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안전한 일터는 없다 (22.09.29)

기고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법률원)

“오늘날 많은 여성의 고발을 들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가슴 찢어지는 감정이라기보다, 몸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물리적인 소스라침에 가깝다. 그 몸들의 비명으로 온 세계가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 그 환멸과 피로에 휘청이는 것.”(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중)

잘 참고 버티다가도 어느 순간 고삐를 놓아 버리는 때가 있다. 늘 있던 흔한 회식 자리였다. 예약된 식당 방 안에서의 자리 배치와 선정에 눈치싸움이 치열하던 때, 신발을 벗으며 방을 흘깃 보니 귀신 같은 타이밍 덕에 잘 피해 앉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가장 어린 여성동료가 그 자리에 앉도록 분위기가 우르르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모두가 피하던 그 자리로 나도 모르게 가서 앉아 버린 적이 있다. 이후 시간은 예상대로다. 주로는 먹느라 못 들은척 하기, 화제 바꾸기, 잠깐의 정색과 약간의 언성 높이기 등으로 시간을 때우고는 자연스럽게 화장실 가는 척 빠져나와 귀갓길에 귀를 씻는다. 그래 봤자 대부분의 날은 내가 피하는데 급급할 뿐 누가 그 자리에 앉는지, 2차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내 눈 앞의 장면을 치우고 내 귀를 막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드니까.

그렇게 시간과 시간들을 건너왔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 보람과 성취에 집중하며, 일을 둘러싼 다른 대부분의 것을 힘껏 삼키며 경력을 쌓았다. 그날보다는 조금 더 자주 정색하고 조금 더 길게 언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그게 전부다. ‘우리’는 피하지 못했고 내내 목격하며 피로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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