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 11] 열린조직, 노동자 몸과 마음을 기준으로 하는 누구나 함께 하는 한노보연

일터기사

열린조직, 노동자 몸과 마음을 기준으로 하는 누구나 함께 하는 한노보연

최민(집행위원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한노보연)는 2003년 출범했다. 근골격계질환 집단요양 투쟁 과정에서 만난 노동자, 의료인, 활동가, 연구자들이 노동자 몸을 기준으로 하는 현장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결성했다. 노동자 건강 문제가 노동자들이 현장을 통제하는 작업장 정치를 만들고, 전국적인 연대를 결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투쟁으로 경험한 회원들이 모여서 ‘새로운 노동자건강권 운동을 하겠다’고 모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회원들의 조직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이 컸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연구소가 인적으로나 의제나 활동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강력한 구심점이 되어 주기도 했다. 회원들의 헌신적인 활동과 기여로 재정적으로나 활동력에서나 안정적으로 단체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이런 강점이 누군가에게는 한노보연을 만날 때 장벽이 되기도 했다. 2013년 노동시간센터(준)을 처음 시작할 때, 위원회가 아닌 센터를 만든 이유는 한노보연 회원이 아니더라도 노동시간에 관심이 있고, 관련 활동을 해보고 싶은 누구나 함께 하는 조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초기 모임에 참여했다가 점점 활동이 멀어진 한 연구자가 ‘한노보연은 폐쇄성이 강해서 센터 활동을 같이 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소회를 나중에야 전했다. 폐쇄적이라고 하니 좀 억울한 마음도 들지만, 활동하는 회원이 되어야 한다는 벽도 꽤 높고, ‘한노보연’이라는 정체성도 강하고, 회원들 사이 끈끈함이 강하다는 것 역시 한노보연의 중요한 특징이라는 점은 사실이었다.
한국 사회의 일하는 사람을 전면적으로 만나가는데, 우리의 이런 특성이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열린’ 조직 운영이라는 고민은 아마 회원들이 슬쩍슬쩍 느끼던 이런 고민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다.

열린 정치 공간에서 더 넓은 대중운동으로서의 노동안전보건운동

한노보연에서 ‘열린 조직’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2016년 총회 때였다. 당시 한노보연은 현장 활동 확대, 노동자 분절을 넘어서는 ‘우리 몸’에 근거한 투쟁과 함께, 경계를 넘는, 열린 조직운영을 활동 방향으로 제출했다. 2016년 초만 해도 박근혜 정권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열린 조직’ 운영은 한노보연의 회원, 후원회원의 양적 확대와 더불어 다른 조직, 단체들과의 공동 활동, 공동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바깥으로 ‘열린’ 활동을 한다는 의미도 포함했다.
그런데, 2016년 연말부터 박근혜 정권 탄핵 촛불 시위가 벌어지면서, 2017년에는 2016년과 상당히 다른 정치적 환경이 형성됐다. 촛불집회 이후의 대선은 분명 ‘민의’로 대통령을 바꾼 한국 정치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매듭 짓게 되었다는 한계가 있지만,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했던 더불어민주당의 보수성을 넘어서는 전진이기도 했다. 한국 사회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매우 높았고, 이런 상황에서 연구소 활동방향도 많이 달라졌다.
실제로 2017년 열린 정치공간에서 연구소의 활약이 컸다. 그 동안 연구소가 주로 두각을 나타내 온 것은 현장과의 연대였다. 그런데 2017년에는 국제산업안전보건기준 검토, 포괄적 안전법제도 모색,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대응 등 제도 개선 연구와 활동을 전면화했고, 책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보이지 않는 고통> 출간과 매일노동뉴스 칼럼 기고 등을 통해 연구소의 사회적 위상도 높아졌다. 새로운 정권이 ‘국민 생명 살리기’를 과제로 내놓으면서, 산업안전보건 행정이나 법제도 관련 논의도 활발해졌고, 이런저런 자리에 연구소가 호출되는 일이 많아졌다. 활발한 활동과 역동적인 정치적 분위기의 결과 후원회원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게 됐다.
이에 ‘최근 부쩍 늘어난 회원, 후원회원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활동이 어떤 것일지, 새로운 회원·후원회원을 활동의 중심에 서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찾는 것이 연구소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활동가 조직’을 지향하던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과제였는데, 이는 단순히 ‘한노보연’, 우리만의 과제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높아진 안전에 대한 노동자/시민들의 관심을 어떻게 세상을 바꿀 활동으로 끌어당길 것인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사람들을 현장을 바꾸고 스스로를 조직하는 주체로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답해야 하는, 한국 노동안전보건운동 전체의 과제이기도 했다.

한노보연만이 아니라, 노동안전보건운동 모두의 과제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망 사고와 그 뒤를 따른 전국적 투쟁은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한 단계 더 높였다. 그 뒤로 이어진 2018년 12월 말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 2021년 초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의 과정은 여러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건강권을 중심으로 하는 더 넓은 조직, 더 큰 사회적 영향력 등에 대한 욕구와 자신감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2019년 1천 명이 넘는 회원으로 김용균재단이 노동안전보건단체로 출범했다. 연구소 창립 후 20여년 사이, 민주노조 운동 약화나 전반적인 사회운동 퇴조 속에서 없어진 (지역) 노동안전보건단체들도 여럿 있었지만, 노동안전보건운동에 새로운 계기가 열린 것은 분명해 보였다.
연구소 역시 이런 사회적 분위기 변화에 적극 부응하자고 결심하고, “연단을 확대하고 강화하자”, “일천 회원의 시대를 예비하자”는 목표를 세우게 됐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것도 아주 작은 목표이기도 하다. 활동한 지 20여 년이 넘는 노동안전보건 단체가 많은데, 아직도 대부분의 단체 회원이 1천명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적 상황은 아닐까? 큰 환경운동단체, 시민단체들은 만 명이 넘는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일하는 사람의 건강이라는 너무 당연하고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우리가 그런 숫자의 사람들을 조직하지 못할 것은 뭐람? 민주노조로 조직된 노동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중 노동안전보건단체를 후원하고 회원으로 활동하는 조합원들이 1만명은 넘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마음으로 보면 1천 회원이라는 목표도 아직 너무 소박하기만 하다.

아직은 조심스러운 문 열기와 한발 떼기

그래서 지난 몇 년간은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 ‘한노보연’ 이름으로 함께 활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보건의료전문가, 법률가, 현장 활동가, 학생 대상의 프로그램을 적극 운영하기도 했다. 회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보다, 모두에게 열린 토론회나 세미나 등을 더 많이 열려고 노력하고, 신입회원 대상의 교육을 신입 회원·후원회원 대상 교육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는 단단한 활동가 조직을 지향할 때 하던 것과는 다른 형식과 분위기의 활동들이다.
이런 노력 중의 하나로 한노보연은 20주년이 되는 올해 10월 24일부터, 회원/후원회원의 구조를 허물고 단일조직으로 변모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이런 회칙 변화를 고민하는 가운데 여러 고민과 토론이 있었다. 연구소가 그동안 벼려왔던 선명한 문제의식이 흐려지거나, 노력해서 지켜왔던 원칙적인 행보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20년 동안 한노보연으로서는 아직 도달해본 적 없는 규모이고, 그래서 많은 것들이 새로운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우려는 한노보연을 아끼는 회원들 누구나 할 수 있는 걱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몇 년간 토론하면서, 용기를 조금 더 내 보기로 했다. 회원과 후원회원으로 나누지 않고, 일하면서 내 현장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노동자라면 누구나, 이윤 때문에 사람들이 병들고 다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 누구나 연구소 회원이 되어 활동해보자고 제안해보기로 했다.
1000명쯤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1~2년 사업 계획을 잘 논의할 수 있을지, 이런 사람들이 조직 운영과 다양한 활동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분명히 새로 확인될 다양한 차이는 어떻게 토론해 나갈 수 있을지 겪어보기로 했다. 현실에 대한 소박한 분노나 답답함에서 출발해서 혹은 특정한 한두 가지 의제에 대한 관심으로 연구소로 모인 사람들이, 연구소 활동을 통해 세상과 나의 일터를 바꾸고자 하는 주체로 스스로 조직해 나갈 수 있도록, 연구소 자체를 다양한 회원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변해갈 수 있는 대중운동의 무대로 삼아보기로 했다.
자본주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터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하지 않을 수 있는지 결정할 힘이 없다. 이에 따라 일터의 위험은 불평등하게 분배되며, 이는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떨어뜨리고 연대의 가치를 해친다. 이는 다시 각자가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으로 이어지고, 안전할 권리는 ‘안전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으로 둔갑한다. ‘일하는 사람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와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하는 사람의 존엄과 생명’이라는 조금 넓은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함께 출발해서, 지금의 세상, 지금의 체제를 넘기 위한 활동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노동자의 몸과 마음,
건강’이라는 가치를 지켜보자고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을 새로운 삶의 질서를 수립하려는 단결된 행동으로 엮어 나가는 것이 ‘집단’으로서 한노보연이 하려는 역할이고, 열린 조직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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