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 이런 교육을 받고 늘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 사람들이 직장에 들어간다고 위험하다고 느낄 때 업무를 중단하고 대피할 수 있는 당당한 노동자가 될 리가 없다. 학생들이 느낀 위험에 대해 충분히 다루고, 위험하다고 느꼈을 때 피할 수 있는 권리를 지지해주는 것은, 교사가 폭력 상황에서 업무를 중단하고 회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과 교사의 권리는 함께 키워나갈 수 있다.
[라포르시안]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사망으로 국내 산업현장의 부실한 안전관리 실태가 또다시 드러난 가운데 노동안전보건 전문가와 관련 단체들이 관련 제도의 개선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건강한노동세상·노동건강연대 마산창원산재추방운동연합·반올림 원진산업재해자협회·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일과건강·일터건강을지키는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충남서북부노동건강인권센터새움터·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의 단체는 21일 공동성명을 내고 위험의 외주화 금지 및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즉각 통과를 촉구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별 다른 기술이나 설비 없이 노동력을 제공할 인간만을 보유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상대로 필요한 머릿수만 채워주고 이윤을 얻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허용되고 있다. 파견·용역·하청·도급·자회사 등 부르는 이름은 모두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것들에 소속된 전체 노동자의 숫자는 수백만을 헤아릴 만큼 어마어마하다.
고용의 외주화를 통해 거래되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받아야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별 다른 이유도 없이 중개인에게 갈취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호한 관리와 책임구조 속에서 안전과 생명마저 보호받지 못 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수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잃거나 평생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음에도 외주화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태안화력 24살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 님의 죽음도 그 일부다. 이미 보령화력발전소에서 판박이처럼 닮은 사망사고가 있었음에도, 아무런 작업환경 개선조치 없이 방치하다 또 사고가 일어나 죽음을 당했다. 업체는 사고 직후에도 희생자 구조보다 현장정리를 우선했고, 방치되었던 시체가 치워지자마자 설비를 다시 가동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현대의 우리는 노예제도가 반인륜적인 제도라고 이해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고용외주화는 이보다 더 잔인한 제도다. 적어도 과거 노예주인들은 노동력이 필요하면 노예를 직접 사들였다. 바로 그 때문에 재산 손실을 피하려는 동기에 불과하더라도, 노예의 안전과 건강만큼은 소유자가 책임져야할 몫이었다. 현대의 노동력은 노동자의 몸이 아니라 시간을 단위로 거래된다. 이제는 노동자가 죽거나 다쳐도 사용자는 자기 과실이 아님만 증명할 수 있으면 아무런 손실이 없다. 생산이 중단된 시간의 공백은 다른 노동자를 투입하여 채우면 그만이다. 그러니 사용자들은 쉽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도록 고용만 대신해줄 대리자를 찾게 되고, 이것이 고용외주화의 대 흥행을 불러왔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이런 반인륜적 제도를 도입하고 허용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이들 또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다른 ‘책임자’를 찾으며 사건의 본질을 회피하기 바쁘다. 책임자는 아무도 없고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1년을 다 채우지도 못한 2018년 올해에 경기도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가 확인된 것만 65명에 달한다. 이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삼성 물류센터 공사장에서 추락해 숨진 23살 김씨, 이마트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수리하다 숨진 21살 이씨, 삼성전자 공장에서 이산화탄소 유출로 숨진 또 다른 24살 이씨 등, 태안화력 김용균님과 닮은 죽음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고용을 외주화 한다는 건, 사람의 생명을 도박판에 올려놓고 주사위를 굴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전에 대한 책임 없이 일을 시켜서 이윤만 챙기는 행위는 오늘 당장이라도 중단되어야 한다. 유명을 달리하신 김용균님에 대한 추모가 슬픔에서 머물지 않고 당장 나의 가족과 우리 이웃이 당할 수 있는 비극을 멈추기 위해 죽음의 외주화,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결정적이고 최후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겉으로는 별개의 사건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현상이다. 포스코에서 유독 산재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보복성 해고를 당하는 것도 모두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고 노동자를 관리의 대상으로만 볼 뿐인 포스코의 낡은 기업문화가 만든 결과다.
포스코는 2018년 유독가스 유출로 4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면서 한 해를 시작했다. 올해만도 모두 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우리가 포스코를 죽음의 공장이라 부르는 이유다. 안전사고에 대처하는 포스코의 자세는 왜 이런 사고가 끊이지 않는지 알려준다. 포스코는 ‘하청노동자는 우리 직원이 아니니 책임 없음’이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 ‘재해속보’뿐이고, 사고는 결국‘노동자의 부주의 탓’이라며 직원들을 몰아세우는 현장교육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지난 한 달 사이 포항과 광양에서 다섯 건의 노동재해가 또 발생했다. 포스코가 작업표준서와 작업사양서를 지키지 않고 ‘사고가 날 것 같다’는 현장의 문제 제기를 수차례 무시한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는 오른쪽 팔을 잃었고, 정규직 노동자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세계 일류의 철강기업이라 자임하는 포스코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이유는 분명하다. 노동자와 인간의 생명을 귀중하고 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부품처럼,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여기는 포스코의 낡은 사고방식이 연이은 산재사고를 만드는 이유고 원인이다.
노동자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기업은 노동자의 권리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포스코는 명령에 복종하고 부품처럼 일해야 하는 노동자가 감히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무노조경영’의 족쇄를 끊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조의 깃발을 들었을 때, 포스코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주노조를 탄압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정규직 노동자의 금속노조 가입이 현실로 나타나자 포스코는 제 버릇 버리지 못하고 추석 명절에 인재창조원에 몰래 모여 금속노조 와해를 모의했다. 그 음모의 현장과 전모가 언론에 고스란히 드러났고, 시민사회의 분노를 불러왔지만, 포스코는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히 노동자가 회사의 비행을 폭로했다며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징계에 넘겼다. 그리고 3명의 동지를 해고하고 2명의 동지를 정직시켰다. 포스코는 올해 들어서만 원청, 하청 모두 합쳐 4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그것도 당일 통보하고 당일 공장 밖으로 내쫓는 비열한 행동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우리는 포스코의 노조탄압 부당노동행위 만행을 검찰에 고소한 데 이어 오늘 추가로 법원에 포스코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신청을 금속노조의 이름으로 접수한다. 금속노조는 지금껏 사용자의 적대적이고 비상식적인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파괴 행위를 단 한 번도 지나치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사용자의 도발에 대해 그 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물었다. 포스코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해고는 살인이다. 이것은 구호가 아니다. 현실이다. 노동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살인이고, 노동자의 존엄을 부정하는 것도 살인이다. 지금 포스코는 스스로를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만들고 있다. 기업이 고용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애쓰지 않는 것은 범죄다. 기업이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또 이를 은폐하기 위해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도 범죄다. 거울 앞에 선 포스코의 눈에 보이는 것은 세계 일류의 대기업인가 사악함과 부도덕함으로 뭉쳐진 추악한 범죄집단인가. 스스로 확인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