 비협조적으로 나온다. 이는 가족들의 힘든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다뤘던 사례 중, 질환 발생일을 기준으로 4주간 50시간이 넘게 일한 재해자가 있었다. 하지만, 12주 기준 평균 52시간, 혹은 4주 평균 64시간을 채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국 과로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 달 동안 평균 50시간 일했다면, 주말을 제외한 평일의 경우 하루 10시간, 식사/휴게시간을 포함하면 하루에 최소한 12시간씩 회사에서 일하며 보냈다는 뜻이다. 출퇴근 시간까지 포함하면 균형 있는 삶이란 전혀 불가능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과로가 아니라고 한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과로일 수 있다고는 한다. 하지만 피곤할 수 있으나 보상기준에는 맞지 않다고 한다. 산재법상 정해진 과로의 기준은 보상을 위함에도 있을 것이나, 이 정도 수준의 노동이라면 과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기준일 것이다.
산재보상의 인정기준은 정책적, 의학적 논의를 거침과 동시에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있는 기준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1주 52시간 이상을 일하여야 과로할 수 있다는 기준은 사회통념에 부합하는 기준인지 다시 한번 논의해보아야 한다.

장시간 노동, 기업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2022년 기준 OECD 국가 중 노동시간 5위1 를 차지하며,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 5분의 1가량이 뇌심혈관계질환에 의해 발생한다. 물론 모든 뇌심혈관계질환이 업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업무와 뇌심혈관계질환 간의 상관관계를 결코 가벼이 여길 수는 없다.
노동자들을 무조건 긴 시간 일터에 잡아두는 것이 기업에도 이익만은 아니다. 많은 연구에서 주당 노동시간이 40시간이 넘어가면 노동생산성이 오히려 떨어진다. 노동시간이 40시간, 52시간, 그 이상이면 노동생산성은 점점 더 낮아진다. 단순한 절대 시간보다는 효율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 이외의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는 적절한 노동시간을 위해, 적절하게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과도한 노동을 제한하는 기업과 사회의 개편이 필요하다.

  1. https://data.oecd.org/emp/hours-worked.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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