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이야기] 산재 1건 처리하는데 평균 4개월, 이게 최선인가

기고

[건강한 노동이야기] 산재 1건 처리하는데 평균 4개월, 이게 최선인가

처리 지연 비롯해 각종 문제 안고 있는 산재 보험, 근본적 개혁이 시급하다

최진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

발행2021-05-13 19:09:01



출처: 호나라

아침부터 울리는 벨소리. 십중팔구 산재 상담이다. 다른 업무와 달리 산재 상담은 우리 센터가 계획할 수도 양을 조절할 수도 없다. 정해진 사업 일정이 있는데, 상담 건수가 늘어나면 적잖이 부담이 된다. 원만하고 빠르게 처리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잘 없다. 재해자는 늘 괴롭고, 우리는 늘 피곤하며,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늘 곤란하다. 오늘도 우리 사무국장님은 공단 지사와 기나긴 통화를 하고, 나는 생각에 잠긴다.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이 보험 시스템은 도대체 왜 이럴까?’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 판정 및 처리 지연 문제를 해결하라는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작년에 시작된 이 투쟁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금속노조의 요구에 대해 강순희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공단은 노력했고 성과를 냈다’는 입장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산재 판정 지연 문제의 핵심인 근골격계 질환 평균 판정 기간이 4개월인 암담한 현실에 대해, 최고책임자의 답변이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아니라 ‘3개월로 줄여보겠다’는 것이라니.

https://www.vop.co.kr/A00001569550.html

 

 

25기고

[건강한 노동이야기] 코로나19 감염 후 우울증 앓는 노동자들

기고

[건강한 노동이야기] 코로나19 감염 후 우울증 앓는 노동자들

집단 감염 겪은 콜센터 노동자들, 회복 이후에도 고통 받았다

김형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직업환경의학전문의

발행2021-04-29 17:12:57 



코로나19의 위협, 어느 정도인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도 무증상인 비율이 85%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50대 미만 사망자는 24명으로, 확진자 중 사망자 비율을 나타내는 치명률이 0.1%를 밑돈다. 2020년 전세계 사망률 통계를 보면 국내 사망률은 연령 보정 사망률이 2.9% 감소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감염률로 실제 사망이 많이 늘어나지 않았고, 이동량의 감소와 같은 다른 요인의 작용으로 실제 사망률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백신의 수급, 변이 바이러스 추이, 다른 나라의 상황 등 아직 넘어야 할 고비는 많지만, 국민들의 많은 희생으로 한국은 최악의 상황은 피해 가고 있는 것 같다.

https://www.vop.co.kr/A00001566847.html

 

 

27기고

[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변화는 현재진행 중/2021.5

일터기사

[일터5월호_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변화는 현재진행 중

 

지난 2021324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사업주 조치의무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정부에서는 개정법을 지난 413일에 공포하였고, 올해 1014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이 개정된 이유는 20197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회사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사 및 후속조치가 지나치게 회사 자율에 맡겨져 있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기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개정법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2019716일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는 날이었다. 그 전부터 직장갑질119 스탭으로 참여하여 채팅 및 이메일상담으로 노동자들의 괴롭힘 피해이야기를 들으며 하루 빨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상당히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이 법은 시민들에게도 관심사여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일인 2019716일 포털사이트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리기도 했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내용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먼저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사용자 및 근로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금지하였다.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사용자에게 그 사실을 신고할 수 있으며,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괴롭힘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조사의무를 부담한다. 사용자는 조사과정에서 피해노동자가 요청하는 경우 적절한 보호조치를 하여야 한다. 또한, 사용자는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피해노동자의 의견을 들어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하며, 신고자나 피해노동자에게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한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안 된다. 나아가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대해 미리 취업규칙에 정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였다.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문제점

그러나 기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시행 시부터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 첫 번째 문제점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 범위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가 규정된 근로기준법에서는 상시근로자수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전체 사업체 중 5인 미만 사업체의 비중이 61.6%인 점을 감안하면, 이미 절반 이상의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또한, ·하청간 관계에서, 원청노동자가 하청소속 노동자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괴롭힘이 발생해도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괴롭힘 행위 또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아니게 된다.

두 번째 문제점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사 및 조치 등의 권한이 회사에게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회사는 괴롭힘 사실을 조사하고 괴롭힘 사실 확인 시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하지만, 이를 소홀히 할 경우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관련 조치를 취하는 데에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한 회사이미지로 낙인찍히기 싫어서 피해노동자에게 행위자와 적극적인 화해를 종용하기도 한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별도의 처벌규정도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회사의 태도는 피해노동자에 대한 2·3차 가해로 나아가기도 한다.

세 번째 문제점은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일 경우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사의무 및 행위자 처벌 등의 권한의 주체가 사용자로 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인 경우, 조사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행위자 징계에 있어서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소규모 사업장이거나 친인척을 고용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괴롭힘의 경우 관련한 문제점이 더 크게 부각되었다.

 

위와 같은 문제점으로 인해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을 하면서도 가장 많이 했던 답변이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1차적으로 조치 의무를 하여야 하는 곳이 회사이기 때문에 먼저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셔야 합니다. 바로 노동청에 신고하셔도 회사에 권고 정도만 있을 것입니다.’였다. 그러나 답변을 하면서도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괴롭힘에 대해 제대로 조사할리 없고 결국 노동청을 찾아가게 될 것인데, 노동청에서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받아볼 수 없다는 것을.

개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내용

현행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문제에 대한 사용자의 조치의무의 실효성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였다. 현장에서의 노력 덕분에 개정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이 지난 324일 국회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지난 413일 개정 법률을 공포하였고, 올해 1014일부터는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이 시행된다. 개정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사과정에서 사용자의 객관적 조사의무 명문화: 기존에는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신고를 접수하거나 인지하는 경우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여야 하였으나, 개정법에서는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그 사실 확인을 위하여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하여야한다고 개정되었다.(근로기준법 제76조 제2)

사용자 및 사용자 친족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인 경우 과태료 부과: 기존에는 사업주 등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라 하더라도 별다른 처벌조항이 없었으나, 개정법에 따르면 사용자 및 사용자의 친족 등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인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었다.(근로기준법 제116조 제1항 신설)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관련자의 비밀 유지 의무 명문화: 기존에도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 관여한 사람들의 비밀유지 의무가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았으나, 피해자 등에 대한 N차 가해 및 개인정보보호를 위하여 당연히 조사 관련자들의 비밀유지 의무가 있었다. 개정법에서는 이러한 비밀유지 의무를 명문화하여, 조사 관련자들에게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누설할 수 없음을 규정하였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3 7항 신설)

객관적 직장 내 괴롭힘 조사 의무,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징계 조치, 비밀 유지 의무 위반 시 과태료 부과: 개정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객관적으로 실시하지 않거나, 피해노동자에 대한 적절한 보호조치 및 행위자에 대한 적절한 징계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었다.(근로기준법 제116조 제2)

개정법 시행 이전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1014일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개정법이 시행되나, 실무상 혼란이 있을 수 있는 점은 1014일 이전에 행해진 직장 내 괴롭힘을 1014일 이후 신고하는 경우 개정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이다. 그러나 2019년 처음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시행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개정법의 부칙에서는 이 법 시행 후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직접적인 개정법의 적용은 1014일 이후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보인다. 다만, 1014일 전에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1014일 이후에까지 지속하여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면 개정법에 따라 사용자는 객관적인 괴롭힘 조사 의무 및 비밀유지의무를 져야할 것이다.

사용자의 직장 내 괴롭힘 조치의무의 실효성이 확대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개정 조항이 시행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한계점이 있다. 현행법의 문제점으로 가장 먼저 지적된 5인 미만 사업장 및 원·하청 관계 및 특고노동자에게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이다. 개정법에서도 소규모 사업장 및 하청 노동자, 특고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의 적용에서 여전히 제외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지난 331일 성명에서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항에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가해자·피해자 간 접촉이 빈번해 괴롭힘 문제가 더욱 심각한 소규모 사업장은 이번 법 개정에서도 적용범위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법에 있으니까 지키지를 넘어서야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내용이 법에 명문화되고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울타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은 법에 규정되는 것을 넘어 조직문화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조직 내 구성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알고 왜 하면 안 되는 것인지, 본인의 행동 중 반성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조직체계 중 직장 내 괴롭힘을 유발하는 지점을 발견하고 어떤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할지 등이 조직차원에서 공유되어야 하고 학습되어야 한다. 단순히 법에 있으니까라는 생각에서 행복한 조직문화 만들기의 차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고민하였으면 좋겠다.

(박경환 회원, 노무사)

 

 

43일터기사

[노안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의 일터는 우리가 통제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창지회 이정기 노안부장 인터뷰/2021.5

일터기사

[일터 5월호_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우리의 일터는 우리가 통제한다_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창지회 이정기 노안부장 인터뷰

 

산재로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동료에 대해 말하며 눈물을 흘렸던 이정기 노안부장. 그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아, 언젠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하 명산감)이자 노안부장인 그의 노안활동에 대해 듣다 보면, 활활 타는 용광로가 떠오른다. 그렇게 고통스러우며 슬프고, 분개하면서도 어떻게 현장의 문제로부터 고개 돌리지 않고 도리어 기꺼이 그 자리에 두 발을 박을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작업중지, 이후의 현장이 가능하게 하는 권리

대창 지회는 20164, 260여 명의 조합원을 모아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지회 설립 당시 회사에는 이미 다른 노조가 있었으나, 노조활동은 전무한 페이퍼노조였다. 사측은 조합원들을 회유하기 위해 큰돈을 내걸고 조합 탈퇴를 요구하기도 했으나, 결국 투쟁 끝에 대창지회는 이름만 남은 기존의 노조를 없애고 대표 지회로 서게 됐다. 이정기 노안부장은 2008년부터 명산감을 했지만, 본격적으로 노안활동을 하게 된 건 지회 설립 이후부터다.

“2008년 처음 명산감이 됐을 때는 이름만 있지, 힘도 못 쓰고 회의 때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가 끝났다 하면 나가고 그랬죠. 회사에서 한 번씩 교육가라 하면 이유도 모르고 갔고요. 하지만 노조가 생긴 이후부터는 우리가 직접 노안활동을 주도하고 있어요. 제 생각엔 노안활동 덕에 노조 내부 결속력이 높아진 것 같아요. 처음 노조를 설립한 후에 불만스럽다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우리는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다치지 않는 현장을 만들어보려고 새 노조를 설립한 건데, 몇몇은 노조 생기면 임금협상에도 유리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었나 봐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기대와 다르니까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고, 몇몇은 조합을 탈퇴하기도 했어요. 또 우리가 투쟁하면서 다른 곳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우리도 다른 사업장 투쟁을 돕거나 모금을 하자고 하면 조합에 짜증 내는 이들도 있었고요. 그래서 상집간부, 확대간부가 책임지고 이들을 설득하자고 했죠. 그런데 그런 불만들이 본격적으로 없어지기 시작한 건 아픈 조합원들의 산재 승인이 많이 나고, 노안 활동 덕분에 현장의 환경도 많이 개선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현재 대창에서는 작업 중 위험할 시, 작업자가 작업중지를 내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있는 편에 속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언젠가 용해부서에서 용해로에 작업자 발이 빠지고, 유압유에 맞아 골반이 골절된 사고가 하루 사이에 연달아 일어난 적이 있었다. 연차를 내고, 시골에 내려가 있던 이정기 노안부장이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복귀해 보니, 현장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똑같이 가동되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용해로 작업을 중지하라고 한 뒤, 노동부 상황신고센터에 연락해 노동부에서 유선으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도록 했다. 그날 바로 노동부, 안전보건공단 등에서 들어와 설비 및 현장을 조사했고, 현장 개선 완료 전까지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것이 대창에서의 첫 번째 작업중지다. 생산공정 특성상 용해로를 멈추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수억이 깨지고, 전체 공정을 중단해야 한다. 작업중지 당일, 회사는 이정기 노안부장을 잡으러 다녔고 그는 회사 밖으로 도망가야 했다. 이후 회사는 그를 호출해 회사와 상의없이 작업중지를 걸었다며 이를 문제 삼았으나, 그는 그것이 자신의 업무이며 동지들이 다치는 것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 첫 번째 작업중지가, 그간의 노안활동 중에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다.

“예전에는 진짜 회사가 ‘일해’ 하면 위험해도 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조합원들이 자신 있게 ‘못하겠습니다. 왜 우리가 위험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업계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황산을 쓰는 공정이 있어요. 근데 고농도 황산은 시간이 지나면 안에서 결빙체가 생겨서 굳어요. 처음엔 밑바닥에 황물만 있다가 이후 덩어리가 생겨서 작업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그러면 이 황산 덩어리를 사람이 들어가서 깨야 해요. 제가 직접 해보니 멀쩡한 쇠삽이 다 삭고 녹아서 없어져요. 근데 그걸 또 시키더라고요. 작업방식을 개선하든지 외부업체에 맡기든지 하라고, 우리는 못 하겠다고 했어요. 회사에서 억지로 시키면 내가 욕먹더라도 고발하고, 책임도 질 테니까 다른 작업자들한테도 다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후로도 문제가 생기면 절대로 혼자 작업 못 하게 하고, 조치하려고 나서지도 말고 관련 전문가 불러서 도움받으라고 해요.”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너무 위험한 현장의 곳곳들

이정기 노안부장은 가능하다면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현장이 여전히 너무 위험하다고 말한다. 조합 차원에서 제대로 산재 신청을 진행하게 된 2017년 이래, 사고성과 근골을 포함해 발생한 484건의 산재가 그의 말을 증명한다. 그래도 각고의 투쟁 끝에 많이 개선돼왔다. 앞서 언급한 황산을 다루는 작업도 여전히 위험하지만, 어느 정도는 개선된 상태라고 한다. 이외에도 현장 곳곳의 위험이 조금씩 사라졌다. 미끄럼 사고가 빈번했던 용해로 근처 쇳물이 흘러가는 탕로에서는 이제 쇳물을 부을 때 사이렌이 울리고, 레이저 안전선을 쏴 작업자의 접근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예전에는 좁은 계단에 올라서서 400kg짜리 코일을 잡아당겨 이동시키다가 추락사고도 자주 발생하곤 했는데, 그 계단도 전면 교체됐다고 한다.

또한 무거운 코일을 다루다 보니 근골질환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를 반영해 작업 공정의 변경도 요구했다. 회사에서는 현재 개선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변화 뒤에는 작업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서 생산량을 위해 무리한 작업을 시키는 회사를 질타하고, 제대로 된 개선안을 가져올 때까지 절대 물러나지 않는 이정기 노안부장과 노조가 있었다. 올해 초에만 해도 안전 순찰을 없애버리려는 회사의 시도가 있었는데, 그 역시 노조의 힘으로 무력화시켰다.

“사고성 재해는 회사가 전면적으로 다 처리하거든요. 근데 근골격계 질환은 못 해주겠다는 식이에요. 한 마디로 인정을 못 하겠으니 근골격계 질환은 노동조합이 입증하라는 거죠. 여기까진 좋다고 쳐요. 근데 산재 신청하면 반대의견서 내면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요. 지금 설비를 개선 중이다, 근골격계 질환이 며칠 만에 발생하는 병이 아니다, 다른 동료들은 다 괜찮다면서요. 그럼 저는 개선 전에는 설비가 엉망이었고, 시간당 생산성도 따져서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싸워요. 이렇게 자신 있게 싸울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죠.

활동하다 보면 산재 승인이 어려울 거 같은데 그래도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요. 한 번은 정말 어렵겠다 싶은 일을 만났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다른 지회의 경험들도 비교하기도 하고, 진짜 혼자서 며칠 내내 씨름했어요. 결국 준비할 수 있는 근거 자료는 다 마련하고, 근로복지공단에 가서 열심히 괴롭히는 방법밖에는 없더라고요. 근로복지공단 직원들한테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했죠. 당신네 동생이나 친척들이 회사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고, 근골격계 질환으로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써줄 거냐고, 이 사람은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요. 회사가 설비 개선만 해도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왜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회사의 의견만 중요시하냐고 그랬어요. 그리고 승인을 받았는데, 이때 성취감을 느꼈죠.”

이렇게 위험한 노동조건에서 고되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보니 산재 신청 건수가 많지만, 그 모두를 이정기 노안부장과 노조의 다른 부장 한 둘이서 소화해내고 있다. 일을 마친 뒤의 새벽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내내 시간을 쏟아야 한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개인 휴가를 써가며 활동하기도 한다. 이처럼 쉽지 않은 노안활동이지만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다른 데 있다. 대창에는 노안활동의 중요성을 조합원들이 인정하고, 활동하는 이들을 깊게 신뢰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그런데도 새로 노안활동을 시작해보려는 조합원들은 없다.

“조합원들은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다 봤어요. 그래서 노안활동을 안 하려고 하는 게 있죠. 회사가 너무 막강하게 나오니까 거기에 부딪힐 자신이 없는 거예요. 지회 차원에서 활동가를 양성하려고 하는데도 안 와요. 안 오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고요. 그런 부분이 안타깝죠.”

노동자가 무너지지 않는 현장을 위해서

여전히 현장 곳곳에 CCTV가 있고, 인당 생산성을 평가하며 인사고과나 재계약 시 산재 신청 여부를 반영하는 환경에서 노안활동을 하며 이정기 노안부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무엇일까. 그는 노조에서 힘을 갖고 현장 통제의 주체를 노동자로 세우는 것이라 말한다. 이정기 노안부장을 비롯한 노조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현장을 통제하려는 회사에 맞서고 있다. 최근 회사는 지게차 작업자들의 보호구 착용 여부를 단속해 지키지 않을 경우, 징계를 내리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는 보호구를 착용하는 건 회사가 주체가 돼 감시와 처벌 방식으로 강제하는 게 아니라, 노조에서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행동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반대했다. 징계를 내리더라도 그건 조합의 몫이지, 회사의 것은 아니다. 회사의 몫은 노동자들이 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지 확인하고, 문제없이 쓸 수 있는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노조가 지게차 작업자들의 경우, 헤드켓이 낮아 보호구를 쓸 수 없었던 상황을 지적하고 헤드켓의 높이를 올려달라고 요구해 전면 교체를 이뤄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창지회 이정기 노안부장

“금속노조에서 주최한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본 문구가 하나 있어요. 현장이 무너지면 우리가 죽는다. 저는 그 문장이 가슴에 진짜로 와닿았어요. 현장은 우리가 땀 흘려서 일하는 터잖아요. 회사가 설비와 환경을 개선할 책임을 안 져서 매일 사고가 나는데, 그때마다 사고 원인으로 우리 조합원들을 문제 삼거든요. 저는 그걸 용납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의 롤모델이 되는 사업장은 자동차 부품사인 SJM이라고 한다. SJM은 용역 깡패들의 폭력을 겪을 정도로 초반에 극심한 노조 탄압을 겪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조합의 힘을 꾸준히 키워왔다.

“이전에 SJM 현장을 한 번 둘러봤어요. 현장의 모든 게 체계적이에요. 그걸 보면서 와 조합 힘이 이 정도는 돼야 하구나 싶었죠. 거기에는 노안부장으로 오래 활동한 사람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곤 해요. 노조에 대한 신뢰도도 높죠. 조합원들이 조합을 믿고 따라가요. 그렇게 믿은 만큼 산재와 현장 개선, 회사와의 대립 등 모든 부분에서 월등하고 실패가 없다 보니 후회도 없는 거죠. SJM은 노조의 힘이 세니까 지금의 저처럼 고군분투 안 해도 돼요. 이외에 자체적으로도 노안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조합이기도 하고요. SJM은 우리의 롤모델이에요. 거기를 뛰어넘는 게 우리 목표인데, 아직 갈 길이 멀죠.”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 힘들어도, 아프고 힘들어하는 동지들을 보며 자신의 힘듦은 잊은 채 다시 한번 힘내본다는 이정기 노안부장. 진급보다는 대창의 모든 현장 동지가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그는, 바위처럼 버티고 싸워 현장의 여러 안전보건활동의 체계를 닦아왔다. 그 과정이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 이정기 노안부장처럼 많은 것을 걸고 싸울 수 있을 만큼 아주 강인하지는 못한 이들이라고 할지라도, 체계적이고 충분히 강한 노조의 힘을 바탕으로 부담감이나 불안감 없이 현장을 안전하고 더 편하게 바꿔나갈 수 있을 날이 오지 않을까. 반드시 그러하리라 믿는다.

(김다연 상임활동가)

53일터기사

[다양한 노동 이야기]고령화 사회 ‘커뮤니티 케어’의 중심, 방문진료를 말하다_건강의집 의원 홍종원 원장 인터뷰/2021.5

일터기사

[일터5월호_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고령화 사회 커뮤니티 케어의 중심, 방문진료를 말하다_건강의집 의원 홍종원 원장 인터뷰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만성질환이 유행하고,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건강관리의 패러다임이 의료기관 중심에서 커뮤니티 케어로 변화하고 있다. 아직 생소한 용어인 커뮤니티 케어. 그건 장애인, 고령자 또는 환자가 병원이나 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최대한 자신이 살던 집과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여건을 조성하는 걸 가리킨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더 일찍 경험한 일본에서는 커뮤니티 케어와 방문진료가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나, 방문진료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다.

이번 5월호 <다양한 노동 이야기> 코너에서는 방문진료를 주로 하는 건강의집 의원의 홍종원 원장을 만났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건강의 집에서 커뮤니티 케어를 구축하는 데 방문진료가 갖는 의미와 방문진료를 활성화하기 위한 고민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았다.

건강의집을 소개합니다

우선, 방문진료를 주로 하는 병원이 흔치 않은 만큼, ‘건강의집 의원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렸다. 방문진료는 어떤 것인지도, 현재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했다.

건강의 집은 강북구 번동에 있습니다. 심각한 장애 판정을 받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방문진료를 하기 위해, 20193월에 의사 2명과 간호사 1명으로 개원하였습니다. 현재 직원은 의사 2, 간호사 2, 행정직 1명으로 총 5명입니다. 우리 의원은 방문진료, 요양원 촉탁의, 가정간호 등의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가정간호는 간호사가 가정에 방문하여 수액처치나 비위관삽입, 소변줄 삽입 등의 처치를 해드리는 겁니다.

외래 진료는 제한적으로 하고 있고요. 방문진료를 주로 합니다. 저는 방문진료로 한 달에 50~60명가량의 환자를 만납니다. 함께 일하는 김창오 선생님은 100명 정도 방문진료를 합니다. 저희는 강북구만이 아니라 인근 노원구, 성북구까지 나갑니다. 중증장애인, 누워만 있어야 하는 와상환자, 요양원의 고령환자 등을 주로 만납니다. 환자분 중에는 생활이 어려운 의료급여 환자분들이 꽤 있습니다.

개원 후 방문을 요청하는 환자가 바로 생기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개원하고 장애인복지관 등을 일일이 찾아가서 저희를 알리고 인사드렸습니다. 개원 초창기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의사 2, 간호사 1명이 다 같이 가가호호 방문을 하면서 배워나갔습니다. 하지만 점점 경험도 쌓이고 환자 요청이 늘면서 요즘은 의사, 간호사가 각자 혼자서 가정방문을 합니다. 웬만해서는 주말에는 일을 안 하려고 하는데요.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방문하기도 합니다.

왕진에서 방문진료로의 변화

예전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집에 의사가 방문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낯선 장면이다. 이처럼 왕진은 지금처럼 의료기관이 많지 않았던 60~70년대는 보편적인 의료행위였다. 하지만 응급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이 급증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더욱이 의료수가가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의사들은 왕진보다는 진료실에 찾아오는 환자를 진료하길 선호했다. 그러면서 왕진은 그 명맥이 끊겼다. 그러나 최근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 대한 요구 증대로, 가구에 방문해 의료를 제공하는 것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왕년의 왕진이 오늘날 방문진료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다.

다른 의원은 환자가 직접 찾아오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희는 일일이 예약하고 시간약속 정한 다음 정해진 시간에 방문을 합니다. 일을 해보니 방문진료나 가정간호의 수요가 예상외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응급실 가기는 애매한데 의료가 필요할 것 같은 상황이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저희를 찾습니다.

그런데 의료라는 게 행위와 처지를 하면 수익이 나는 구조잖아요. 그리고 그 처치가 필요한지 결정하는 건 의료인이고요. 실제로 일부에서는 수익을 더 내기 위해, 요양원 방문간호로 수액 등의 과잉처치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개원해서 이루려는 목적이 경제적인 수입은 아니었습니다. 늘 초심을 잃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보건복지부는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서 치료받기 힘든 고령 및 중증환자들의 의료접근성을 개선하는 목적으로 2019년 방문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하였다. 이에 따라 왕진과 달리, 방문진료의 수가가 정해지고 진료내용과 제공방식이 제도화되었다. 그로써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집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구체적으로 마비(하지ㆍ사지마비ㆍ편마비 등), 수술 직후, 말기 암환자, 의료기기 등 부착(산소, 인공호흡기 등), 욕창, 정신과 질환, 인지장애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방문진료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선 의원에서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아무래도 방문진료하는 것이 의료기관의 수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희의 노동에는 방문일정을 예약하는 것, 가가호호 방문해서 환자 보호자 만나는 일 그리고 방문후에도 보호자와 전화상담하는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보니 시간이 많이 들고 소진되기 쉽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상담전화나 방문요청이 와도 기꺼이 응할 수 있고 환자에게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진되지 않고 여유를 가지도록 노동강도를 조절하려고 합니다. 다른 직원분들한테도 무리할 정도로 방문을 하지는 마시라고 합니다. 저희를 찾은 분이 많아지면 직원을 더 고용하는 방법 또한 있겠으나 그러면 결국 관리의 업무가 더 추가되어 제가 신경 쓸 게 많아집니다. 현재는 양적인 성장보다는 저희업무의 질을 높이는 일에 집중하려 합니다.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는 이의 마음

홍종원 원장에게 일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꼈는지 물었다. 아픈 사람을 아픈 이의 공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때론 일상을 묻는 가벼운 자리, 때론 마지막을 앞둔 이를 돌보는 자리도 있었다.

말기암 환자가 있었습니다. 치료가 더이상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온 상황에서 건강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다시 가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이때 마침 찾아가서 깊게 상당을 하고 나니 상담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며 고마워하셨어요.

그리고 한 번은 일요일에 방문요청 전화가 왔어요. 가급적 일요일은 방문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방문을 했습니다. 환자 집에 방문하니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있었어요. 가족분들이 입원이 원치는 않아서 지속적인 방문진료를 통해 집에서 가족들 품에서 임종을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몇 번 있었는데요, 요즘 코로나로 병원에서 여러 가족이 모여 임종을 지켜보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보호자와 환자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습니다. 저의 할아버지는 중환자실 침대에서 돌아가셨는데 바람직한 임종이라고 생각이 들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정임종에 대한 요청이 있으면 가능한 방문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늘 생명에 대해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합니다. 개원한 지 2년이 지난 지금은 지역 주민들이 고마워한다는 데 대해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환자와 보호자의 말을 많이 듣고 신뢰관계를 쌓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 말을 충분히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CT나 초음파로 검사하고 진단을 내리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다른 환경이다 보니 더욱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저희는 개인전화번호를 환자나 보호자에게 알려줘요. 그래서 불쑥 전화하기도 하는데…….절박한 마음을 이해하고 성의있게 응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환자나 보호자 말을 잘 들어보면 그 분들이 답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람찬 순간들도 있지만, 그 뒤에는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고충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생소하고 정착되지 않은 방문진료를 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물었다.

무리하다고 생각되는 요청을 잘 거절하는 게 초장기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상황을 잘 판단하고 치료 방향을 결정해나가는 경험이 쌓여 적절한 상담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환자나 보호자가 일과시간,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제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는데요, 이제는 이런 것도 나름대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혼자 방문진료 혹은 가정간호를 했을 때 안전문제에 노출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 방문하는 집이 생기면 어떤 보호자들이 있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야외노동이다 보니 혹한기, 혹서기에 힘들고요.

방문진료를 시작하게 된 계기



방문진료하는 김창오 원장 ( 왼쪽 ),  홍종원 원장 ( 오른쪽 ).  출처 :  홍종원

방문진료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의사의 업무와는 꽤나 다르다. 의사들 중에도 방문진료에 대해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도 방문진료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방문진료를 알게 되고 평생의 일로 삼으려는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의과대학생 시절부터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변화시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동네에 오래 살았고 2012년부터 강북구 번동에서 마을주민들과 마을공동체 및 지역활동 조직 등 다양한 주민건강권 활동 및 사업에 참여해 왔습니다. 공중보건의는 남양주에서 했는데 번동과 남양주를 오가며 지역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에 현재까지 같이 일하는 김창오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김창오 선생님은 그때 보건소에서 방문진료를 했었고 건강마을 만들기사업, 의료복지 NGO단체 등의 지역 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김창오 선생님은 순수하고 신뢰할만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의기투합하여 2019년 개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개원초기에는 당연히 수입은 적고 병원의 운영비도 안나왔습니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초심을 잃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운영비를 감당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안정되었고 방문진료의 경험도 쌓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들이 안 하지만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여 이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당분간 이대로 유지하며 경험을 더 축적하여 질적으로 더 잘하고 싶습니다. 잘한다는 게 특별한 데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초심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사회에서 방문진료와 같은 공공성을 지향하고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의료기관이 안정적으로 경영을 유지해나가는 건 녹록치 않다 이 현실에 맞서, 공공의료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의료를 실천하는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부디 <건강의집> 의료진들이 소진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여 오랫동안 지역사회에 안착하기를 기원한다.

(장영우 선전위원장, 내과의사)

 

65일터기사

[동아시아과로사통신] 코로나19와 사회적 합의 이후, 택배현장은 얼마나 변화했는가 : 낮은 택배 수수료와, 택배 노동자의 ‘강제된 자발적 과로’/2021.5

일터기사

[일터 5월호_동아시아과로사통신] 

코로나19와 사회적 합의 이후, 택배현장은 얼마나 변화했는가

낮은 택배 수수료와, 택배 노동자의 강제된 자발적 과로

 

코로나19 이후 택배산업의 변화

2020년은 택배노동자에게 가혹한 한 해였다. 택배노동자의 과로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택배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재조명되었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소비패턴을 변화시켰고 이에 따라 택배산업은 급속도로 팽창했다.

2020년 택배물동량은 전년 대비 20.93%(337천만 개)가 증가했다. 이는 최근 10년 중 가장 폭발적인 물동량 증가를 기록한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택배산업은 10년 동안 연평균 10% 내외의 물동량 증가 추세를 기록해왔다.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물동량이 급증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2020년 택배 평균단가는 전년 대비 2.1%로 하락했다. 20192,269원이었던 평균단가는 20202,221원으로 낮아졌다. 이는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수치다.

택배자본의 이윤창출과 일하다 쓰러지는 택배노동자

택배자본은 코로나19를 전후로 큰 이윤을 얻었다. 2020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택배, 로젠택배는 모두 전년 대비 10~20% 대의 택배부문 매출액 증가폭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최소 20%에서 최대 130% 대의 증가폭을 기록했다. 택배자본은 택배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출혈적인 저단가 경쟁전략을 지속하고 있다. 택배 평균단가의 하락은 코로나19를 전후해 이러한 영업전략이 변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택배자본이 거둬간 이윤의 이면에는 택배노동자의 과로사와 극한의 노동조건이 자리하고 있다. 택배노동자는 낮은 수수료 체계에서 많은 물량을 처리하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폭증한 물량은 취약한 택배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켰다. 택배노동자가 일하다 쓰러지고 죽어가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쿠팡을 필두로 한 유통산업의 재편

쿠팡은 20211월 택배사업자 자격을 획득했다. 또한 3월에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쿠팡은 향후 택배시장에도 공격적인 시장점유율 확보전략을 취할 것이다. 쿠팡은 시장독점을 위한 적자경영과 유연한 노동력 활용으로 이미 온라인유통산업을 장악해나간 전력이 있다.

쿠팡은 택배산업 재진출을 시도하면서 택배업 운영에서 직고용 방침을 밝혀왔다. 그러나 최근 택배사업자 자격을 획득하고 돌연 직고용과 위탁계약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택배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고용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향후 쿠팡의 택배업 진출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쿠팡이 물류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

쿠팡은 공격적인 투자로 확보한 물류창고와 배송센터를 바탕으로 로켓배송이라는 풀필먼트 시스템(fulfillment system)을 완성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쿠팡의 모델을 따라가기 위한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CJ대한통운과 네이버는 지난해 3천억 원 규모의 상호 지분교환을 했다. 최근 빠른 배송이라는 풀필먼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네이버의 온라인마켓 장악력과 CJ대한통운의 물류창고와 배송시스템을 결합하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이베이코리아(G마켓, 옥션, G9) 인수에 신세계, 롯데, SK, MBK(홈플러스)가 치열하게 경합하는 것도 쿠팡의 모델을 추격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신세계, 롯데, 홈플러스는 오프라인 유통산업(대형마트)의 쇠락을 대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기존 대형마트는 물류창고 형태로 개편하고 온라인몰과 마트 직배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라스트마일 운송시장(Last Mile Delivery)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산업 내부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추세다.

사회적 합의 이후 택배노동자 실태

2020년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하면서, 연말에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구성되었다. 이후 20211월 사회적 합의문 발표에까지 이르렀다. 그 이후 택배현장은 얼마나 변화했을까?

아직 실질적인 효과를 확인하기에 이른 감이 있으나, 현장에서 극적인 노동시간 감소는 관찰되지 않았다. 화물연대 자체조사 결과, 분류작업 시간은 평균 1.5시간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노동시간에서는 유의미한 차이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20년 하반기 조사 결과 총 14.5시간에 달했던 노동시간이 감소한 것은 분명하나,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장시간 노동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분류인력 투입은 단기 대책으로 효과는 있다. 다만, 분류자동화설비 도입, 택배 수수료 인상, 이에 따른 적정 작업량 산출 등의 전반적인 개선 없이는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해결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래서 택배·유통부문 안전운임제

화물연대는 화물운송시장의 고질적인 저단가 운임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오랫동안 안전운임제법제화를 요구해왔다. 2020년부터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 대해 도로안전운임제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의 운임이 노동조건과 도로안전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 제도이다. 택배 평균단가의 하락 추세에서 볼 수 있듯이, 택배노동자 역시 운임(수수료) 하락이 장시간 노동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수수료 인상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을 이루기 위해 택배와 유통부문을 포함하는 안전운임제 확대가 필요하다.

(화물연대본부 강동헌 전략조직국장)

29일터기사

[현장의 목소리]쿠팡의 꿈이 결코 이뤄지지 않는 세상_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김혜진, 조혜연 인터뷰/2021.5

일터기사

[일터 5월호_현장의 목소리]

쿠팡의 꿈이 결코 이뤄지지 않는 세상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김혜진, 조혜연 인터뷰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웃지 못할 이들이 여럿이었지만, 쿠팡만큼은 예외였다. 팬데믹의 장기화는 이커머스(E commerce)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고, 업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쿠팡 역시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85% 급증해 13조 원을 넘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직원 수도 지난해 말 기준 4만 9천여 명으로 삼성과 현대에 이어 3위의 고용 규모를 기록했다. 고질병으로 지적되던 영업적자도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이고, 얼마 전에는 뉴욕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며 대규모 투자를 확보했다. 몸집을 더욱 불릴 만반의 준비가 완료된 셈이다. 고객이 “내가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지?”라는 단 한 가지의 질문을 하게끔 만들겠다던 김범석 의장의 꿈이 실현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런데 이 꿈, 정말 이뤄져도 되는 걸까? 9명. 작년 3월 택배 노동자가 배송 중 빌라 계단에서 쓰러져 사망한 이후, 약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쿠팡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의 숫자다. 확인된 숫자만 9명이다. 그간 쿠팡은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업무와의 무관함을 앞세우며 그들의 죽음은 산업재해가 아니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러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판정이 나오면 그제야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식이었다. 저들의 주장에 따르면, 쿠팡만큼 억울한 기업도 없다. 법이 허용하는 ‘야간노동’을 준수하고, 노동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게 했으며, 물류 및 제조업체에서 공정관리를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개인별 UPH(Unit Per Hour, 시간당 물량 처리 개수)이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마저 ‘삭제’했는데 말이다. ‘이 정도면 된 거 아니냐’는 쿠팡에게 ‘충분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노동자를 죽음에 몰고 가는 야간노동의 위험을, 불안정 노동의 재생산에 지나지 않는 쿠팡의 고용체계를, 여전히 노동자를 짓누르는 성과압박의 존재를 말한다.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쿠팡이 벌써 장밋빛 미래를 바라볼 때, 핏빛으로 얼룩진 쿠팡의 어제와 오늘을 직시하는 ‘쿠팡 노동자와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이하 대책위)’의 김혜진, 조혜연 동지를 만나 ‘쿠팡 없이도 괜찮은 세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함께 바꿔나갈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선전활동 또한 이어가고 있다. 출처: 쿠팡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일회성의 문제도, 우연한 사고도 아닌 쿠팡의 문제

쿠팡은 자신들이 대한민국 택배·물류업계에 새로운 근로환경을 선도해 왔다고 말한 바 있다. 쿠팡의 큰소리가 무색하게 지난해 5월 말, 쿠팡 부천신선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으로 인해 노동자 84명을 포함한 시민 152명이 감염됐다. 그런데도 쿠팡은 피해당한 노동자에 대한 사과는커녕 적절한 대응을 제공하지 않은 것마저 자신들은 법과 정부의 지침대로 했을 뿐, 더 이상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그간 쿠방팔 코로나19 피해자지원 대책위원회(이하 지대위)에서는 피해자 모임과 함께 문제해결을 위한 교섭을 요청해왔어요. ‘乙(을)’지로위원회(이하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로 쿠팡과의 교섭이 진행됐고, 4차례 정도 만났죠. 쿠팡의 집단감염으로 드러난 피해 정도가 예상보다 컸고 심각했어요. 그래서 피해조사를 할 수 있는 기구를 공동으로 구성하자고 제안했고, 중재를 했던 을지로위원회는 쿠팡도 이에 동의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쿠팡 측의 태도가 돌변하며 자신들은 피해자의 민원을 들어주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교섭은 결렬됐어요.

쿠팡과의 교섭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 대책 마련,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사과와 보상 대책 마련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소송으로 다 넘어갔고요. 남은 건 재발 방지 대책의 수립인데, 지금 쿠팡 자의로는 잘못된 노동조건과 구조를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조: 뉴스나 신문을 보면 아시겠지만, 쿠팡과 관련된 각종 사고를 다룬 기사들이 연일 빵빵 터지고 있잖아요. 코로나19 집단감염을 계기로 지대위가 시작됐지만, 실태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쿠팡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이 너무 심각했어요.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생긴 문제가 아니거든요. 계속해서 사건,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에 생겨난 문제죠. 이처럼 고민의 지점도 넓혀졌고, 여러 차원에서의 대응도 이전보다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지대위에서 대책위로 확장이 이뤄졌습니다.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쿠팡의 문제들

그간 유구히 쿠팡의 문제로 지목된 것들이 있다. 노동강도와 야간노동에 뒤이은 과로사, 불안정 노동을 생산해내는 고용구조 등 어느 것 하나 시급하지 않은 사안이 없다. 말 그대로 우리 사회의 문제적 노동을 한데 모아놓은 집약체나 다름없다. 이뿐만 아니라, 문제는 지금껏 계속해서 자신의 몸집을 부풀려 왔다.

조: 쿠팡의 문제는 어느 것 먼저 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총체적으로 문제예요. 그래도 그중에서 노동강도 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해요. 이전에는 개인별 UPH라고 해서, 각각의 노동자가 시간당 처리하는 물량 개수를 측정했거든요. 별다른 기준도 없이 가장 높은 노동자의 UPH와 비교하는 식이에요. 그리고 내일은 어제보다 더 높은 UPH를 기록해야 해요. 쿠팡 측에서는 UPH가 고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UPH가 낮게 잡히면 다른 업무로 교체되거나 관리자가 심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주거나 하는 일들이 생겨요. 그러다 보니 노동자 입장에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점점 더 빨리 물량을 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과로, 나아가 과로사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죠.

지금 당장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야간노동 역시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풀어나가야만 하는 문제예요. 쿠팡의 가장 큰 전략은 로켓배송인데 이걸 가능하게 하려면, 물류센터는 밤낮없이 한밤중에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돌아가야 해요. 국제암연구소(IRAC)에서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듯이 같은 노동을 하더라도 야간노동일 경우, 우리 몸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클 수밖에 없어요. 추후 야간노동 전반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과 원칙을 마련하기 위해서 조사, 연구팀을 구성해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쿠팡의 산재는 꾸준히 증가해왔어요. 쿠팡 물류센터의 산재 신청은 2017년에 50건, 2018년에 150건, 2019년에는 191건, 2020년에는 239건이에요. 신청 건수가 계속해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증가 폭도 상당히 크죠. 그리고 해당 자료는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한 것만 집계된 건데, 모종의 이유로 신청하지 못한 경우를 고려하면 실제 산재 발생 건수는 더 많을 거라고 예상해요. 쿠팡 노동자들의 커뮤니티인 네이버 밴드 ‘쿠키런’을 보면, 산재 신청 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고용 유지가 어렵다는 등의 글들이 올라와요. 이처럼 산재 신청을 마음먹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그런데도 계속해서 산재 신청 건수가 증가하는 것으로 미뤄 짐작하자면 그만큼 현장의 안전이 매우 위급한 수준인 거겠죠. 추후 쿠팡 대책위의 활동에 산재 실태에 대한 조사와 연구도 빠질 수 없는 과제예요.

너무 늦은 사과도, 답도 아니려면

현재 쿠팡은 전국에 170여 개 물류센터를 운영 중이다. 230만㎡(약 70만 평) 규모라고 하는데, 크기가 채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하다. 지금 물류센터만 해도 미식 축구장 40개 정도를 합친 크기라 하는데, 앞으로 여기에다 330만㎡(약 100만 평) 규모의 부지 추가 확보에 나설 계획이라 밝혔다. 이처럼 드넓은 공간에 수많은 노동자가 일하고 있지만, 정작 공간의 쓰임에 있어 노동자에 대한 어떤 고려도, 원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쿠팡의 물류센터에는 일하는 ‘사람’은 없다는 듯이 말이다

김: 쿠팡의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지자체들이 MOU를 체결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MOU에서 빠진 게 있다면 바로 노동자들의 권리죠. 지금은 산업에 대한 표준이 마련돼야 해요. 지금 같은 대규모 물류센터는 이전에 없던, 새로 생겨난 공간이죠. 그러다 보니 어떤 공간이 돼야 한다는 기준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공간의 적정인원은 얼마인지, 물류센터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계약 형식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합의된 바가 없어요. 이 같은 공백의 공간에서 쿠팡과 같은 쪼개기 계약과 일용직 고용과 과도한 노동이 물류산업의 표준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커요. 정말 심각한 문제예요.

대표적인 예로 쿠팡의 물류센터는 냉난방 설치가 안 돼 있어요. 신선센터는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지만, 노동자가 아닌 오직 물품의 냉장과 냉동을 위한 온도죠. 애초에 쿠팡의 물류센터는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공간이에요. 그렇다면 원래 물류센터에는 일하는 노동자를 고려한 냉난방 설치가 불가한 공간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에요. 그냥 건물의 공조설비를 잘하면 되는 일에 불과해요. 그런데도 그걸 안 해서 쿠팡에서 일하다가 너무 춥고,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죽는 거예요.

이건 건물의 설비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에요. 노동강도, 고용 형태 모든 문제에 해당하는 얘기예요. 쿠팡이 말하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는 물류산업의 특성이 아닙니다. 그건 쿠팡의 문제죠.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서서 제대로 된 산업의 표준안을 만들 때예요. 이걸 위해서 쿠팡 대책위의 향후 활동에 실태조사도 계획에 두는 것이고요.

쿠팡은 관련된 비판 보도가 나올 때마다 ‘사실관계’를 ‘바로 잡는다’라고 하지만, 사실을 넘어 쿠팡에게 묻고 싶은 진실이 있다. 8명의 노동자가 죽어 나간 이유가 ‘야간노동’도, ‘성과압박’도 정말 아니었을까? 어쩌면 노동자의 죽음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쿠팡’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삶은 지금도 계속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답을 듣기 위해선 우리 모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조: 인천의 학생치고 쿠팡에서 일 안 해본 사람 없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누구나 다 어렵지 않게 쿠팡에서의 노동을 경험하는 거예요. 앞으로 더더욱 그럴 테고요. 소비자로서도 마찬가지죠. 다들 쿠팡의 편리함이 낯설지 않으니까요. 다만 편리함 속에 숨은 노동의 열악함을 한 번쯤 떠올려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감각이 있는데요, 프랑스에서 한국인이 자발적으로 야근하니까 프랑스인 동료가 ‘우리 노동자들이 힘들게 싸워서 쟁취한 권리를 훼손하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 있잖아요. 저는 이 얘기 속의 감각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후 쿠팡 대책위에서도 관련된 활동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필요성도 느껴요.

김: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서 쿠팡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쿠팡이 우리의 편리함을 거꾸로 생산해내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왜 그런 걸까? 노동자를 부품처럼 취급해 만들어낸 편리함은 과연 누구의 이익이 될까? 저는 앞선 질문들을 자본에게 던질 수 있는 시민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노동자와 시민사회가 연대해 건강한 대안을 마련하고 새로운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쿠팡의 성공 신화가 결코 성공 신화로 인식되지 않길, 쿠팡이 하나의 표준이 되지 않는 게 우선이겠죠.

(한재영 상임활동가)

35일터기사

[노동시간센터 5월 월례회] 상병수당 도입의 필요성과 산재 및 직업보건에 미치는 영향

활동소식



일을 하든 안 하든, 산재든 아니든,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사업장에서 일 하든 아니든, 일단 ‘아프면 생계 걱정 없이 쉬면서 몸을 돌볼 수 있게’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제도인 상병수당 도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5일, 보건복지부의 ‘상병수당 제도 기획 자문위원회’의 1차 회의도 열렸는데요.

상병수당 제도가 실질적으로 제 기능을 하도록 하려면, 기업차원에서 노동자들을 쉴 수 있게 하기 위한 내부 제도와 문화의 정비와 개선 역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또한, 상병수당은 업무관련성 여부와 무관하게 지급되는 만큼 이제까지 일 하다 아픈 노동자들을 위한 유일한 보상체계였던 산재제도의 역할에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이번 노동시간센터 5월 월례회에서는, 상병수당의 필요성과, 산재제도&기업 보건체계에서 예상되는 변화들을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일시 : 2021.05.26 (수) 오후 7시 (온라인, ZOOM)
발표자 : 신기철 교수(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청링크 : bit.ly/시간센터월례토론
* 신청하신 분들께 월례토론 접속하실 수 있는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29활동소식

[자료집] IT·게임산업 노동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안을 위한 토론회

기타

34기타자료실

[안내] 구의역 참사 5주기 공공운수노조 생명안전주간

활동소식



구의역 참사 5주기 공공운수노조 생명안전주간 

* 추모기간 선포 기자회견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이 안전하다” 
5월 24일 월요일 11시 구의역사 및 9-4 승강장

* 추모제
생명안전, 교통공공성 위한 희생자/지하철노동자 간담회
5월 29일 토요일 구의역사 및 9-4 승강장

*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 비정규직 공동투쟁단 24시간 공동투쟁
5월 27일 목요일~28일 금요일 세종시

* 콜센터 노동자 노동실태 발표 및 개선방안 토론회
5월 25일 화요일 10시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 비정규직노동자 노동조건, 안전조건 증언대회
5월 26일 수요일 13시 장소미정

* 추모의 벽: 성수역, 강남역, 구의역 
구의역 참사 5주기 추모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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