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제품 수리도, 서비스도 만족시켜야 해요.” – 삼성전자서비스 방문서비스 엔지니어 B씨 인터뷰

일터기사

“제품 수리도, 서비스도 만족시켜야 해요.” – 삼성전자서비스 방문서비스 엔지니어 B씨 인터뷰

메밀(선전위원)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냉장고 문을 닫으면 된다! 이렇게 넣는 것까지는 간단한데 이후에 벌어질 일이 꽤 복잡하다. 냉장고는 전체 용량 대비 최대 70% 정도만 채우는 것이 좋은데, 코끼리로 꽉 찬 냉장고의 냉각 기능이 떨어지고 경첩과 고무 패킹이 벌어져 결국 냉장고가 고장 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얼른 서비스센터에 연락해 방문수리 서비스를 신청하자. 이윽고 찾아온 수리기사는 아주 능숙한 솜씨로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구한 후, 냉장고 문을 닫아줄 것이다. 냉각 모터도 살펴보고 고장 난 경첩을 다시 조여 이 허무맹랑한 상상으로부터 우리를 일상으로 돌려보내 주리라. 이번 호에서는 11년 차 방문 서비스 엔지니어를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물건의 쓸모를 오래 지킬 수 있도록, 일상이 흐트러진 이들이 얼른 어제와 같은 하루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에는 어떤 리듬과 속성이 있을까.

안녕하세요, 먼저 일터 독자님들께 인사와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조합원이고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가전제품 수리를 담당하는 방문서비스 엔지니어입니다.

반갑습니다. 어떻게 방문수리기사로 일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그전에도 여러 일들을 했었어요. 서점 직원도 잠시 했다가 대학병원에도 있었고요. 건설 노동자로도 오래 일하고, 각종 공장, 냉동 창고에서도 일했었고, 영업과 납품 관련한 일을 하기도 했었네요. 그렇게 다양한 직군을 오가다 가전제품 매장에서 판매영업일을 하게 되었는데요. 매장에 제품 수리하러 왔던 기사님들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것도 제 성향에 맞을 것 같고, 고장 난 가전을 고치는 일 자체도 흥미로워 보이더라고요. 2012년에 입사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해보니 정말 제 적성에 맞는 일이라 재미나게 하루하루 일하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넘었네요.

전자제품이 정말 다양하잖아요. 수리법도 다 다르지 않나요?
그렇죠. 계속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그에 따라 수리법도 다 달라요. 제품 교육도 자주 있고요. 상황별로 몇 가지 매뉴얼은 있지만 설치 형태나 환경에 따라 고장 원인도 천차만별이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많이 익혀야 해요. 많이 경험해 보면서 노하우를 터득하는 게 엔지니어에게 중요한 역량이죠. 제가 그전에 경험한 일은 육체를 훨씬 많이 쓰거나, 머리를 많이 쓰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엔지니어는 두 가지가 동시에 잘 돌아가야 하는 복합노동이더라고요.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거라는 기대를 받고 그에 따른 부담과 책임도 많이 주어지다 보니 사람에 따라 동기부여가 되고 흥미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기도 쉬워요.
게다가 우리는 ‘방문-서비스-엔지니어’잖아요. 이동노동의 피로는 불가피한 덤이고요. 고객을 대하는 일에도 충실해야 해요. 몸과 머리, 그리고 마음까지 평가받죠. 불만이 가득한 상대와 원만히 대화하는 노하우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것도 참 어려워요. 애초에 자기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태도로 방문 기사를 대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요. 어떤 문제가 있으셨냐 물으면, ‘까보면 알 거 아니에요.’ 이런 식인 거죠. 가전제품군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필요한 부품들도 정말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직접 가봐야 알 수 있는 추가 부품도 있는데, 왜 필요한 부품을 미리 다 안 챙겨왔냐고 화내는 사람들도 있고, 심할 때는 두들겨 맞기도 하고 감금당하기도 해요.

감금까지 당하다니 충격적이네요?
오늘 중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다시 오겠다고 안내하는데, 어딜 가느냐고, 다 고쳐놓을 때까지 못 나간다고 문을 잠그고 앞을 막아서고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었어요. 방문서비스를 신청할 때 ‘방문 기사에게 폭언 등을 포함한 폭력 행위를 하면 안 된다. 서비스 노동자가 원할 때는 기본적으로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욕설, 협박, 감금 등은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같은 안내 멘트가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방문 장소의 화장실 이용이 제한되어 있나요?
그게 좀 애매할 때가 많아요. 방문 후에 남의 집 화장실을 왜 쓰냐고 클레임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웬만하면 안 쓰게 되죠. 담당 동네의 주유소 등 열린 화장실 몇 군데는 꼭 기억해 두고요. 참아 버릇하다 보니 점점 더 마려운 줄 모르고 더 참고, 더 참고, 하다가 비뇨기 쪽 문제가 생기는 일도 있어요. 제 주변을 보면 제일 많은 질환이 근골격계질환이고 그다음이 전립선, 비뇨기쪽인 것 같아요.
무거운 걸 들 때가 많으니 다들 허리가 점점 안 좋아지고요. 제품이 무거워질수록 무릎에 무리가 가고 테니스 엘보가 많이 와요. 그리고 가전이 점점 더 무거워져요. 예전 가정용 냉장고랑 지금 쓰는 냉장고는 같은 용량인데도 무게와 부피 차이가 상당해요. 세탁기도 점점 크고 무거워지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이번에 얼마 전에 양쪽 무릎을 차례로 다 수술했고 팔도 좀 안 좋아요.

몸이 성할 수가 없겠네요. 산재 처리는 되는 건가요?
산재 처리는 안 받았어요. 회사에서 병원비에 대해서는 90%를 지원해요. 상병 휴가도 주고요. 그 밖의 복지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사내 복지고, 어떻게 보면 산재율을 줄이려는 거겠죠. 노동법을 준수하고 공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내부 시스템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거죠.

일하는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게 기본이에요. 여름 제외하고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6건 내지 7건 정도 방문하는 것 같아요. 여름엔 장난 없죠. 이 일은 에어컨을 많이 쓰는 여름이 극성수기라 접수 건이 막 열흘 치씩 밀려쌓이곤 하거든요. 방문하면 ‘계절 다 지나고 왔냐.’고 볼멘소리들을 하시죠.

더위가 매년 심해지는데 에어컨 사용량은 더욱 늘어날 테고, 업무는 더 가중되고, 악순환이겠네요.
다른 사람들은 너무 더워서 휴가를 내는 때가 우리는 극성수기라 업무량이 가장 많을 때입니다. 기후가 변해서 갈수록 더워지고, 에어컨은 더욱 가열차게 돌아가고, 그 열기는 실외기로 뿜어져 나와요. 그런데 실외기는 대부분 옥상에 있잖아요. 안에 있는 사람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 가장 뜨거운 날씨, 뜨거운 시간에 뜨거운 장소에서, 그것도 뜨거운 실외기 바람을 맞으면서 일하다가 결국 쓰러지는 경우도 생기죠. 여름이면 매일 열사병 주의하라는 공지를 받지만 ‘주의’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잖아요. 그 상태로 일하다 추락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매년 일어나요. 아파트 베란다 창 바깥으로 설치해 둔 실외기 구조물이 오래되면 느슨해지고 아슬아슬한데 몸무게가 잘못 실렸다가는 큰일이 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난간을 조심해야 하고 크레인을 불러야 한다.’고 교육하죠. 그런데 ‘얼른 여기만 풀어서 조그만 부속 하나만 교체하면 되는데’, 그때 크레인 부르면 올 때까지 30분 기다렸다가, 올라가서 수리하는데 총 한 시간은 넘게 걸립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15분 만에 빨리해 보려고 하다가 실외기 구조물과 함께 저 아래로 떨어지는 거예요.
회사가 업무 압박을 하면 할수록 그런 일이 일어나요. 교육받을 때는 규정대로 하라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오늘 이만큼을 다 하라고 계속 압박을 주는 거예요. 노조가 없고 직고용이 되기 전에는 그 업무량을 다 쳐내느라 새벽까지 일하고 바로 그날 아침 일곱시 반까지 출근했어요. 청소하고 조회 시간에 업무압박이 또다시 몰아치고, 다시 뺑뺑이가 시작되고…. 기사 입장에서도 그 정도로 바쁠 때 바짝 안 하면 성수기 지나고 나서는 최저임금도 못 버니까 어떻게든 그 업무량에 맞춰 움직이려고 하곤 했어요.
지금은 기본급이 생기고 성과급 비중이 줄어서 그때보다는 나아졌어요. 제일 큰 문제는 성과급이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논리에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해도 성과급이 목숨을 감수하고 일할 만큼의 파이는 아니어야 하잖아요. 위험한 직종일수록 성과급의 상한선을 제한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야 해요.
방문수리라는 게 제 생계 활동이자 고객에게는 생활환경의 복구인 거잖아요.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가전을 포함한 생활가전들은 필수재 성향이 강한데 그것들이 고장 나면 생활의 어떤 루틴이 깨지니까요.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고 인간적인 노동을 할 수 있으려면 성과 중심의 능력주의적 보상 체계가 재편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대동사회가 올 텐데. (웃음) 삼성 노조 구호 중에 이런 게 있어요.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 계속해서 바꿔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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