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정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악화를 유발하는 노동시간 불규칙성 확대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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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악화를 유발하는 노동시간 불규칙성 확대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11월 13일, 노동부는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수천 명의 노동자, 사업주,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며 발표한 보고서의 핵심 골자는 주 52시간(주 40시간 + 연장 노동 12시간) 상한제는 유지하되, “일부” 업종에서는 노사 합의를 통해 연장노동 단위 기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관리 단위를 월이나 분기, 반기로 확대 개편하는 형태의 유연화 시도는, 작년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안, 올해 3월 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가 노동자들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나 농/어업, 공공행정 노동자들은 포함되지도 못한 설문조사의 형태를 빌린 이번 발표 역시, 노동시간을 유연화면서 사업주들이 원하는 시간에 노동자들을 들쭉날쭉 불규칙하게 일하게 하려는 의도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부는 연장근로 단위 기간 확대, 특히 일부 업종 연장근로 단위 확대에 대해 많은 사람이 동의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 문항 중 노동시간 유연화와 관련된 예시는 다음과 같다. “현 근로시간 제도는 제조업·비제조업, 생산직·사무직 등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가 반영되기 어렵다.”, “현 근로시간 제도에서는 갑작스러운 업무량 증가 등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유연한 근로시간 운영이 필요한 특정 업종 또는 직종에 대해서만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시간, 불규칙노동으로 인한 건강 영향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주 52시간 상한조차 경직적이고 일률적이라는 인식을 조장하는 의도가 담겼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직종이나 업종별로 노동자들을 분절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문항으로 나온 결과를, 연장근로 단위 확대의 근거로 사용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의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다. 52시간이 아니다. “필요한” 경우 최대 주 12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는 것이 이미 유연화되어 있는 현재의 주 52시간 상한제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이미 최고로 오래 일하는 시간인 52시간이 마치 기준인 듯, 이를 초과해서 일할 의향을 묻고 있다. 그러면서 ‘근로자의 동의’를 운운하는 이번 행태는, “고도화되는 노사의 수요를 담을 수 있으며, 근로자의 시간 선택권을 확대할 수 있다”라고 말하던 올해 3월의 장면과 겹쳐 보인다. 이미 최대 주 52시간까지 노동할 수 있도록 유연화되어 있는 현재의 노동시간 체제를 더욱 유연화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멈춰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최대 허용 시간을 주 48시간 이내로 줄이는 등,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의 불규칙성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는 방향으로의 정책변화이다.

노동자의 몸은 고무줄이 아니다. 제조업 노동자라고, 연구직 노동자라고 다른 직종 노동자들보다 더 오래, 불규칙하게 일할 수 있는 몸을 지닌 게 아니다. 내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할지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노동자의 시간 주권을 후퇴시킬 뿐이다. 정부의 노동시간 제도 변화 시도는 사업주가 노동자의 시간을 선택할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며, 더 적은 비용으로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하려는 시도 앞에 노동자들의 선택권이나 건강권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이번 조사를 기반으로, 현장의 수요와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노동시간을 개편하겠다고 얘기했다. 노동자가 시간을 선택할 수 있어야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가 되는 것이지, 사업주에 의한 시간 선택은 노동권, 노동자 건강권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은 계속해서 줄여나가야 한다. 운수, 보건 노동자 등에게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노동시간 특례조항을 폐기하고, 노동시간 규제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노동자 등에게로 노동시간 규제가 확대되어야 한다.

노사‘합의’의 형태를 빌려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동자 건강권을 위협하는 사업주의 시간 선택권만을 강화하는 노동시간의 불규칙성을 더욱 확대하려는 시도를, 정부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

2023.11.17.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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