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에버랜드 무용수들은 '노예'였다"

"에버랜드 무용수들은 '노예'였다"
삼성에버랜드 공연단 이주노동자 노동실태 심각해

최인희 기자 flyhigh@jinbo.net / 2007년06월21일 21시24분


일 년 내내 화려한 공연과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국내 최대 규모 놀이공원인 삼성 에버랜드. 그 곳에서 공연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예계약'과 다름없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다산인권센터, 이주노조, 민주노총 경기본부,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등 1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삼성에버랜드 공연단 이주노동자 노동권과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1일 오전 11시 용인 삼성 에버랜드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연단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 보장을 촉구했다.


마침 시작된 장마로 굵은 빗방울이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 관심을 보였으며, 우천으로 뜸하긴 했지만 에버랜드를 방문한 이용객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삼성 에버랜드 측에서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 직원 수십 명도 주변에 둘러서 기자회견을 주시했다.


공연도중 두 번의 사고... 산재는 꿈도 못 꿔


공대위의 행동은 공연 도중 부상을 입고도 산재처리는 커녕 무리한 공연을 계속해야 했던 우크라이나 출신 무용수 옥사나 씨의 용기있는 증언이 계기가 됐다. 옥사나 씨는 이날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해 그간의 경과와 심경을 밝혔다.


옥사나 씨는 지난해 11월 16일 공연하던 도중 2미터 10센티미터 높이의 계단에서 떨어졌다. 공연단 15명이 폭이 좁은 계단을 통해 10초 안에 퇴장해야 하는 조건에서 추운 겨울날씨로 계단이 얼어 있었다. 나중에도 동일한 장소에서 다른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 장소다.


이 사고로 옥사나 씨는 용인서울병원에서 '좌측 족관절 염좌' 판정을 받고 2주간 깁스를 하게 됐고, 2주 후에도 병원은 추가 2주의 휴식을 권했지만 회사의 근로 강요와 임금공제에 대한 부담 때문에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다리와 허리에 계속 무리가 가게 됐고 한동안 발가락과 발바닥 감각이 없어지고 다리가 붓는 등 후유증을 겪었지만 산재신청은 물론 의료보험도 되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4월 19일 두 번째 사고를 당했다. 3월 13일부터 키보다 1미터나 높은 6.5킬로그램 무게의 나비날개를 허리에 부착하고 공연하던 옥사나 씨는 앞선 사고로 허리통증이 심해졌고, 이를 참아가며 공연을 계속하다 4월 19일 공연도중 쓰러지게 됐다. 아주대학교 병원에 입원한 옥사나 씨는 디스크 판정을 받았으며 당시 충격으로 10여 일간 하혈까지 했지만 회사측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막았다.


억울한 심경을 호소하고자 수소문 끝에 5월 초 수원외국인노동자쉼터를 찾은 옥사나 씨에 의해 에버랜드 공연단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이 알려지게 됐다. 당시 옥사나 씨는 산재보험이라는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으며 근로계약서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옥사나 씨는 경과를 설명하면서 "여기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많이 아픕니다. 아파서 일을 못하는 동안 월급을 못 받았고 심하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라며 "에버랜드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더이상 다치지 않기를 바라고, 아프면 제대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일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직접 업무지시 내리는 실질사용주인 에버랜드의 책임"


환한 미소를 띠고 공연에 나서는 이주노동자들은 속으론 피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5-6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공연의상으로 늘 다리와 허리 통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탈색과 염색을 반복해 금발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탈모와 피부병이 떠나지 않는다.


공대위는 "열악한 대우와 산재를 불러오는 위험한 작업환경의 제공 등은 모두 삼성 에버랜드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공대위에 따르면 계약서 상 에버랜드는 '(주)동일엔터테인먼트'라는 인력파견회사에서 고용한 러시아 계통 무용수 150여 명에게 업무지시를 내리는 사용사업주라는 것.


계약서에 따르면 에버랜드가 '쇼의 시간표와 배우의 역할에 따라 휴일을 정한다'고 되어 있으며, 쇼 도중 일어난 모든 사고에 대해 동일과 에버랜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배우가 1개월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치명상을 입을 경우 계약은 파기될 수 있으며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배우들은 집으로 보내질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이외에도 '에버랜드는 배우들의 능력에 따라서 7등급으로 분류하여 임금을 지급한다', '쇼에서 모든 역할은 에버랜드에 의해 지명되어진다', '에버랜드가 정한 시간표 규정 규칙과 질서, 청결 등 에버랜드의 지시를 지켜야 한다'라는 등의 직접 지시 조항들도 발견됐다.


고용계약을 맺고 임금을 주는 곳은 파견업체이고, 에버랜드가 공연연습 등 업무지시를 내리는 실질 사용자인 것. 이런 이중의 고용구조로 인해 공연단원들은 각종 부당한 대우에도 에버랜드 측에 직접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계약서에는 "배우는 2명 이상의 어떠한 단체행동이 금지된다. 집단행동이 경우 주동자들은 한국에서 추방되며 계약은 즉시 파기된다"라고 명시해 단체행동을 봉쇄했다.


엄격한 벌금제도, 강제염색으로 탈모... 인권침해도


공대위가 조사한 공연단 이주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와 비인도적 처우, 인권 침해도 심각했다.


이들은 사고가 발생해도 산재신청도 하지 못하고 강제출국되거나, 최저임금만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근로계약서도 맨 앞장과 마지막 장만을 보여주고 서명을 강요하고 임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면서 명세서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나마 낮은 임금도 2회 이상 메이크업을 잘못한 경우, 연습할 때 힘들다고 앉거나 공연을 잘 못할 경우, 휴게장소가 아닌 곳에서 쉴 경우, 지각을 3회 할 경우 등을 지정해 각 10만 원씩을 공제하고 있었다.


인권 침해와 관련한 공연단원들의 증언도 공개됐다.

"옷 갈아입는 장소가 없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옷을 입습니다"
"금발머리로 강제염색을 하여 심한 탈모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연습이건 공연이건 얇은 옷 하나만 입고 춤을 춰 감기에 잘 걸리는데, 심한 감기로 열이 나는 경우에도 일을 시켰습니다"
"무거운 복장의 어깨끈에 의해 피가 나는데도 어떠한 조치 없이 계속 춤을 추게 했습니다"
"공연도중 호스로 물을 뿌리는데 이 물이 눈에 맞아 고름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 사람을 근처의 지하 어딘가로 데려가 의사도 아닌 사람이 수건에 싸가지고 온 칼로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


심각한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연예비자' 이주노동자들


연예비자(E6)로 들어와 1년에서 짧게는 6개월 동안만 한국에 머물 수 있는 에버랜드 퍼레이드 공연단 무용수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신분이지만, 법무부(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의해 노동자 분류에서 배제돼 왔다. 이들은 고용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노동자들보다도 더 심각하게 노동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 공대위의 설명이다.


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사실들을 폭로하고 삼성 에버랜드 측에 요구서를 전달했다. 요구서에는 △산재보상에 대한 노력을 기울일 것 △전차금(처음 3개월 임금을 비행기 값으로 공제하는 것)을 반환할 것 △현재 700-950달러인 임금을 인상하고 주 40시간제를 시행할 것 △벌금, 부당해고, 부당징계를 중단할 것 △자유로운 휴게를 보장할 것 △단체행동 금지조항을 삭제하고 노동3권을 보장할 것 △반인권적 행위를 개선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