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 여성 노동 건강 ON]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가 출범했습니다!

일터기사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가 출범했습니다!

박슬기(회원,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이하 젠더센터)가 출범했다. 출범 소식을 반기며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하는 응원들이 가슴 벅차게 전해졌다. 그러나 ‘젠더’라는 명칭에서부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반응도 없지 않았다. 젠더라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뒤따르는 기묘한 불편감과 저항감은, 사실 그만큼 분명한 지향을 드러낸 본 젠더센터의 활동이 더욱 필필요한 시기란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젠더 관점으로 노동안전보건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노동’에 대한 기존의 인식은 소위 ‘표준 남성 노동자’에게 맞춰져 있으며, 이는 자본이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방식과도 다르지 않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표상은 여성, 장애인, 퀴어, 이주민을 비롯한 다양한 몸의 존재 및 차이를 묵살한다. 또한 ‘건강한 남성 노동자’라는 허상을 강요하며, 강도 높고 위험한 노동을 모두에게 감당케 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 아래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젠더 관점으로 노동자의 안전을 인식한다는 것은 고강도·고위험 노동에 노동자의 몸을 맞추도록 강요하는 자본의 방식에 대한 저항이며, 모두의 안전을 위해 노동자의 몸에 노동을 맞추어 가기 위한 시작이다. 또한 자본주의가 자행하는 착취와 수탈은 가부장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부장적 가족주의는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내세웠다. 노동시장은 전 생애주기에 걸쳐 성별 분업화되었으며, 여성의 노동 가치를 저평가하고 착취하며 저임금·고용불안을 강요해 ‘질 나쁜’ 일자리로 내몰고 있다. 돌봄노동을 비롯해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에 필수적인 노동들은 그 의미를 박탈당했다. 돌봄은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의해 가정 내에서 여성이 수행해야 하는 당연하고 무가치한 ‘공짜 노동’이 되었으며, 노동시장에서는 사회가 보장해야 할 책임은 지워진 채 시장 논리에 의해 저평가된 ‘값싼 노동’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소위 ‘제 3세계’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국제적인 수탈과 착취를 통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노동 현장에서의 성폭력 역시 젠더화된 위계질서에 기반하여 발생한다. 그렇기에 일터 내 성폭력은 결코 개인적인 일일 수 없으며, 일터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고 젠더 폭력을 방치한 자본과 사회의 책임을 짚어야만 한다. 성폭력을 개인화하려는 무던한 노력들은 자본이 자신의 책임을 벗어나고자 하는 안간힘이다. 사회적으로 큰 충격과 아픔을 주었던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일터 내 젠더폭력이 구조적 문제이며 예방에 대한 구조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안타깝게 드러냈다.

젠더 관점을 벼려 나가며, 다양한 현장에서 만나자
젠더센터는 이처럼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젠더 위계질서가 연계되어 작동하는 구조적인 억압과 차별 속에서, 성별 이분법을 떠나 모든 노동자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인식한다. 최근 젠더센터의 출범과 함께 발간된 책 <일하다 아픈 여자들 :왜 여성의 산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노동자의 안전이란 개인적 책임이 아니며 이를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결국 일터의 위험을 젠더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자본의 작동 방식에 저항하며 노동자의 몸에 노동을 맞추도록 요구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소수자로서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가진 노동자라고 외치는 것이다. 죽거나 다치지 않고 일하는 요행을 바라는 일터가 아닌, 모든 노동자가 삶을 위협받지 않고 건강한 삶과 노동의 긍지를 지킬 수 있기 위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젠더센터는 2020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총회에서 집중사업으로서의 여성노동자건강권을 선정, 의결한 후 만들어진 여성노동건강권팀의 활동에 기반하고 있다. 그동안 여성노동건강권 팀은 정기적인 월례토론회와 일터 기고, 현장 연구(2021년 <여성노동자 화장실 연구>, 2022년 <청년여성노동자 정신건강 연구> 등), 기획 사업(일터 화장실 사진전, 여성노동 독립영화 상영 등), 연대 사업(2024년 3.8여성노동자 파업조직위원회, 이주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 참여 등)과 최근 <일하다 아픈 여자들> 출간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 왔다. 지난 4년간의 여성노동건강권팀 활동을 바탕으로, 2024년 1월 정기총회에서 정식으로 젠더센터 출범을 선언했다.
앞으로도 젠더센터는 기존의 문제의식을 이어가며, ‘젠더와 노동자 건강권’을 주제로 영역별·지역별 간담회를 통해 연대의 장을 넓히고자 한다. 또한 월례토론회 및 <일하다 아픈 여자들>과 연계한 기획 사업, 이외에도 젠더 관점으로 노동과 건강권을 해석하고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구체적인 노력을 더 많고 다양한 동지들과 함께 지속할 것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출범 선언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노동자에게 높은 생산성·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 정상 가족이라는 표상에 맞추도록 강요합니다. 이러한 억압적/차별적 사회질서는 임금착취와 더불어 돌봄 가사와 같은 사회적 재생산영역에서의 수탈도 자행합니다.
센터는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손상이 자본주의 구조와 가부장적 권력 체계로 인해 발생한다는 인식을 공유합니다. 따라서 여성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험에 놓이게 만들며 동시에 권리를 취약하게 하는 구체적 노동과정과 사회질서에 주목합니다.
센터는 앞으로의 노동안전보건운동이 성별 이분법 남녀평등을 넘어 ‘모두’를 쥐어짜는 노동강도와 정상 규범으로부터 ‘모두’가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계와 젠더화된 위계질서 속에서 위험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노동자 분할이 전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지 원인을 밝히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의 과제를 제안하겠습니다.
이를 발판 삼아 일터와 사회를 바꿔나가는 역할을 여러분들과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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