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 절반은 건설 노동자 ‘심각’
<산재사망도 살인이다> 연중기획⑧
산재사망 절반은 건설 노동자 ‘심각’
기형적 하도급 구조가 문제…하루에도 2~3명 목숨 잃어
목표시간 1,000,000시간, 남은시간 73,250시간
경기도 한 건설현장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무재해기록 전광판. 2005년 9월11일부터 21일 현재까지 재해가 없었음을 알리고 있다<사진>. 무재해 100만 시간 달성을 위해 앞으로 남은 7만3,250시간을 ‘안전을 최우선으로 일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안전벨트도 없이 지상 8층 높이에서 골조공사를 하고 있던 구일보(가명·58)씨의 말은 무재해기록 전광판과 전혀 달랐다.
그는 “어제 안전망을 설치하던 비계공(건축공사 때에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임시가설물을 설치하는 사람)이 실족해서 병원에 누워있다”고 전했다.
1주일 전에는 타워크레인으로 자제를 올려 보낼 때 신호를 해주는 노동자가 그만 자제를 묶는 철사에 눈이 찔렸다. 그 노동자는 각막이 찢어져 당분간 병원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현장에 나돌고 있다고 한다.
보름 전에는 공사현장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관리자 마저 발판을 잘못 디뎌 병원에 실려 갔단다. 무재해기록 전광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구일보씨는 “내가 알고 있는 사고만 이 정도일 뿐, 알려지지 않은 사고는 더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던 구일보 씨는 아슬아슬한 난간 위에서 어깨 높이까지 내려와 있던 전깃줄이 목에 걸리는 시늉을 해보이며 “이렇게 되면 죽는거야”라고 한마디 더 한다. 아찔하다. 죽는 것이 그저 걷는 것만큼 쉽다.
건설현장에 들어가는 구급차는 경보음을 울리지 않는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은 2,825명. 하루에 8명꼴이다. 2003년에는 이 보다 조금 높은 2,923명, 2002년도 2,605명. 이 중 건설업에서의 사망재해가 가장 높다. 2004년만 779명의 건설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고, 2003년 역시 762명, 2002년도 667명의 건설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그래프 참조>
그러나 이것은 산재보험으로 처리된 수치일 뿐, 은폐된 산업재해는 이보다 훨씬 많다.
지난 국감에서 단병호 의원은 “산재보험통계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전체 산업재해 규모를 반영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그 규모에 대한 대략적 추정을 위해 2002년 건강보험 자료와 2001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이용, 직장내 발생한 주요사고를 분석한 결과 20~59세 총 노동인구 약 2,500만명 가운데 약 33만1,665명이 사고성 재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산재통계가 전체 사고성 재해의 15%밖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다.
건설산업연맹 역시 “건설업 산업재해 통계의 심각성은 ‘가장 높은 발생률’보다 실은 은폐율에 있다”며 “건설노동자의 산업재해가 산재보험으로 처리되는 것은 20%도 안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기서부건설노조 한 관계자는 “건설현장에 사고처리를 위해 구급차가 들어올 때 경보음을 끄고 들어오는 것이 관례처럼 돼있다”며 “사업주가 사고를 은폐시키기는 데 급급한 나머지 응급처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죽거나 더 위험한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2003년 안산시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노동자를 관리자들이 휴게실 구석진 자리에 뉘어놓은 채 퇴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날 뒤늦게 이를 발견한 조합원이 환자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너무 오랫동안 방치된 바람에 결국 사망했다고 한다.
“건설현장에서의 산재사망은 한마디로 ‘개죽음’”이라고 단언하는 경기서부건설노조 이영철 사무국장은 “드넓은 공사현장에서 홀로 작업하다 사망사고를 당할 경우 (사업주의 은폐로)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발견한 노동자가 112나 119에 신고하면 불이익이 돌아오곤 해서 관리자에게 보고하는 게 전부”라고 밝힌 한 건설노동자(36세)는 “사업주들이 쉬쉬하기 때문에 공사하다가 누가 죽었는지 일하는 우리도 알 수가 없다”고 전했다.
하도급에 또 하도급, 건설산업 기형적 구조가 산재를 부른다
‘건설현장이 통상적으로 위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명선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국장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우리나라의 건설업 재해율은 영국의 11배, 미국의 6배, 우리와 비슷한 하도급 구조를 가진 일본보다도 3~4배 가량 높다”는 것이 그의 설명.
최 국장은 “건설현장에서의 산업재해는 주로 개구부를 막지 않거나 안전망을 설치하지 않는 등 아주 기본적인 안전장치 미비로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또한 바닥에 흩어져 있는 자제로 인한 부상, 안전발판을 고정시키지 않아 생기는 사고 등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같은 사실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겐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적어도 4~5단계 하도급을 걸치고 있는 건설현장의 시스템은 노동자의 안전을 등한시할 수밖에는 없는 구조로 고착화되어 있다.
안산시 ㄷ아파트 건설현장에서 3주 전에 손가락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입은 박기명(가명·50)씨는 “공사기한을 맞추기 위해서 일에 쫓기다 그만 사고를 당했다”며 붕대가 감긴 오른손을 내보였다. 그가 사고를 당한 경위는 매우 단순했다. 골조작업 막바지에 한창이던 당시, 콘크리트 거푸집을 해체하기 위해 발을 내딛던 순간 나무판자 아래 굴러다니던 쇠파이프가 수직상승해 그의 손가락을 내리쳤다.
“거푸집 해체작업이 무척 위험해. 나무판과 그것을 받치고 있던 쇠파이프 등등의 제거를 한꺼번에 해치우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한 단계씩 처리하면 불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는 “물론 가능하지. 그것이 더 안전하고…. 그렇지만 공사기한을 맞추기 위해서 다들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
대부분 도급계약관계로 일하는 건설노동자에게 ‘속도’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살 수밖에 없는 이들 대부분은 외국에선 2~3사람이 해내는 몫을 해내고 2~3일 혹은 일주일이상 걸리는 작업을 하루 만에 해치워야 일당(기능직 10만선, 비기능직 5~7만원선)을 벌 수 있다.
안산시가 발주한 ㅈ 건설현장에는 2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공사로부터 직접 채용된 현장직 노동자는 극히 드물다. 구일보씨는 시공사 ㅅ건설이 12개의 전문업체에게 수주한 공정의 일부를 도급받은 시행소장으로부터 또다시 도급계약을 체결한 4명의 팀장 중 한명으로부터 일을 받았다. 발주처-시공사-전문업체-전문업자(시행소장)-전문업자(팀장)-구일보씨로 내려오는 6단계 구조다. 구일보씨의 팀장이 예를 들어 1,000만원에 골조공사 한 부분을 수주받았다면 이를 8~10명의 팀원들이 각자의 몫만큼 나눠 갖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은 적을수록 공사기한은 짧을수록 이득이다. 아니, 그래야 먹고 살 수가 있다.
이영철 경기서부건설노조 사무국장은 “아무리 산업안전법이 좋아져도 (불법)하도급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다단계 도급구조는 산재를 은폐시키는 데 크게 일조하기도 한다. 굳이 시공사가 사고처리에 나서지 않아도 중간의 전문업체나 시행소장, 팀장 등이 일감을 받고 유지하기 위해 ‘알아서’ 은폐하기 때문이다.
건설노동자에게 무능한 산업안전법
최명선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국장은 “산업안전법이 정규직과 제조업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어 건설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키기엔 너무나 미비한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최 국장은 특히 “도급구조 및 각 공정마다 독립적인 작업구조와 옥외작업이 필수적인 건설현장에서 노동자 스스로가 산업안전부분에 대한 권한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외국의 경우 산재를 줄이는 데 노사동수로 구성된 산업안전위원회(TMB)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관리자와 현장 노동자들이 같이 위험에 대한 대책 등을 논의하기 때문에 매우 체계적으로 안전관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우리나라는 역시 산업안전위원회가 존재하지만 도급구조가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특히 스웨덴이나 호주에서는 노동자 대표가 사고 시 ‘작업중지권’을 갖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사망재해가 일어나도 공사를 강행해 똑같은 사고가 되풀이되는 비극이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최 국장은 노동자들이 직접 산업안전과 관련된 권한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산업안전법 위반으로 사업주가 처벌되는 경우가 1년에 10명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솜방망이 처벌’도 산재예방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혈병, 파킨스병부터 공황·수지진동 장애까지
지난해 안산시 A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황호진(가명·50)씨는 현재 ‘공황장애’ 판정을 받고 강원도에서 요양 중에 있다.
벽돌을 쌓는 조적공 반장인 황씨는 바다를 메워 아파트를 세워 올리는 허허벌판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12시간 이상을 홀로 일했다. 여름에는 공사현장에서 혼자 자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조적에 사용되는 시멘트를 게기 위해 이른 새벽마다 물을 나르는 작업을 도맡았다가 가슴의 답답함을 느끼며 쓰러졌다. 이미 똑같은 증상으로 한번 쓰러졌던 그였다.
안산의 ㅎ병원에서는 ‘공황발작’이라는 의사소견이 나왔지만 그는 몰랐다고 한다. 물론 회사는 이 사실을 알고 그를 강제퇴원 시켰다.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산재 요양승인 신청은 2번 모두 기각됨에 따라 현재 경기서부건설노조가 나서서 행정소송 중에 있다.
최근 석유화학공장이 밀집된 여수산업단지에서 '폭발사고에 대한 공포' 때문에 신경정신질환인 '공황장애'가 노동자들에게 집단 발병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지난 9월21일자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여수의 한 신경정신과병원에서 1999년 이후 지금까지 '공황장애' 진단으로 치료받은 노동자만도 2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명선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국장은 “추락, 감전, 붕괴 등의 사고에 의한 산업재해 뿐 아니라 공항장애를 비롯해 석면에 의한 폐암, 백혈병, 손떨림 증상이 멈추지 않는 수지진동장애까지 광범위한 직업병이 건설노동자에게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도장공의 경우 페인트나 시너 등 유해물질로 인해 피부병 등이 나타나고 있으며, 용접공의 경우 흄이나 망간에 의한 파킨스병, 설비공은 석면으로 인한 천식, 기관지염, 폐암 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오랫동안 망치질을 하거나 굴착장비를 사용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수지진동장애(손떨림증상)가 발병하고 있지만 ‘담배나 술 때문’이라고 치부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최근에는 여수산업단지에서 벤젠유 등에 인한 백혈병이 집단 발병함에 따라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다.
최 국장은 “워낙 중대재해가 많아 건설 노동자들의 직업병은 가리워져 있는 현실”이라며 “하루 빨리 특수건강검진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미영 기자 ming2@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