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예방에 힘쓰지 않아, 일하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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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라도 우리가 그 책임을 제대로 묻겠다!

연이틀 전해진 두 가지의 소식이 우리를 충격과 참담함에 빠트렸다.

하나는 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이 사고를 당한지 3년 2개월 만에 열린 첫번째 선고 결과이다. 재판부는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하청인 한국발전기술의 업무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정한다‘면서도 원청 대표이사에게는 무죄를, 원청 회사에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나머지 하청회사와 고 김용균의 죽음에 연루된 피고인들에게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하여 사실상 면죄부를 주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을 전 국민이 알게 한 사건이었다. 위험이 어떻게 아래를 향하는지, 권력이 없는 이들을 겨냥하는지, 고용구조 사슬의 최말단에 위치한 노동자에게 위험이 전가되는지, 업무가 외주화하는 과정에서 위험이 커지고 증폭 되는지를 똑똑히 확인시켜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판결을 통해 국무총리실 산하 김용균특조위가 740여 페이지에 달하는 조사결과를 담은 결과보고서를 통해 지적한 수많은 문제제기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예방에 힘쓰지 않아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기업에게 무거운 법적용을 요구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이끌어 낸 국민대중의 희망을 짓밟았다.

또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 재판이었다고 하더라도, 재판부는 우리 사회에 아주 중대한 신호를 보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기업들을 향해 거대 대형로펌의 법기술자들이 안심하라며 내밀었던 손길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이 문제였다며 곡기를 끊어 법을 바꾸고, 노동자를 산재사망에 이르게 한 기업을 제대로 처벌할 법이 없는게 문제였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려고 애썼던 노동자 시민에게, 이제는 우리가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를 똑똑히 확인시켜주었다.

두번째는 2월 11일 여수 석유화학국가산단 여천NCC 제3사업장에서 열교환 시험 도중 발생한 폭발사고이다. 사고로 현장에 있던 노동자 4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크고 작은 폭발사고로 화약고와 다름없는 여수산단에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사상자 중 7명은 어김없이 하청소속의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분노는 더욱 크다. 또한 여천NCC는 그동안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사업장이라는 점에서 절망스럽다. 2001년 10월15일 폭발사고가 발생해 1명이 사망, 1명이 부상을 당했고, 2006년 1월에도 1공장에서 냉매 오일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해 작업자 2명이 중화상을 입었으며, 2008년 5월에도 화재가 발생해 2명이 부상을 당했던 곳이다. 누군가 목숨을 잃었던 사업장에서, 왜 또 다시 누군가의 부고를 전해들어야 하는지 이제라도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동안 여천NCC에서 있었던 수많은 재해에도 불구하고, 왜 어김없이 사고가 반복, 재현되는지에 대해 알아야 겠다.

특히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상당 인력을 동원하여 사고전담반을 구성하는 등 앞다투어 원인조사를 철저히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조사가 단순한 기술적 원인과 그에 따른 대책 마련 수준에서 이뤄져서는 안된다. 유증기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탱크 가동 상황에서 작업이 이뤄진 이유는 무엇인지, 열교환기가 압력을 견디지 못할 경우 튕겨 나갈 우려가 큰 대형 부품 앞에 작업자들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등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넘어, 일상적인 노동과정, 업무관행 등 간접적 원인, 구조적인 문제가 함께 드러나야 제대로 된 진단과 개선, 실효성있는 대책이 마련될 수 있기 떄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청노동자를 포함한 일하는 사람들이 사고원인조사부터 대책과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까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전문가’인 일하는 노동자들이 의견과 목소리가 통제되거나, 배제된 상태로는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연이은 참담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하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예방에 힘쓰지 않아, 누군가를 희생시킨 이들이 그 죗값을 치르도록 더 큰 목소리를 모아낼 것이다. 일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실효성을 강화하라!

– 노동자의 죽음에 죗값을 묻지않는 사업부를 규탄한다.
– 산재사망에 관대한 사법부를 규탄한다! 사법부는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에 합당한 판결과 양형 수준 정립에 본분을 다하라!

– 산재 예방을 위해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라!

– 사고원인 조사, 현장개선, 재발방지 대책의 전 과정에서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라!

–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를 전면 공개하라!

2022년 2월 12일
19차 총회를 마무리하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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