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알아보자 LAW동건강] 산재 처리가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일터기사

산재 처리가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이정준(노무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에 따른 각종 급여는 업무를 수행하여 다치거나 직업성 질병을 얻은 노동자들에 대하여, 다양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급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재해자들의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위한 요양급여, 요양 당시의 생계를 뒷받침할 휴업급여가 대표적이다. 그 외 다른 성격의 급여가 있기는 하지만, 산재법의 입법 취지인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에 가장 부합하는 급여는 요양급여, 휴업급여에 해당한다.
이러한 급여를 지급하는 주체는 근로복지공단이지만 최근 공단의 업무 처리 기간이 산재법의 취지에 맞지 않게 상당히 지연되고 있다. 심지어 처리 기간은 근로복지공단의 각 지사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담당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표적인 업무상 질병인 근골격계 질환을 예로 들자면 서울과 경기권에서는 3~6개월, 경상권에서는 1년이 넘어가는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사고성 재해에 의한 사건도 업무상 질병에 비해서는 다소 처리 기간이 빠르지만 그마저도 3개월 정도로, 재해자의 요양을 불안정하고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정말로 상태가 위중한 재해자의 경우 즉각적인 검토 및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나 그렇지 못하고 업무 처리가 지연되어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적어도 요양급여, 휴업급여만큼은 처리 기간의 재고찰이 필요하다.
근로복지공단의 요양급여 신청서에 따르면 처리 기간이 7일로 표기되어 있으나 이는 허울에 불과하다. 기간이 표기되어 있음에도 공단 담당자는 처리 지연 알림 공문을 보내기 바쁘고, 처리 지연에 대한 문의를 하면 민원이 너무 몰리거나 인력이 부족하다는 등의 답변을 준다. 처리 지연 알림이 계속되는 시점에서 정말 도움이 필요하고 산재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재해자들은 오매불망 근로복지공단의 ‘신속한’ 결정을 기다리고만 있다.

산재 처리 기간 지연, 근로복지공단 탓이다? 아니다?
재해자들이 ‘신속한’ 결정을 기다리는 현실은 근로복지공단만의 탓이 아니라고 본다.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 역시도 벅찬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산재 처리가 지연되는 데다가, 담당자가 휴직 또는 퇴직 등으로 부재 혹은 이탈하게 되는 경우 정확하고 적절한 인수인계의 공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의 시스템의 문제, 인력 문제만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공백이 재해자들 입장에서는 커보인다.
절대적인 양은 물론, 공단 인력 대비로도 증가한 산재 건수의 문제도 존재한다. 2020년 1만 8634건이었던 업무상 질병 신청 건은 2023년 2만 8796건으로 크게 증가한 반면 근로복지공단에 소속된 노동자의 수는 기재부의 예산 문제, 승인 문제, 인력 유출 문제 등으로 제자리 걸음이다. 업무량은 증가하는데 비해 신규 충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1차적으로는 재해자들의 ‘신속한’ 결정에 대한 기다림이 막연해지고, 2차적으로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과로로 인해 재해자가 될 가능성도 제기되는 형편이다.
일각에서는 산재 청구를 하는 재해자들을 탓하기도 한다. 너도 나도 산재 신청을 하는 데다, 재직 중에는 산재 청구하지 않다가 퇴직 후 갑자기 산재 신청하는 것이 사회 윤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는 과거 산업 현장의 실태와 현실적인 문제를 도외시하고 단편적인 현 상태에만 집중한 결과라고 본다.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이 인색하였던 과거 산업 현장에서는 안전은커녕 보건 환경에 대한 예방, 사후 조치 및 보상이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산재 은폐가 보편적이었던 과거를 거쳐 현재에 이르러 건강에 이상을 느낀 재해자들이 산재 요양 청구를 하는 것이지, 갑자기 시대적 흐름에 이끌려 신청하는 것이 아니다. 한편 2018년에 비로소 산재 청구 시 필요하였던 사업주 날인 제도가 폐지되었다. 그에 따라 산재 청구 시 사업주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그간의 관성이 남아 있어 재직 중에는 불이익을 당할까 봐 산재 신청을 보류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진폐에 대한 요양 신청의 경우 공단에서 아직까지도 사업주 날인을 요구하고 있다.
지연되는 산재 처리 기간은 결국 어느 주체의 고유한 책임이라고 볼 수 없다. 과거의 관습, 노동 현장, 사회 경제적 상황 등이 작용한 복합적인 문제에 해당하므로 특정한 주체의 책임을 둘 수 없는 바,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투트랙 개입이 필요하다
이제는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단계라고 본다. 과거 열악한 환경을 도외시한 채 산업 발전에만 집중하여 근로자들의 건강을 소홀히 하여 발생한 결과인 만큼 정부가 부담과 책임을 져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업재해 현장 일선에 있는 재해자와 근로복지공단에 지연 처리에 의한 부담과 책임을 줄 일이 아니다.
먼저 현재 발생하는 사고에 의한 재해자뿐만 아니라 과거 열악한 업무 환경등으로 인해 발생한 질병에 의한 재해자를 모두 보살펴야 한다. 일반 사보험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 같은 독립적인 감시 기구의 설립, 실질적인 처리 기간 확립을 위한 인력 충원 등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노동조합의 지지가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향후 발생할 사고와 질병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를 강화하고 지속하여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한 사업주 처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업장의 위험성 평가를 중심으로 안전, 보건 환경의 개선 및 노동자의 참여 등의 재해 예방이 중요하다. 산업재해의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산업재해의 선제적 예방이 병행된다면 산업재해로 고통받는 노동자가 감소하고, 관계자들의 고충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않는다.
종합하자면 산업재해보상에 대한 업무 처리 기간은 그간의 산업재해 발생 전후를 위시한 다양한 악조건들을 대변하는 요소라고 본다. 산재 업무의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부터 근로복지공단을 거쳐 전체 정책 방향을 책임지는 정부까지 모두가 그 책임선상에 위치하므로 지향점을 그리는 정부의 적극적이고 실효적인 개입을 필두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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