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 지역 노동안전 네비게이션] 매일 매일 일터가 전쟁터인 그곳에 사람이 있다

일터기사

[지역 노동안전 네비게이션] 매일 매일 일터가 전쟁터인 그곳에 사람이 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부당전적/전환배치 조합원 마음건강 실태조사

장경희 (회원, 치유와연대의공동체 두리공감)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었다.’는 이 말에 분노가 일거나,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한다. 죽음의 일상성,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여기, 조금 부풀려 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만 죽는” 공장이 있다.
작년 8월 말, 휴직을 끝내고 현장 복귀를 일주일 앞둔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다. 불법파견 법원 판결과 지역사회의 압박, 비정규직지회의 투쟁으로 정규직화의 정당성이 확인되면서, 자본은 자회사라는 꼼수로 모든 책임에서 비껴가려 했다. 어용을 만들어 자회사에 찬동하고, 공포를 조장해 민주노조로부터의 이탈을 만들고,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자존을 흔들었다. 이에 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은 부당전적, 부당한 전환 배치로 돌아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도 회사로부터 강제 전적을 당한 당사자다.
상대적으로 편하거나 깨끗한 공정은 모두 자회사로 넘어갔다. 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도 모두 자회사가 차지했다. 강제 전적을 당한 노동자들은 더 힘들고, 더 위험하고, 더 불안정한 노동을 강요받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었던 현장은 정규직-자회사-비정규직으로 중층적인 위계와 서열을 만들며 더 차별적인 현장이 되었다. 그는 이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였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책임을 묻기 위한 실태조사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동료의 죽음 직후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구조적 폭력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2021년 8월 이후 강제 전적/전환 배치된 노동자들에 대한 정신건강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이 지회의 위탁을 받아 2023년 12월 745명의 전적/전환배치자를 대상으로 10일간 진행한 조사에 736명의 조합원이 응답(99%)했다. 조사 내용은 직장 내 괴롭힘을 포함한 인권 침해와 스트레스의 직무환경 요인, 전적이나 전환배치로 인한 심리적 영향, 사회심리스트레스와 우울·불안 등의 마음 건강 항목 등으로 구성했다.

높은 직무 스트레스 – 물리환경, 직무자율, 직무불안정, 조직체계
스트레스의 직무환경 요인을 살펴보기 위해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측정도구 단축형 26문항’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남성노동자 중앙값보다 높았던 항목은 물리적인 환경, 직무자율, 직무의 불안정, 조직체계 등이었다. 그 중 직무자율은 응답자들이 속한 모든 업체에서 높은 평균을 나타냈다.

▲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 전적/전환배치자 대상 실태조사 – 마음건강 각 항목의 고위험군 비율. ⓒ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

이와 관련해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최병률 노안 2부장(조사 당시)은 “비정규직은 원청사의 작업지시 등을 따라야 하고, 직영(정규직)의 지시 명령 체계에 복종해야 하는 구조”이고, “생산을 위해서는 기한이나 마감 시한 때문에 자율적으로 일할 수 없고 일방적인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직영과의 미팅 과정에서 안전상의 요구를 하면 직영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때로는 작업이 취소되어 불이익을 경험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일하는 동안 자율성이 떨어진다는 현상은 회사의 경영철학, 회사가 만든 시스템, 회사가 주요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만든 위계 등에 근본 원인이 있다.

강제 전적/전환배치는 강한 심리적 충격으로 이어져
어떠한 동의나 협의 절차도 없이 강행된 전적/전환배치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피기 위해, 외상 사건 이후 심리적 충격 정도를 측정하는 도구로 조사했다. 부당전적/전환배치 이후 당시의 상황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악몽을 꾸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증상, 무감각해지거나 회피하려는 감각/행동상의 변화 등을 통해 그 사건으로 인한 충격 정도를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응답자 736명 중 201명(27.6%)가 심한 충격 또는 극심한 충격 상태임이 확인됐다.
심리적 외상 사건에는 자연·사회 재난, 폭력, 학대, 사고로 인한 사망이나 부상 등이 있으며, 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은 강한 스트레스 반응을 나타내곤 한다. 일상적 차별의 현장에서 느닷없이 하던 일을 빼앗기고, 원치 않는 일을 강제로 해야 하는 것 역시 구조적 폭력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심리적, 행동적 변화를 불러오는 강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며, 홀로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정신건강 위험 수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개입의 필요성
마음건강 각 항목의 고위험군 비율은, 사회심리 스트레스 226명(30.7%), 우울 243명(33%), 불안 311명(42.3%)에 이르고 있다. 2011년부터 두리공감이 조사해 온 장기투쟁 사업장, 폭력적인 탄압을 경험한 사업장, 비정규직 해고자 등에서의 고위험군과 거의 비슷하거나 상회한다. 특히 불안 고위험군 비율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만으로 마음건강을 악화시킨 근본 원인을 밝히기는 어렵다. 하지만, 마음건강 각 지표들이 부당전적/전환배치로 인한 충격정도, 스트레스의 직무환경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괴롭힘-인권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있어 현재 조합원들이 처한 상황과 조건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매일 매일 전쟁터인 그곳엔, 사람이 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불법파견에 저항하며 투쟁해 왔고, 편한 길처럼 보이는 자회사 논리의 본질에 대항해 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각종 사고에 대응하며, 중층적인 위계의 질서가 만든 불의에 저항한다. 조합원들이 경험하는 고통의 본질은 이 사회의 본질과 다르지 않고, 자본의 비타협성이 만든 전쟁터라는 본질과 다르지 않다. 아주 간단히 말해 “비정규직만 죽는” 현상이자 본질에 대해 나와 우리의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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