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후정의 선언문

공지사항

12.16(토) 다양한 사회운동단위들이 모여 <n개의 기후정의선언대회>를 진행했습니다.

한노보연도 노동자건강권의 운동이 곧 기후정의라는 내용으로, 기후정의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한노보연 명의 기후정의선언문과, <n개의 기후정의선언대회>에서 공포된 공동선언문도 같이 공유드립니다.

선언이 문구에서 그치지 않고 유의미한 활동이 되도록, 한노보연도 꾸준히 함께하겠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후정의선언문

이윤을 최우선 목적으로 작동되는 자본주의의 무한 착취는 지구도 황폐화시켜왔고, 높은 노동강도와 교대노동, 심야노동을 강요해오며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을 위험으로 내몰았습니다. 국가와 자본의 존재하지도 않는 ‘선의’에 기대는 것은 허상이라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작업중지권과 노동자의 노동과정 통제로, 노동자의 몸과 삶에 맞춘 생산을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사회를 재조직할 수 있는 핵심 계급은, 다양한 몸을 지닌 노동자들입니다. 고용 형태나 사업장 규모 등에 관계없이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생산을 통제하고, 위험이 예측될 때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기후위기 시대이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노동자 작업중지권은, 기후위기로 인해 더 심해질 폭염이나 혹한 등 ‘정말로’ 재난 직전을 마주하는 상황을 포함합니다. 더 나아가 일터의 위험을 예방적으로 통제하고, 현장의 기준을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과 삶에 맞출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노동자 작업통제라는 권리 발휘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기후정의 실현!
밤에는 충분히 잠을 자면서 천천히/적게 노동하는 것도,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필요하고 강조되어야 합니다. 한국처럼 야간노동과 주말 노동, 초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곳에선 이들 노동이 전-사회적으로 규제되는 것만으로도 노동시간이 많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일터에 매이는 시간이 감소함에 따라, 서로 잘 돌볼 수 있는 기회가 더 주어질 수 있습니다. 24시간 돌아가는 생산과 소비, 유통의 사이클에 제동을 검으로써, 탄소배출 역시 줄일 수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노동자와 자연을 착취하고 죽음으로 내몰아 온 기업과 정부에, 이들이 만들어 온 다단계 지배구조에 맞섭시다. ‘빨리빨리’와 ‘효율’이 아닌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기준으로 일터와 일상에서 쉴 권리를 쟁취해 나가는 우리의 투쟁이, 자본주의 무한 생산/가속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노동자의 몸과 삶에 맞춘 생산방식과 속도를, 전 사회에 정착해 가는 싸움을 함께 만들어 갑시다!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선언 / 기후정의로 체제전환의 전망을 함께 열어가자 

우리가 서 있는 세계

그 누구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쉽사리 이야기하지 못하는 시대다. 2023년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예정이다.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평균기온은 1.32도 높았으며, 2016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결의한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한계치인 1.5도를 넘는 날도 80일이 넘었다. 올해도 지구 곳곳은 산불, 폭염, 가뭄, 홍수에 시달렸다. 하지만 기후와 관련된 이러한 기록들은 계속 경신되고 기후재난은 더 큰 규모로 반복될 것이다. 인류를 비롯한 현생 생물종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탄소중립, 녹색성장을 외치며 지난 30년 동안 반복된 각국 정부와 초국적 기업들의 해법이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언한다. 시급한 기후대응을 촉구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현실가능한’ 기술주의적, 시장주의적 해법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비현실적’ 방안인 것이다. 전세계 상위 10% 부유층과 100여개의 기업들이 온실가스 대부분을 배출했다는 여러 통계들은 기후위기를 불평등과 체제의 문제로 이끈다. 화석연료가 아닌 다른 에너지원을 사용하고, 더욱 혁신적인 기술을 채택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후위기 대응은, 오히려 ‘체제가 초래한 위기’라는 통찰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렇듯 기후위기가 촉발한 위기 감각은 위태롭게 유지되던 우리 삶의 위기들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주거위기, 고용위기, 보건위기, 돌봄위기, 정치위기 등등. 연이은 위기들의 연쇄는 서로 다른 이름의 위기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체제가 초래한 위기’이자 ‘체제의 위기’라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지금의 체제가 우리가 겪는 삶의 위기들을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직관은 전면적인 체제비판과 전환의 필요성을 절감케 한다. 

누구나 ‘위기’를 말하는 시대다. 모두가 입에 올리는 ‘위기’라는 말이 진부해지자 ‘붕괴’, ‘파국’이라는 더 위협적인 단어가 회자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더 위협적인 ‘말’이 아니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위기’ 그 자체가 아니다. 종말론적 ‘위기’의 홍수 속에서 정작 우리가 처한 위기가 무엇에서 비롯된 위기인지, 누구의 위기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채 홀로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이미 시작된 기후위기처럼, 이 세계는 ‘위기’를 함께 겪을 수 있는 세계인가? 다른 세계로의 전환은 위기에 맞선 ‘공동의’ 실천과 투쟁 속에서만 가능하다.

체제전환으로 재구성되는 기후정의운동

우리는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운동’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책임이 바로 ‘현 체제’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사회적 권력의 형성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현 체제’는 무엇인가. 기후위기를 비롯한 현재 삶의 연쇄적 위기들을 초래한 체제는 바로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그 무엇이든 가장 값싸게 조달하기 위해 착취와 수탈을 서슴지 않고, 그 무엇이든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 이윤을 추구하고 무한 성장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체제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연과 생태계는 수탈의 대상이자 돈벌이 수단이 될 뿐이다. 이윤추구를 향한 자본의 폭력이 사회와 자연을 향해 지구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공통의 인식 아래,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고 이를 전환하려는 모든 운동들이 바로 기후정의운동이다. 기후위기는 바로 이 체제가 다음과 같이 작동한 결과일 따름이다. 

자본주의는 체계적인 재생산 위기를 초래한다. 

무엇이든 가장 저렴하게 조달해, 가장 비싸게 팔아치워야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에 대한 체계적인 수탈과 파괴의 과정이다. 자본은 비인간 생명, 토지, 바다, 광물, 에너지 등을 ‘스스로 존재하고 저절로 이루어진’ 자연이라며 재생과 순환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도 없는 생산요소로 규정하고 마음껏 수탈해왔다. 특히 자본주의적 농업생산은 잉태하는 역량을 파괴하는 자연 수탈의 생생한 현장이다. 사회적 재생산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자 역시 한낱 생산요소에 불과한 자본에게 돌봄은, 가족 특히 여성에게 전가해야할 ‘비용’일 뿐이었다. 장애인, 노약자와 같이 자본주의적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들은 최소의 비용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설에 감금되었고, 비용과 효율 앞에서 돌봄과 상호의존이 들어설 자리는 사라졌다. 주거, 에너지, 교통, 보건과 같은 사회 재생산에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 역시 자본의 돈벌이 수단이 되어가면서, 현재 우리가 겪는 삶의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삶과 권리를 짓밟아 이윤을 쌓는다.

자본주의는 24시간 멈추지 않고, 시간당 상품생산량을 극대화하는 공장을 꿈꾼다. 그래야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노동자에게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노동, 주야간 교대제-야간노동을 의미한다. 24시간 돌아가는 상품생산에 원료를 조달하기 위해 자연은 더욱 수탈당한다. 이렇듯 노동자와 자연을 제물삼아 자본주의는 한편에는 넘쳐나는 상품더미를, 다른 한편에는 궁핍한 삶과 파괴된 자연을 생산한다. 자본에 몸을 맡기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노동자들은 그렇게 몸과 마음을 쉴 권리, 가족과 동료를 돌볼 권리, 인간다운 생계를 유지할 권리,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를 빼앗긴다. 노동자의 삶과 권리를 짓밟는 자본의 속도와 전제적 권력은 공장을 넘어, 사회 전체의 속도와 생활양식을 규정짓고 그렇게 24시간 일하고 소비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자본주의는 차별과 배제를 통해 작동하고 이를 생산한다.

자본주의는 시장에서의 자유와 평등을 약속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자본은 노동력과 생산요소를 구매하는 압도적인 힘이며, 이를 통해 자본의 권력이 형성된다. 자본은 성별/성적지향, 인종/민족, 학력, 장애, 나이에 따른 차별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사회적 차별을 공고히 한다. 자본의 이윤추구 핵심 원리 중 하나는 ‘비용과 피해의 전가’이다. 차별과 배제는 이러한 ‘전가’를 가능케 한 힘이다. 여성, 특히 이주여성에게 돌봄을 전가할 수 있는 것도, 오염산업과 추출산업을 남반구 지역에 떠넘길 수 있었던 것도 차별과 배제의 힘이다. 일말의 책임도 없이 오직 떠넘기기로 버텨오던 자본주의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돌봄위기를 쏟아내며 파산하고 있다. 

다른 세계를 향한 전망과 대안으로, 자본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자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위한 체제전환의 전망과 대안을 요구하고 주장해왔다. 사회생태적 재생산 위기를 통해서만 작동가능한 ‘자본주의적 생산-재생산 체계’를 넘어, 이윤이 아닌 삶의 풍요와 상호의존, 돌봄이 중심이 되는 ‘재생산-생산 체계’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이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이 이윤이 아닌, 생태적 한계 속에서 충족되는 사회적 필요와 풍요를 위한 물적 기반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누구나 돌봄이 필요할 때 돌봄을 받을 수 있고, 누구나 다른 이를 돌볼 수 있는 사회는 돌봄이 이윤논리, 비용/편익 논리에서 자유로운 곳이다. 

또한 우리는 주거, 에너지, 교통, 보건과 같은 삶의 필수재조차 자본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는 현실에 맞서, 기후위기 시대 사회적 권리에 기반한 사회공공성을 요구한다. 위태로운 각자도생의 삶 속에서,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강화하려는 힘에 맞서 평등을 세우고 옹호하는 운동은 기후위기를 함께 겪어내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일터에서 자본의 폭력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세우고 옹호해온 운동은 이제 자본의 자연 수탈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사회적 필요에 따른 생산과 산업재편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적 농업생산 아래 생존권을 위협받아온 농민들은, 자연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농업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체제전환의 전망 속에서 만들어온 다양한 사회운동들의 요구와 주장들이, 기후위기 시대 서로를 연결하며 더욱 절실한 전환의 전망과 대안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석탄발전노동자들이 외치는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일자리 보장은, 에너지 시장화에 맞서 사회가 함께 생산하고 소비하는 필수재의 탈상품화와 생태적 한계와 사회적 필요에 따른 산업재편을 향한 구체적인 투쟁 경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과 대안’은 지금 이곳에 없는 사회에 대한 상상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기후위기 시대 자본에 맞선 전환의 힘과 투쟁을 조직하는 구체적인 경로이자 방향타이다.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운동’으로 모인 우리는 오늘 선언한다. 

기후위기 시대,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한 공동의 실천과 투쟁을 시작하자!  

다른 세계를 향한 전망과 대안으로, 자본에 맞선 전환의 힘과 투쟁을 조직하자!

2023년 12월 16일

선언하라, 모두의 기후정의를!

N개의 기후정의선언대회 참가자 일동

2공지사항활동소식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