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활동가 운동장] 좋은 노동시간으로 고민하는 노동자 건강권

일터기사

좋은 노동시간으로 고민하는 노동자 건강권

유지원(회원, 학생사회주의자연대)

근 몇 년간 심심찮게 언급되었듯 학생 운동에 위기가 도래했다. 기후, 여성, 성소수자 인권 등 의제로 분산된 운동은 하나의 세계관으로 단결하기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힘을 나누는 ‘품앗이’ 방식으로나마 명맥을 잇고 있다. 물론 흩어진 형태가 당장 단위별 생존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대학가에 진정 필요한 건 살아남기 급급한 운동이 아니라 변혁을 그릴 수 있는 운동이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지난 11월부터 12월, 학생사회주의자연대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노동자 건강권의 관점에서 좋은 노동시간 고민하기” 연속 세미나를 공동 주최했다. 해당 세미나는 학생 참여자에게 기후/여성/초단시간 주제 내부의 노동자 주체를 강조하고, 특히 아프면 쉴 권리를 통해 노동자 건강권에 접근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모든 시간은 노동자로 통한다
노동시간이란 주제에 익숙하지 못한 학생 참여자가 대부분인 만큼 첫 세미나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 개괄로 이루어졌다. 한노보연 이혜은 소장이 해태제과 8시간 노동제쟁취 투쟁이나 1987 노동자 대투쟁 같은 굵직한 계보를 설명하는 한편, 두원정공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사례를 통해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이후의 일과 삶 변화를 소개했다. 두원정공 노동자들의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만족도 모두 노동시간 단축 후 증가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두 번째 회차는 대두되는 기후위기 속 노동자 작업통제권과 노동시간을 주제 삼았다. 기후위기의 직접 원인 제공자인 자본을 은폐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그린워싱의 대안으로 노동자가 주체가 된 기후정의가 제안되었다. 고용승계가 보장되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에코주간’을 가장한 비용 감축 저지 역시 강조되었다. 역대급 폭염을 갱신했던 지난 8월, 매시간 15분의 휴게시간 보장을 위해 싸웠던 쿠팡지회의 투쟁, 기후실업급여를 최초로 요구한 라이더유니온의 사례 또한 중요하게 소개되었다. 심화하는 기후재난앞에 작업중지권은 말 그대로 노동자가 살아남을 권리였다. ‘더울 땐 좀 쉬자!’ 쿠팡지회 유인물에 적힌 외침이었다.
젠더 불평등 관점에서 노동시간에 접근한 3회차의 제목은 “계급, 젠더, 노동시간”이었다. 코로나 시기 이른바 ‘꿀 빠는’ 노동 방식으로 알려진 재택근무 구조에서 역시 여성노동자는 자유롭지 못했다. 노동환경과 주거환경이 같아지는 순간 여성노동자들은 일터에서 하던 노동과 삭제된 노동, 가사/돌봄노동이라는 이중 노동 구조에 속박되었기 때문이다. 루즈벨트 집권 당시 뉴딜정책이란 명목으로 여성 노동자에게 가사 노동자의 역할을 세뇌해 온 자본과 정부의 결탁방식을 되짚고, 자본주의가 꾸린 젠더 억압의 지형 자체를 뒤엎을 수 있는 노동운동의 방향을 나누기도 했다.
마지막 회차는 초단시간 노동과 노동시간 유연화를 핵심으로 진행되었다. 세미나 참여자들에게 사전 요청한 아르바이트 경험 설문은 예상보다 놀라웠고, 예상만큼 씁쓸했다. 설문 응답자의 절대다수가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였다. 다수가 예측할 수 없는 불규칙한 노동시간, 4대 보험 미보장 등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었다. 업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이들은 건강 악화를 느끼더라도 대타를 구하지 못해 억지로 출근하거나, 근무 조정을 요청했다는 이유만으로 폭언에 노출되어야 했다. 아프면 쉴 권리에 반하는 동시에 본인의 노동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상황이었다. 이날은 참여자들 스스로가 생생한 사례자가 되어 서로의 경험을 공유했다. 이후 신희주 한노보연 회원의 발제를 통해 유연근로제와 초단시간 노동, 포괄임금제로 노동법이 어떻게 자본의 언어를 수행하는지 함께 살폈다. 학생이자 불안정 노동자로서 근 미래적인 노동자 계급의 현실을 엿본 학생들은 이미 노학연대에 결합해야 할 까닭을 쥐고 있었다.

아프면 쉬자, 알았다면 연대하자
자본의 노동인구 재생산 기구로 전락한 요즈음의 대학, 그리고 그 대학의 구성원인 학생에게 있어 노학연대란 머나먼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렇지만 “노동자 건강권의 관점에서 좋은 노동시간 고민하기” 연속 세미나는 각 의제 내부에서 어째서 노동자 주체의 운동이 중요한지, 계급 투쟁만이 진정한 구조 변혁을 이끌 수 있는지를 학생 참여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였다. 지난 자리가 학습을 넘어, ‘아프면 쉴 권리’로의 걸음에 등을 떠미는 손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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