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읽는 노동]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 – SBS 드라마 / 2020.04

일터기사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채은 선전위원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이 끝난 뒤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약 갱신, 트레이드 등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가리킨다. 난롯가에 둘러앉아 여러 가지 정보와 소문이 오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명쾌하고 정확한 몸값

필자는 꽤나 야구광이다. 한동안은 야구 경기 일정에 맞춰 삶을 계획하기도 했을 정도였고, 특히 우승팀을 가리는 진승부가 벌어지는 일명 가을야구 시즌에는 거의 야구에만 빠져있을 정도였다. 야구는 모든 것을 숫자로 표현하는데, 예를 들면, 타율, 타석,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볼넷 등을 통해 각 선수의 능력치를 숫자로 표현하고 이는 명쾌하고, 정확하고, 객관적이다. 이러한 야구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90만 달러까지 된다고 했잖아요. 근데 50만 달러만 써서 허접한 애를 데리고 온 거예요?”

그래도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애라서요.”

그러게 잘난 놈이면 50만 달러에 왔겠어요? 자기 몸값이 자기 능력이잖아요.”

대화 속 야구선수는 몸값50만 달러밖에 안 되는 허접한 선수. 부상도 있고, 소위 잘 나갈 수 있는 기간이 지난 상태에 있는 그냥 그런 선수. 만년 꼴찌팀 드림즈는 50만 달러에 선수를 기용하고 비용 절감의 이득을 얻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긴 잉여비용은 새로운 선수를 사는 데 사용된다. 적은 금액에 굉장히 효과적인 쇼핑을 마친 셈인데 마음 한편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다.

어디 야구팀뿐이겠는가?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일터도 마찬가지이다. 할당된 업무에 대한 평가는 매년 이루어진다. 기업들은 S, A, B, C, D의 등급으로 개인과 팀의 성과를 정량화하고 이에 따라 그 해의 성과급과 다음 해의 연봉, 즉 몸값이 정해진다. 최고의 등급을 받으려면 단순히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 따라서 경쟁이 시작되고, 경쟁은 과한 노동을 가져와 연장근로, 야간근로는 늘 있는 일이 된다. 게다가 옆 동료는 더이상 동료가 아니고 내가 이겨야 할 대상이 된다. 최하위 등급은 반드시 누군가가 채울 것이고, 나는 최하위 등급을 받아서는 안 되니까. 능력 있는 자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능력 없는 자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경쟁으로 인해 켜켜이 쌓여있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은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배제의 도화선이 되고, 이는 일터괴롭힘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명쾌하고 정확한 숫자로 인한 서열화는 인간의 본질과 가치를 몰살시키는 도구로 작용한다.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짜리 사람인지가 우선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받는 연봉이 깎이게 되는데, 당신의 지금 성능으론 그 가격을 주지 못하니 좀 더 일하고 싶으면 떨어진 성능만큼 하향된 가격대를 받아들이기를 권유받기도 한다. 여기에 인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일터를 구성하고 있는 기계이거나 인적 자원’, 물건만이 남는다.

우린 가끔 나는 어떠한 것을 좋아하고, 어떤 성격을 가졌으며,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얼마짜리야라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각자의 본질에 관심이 없다. 대학 입학 성적, 학점, 시험 점수 등 온갖 테스트를 통한 수치, 월급, 연봉 등 각자가 얻어 낸 숫자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그렇기에 진짜 가치를 알아봐 주는 작은 행동이 필요하다. 비록 그것이 정치적 올바름이 강한 것일지라도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속에서 우리가 숫자로 남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몰인격을 인정하는 애석한 일이기 때문이다.



진짜 가치를 알아준다는 것은 뭘까?

이와 관련해, 드라마 속 한 장면 중, 포수 서영주에 대한 서사는 꽤 인상적이다. 야구 포지션 중, 포수는 가장 중요하지만 투수의 빛에 가려진 안타까운 자리이다. 사실 포수는 야구 경기 전체를 읽어내는 포지션이기에 그라운드 안의 감독이라고도 불리는데 말이다.

극 중 서영주는 만년 꼴찌팀 드림즈의 포수다. 현재 야구에 대한 열정보다는, 개인의 능력치를 높이는 것과 몸값을 높이는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모든 선수의 연봉 삭감의 위기 상황에서도 본인의 입장만을 고수한다. 그도 그럴 것이 포수 서영주는 온갖 고질병에 시달린다. 포수는 경기 내내 쪼그려 앉는 자세를 취해야한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방향에 쉽게 따라가려면, 혹은 도루하는 선수들을 즉각 방어하려면, 순간적인 자세 변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로 인해 땅바닥에 편하게 엉덩이를 대고 앉지 못하고, 엉덩이를 공중에 띄워 앉은 것도 아니고 서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여야만 한다. 이를 보여주듯 극 중 포수 서영주의 무릎은 물로 가득 채워져 있고(그래서 늘 물을 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치질 등 항문 관련 질환 등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허리 또한 망가진 상태이다. 이렇게 몸이 망가졌으니 그만큼 보상받아야겠다는 독한 맘으로 연봉 협상 과정에서 거칠게 행동한다. 그렇게 고집을 꺾지 않고 사납기만 하던 포수 서영주는 단장 백승수의 한 마디에 이 마음이 누그러진다.

 

다치지 말고 뛰세요.”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는 단순한 말이나 운동하는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받았다고 느낀 것일까. “지금 저 걱정해 주시냐고요.”라는 포수 서영주의 대사는 그가 진정 원했던 대접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우승을 위해 몸을 망가뜨려야만 하는 야구선수에게 당신의 건강이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말 한마디, 나는 당신이 다치지 않고 오래 선수 생활을 하기 바란다는 내심의 의사가 닿는 순간 그 선수는 인적 자원이 아니라 인간이 된 것이다.

일터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숫자에 따라 매겨지는 거짓된 가치를 벗어나고 싶은 것. 그건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단순히 조직 내 부품이 되어, 그리고 항상 평가의 대상이 되어, 앞으로 계속 사용될지 혹은 폐기되어 버려질지 모르는 처지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격체가 되는 그 순간. 우리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주하려는 것. 사실, 그게 서영주와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39일터기사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정신질환과 자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2020.05

일터기사

정신질환과 자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여진 업무상 정신질환 연구팀

 

1. 들어가며

정신질환과 자살 모두 논란이 많은 영역이다. 현재 정신질환 자체를 부정하는 고전적인 반정신의학적 도전은 잦아들었다고 하더라도 일부 질환에 대해서는 그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정신질환에 대한 공식적으로 내려진 명쾌한 정의는 없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임상가들은, ‘상당기간 지속되는 인지적, 정서적, 지각적(perceptual), 행동적, 기타 심리적인 역기능적 변화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신체질환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논쟁이 더욱 활발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필자는 정신질환의 특수성, 특히 분류와 진단에 있어서의 특수성을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자살과 정신질환과의 연관성과 그 논란에 대해서도 덧붙이고자 한다.

 

2. 신체 질환과 다른 정신질환 진단의 특징

정신질환의 증상과 징후는 단순히 개인의 생존 기능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인 관계나 직업적 수행을 포함한 사회적 기능의 변화를 통하여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꼽아볼 수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 현상보다 심리학적 현상, 그보다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더 높은 층위에 자리할수록 더 복잡한 기제들의 조합에 노출이 되며, 의도를 갖고 실천하는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개방된 체계에 가까워진다.1) 이러한 이유로 정신질환의 원인부터 증상의 발현까지 여러 층위의 무수한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무엇이 직접적인 원인인지 알기가 대체로 (신체질환보다) 어렵다. 더구나 사회적 규범에 따라 문화적 배경에 따라 이러한 정신과 행동의 변화는 달리 평가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정신질환의 개념과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정신병적(psychotic)이라면, 현실적으로 정의를 내리기보다 어떤 때정신병적이라고 하는지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2) 현실 검증력이 손상되었다고 판단될 때 어디서부터 현실검증력(reality testing)’이 손상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신체질환 역시 정의와 진단기준을 둘러싼 무수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데다, 자료와 근거(유전학, 역학 등의 연구결과)가 축적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임상적 지침 역시 개정과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관건은 신체질환이건, 정신질환이건 당시의 과학적 근거들에 뒷받침된 최선의 결론이었는지 여부일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진단기준이나 척도상 절단점을 단지 잠재적인 합의로 받아들여야 한다.

끝으로 정신질환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불확실성을 지닌다. 뚜렷한 예측 인자들이 부재하는 데다, 당사자의 성향이나 인지기능, 사회적 자원 등의 상호 작용으로 증상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증상이 고정적이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사회적 관계는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 사람들 간에 형성되어 상호작용이 일어나는데, 정신질환의 증상이 여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거꾸로 사회적 상호작용이 증상의 발현이나 중증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연히 진단명은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진단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진단은 자의적인 딱지 붙이기(labelling)을 지양하고, 치료에 있어 체계적인 도움을 주고, 사회적 지원, 법적 배/보상 등의 사회적 개입의 준거를 마련하여 이를 정당화해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신질환의 진단 분류는 자연과학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자연과학적 근거들이 등장한다면 한 질환이 두셋으로 나뉘거나 분류 체계상 거리가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있음은 물론이고, 사회 환경적 변화로 인해 더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어폐기된 진단도 적어도 일부 생길 수 있다. 덧붙여 병인론적 기제가 밝혀지지 않은 점들이 많아 신체 질환에 비해 월등히 현상학적인 방법을 많이 쓴다는 점도 상기한 불확실성에 더 기여하고 있다. 증상은 각기 특정한 패턴으로 군집하여 나타나므로, 우리는 서로 다른 정신질환을 논할 수는 있다.3)

그렇다면 정신질환은 왜 생기는가? 가장 간단한 대답은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여기서 유전이라는 말은, 가족력이 있다는 뜻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현재까지 적지 않은 유전학적 성과들이 진단분류학에 기여하고 있는데, 흔한 오해와는 달리 유전학이 곧 결정론은 아니다. 반대로 환경의 영향을 강조하는 결정론도 있을 수 있다. 최근 환경적인 영향이 유전자 일부를 활성화하거나 억제한다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주목을 받고 있다.4) 사족으로 유전적 영향이 크다고 하여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생물학적 치료만 가능하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한편, 환경적 요인에는 초기 생애적 환경(대개 정신치료는 여기에 초점을 둔다)도 있으나, 출생 전 태내 환경, 물리적/화학적, 사회적 환경 등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정신질환이 나타나는 이유는 생물학적 변화로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증상이 발현되는 것은 물리적, 화학적 뇌손상 때문이기도 하고, 이른바 신경전달물질 간의 불균형과 조절실패에 대해서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의학적 처치의 표적이 된다. 그러나 과연 이들을 문제의 원인이라고 일컫는 것이 온당한가? 차라리 질환을 구성하는 결과가 아닌가? 조현병, 우울장애, 자폐증, ADHD등 환자들의 뇌발생상의 기능적, 구조적(비특이적) 이상의 근거들 역시 마찬가지이다.5) 환경적 요인들에 대한 개입이 무척 중요할 법한데도, 정신질환에 대한 1차적 예방질환 발생의 결정 요인에 대한 개입은 신체질환에 비해서도 거의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정신질환만큼 개인화, 의료화가 문제인 영역이 있는데 바로 자살이다.

 

3. 자살과 정신질환, 그리고 논란

먼저 자살과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쓰이는 교과서인 Synopsis Of Psychiatry를 보면, 최대 95%의 자살 성공자들에게 정신질환이 있었으며, 우울증(80%), 조현병(10%), 치매나 섬망(5%), 알코올 의존(25%)이 차지한다고 한다. 정신과 환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3~12배가량 자살 위험도가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 기반하여 현 산재보상보험법 상 원칙상 자살을 고의적 자해의 일부로 보고, 산재 보상의 대상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정신적인 이상 상태에서 실행했을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는다.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고려할 때 대부분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지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왜곡된 인지가 현실검증력의 저하와 동의어인지도 의문이 남는다. 앞서 현실검증력 저하 상태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은 언급하였다. 또한 정신질환의 결과로서의 자살이 틀림없다고 할지라도 그 개인의 동기는 고통으로부터의 탈출, 타인에 대한 복수, 자기 징벌 등 여러 양상을 보일 수 있기에 개인의 의도가 어디까지인지를 고려한다면 더욱 복잡하다.

물론 질병에 의한 결과로 간주하는 것은 장점이 있기는 하다. 남겨진 이들에게 적잖은 위안을 주며, 업무상 자살에 대한 보상을 비교적 쉽게 합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럼에도 자살의 의료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은 작지 않다. 어려운 철학적인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지금까지 정신질환의 사회적 관리나 예방에 관한 주류의 행보를 본다면 충분히 우려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자살의 원인은 운 나쁘게정신질환이 걸린 탓으로 되어, 고위험군 대상으로 한 정신질환에 대한 조기발견과 전문가에 의한 개인 치료가 강조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살이 발생한 사회적 경제적 맥락은 삭제되어버리고 만다.

 

4. 맺음말

이상으로 짧게나마 정신의학의 전통적인 견해, 이에 대한 비판, 그리고 필자의 관점에 대해 다루었다. 최근 일과 정신건강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활동가들의 고민도 깊어진 것으로 안다. 전술하였듯이 정신질환과 자살에 관한 논란의 지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는 일터의 정신건강 증진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질환과 질병이라고 부르는 결과에 이르기 전에 각종 위험요인들, 특히 환경적 요인을 통제하는 1차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신체 건강에 대한 사회환경적 요인의 중요성도 인정하지 않는 의사나 기타 전문가들이 대다수인데, 정신적 건강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1) 베르트 다네마르크 외 저. 이기홍 역. 2005. 새로운 사회과학방법론 :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파주 : 한울아카데미.

2) Fulford, B. 2004. Insight and delusion: from Jaspers to Kraepelin and back again via Austin In X. Amador Ed, Insight and Psychosis, Awareness of illness in Schizophrenia and related disorders 2nd ed, pp. 51-78.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3) Sims, A. . 김용식, 김임렬, & 정성훈 역. 2003. 마음의 증상과 징후(3)서울 : 중앙문화사.

4) 그리고리 L. 프리키온, 애너 이브코비치, 앨버트 S. 융 저. 서정아 역. 2017. 스트레스, 과학으로 풀다 : 더이상 스트레스에 반응하지 않는 방법서울 : 한솔아카데미.

5) Sadock, B., Sadock, V., & Ruiz, P. 2015. Kaplan&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Behaviora Sciences/Clinical Psychiatry (11th ed). New York: Wolters Kluwer.

42일터기사

[연구리포트] 노동시간에 관한 사회학 연구 동향 / 2020.05

일터기사

노동시간에 관한 사회학 연구 동향

 

신희주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이 글에서 소개할 노동시간의 건강관련성을 다루는 논문들은 노동시간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이라 필자가 분류한 것들이다. 사실 노동시간은 배타적으로 사회학적 주제는 아니며, 다양한 사회과학과 의학·보건학적 주제이기도 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대 사회학의 수많은 연구 주제들이 실제로 경제학, 역사, 철학, 정치학 등 사회학보다 등장이 빨랐던 오래된 학문들에서 다루어 왔던 것들을 재구성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학문들은 학문 자체의 정통성을 유지하기보다는 변화된 요구에 맞는 학제 간(interdisciplinary)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회학 역시 인접학문과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별개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과학기술, 의료·건강 분야까지 학제 간 연구가 이루어진 지 오래되었다.

사회학을 학문으로 정착시키는데 선구적으로 기여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Emile Durkheim)은 이미 130여 년 전에 우울과 자살이 정신병리학적이거나 심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요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현상임을 강조하며, 사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자살의 현상을 사회적으로 연구하기도 했다. 따라서, 사회학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의학과 심리학의 영역과도 처음부터 밀접하게 교류하던 학문이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세 편의 사회학적논문들은 노동시간을 구성하는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사회적 배경에 대한 고찰을 기반으로 노동시간이 개인의 건강, 그리고 그들이 속한 사회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제 간 연구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논문들이 수록된 학술 저널들 (Social Science & Medicine,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보건과 사회과학) 들의 제목들은 그 자체로 사회과학과 의·보건학을 접목하고 융합시키는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얼마의 노동시간이 필요한가?

소개할 첫 번째 논문은 주당 근로시간의 단축: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얼마의 노동시간이 필요한가?(A shorter working week for everyone: How much paid work is needed for mental health and well-being?)이다.

이 논문은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일자리 없는 미래에 대해 갖는 불안감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쓰여 왔던 인공지능의 개념은 이제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하고 일상화되었으며, 노동의 공간까지 침투하여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직업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직업까지 위협하는 불안정노동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고 있다. 산업사회 이후에 늘 존재해왔던 불안감이었지만, AI의 발전은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직업의 상실로 대규모 실업 사태를 야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시간 노동 대() 과소 노동 혹은 실업이라는 노동의 양극화라는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실업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사회적 소외, 음주, 흡연 등의 생활습관으로 인한 여러 가지 건강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며, 수입의 감소나 부재로 인한 빈곤의 확대, 사회적 불평등과 관련된 요소이다. 이런 점에서 직업은 개인에게 수입을 보장해주는 명시적 기능 이외에도 시간을 일상적으로 구조화하고 체계적으로 보낼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직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접촉, 구성원들 간 공유된 목적의식, 노동자의 정체성 형성 등의 잠재적 기능 역시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논문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직업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보다 직접적으로는 일하는 사람들이 최상의 건강상태를 누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주당 노동시간이 필요한지를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본 논문의 몇 가지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실업 상태였거나 비경제활동상태였다가 고용상태가 된 사람들이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근로시간은 주당 1~8시간, 즉 일단 고용되어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2) 삶의 만족도는 주당 8시간 근무까지 지속적으로 증가를 하지만, 8시간 이상의 근무는 특별히 삶의 만족도와 관련이 없다, 3) 이전에 실업이었거나 비경제활동상태였다가 고용된 여성들은 20시간 이상 일할 때 높은 삶의 만족도를 나타낸다.

2, 3번의 결과에 대해 저자는 개인의 삶의 만족도가 단순히 일자리 여부나 높은 수준의 임금과 단선적으로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수당 등의 사회복지 체계가 그들의 노동조건과 어떻게 맞물리는지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한다. , 연령이나 가족구성에 따라 결정되는 노동시간에 대한 수당(benefits) 수입이 노동시간 만족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논문은 야심차게 던진 삶의 만족도와 정신적 건강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적정 노동시간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는 일관된 결과를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몇 가지 결과들로부터 삶의 질의 향상과 심리적 부담을 가장 적게 느끼는 노동시간은 주당 8시간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들은 정상적 풀타임 노동시간이라 여겨지는 40시간 노동이 정말 정상적인가라는 상당히 공격적 문제를 던지는 한편, 노동자들의 정신건강과 사회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장기 휴가 후 단시간 노동하는 업무로의 복귀 등의 혁신적 정책 또한 실험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도 제시한다.

 

병원노동자의 일·삶 균형을 위한 근무시간 변화

두 번째 논문은 근무 시간의 변화가 교대제 근무를 하는 병원 노동자들의 일생활 갈등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Are changes in objective working hour characteristics associated with changes in work-life conflict among hospital employees working shifts? A 7-year follow-up)인데, 이 논문은 핀란드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서베이를 이용한 병원 근무자들의 일생활 균형에 관한 연구다.

우리 사회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워라밸의 대조적인 개념인 일생활 갈등(work-life conflict)은 노동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저해하는 가장 큰 심리사회적 위험요소로 꼽히는데, 그 중에서도 일과 가족생활 간의 불균형이 가장 대표적인 일생활 갈등일 것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사람들(특히 여성들)의 경우 자녀 양육 문제는 노동시간의 문제와 중첩되어 이중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갈등은 그들의 삶의 질을 낮추고, 직업 스트레스, 수면장애, 우울증, 병가의 가능성을 높이며, 사회적으로는 생산성을 저해하여 고비용을 발생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생활 갈등을 발생시키는 노동시간 형태는 교대제 이외에도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이나 주말노동 등과 같은 비표준화된 근로시간, 혹은 비상 대기업무 (on-call) 등이라 할 수 있다.

이 연구의 결과들은 비표준적 노동시간의 영향성을 연구한 다른 논문들과 대체적으로 일관된 내용을 보여주는데, 우선 교대제의 경우 오후(evening)근무나 야간(night)근무 비율이 증가할수록 일생활 갈등이 더 빈번하게 나타나며, 주말 근무가 빈번해질수록 역시 갈등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근무를 끝낸 지 11시간 이내의 업무 복귀를 뜻하는 급속복귀(quick return)48시간 이상의 장시간 근무 역시 교대제 밤 근무와 마찬가지로 부정적 건강 영향성을 갖는다.

우리 사회에서도 병원은 사회적 요구에 의해 경찰, 소방서 등과 함께 교대제 노동이 필요한 곳이라 인식된다. 그러나 공공서비스 분야라 하더라도 야간노동은 신체리듬을 교란시켜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고, 가족생활이나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야간노동의 환경 개선, 인력과 예산의 충분한 확보, 그에 따른 합리적 근무 스케줄의 구성 등을 통해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시간 불일치와 노동자 건강

세 번째 논문은 보건사회연구에 게재된 노동시간 불일치와 근로자의 건강과의 관계 분석이다. 노동시간 불일치는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선호하는 노동시간과 실제 노동시간이 차이가 나는 것을 뜻하며, 이러한 불일치의 발생 원인은 장기계약, 일자리 불안, 규제, 정보의 비대칭성, 소득불평등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경우, 임금 노동자들의 실제 노동시간은 46.5시간이며, 선호 노동시간은 45시간가량으로 원하는 시간보다 1~2시간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노동자들의 28.5% 가 과잉노동을 그리고 과소노동을 하는 비율은 11.4%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다.

노동시간이 사용자와 노동자들 간의 동등한 교환관계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라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전제와는 달리,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실제로는 노동시간을 선택의 자유가 거의 없기에 개인이 원하는 시간보다 적은 시간 혹은 많은 시간 일을 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작업량이 많거나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때, 고용상태가 불안하고 작업성과에 대한 압력이 증가할 때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고 이는 노동자 개인의 건강과 생활뿐만 아니라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과소 노동은 비정규 및 시간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저임금, 직업 안정성의 저하, 삶의 예측 불가능성 등으로 인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많은 경우 우울 등의 정신적 문제를 겪으며 알콜 의존성 역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연구의 목적은 한국에서의 노동시간 불일치와 노동자 건강 간의 관계를 분석하여 노동시간 정책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주당 44~49시간보다 적게 일하거나 많이 일하는 경우 모두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으며, 특히 자신이 선호하는 노동시간보다 실제 노동시간이 적어지거나 많아지는 경우 모두 부정적 건강영향을 띤다. 초과노동의 경우에는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의 설명과 맥락이 일치한다. 과소노동의 경우에는 실제 노동시간은 짧지만, 그만큼 원하는 임금 수준에 도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가 낮아지게 되고, 나쁜 습관(알콜, 흡연, 신체활동의 제한 등)에 의한 건강 악화를 경험할 가능성이 많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과소노동과 과잉노동에 대한 연령효과도 주목할만하다. 주로 가정을 가진 연령대인 30, 40대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과잉노동에 대해 수용적인데, 이는 승진 등의 고용상 보상동기가 강해 금전적 보상이 없어도 장시간 노동을 수용하는 경향이 나타나며, 보상이 있는 경우 장시간 노동과 건강 간의 부정적 관계는 완화된다는 것이다.

 

노동시간연구가 더 활발히 이뤄지길

누구에게나 시간은 늘리거나 줄일 수 없는 제한된 자원이며 삶 자체이다. 노동시간은 근본적으로 인간들이 자신들의 삶을 구성하는 데에서 자신의 욕구와 사회적 필요에 의해 노동하는 사람 스스로에 의해 자율적으로 배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노동시간에 의해 삶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은 바로 그 삶의 위협 때문에 노동하게 되는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에 대한 학제 간 연구들이 더욱 활성화되어 노동시간과 삶의 질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도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논의할 수 있길 바란다.

35일터기사

[연구리포트] 노동시간 연구동향 살펴보기 – 건강영향을 중심으로 / 2020.04

일터기사

노동시간 연구동향 살펴보기 건강영향을 중심으로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센터장

 

노동시간센터에서는 노동시간 관련 연구, 정책, 언론 동향에 대해 일터에 싣고자 합니다. 연구 분야는 의학분야와 사회학 분야를 나누어 각 분야별로 3~4개월에 1회씩 노동시간 관련 동향을 다루게 됩니다. 이번 4월호에서는 노동시간과 건강을 주제로 다룬 최근의 의학 분야 연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노동시간과 건강의 문제를 다룬 연구는 장시간 노동이나 교대근무가 건강에 나쁘다는 우리의 직관을 확인하게 하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근거가 됩니다. 모든 연구가 그렇듯 노동시간 관련 연구에서도 우리의 현실을 왜곡하고 잘못 해석한 연구들이 잘못된 정책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연구가 실천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연구를 위한 연구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노동시간센터에서는 실천연구, 현장연구를 수행하고, 연구결과를 사회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 동향을 공유하는 것은 연구결과의 사회화를 위한 작업 중 하나입니다.

노동시간과 건강문제를 다룬 연구들은 노동시간의 어떤 요소를 다루느냐, 노동시간과 어떤 건강영향의 문제를 다루느냐, 어느 집단의 문제를 다루느냐, 연구방법이 타당한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연구인지 등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동시간은 주로 노동시간의 길이를 중심으로 장시간 노동을 일정하게 정의하고, 이의 영향을 분석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간에 일하느냐의 문제, 즉 교대제와 야간노동의 영향을 다루는 것도 노동시간 연구에서 중요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노동시간의 밀도를 다루는 노동강도의 문제나 직무스트레스와 같은 노동의 질적요소 등도 노동시간을 다룰 때 노동시간의 주요한 요소로 정의하거나 고려하게 됩니다.

노동시간의 건강영향은 그동안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뇌심혈관계질환을 중심으로 많이 다뤄졌는데, 최근에는 암발생이나 악화, 유산이나 불임과 같은 생식독성, 간 질환에 대해서도 다뤄지고, 문제음주나 흡연, 약물중독과 같은 건강행태, 결근이나 프리젠티즘과 같은 생산성의 문제를 다루는 연구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산업구조, 기술의 변화를 반영하여 과거 제조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연구들이 최근 들어 서비스, IT, 공공영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시간 연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단순 설문조사로 현재 노동시간과 건강문제를 질문하는 연구도 있고, 노동시간의 구체적인 요소를 변수로 만들어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건강 문제를 증상만 다루기도 하고, 객관적인 질병을 확인하여 노동시간과 관련성을 보기도 합니다. 장기간 관찰하며 건강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면접을 통해 노동시간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건강에 영향을 주는지 밝히기도 합니다. 더 좋은 자료를 만들어 진행하는 연구가 더 좋은 연구가 되겠지만, 자료 접근이 어려운 경우도 많고, 우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는 연구비를 지급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적거나 감추고 싶은 연구이기도 해서, 좋은 자료를 확보할만한 시간과 돈, 접근의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비를 누가 냈고, 연구자가 누구이고, 자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연구가 진행된 맥락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노동시간과 건강문제를 다룬 대표적인 학술지는 영국에서 발간하는 직업환경의학(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북유럽직업보건학회에서 발간하는 스칸디나비아 직업환경보건 학술지(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 일본에서 발간하는 직업보건학술지(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그리고 우리나라 직업환경의학회에서 발행하는 대한직업환경의학회지(Annals of Occupatioanl and Environmental Medicine)가 있습니다. 모두 영문으로 작성되어 있고, 유료로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국내 학술지도 영문으로 작성하고 있어 아쉬움이 많습니다. 필자는 많은 학술지 중에 영국과 북유럽, 한국에서 발간한 학술지를 중심으로 최근 6개월 동안 노동시간을 다룬 연구들을 살펴보았고, 이번 글에서는 5개의 연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출퇴근 시간과 건강관련 행태연구

첫 번째 소개하고자 하는 연구는 영국에서 발간한 직업환경의학 학술지에 실린 출퇴근 시간과 건강관련 행태(Commuting time to work and behaviour-related health: a fixed-effect analysis).” 입니다. 스웨덴에서 진행된 연구로 통근시간이 길어지는 것과 신체활동의 감소, 수면장애, 문제 음주 등이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신체활동의 감소는 비만, 심혈관계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문제여서 최근 장시간노동과 심혈관계질환의 관련성을 설명할 때 자주 활용하는 중간단계의 건강지표입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노동시간을 단지 일하는 시간으로 한정하지 않고, 비록 출퇴근 시간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삶의 영역으로 노동시간의 개념을 넓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출퇴근 시간은 노동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노동시간의 영역으로 정의할 수도 있고, 혹은 노동시간의 영역에 포함하지 않더라도 삶의 영역은 노동시간에 영향을 받는 시간입니다. 또한 거주하는 장소와 직장의 거리는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연구를 한국에 적용해 본다면, 일단 도시, 농촌의 결과가 좀 다를 듯합니다. 워낙 장시간 노동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출퇴근 시간의 영향은 미미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장시간 노동과 사고, 자살의 관련성

두 번째 소개할 연구는 북유럽 저널에 실린 한국에서 장시간노동과 사고, 자살의 관련성, Association of long working hours with accidents and suicide mortality in Korea”.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시는 이혜은 선생님이 1저자로 쓰신 논문입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통계청 사망자료와 연계해서 분석한 논문으로 노동시간과 사고, 자살에 의한 사망의 관련성을 밝힌 연구입니다. 45~52시간 근무자가 35~44시간 근무자에 비하여 자살 위험이 3.89, 52시간 초과 근무자는 3.74배로 높게 나왔고, 연령, , 소득수준, 교육수준, 직업, 우울증상이 동일하다고 통계적으로 보정한 이후의 결과입니다.

장시간 노동이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는 비교적 다수 있었지만, 자살과 관련이 높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해준 연구는 매우 드물고, 통계청 사망자료와 같이 객관적인 자료를 이용하였고, 단면 연구가 아닌 시간을 두고 관찰한 연구라는 점에서 매우 확정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장시간 노동을 많이 하는 나라가 드물고, 자살의 발생이 높은 나라에서 진행할 수 있는 연구였습니다. 산재보상에서 근거로 제시되어야 할 논문이지만, 무엇보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의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연속 야간근무가 수면에 미치는 영향

세 번째 소개할 연구는 앞서 논문과 같이 북유럽 학술지에 실린 덴마크 연구로, “연속적인 야간근무 횟수가 수면시간과 수면의 질에 미치는 효과(The effects of the number of consecutive night shifts on sleep duration and quality).” 입니다. 경찰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인데, 야간노동을 연속해서 할 때, 어느 정도로 연속해서 근무하면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이 나빠질 수 있는지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야간 노동을 안 할 수 있으면 좋고, 불필요한 야간 노동을 줄이는 노력이 먼저여야 하지만 경찰서, 소방서, 병원 등 공공영역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일부는 불가피하게 야간노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야간노동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건강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생깁니다.

한노보연에서는 좋은 교대제는 없다라는 책을 발간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좋은 교대제란 없습니다. 심지어 공공영역에서도 불가피한 야간 노동이라는 말은 너무 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24시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자본주의는 24시간 공공서비스의 필요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연속해서 수행하는 야간노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면시간과 질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좋은 교대제란 없습니다.

 

노동시간과 탈모의 관련성

네 번째로 소개할 연구는 대한직업환경의학회지에 실린 노동시간과 탈모약 복용의 관련성(Relationship between working hours and probability to take alopecia medicine among Korean male workers: a 4-year follow-up study).” 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건강검진 자료를 이용하여 노동시간과 탈모 간의 시간적 선후 관계를 반영한 연구입니다. 연구 결과, 노동시간이 긴 집단에서 탈모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뚜렷이 높았습니다. 탈모가 있는 것과 탈모약을 복용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장시간 노동이 탈모와 관련이 있다고 해석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시간 노동의 영향이 매우 다양하게 검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입니다.

 

장시간 노동과 결혼상태 변화의 관련성

마지막으로 소개할 연구는 역시 국내에서 발간한 학술지에 실린 연구입니다. 제목은 장시간노동과 결혼상태 변화의 관련성, The association between long working hours and marital status change: middle-aged and educated Korean in 20142015”. 여성의 노동시간이 60시간 이상이면 40시간 이하인 경우보다 이혼, 별거의 가능성이 4.26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이 연구에서 특징적인 결과는 남성의 노동시간은 결혼상태 변화와 관련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렇듯 노동시간의 영향은 직접적인 건강영향뿐 아니라 사회적 건강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사회적 건강을 매개로 건강행태, 건강문제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노동시간의 영향이 젠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특징도 확인됩니다. 노동시간의 문제는 우리나라 가정에서 고정화되어 있는 성역할, 양육의 책임 등의 문제와 긴밀한 관계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국내에서 노동시간과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들은 국내자료를 이용한 연구가 증가하고 있고, 심혈관계질환이나 우울증을 넘어 탈모, 수면 등 다양한 건강영향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행태, 사회적 건강 등을 연구주제로 삼기도 하고, 노동시간의 길이뿐 아니라 야간노동의 주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현실에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입니다.

 

48일터기사

[연구리포트] 지방자치단체 노동안전보건정책 현황과 과제 / 2020.01

일터기사

지방자치단체 노동안전보건정책 현황과 과제

 

류현철 소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 선전위원회 편집

 

지자체와 교육청은 그 장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상의 사업주로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하며, 더불어서 관내의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안전보건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지원업무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역사회 내에서 노동안전보건, 지역안전 의제에 대한 요구도 점차 높아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각 지자체가 지방 행정 전반에 노동자들의 생명권, 건강권의 관점을 도입하고 노동안전보건과 지역안전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이행전략을 내오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종합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노동안전보건행정 실태조사 결과 : 기구·조직, 조례 등

현재 지자체 수준에서 노동안전보건 행정과 관련한 제도 마련은 매우 미흡한 상황으로 평가된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로서 노동안전보건조례가 제정된 곳은 경기와 경남밖에 없으며, 실제적인 지자체의 노동안전보건 행정을 담당하는 직제가 편성된 곳도 서울과 경기에 불과하다. 경기의 경우에는 노동안전보건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있어 형식과 내용적으로 가장 진전된 지자체이다. 서울은 노동안전보건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반면, 전담부서와 산업노동안전 외부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지자체 산업안전보건 정책을 수립해가고 있다. 경남은 조례가 제정되어 있으며, 전담부서는 아니지만 일자리 경제국 노동정책과에서 산재 예방 업무의 일정 부분을 주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경우 전담부서는 없으나 인권노동정책담당관이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노동안전보건 관련 조례는 아직 제정되지 않았으나 노동자 권익보호 및 증진을 위한 조례에 따라 설립된 노동권익위원회에서 관련 주제를 상당부분 다루고 있고 노동안전보건 조례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 서울, 경남, 부산을 제외하고는 지자체의 독자적인 역할과 정책 기능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감정노동자 보호 관련 정책 현황

감정노동과 관련해 조례의 적용대상은 사용자의 적용범위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서울, 광주, 전북, 전남은 사용자와 더불어서 도와 공사, 용역 기타 유사한 계약을 체결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법인 및 개인계약 사용자로 정의하고 조례의 적용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서울과 광주시는 지자체장이 감정노동자를 위한 노동환경개선계획, 실태조사, 권리보장교육, 실태조사 결과 필요시 경영평가 반영, 가이드라인과 모범 매뉴얼을 배포하도록 하고 있으며, 두 지자체의 조례가 감정노동자 보호 관련 조례의 대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외의 지자체는 다소 차이는 있으나 보호 계획의 수립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대부분 의무로 규정하기보다는 수행할 수 있는 권능의 부여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적극적인 정책 실현의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서울, 부산, 광주, 대전, 경기, 경남의 조례는 감정노동자를 지원 및 보호를 위한 위원회와 사업을 수행할 센터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강원과 전남은 지원센터, 전북은 위원회에 대해서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 광주, 대전의 경우에는 실태조사의 결과를 기관평가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광역지자체별로 감정노동자 보호 관련한 조례의 이행수준에 편차가 높게 나타났다. 서울, 광주, 경기는 조례에서 규정한 감정노동자 종합계획을 수립하였다. 서울시는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위원회를 운영하고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 종합계획 수립, 감정노동보호 가이드라인 배포 시행,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개소 등 이행수준도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경기 역시 경기도 감정노동자 보호 및 건전한 근로문화 조성계획수립, ‘경기도 감정노동자권리보장 위원회개최, 여성 감정노동자 지원 프로그램운영, 감정노동자 권리보호 및 치유 전문 인력 양성 워크숍을 개최하였다. 광주는 광주시 감정노동자의 권리보호와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감정노동자 보호 종합계획수립, 감정노동자 보호 가이드라인 배포, ‘광주시 감정노동자 보호위원회개최, 공공부문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힐링 교육 등 지자체 차원의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외의 지역에서의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지자체의 구체적 활동은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화학물질 안전관리 및 지역사회 알권리 관련 조례제정 현황

지자체별로 화학물질 안전과 지역사회 알권리와 관련된 조례는 2019831일을 기준으로 광역 12, 기초 35개 총 47개 지자체 (/구 조례 7개 포함)에서 제정되어 있다. 조례에서 규정하는 화학물질 안전관리계획의 실제적인 수립 현황과 내용적 검토, 화학물질 안전관리 위원회의 구성 및 실제적 운영여부에 대한 사항들에 대해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광역 : 경기, 충북, 인천, 전북, 부산, 광주, 전남, 울산, 경남, 충남, 강원, 대전

기초 : 군산, 양산, 광주광산구, 수원, 전남해남군, 여수, 평택, 영주, 청주, 나주, 포함, 울산남구, 성남, 파주, 구미, 의정부, 동두천, 익산, 창원, 경기도연천군, 김포, 서산, 아산, 충남태안군, 천안, 김해, 안산, 인천서구, 안양, 양주, 울산동구, 화성, 하남, 전주, 군포

 

지자체의 사업주로서의 의무 준수 현황

지자체장이 가지는 산안법상 사업주의 의무 준수 여부에 있어서는 서울과 강원, 충남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자체가 산안법상 공공행정 업무로 분류되지 아니하는 소속 노동자들의 현황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울시와 강원도의 경우 산안법상 법적용 대상 인원과 안전보건관리체제, 산보위 운영현황에 대한 파악과 관리가 비교적 일목요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전, 세종, 충남의 경우에는 일부 산하기관에 안전/보건관리자를 전문기관에 위탁하고 산보위를 개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 지자체에서는 지자체 및 산하 기관에 산안법 적용대상에 대한 파악이 미진하거나 혹은 법 규정에 대한 몰이해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산안법상 사업주로서의 의무 이행 수준이 매우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안전보건관련 조례가 제정되어 있고 노동안전보건을 담당하는 전담 조직이 지자체 행정조직 내에 존재하고 조례에 따른 안전보건과 관련한 위원회와 지원센터를 운영 지원하는 자기 완결적인 안전보건 관리 시스템을 모두 갖춘 지자체는 한 군데도 없었다. 전반적으로 지자체가 지역의 노동안전보건 및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성과 역할을 분명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자체 중에서는 서울이 노동안전보건 관련 조례는 제정하지 않은 상태이나 가장 먼저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한 직제를 설치하고 사업주로서의 의무이행에 대해서 파악하여 대응하고 있으며, 감정노동자의 보호에 있어서도 조례의 구성이나 이행수준도 높았다. 경기는 노동안전보건 조례를 가장 먼저 제정하고 노동안전보건 행정 전담 조직을 설치하였으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노동자 건강증진 조례를 통해서 소규모 사업장이나 관리 사각지대 노동자들의 직업건강 및 보건관리에 산하 의료원이나 관련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경남의 경우 최근 노동안전보건 조례를 제정하고 조직과 내용을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전반적으로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한 지자체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았으며 특히 사업주로서의 의무이행 부분이 미진하였다.

결론 및 제언

현행 법률상 산업안전보건 관련 정책은 기본적으로 조례 제정의 대상이라고 할 수 없는 국가사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산안법에서는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기준·방법, 사업 수행에 필요한 재원 등에 관하여 직접 규정하고 있으면서 국가, 지자체, 공기업, 사업주 및 근로자 등에 대하여 해당 법과 같은 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따르도록 할 뿐, 조례로 이와 달리 정하거나 조례로 구체적인 사항을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은 부족하며, 경영상의 부담을 이유로 산재 위험이 가장 큰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산안법상의 규제는 느슨하고, 안전보건공단을 통한 지원책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고용구조 왜곡이 심화되면서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이 증가하고 있고, 이동 노동, 방문 서비스 노동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고용형태는 기존 산안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며. 개별 사업주 차원에서의 예방 의무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자체가 적극적인 주체로 나서 지자체 내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업이 장기적이고 연속적으로 진행되도록 지원하고 산안법으로 포괄하여 보호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보건 관리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자체가 동원할 수 있는 지역 내 자원들을 활용하고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용한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 지자체가 적극적인 주체로 나서 지자체 내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업이 장기적이고 연속적으로 진행되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의 관점으로 지자체의 정책을 풀어가는 전담부서가 마련해야 한다.

지자체 스스로 사용자이며 발주처로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지자체에는 공무원 노동자를 비롯하여 지자체가 직접 고용, 위탁 도급 고용을 한 노동자, 지자체 산하 출연기관의 노동자들이 있다. 지자체가 건설공사 및 각종 서비스 용역을 발주하고 있고 지자체의 의회는 교육청 예산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는 산안법을 준수해야 할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부터 시행되는 산안법은 사용자로서 안전조치, 보건조치는 물론이고 지자체 현업 노동자에 대해 안전교육,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산보위 구성을 법적으로 강제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지자체가 산업안전보건법상 공공행정 업무로 분류되지 아니하는 소속 노동자들의 현황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산안법 적용대상별 노동자들의 현황이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안전보건체제와 안전보건교육이 제대로 지켜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개정 산안법은 건설공사의 발주자로서의 책임도 전면 강제되고 이 조항은 당연히 지자체에도 적용된다. 지자체가 발주하는 건설공사에서도 공사계획, 설계, 시공하는 전 단계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가 반영하도록 의무가 부여된다. 또 폐기물 관리법 개정으로 환경미화 노동자에 대한 안전조치 의무도 지자체에 부여된다.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선 법에 한정되어있는 적용대상을 더욱 확대하고 지자체의 특성에 맞는 적극적인 조치와 사업이 진행되도록 조례를 제/개정함으로써 실제적 이행이 담보되어야 한다.

사업장의 안전은 노동자의 안전이자 시민의 안전이기도 하다. 시민의 안전과 밀착되어 있는 화학물질 사고 등과 관련된 지역 안전은 노동부와 산안법으로만 해결되기 어렵다. 책임소재, 관할이 누구인가를 따지면서 사고조사도, 재발방지도 방치해 왔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지역의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지자체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조례제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특히, 영업허가 및 영업정지에 직접 권한을 갖고 있는 지자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각 지자체의 노동안전보건과 관련한 조례의 제/개정과 이와 관련한 업무를 수행한 지자체 내의 직제 구성, 조례에 기반한 위원회와 센터의 구성과 운영에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더불어서 기존의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거버넌스를 통해 성과를 이뤄낸 의미 있는 사례들에 대해서 함께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52일터기사

[연구리포트] 고 문중원 기수죽음과 관련한 마사회 구조와 실태조사 보고서 / 2020.03

일터기사

고 문중원 기수죽음과 관련한 마사회 구조와 실태조사 보고서1)

선전위원회 편집

기수의 안전보건 실태: 산업재해와 산재은폐 현황

3,404. 고 문중원 기수가 남긴 15년간의 통산전적 기록이다. 기수는 살아있는 말을 타고 일정한 거리(경주로)를 달려, 가장 빨리 결승선에 도달하기 위해 경쟁한다. 체격이 크고, 예민하고, 행동에 대한 예측이 어려운 말을 다뤄야 하는 기수는 일반 노동자에 비해 상상을 초월한 재해율을 보인다.2) 2018년 기수 재해율은 72.7%로 전체 노동자 재해율 0.54%에 비해 무려 135배에 달한다. 같은 업종인 말 관리사의 재해율(201818.6%)3)과 비교해 보아도 4배 가까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기수는 상시적으로 높은 재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모든 책임을 떠안는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안전보건관리체계에서 위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고 문중원 기수의 유서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기수들에게 부상은 일상생활이다. 그러나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재해가 발생해도 보고조차 되지 않고, 민간재해보험을 받으려면 기승계약을 해지해야 하는 등의 불이익으로 인해 1~2주 정도의 부상은 치료받지도 못한다. 기수보다 재해율이 현저히 낮다고 하는 말 관리사의 경우도 2017113, 2018162, 2019161건에 달하는 산재가 있었지만, 마사회는 각각 18, 17, 23건을 신고하는 데 그쳐 미보고율이 84% 이상으로 나타났다. 마사대부 평가에 산재율이 포함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산재 신청을 막거나 분위기상 공상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마사회의 산재은폐현황은 2015~20173년간 산재 보고 의무를 위반한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 중 1위가 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50), 3위가 한국마사회부산경남경마본부(12)인 것에서 잘 드러난다.



재해의 원인 : 보장되지 않는 기승거부권

개인사업자신분으로서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며, 동시에 조교사와의 계약 및 지시가 없으면 말을 탈 수 없는 기수들에게는 작업중지권, 즉 기승거부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기수들을 위험한 일터로 내모는 원인이 된다. 기수들은 보통 본인이나 말의 상태가 경주에 적합하지 않을 때에도 마주나 조교사가 경주 참여를 강요하면 현실적으로 이를 거부할 수 없으며, 이것은 종종 사고로 이어진다. 또한 태풍이나 우천 등 경주하기 위험한 상황에서 경마를 진행할지 여부에 대해서도 기수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경마 경주를 지휘하고 시행하는 마사회에서는 기수의 안전은 도외시한 채 한 차례라도 경기를 더 해서 수익을 높이려고 할 뿐이다.

이렇듯 기수는 말 상태에 따라 가장 큰 안전상의 부담을 안고 있는 사람이지만 정작 말 상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받지 못한다. 마방마다 계약을 맺어야만 말을 탈 수 있는 기수 계약의 특징과는 달리, 조교사나 마주는 반드시 마방 소속 기수에게 기승을 맡기지 않을 수 있다. 기수들은 본인들의 이런 처지를 대리기사에 비유했다. 기수들이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본인이 경주할 말의 상태를 잘 아는 것일 텐데도 기수들은 본인의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알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위험을 키우는 구조

1) 기승거부권이 없는 고용계약구조

기수들이 가장 기본적인 안전상의 문제를 가지고도 기승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은 조교사와 기수 사이의 종속적인 계약 관계 마사회의 경마 시행 결정과정에 기수들이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기수들이 조교사와의 관계에서 안전상의 이유로 기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표준 기승 계약서에 경주 기승 및 조교 보조를 거부 할 수 있는 조항과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을 때의 불이익 금지 조항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기수의 기승기회는 아무런 제한없이 조교사의 재량에 의해 부여되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조교사가 기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불이익 처분이 기승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방의 계약 기수가 그 마방의 출전 중 정해진 비율 이상 기승할 수 있는 권리라든지, 모든 기수가 연간 출전해야 하는 최소 경기 수를 정하고 이를 마사회 각 경마공원이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함께 도입되어야 한다.

더불어, 현재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경주 제외, 출발 제외, 마체 검사, 조교 상태 심사 조항이 실효를 가질 수 있도록 경마 시행 규정의 개정도 필요하다. 현재 경주 제외와 출발 제외는 심판위원만 결정하도록 되어 있지만, 말의 상태, 경주 환경(악천후 등), 부당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작전지시 등이 있는 경우 앞서 말한 기수의 기승거부권과 이로 인한 불이익 금지 조항이 필요하다. , 마체 검사 및 조교 상태 심사에서 조교에 참여한 기수 및 말 관리사의 의견을 반드시 참조하도록 하는 조항도 필요하다. 결국 이런 조항들은 전체적으로 경마 경기 운영 과정에서 기수와 말 관리사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일하는 사람이 본인의 안전과 건강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일터에서 안전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2) 치료받을 권리의 배제

개인사업자인 기수는 재해가 발생하면 본인이 책임을 진다. 본인이 낸 보험금으로 마사회에서 단체로 상해보험을 가입하고, 재해를 입었을 때 일정한 금액의 최저 생계비와 치료비를 보장받게 된다. 반면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전액 보험료를 납부하여 과실의 유무와 상관없이 보장받는 사회보험의 성격이 강하다. 기수의 재해는 대부분 기승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앞서 말한 기승거부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고의 위험이 클 수밖에 없고, 이는 말을 선택할 수 없는 하위권 기수에게 재해가 더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재해로 인한 치료기간은 다음 기승계약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승과 조교의 횟수가 조교사의 권한으로 결정되고 기수간의 경쟁을 치열하게 부추기는 환경에서 다친 기수의 병가는 다른 기수의 기승기회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생계를 위해 충분히 치료받지 못하고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2019년 산재보험 적용범위 확대로, 음식점업, 도소매업 등 1인 자영업자와 지게차, 덤프트럭 특수형태고용종사자도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재해위험이 현저하게 높은 기수들 또한 충분히 치료받을 권리를 위해 산재보험 적용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재해보험에 대한 부담을 조교사와 공동 부담하고, 치료 이후 일정기간 동안의 재계약 의무 등의 내용을 기승계약에 넣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경마는 순위경쟁의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공기업이 운영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병폐는 구성원의 건강을 해치고 전체적인 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 기수들이 아파도 말을 탈 수밖에 없는 것은 기승기회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기수에게 최소한의 기승기회와 적정생계비를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한 경마를 시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 그림 시행체인 마사회와 경마시행주체들과의 관계. 출처 : 고 문중원 기수죽음과 관련한 마사회 구조와 실태 조사 보고서, p.7

 

3) 유명무실한 안전보건관리체계

한국 경마 산업은 한국마사회를 주축으로, 말을 공급하는 농장에서부터 경마를 위한 마주, 조교사, 말 관리사, 기수에 이르기까지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여러 직종과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포괄하는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럴 때 포괄적인 안전보건체계 구축과 운영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경마 시행체인 마사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경마산업 안전보건체계와 관련된 연구들 또한 한국마사회가 경마 산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주체들을 아우르는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일관된 결론들을 도출하였다.4)

201912월 마사회는 상생발전위원회란 조직을 통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부산 기수 협회와 유가족, 공공운수노조와 아무런 논의없이 조교사 개업 심사 외부위원 비율 확대, 전문가 심리상담 프로그램, 조교전문기수제도 독려 등의 자가 처방을 내놓았다. 부산지역 상생발전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기수는 마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상생발전위원회에 던져 놓고 판을 다 열어 놨으니, 너희들끼리 잘 얘기하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작업장 안전강화 대책의 일환으로 공공기관 중 안전관리 중점기관에 대한 안전근로협의체 설치, 구성, 운영에 대한 규정을 마련했다. 안전근로협의체는 공공기관(이하 원청업체)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운영시 당해 사업장 내의 사업의 일부를 도급받은 업체(이하 하청업체)를 포함해야 하는 것으로, 이 규정은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행되고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안전근로협의체에 경마 산업 전체의 구성원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협의체 또한 단순한 의견수렴이 아닌 적극적인 결정기구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었던 안전보건을 이제는 원청이자 공공기관인 마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안전보건은 고용구조와 시스템, 시설과 관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이 글은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 진상조사팀에서 2020200일에 발표한 보고서의 2기수의 노동 실태와 문제점3안전보건 실태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보고서 원본은 다음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kilsh.tistory.com/2408?category=649359

2) 경마산업 재해 예방 및 감축 중장기 전략보고서(2014. 09. 원진 녹색병원)

3) 경마산업 종사자 안전관리 및 삶의 질 개선에 대한 연구(2019. 02. 한국마사회 말산업연구소)

4) 경마산업 재해 예방 및 감축 중장기 전략보고서(2014. 09. 원진 녹색병원); 경마산업 종사자 안전관리 및 삶의 질 개선에 대한 연구(2019. 02. 한국마사회 말산업연구소); 2017년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실시 결과 등.

39일터기사

특집3. 평등한 생존 : ‘K-방역’이 말하지 않은 것 / 2020.05

일터기사

평등한 생존 : ‘K-방역’이 말하지 않은 것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앞으로의 세상은 코로나 전(BC:Before Corona)과 후(AC:After Corona)로 규정지어질 것’이란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코로나19는 정치, 경제에서 일상적 삶의 풍경까지 전지구적 차원에서 우리 모두 공동의 시간대를 경험하게 만들고 있다. 집, 학교, 도시, 국경 등 울타리가 있는 곳들은 봉쇄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직접적인 이동이 제한되었지만, 반대로 그 빗장을 자유롭게 넘고 이동하고 교통하는 것은 바이러스와 디지털화된 정보들이다.

국가의 통제인가, 보살핌인가

한국사회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한국인들만의 이슈가 아니었던 것처럼, 코로나 정국 와중에 일어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위시한 디지털 성폭력은 디지털화된 정보의 불법적, 탈법적 활용이 일반화되고 암묵적으로 용인된 사회에서 개인정보를 활용한 성착취가 어떤 형태로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극단적 사례일 뿐만 아니라, 이미 ‘초국적’인 사안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한편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의료기술의 문제 이전에 정보 기술과 이러한 활용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는 개인정보의 유출이 일반화된 한국사회에서 개인정보를 국가가 ‘위기상황’에서 취합하고 사회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적 방역이라고 간주할 수 있었던 조건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코로나19와 n번방은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정보가 어떤 경로를 통해 자본화되며, 권력이 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들이다. 동시에 개인정보를 둘러싼 권리의 문제가 복잡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를 통과하면서 변화하고 있다는 것 역시 보여준다.

한국사회에서 가뜩이나 ‘사생활 침해’가 젊은 여자들의 깐깐함 정도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K-방역’은 개인의 권리보다는 생명의 안전이 우선한다는 광범위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것은 적어도 두 가지의 권리를 둘러싼 쟁점을 낳는다. 하나는 권리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권리는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근대사회 이후 ‘시민’의 권리는 재산권을 기본으로 한다. 개인의 권리 역시 ‘나’에게 귀속된 것이었다. 하지만 권리는 개인적인 것을 넘어 상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 권리로 환원될 수 없는 집단적인 권리들이 존재한다. 가령 노동권이 그렇다.

감염을 둘러싼 감각은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에 걸릴 확률과 비교하며 일상의 위험으로 치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사회적 압력이 모두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강제했다. 사회적 압력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했다. ‘내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곧 타인과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것, 또 하나는 ‘타인에게 마스크를 강제하는 것이 곧 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미세먼지에 대한 대응으로 ‘마스크’는 위험의 개인화라는 맥락에서 비판받았다. 미세먼지를 감축하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노력을 개인의 마스크 착용으로 환원하면서 마치 개인이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 코로나 시기의 마스크는 ‘공적 마스크’라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공동의 안전을 위한 상호간의 윤리적 약속이 되었다. 이러한 집단적인 경험은 권리를 둘러싼 감수성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선 ‘전자팔찌’ 논란 등으로 드러난 정보인권의 문제가 자리한다. 개인정보의 문제이든, 확진자의 지나친 동선 공개의 문제이든 이것이 ‘프라이버시권’이라는 맥락에서 주장된 개인의 권리는 코로나 정국에서 사회적으로 설득되지 못했다. 향후 권리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정보나 사생활 침해의 문제 역시 집단적이고 상호 교통하는 권리들인 한에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권리들이 국가를 매개하여 작동하고 조절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인해 깨지고 있는 환상 가운데 하나는 전지구적인 네트워크에 대한 진보적인 믿음이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해진 만큼, 연결된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종 코로나와 같은 재난을 전쟁에 비유하곤 하지만, 재난이 전쟁과 다른 점은 국가의 역할에 있다. 즉 ‘폭력의 주체’냐 ‘보살핌의 주체’냐의 차이다. 물론 감염병 확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 국가가 자연에 가한 자본주의적 침략과 약탈이 지목될 수 있지만, 이것이 과연 국가만의 문제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아무튼, ‘국가 대 개인’이라는 대립구도에서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존재라는 오랜 통념이 해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권리를 둘러싼 투쟁의 장소가 다름 아닌 국가 안이라는 점이다. 권리는 국가에 대항하는, 국가의 바깥에 존재하는 권리가 아니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 시설에서 격리된 무연고자들, 이주노동자들처럼 국가에서 배제된 자들이 행사하는 권리조차 늘 국가 안에서 보장된 권리를 근거로 행사된다. 즉 이동권, 거주권, 노동권, 생존권 등은 국가에 새겨진,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지만, 이들 권리가 불평등하게 적용되도록, 나아가 무권리의 상태로 배제하도록 구조화된 것이 국가이다. 따라서 국가를 둘러싼 권력투쟁은 국가에 대항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불평등의 구조를 평등의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로나 정국에서 권리를 둘러싼 쟁점은 개인정보 보호냐, 생명의 안전이냐의 문제, 프라이버시권과 안전권의 문제가 아니라 방역과 보살핌, 생명의 보호를 둘러싼 조치들이 불평등한 조건 위에서 적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평등의 조건들이 새롭게 창출되는가의 여부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켰다’라는 성공적인 K-방역에서 ‘누가 죽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   K-방역이 말하지 않은 코로나19 정국에서의 국가의 통치성을 묻고, 코로나19 이후 평등한 생존을 위한 노동권을 재구성해야 한다. ⓒ pixabay

 
생명이냐, 생존이냐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취약하다’라는 것만큼 탈정치화된 진술이 있을까? 일반화된 노인에 대한 혐오가 코로나 시기 의학적인 진술과 겹쳐지면서, 코로나 시기에 빈곤하고 불우한 노인들은 자가격리인지, 사회적 감금인지 모를 상태에 놓였다. 국가의 안전문자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반복적인 ‘염려’의 말들에 의해서. 취약한 신체를 가진 노인들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이 사회의 안전을 위해 격리되었다.

우리 모두 기꺼이 격리를 감수했다고 항변할 수 있지만, 격리를 버틸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자원과 정보력이 현격히 다르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회적 격리를 못 견뎌 하는 것은 혈기왕성한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 신체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코로나와중에 죽었거나, 죽고 있다. 생명이 유지된다고 해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기에 생명에 대한 보건의료적 조치로 인한 ‘생명권’과 사회적인 삶의 영위를 의미하는 ‘생존권’이 확연하게 구분되었고, 국가는 생명권에 대한 선별적 조치를 우선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생존권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조치는 코로나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 둔다’라는 차원에서 생명은 보장하되 생존은 각자도생의 몫으로 여전히 남겨두는 것, 기업의 생존이 노동자의 생존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모두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정국을 경유하면서 구축한 통치성의 본질이다.

앞서 말했듯이, 권리는 집단적이고 상호적일 뿐만 아니라 분할될 수 없다.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생명권이란 기껏해야 생명을 국가통치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불과하다. ‘우선 살리고 본다’라는 주장이 정당화되려면, 살릴 수 있는 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생존권은 불평등한 생존 조건에 대한 평등한 생존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생존권의 기본축이 바로 서려면, ‘100% 재난수당’이라는 임시적, 간헐적 수혈 이전에 노동권의 강화 및 확대가 근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론 최근 고용 대책들이 속속 제출되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재정 규모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이전부터 지속해서 후퇴했던 노동정책의 기조 변화다. 동시에 IMF위기 대응에 대한 노동계 내부의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면서도 노동의 분할과 배제에 대항하는 실천, 즉 평등의 실현을 얼마나 구체화시켰는가?

평등한 생존을 위한 노동권의 재구성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코로나19 사회에 새로운 4개 계급이 출현했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 계급은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The Remotes)들이다. 두 번째 계급은 ‘필수적 일을 해내는 노동자'(The Essentials)로 의사·간호사, 재택 간호·육아 노동자, 농장 노동자, 음식 배달(공급)자, 약국 직원 등이다. 세 번째 계급은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The Unpaid)들 소매점·식당 등에서 일하거나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직원들이고, 마지막 계급은 ‘잊혀진 노동자'(The Forgotten)들로 미국인 대부분이 볼 수 없는 곳, 이를테면 감옥이나 이민자 수용소, 이주민 농장 노동자 캠프, 아메리칸 원주민 보호구역, 노숙인 시설 등에 있는 사람들이다.

라이시 교수는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생존이 위태로운 계급들이라고 말한다. 노동 내부의 분절화와 불평등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심화하고 있으며 이는 노동권에 대한 집합적인 권리행사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이시 교수의 분석은 날카롭지만, 다분히 ‘미국적’이다.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재택근무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업들은 재택근무의 노동효율성과 통제가능성을 실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제 기업들은 경영 방식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었다. 재택근무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투자를 전제한다.

이것은 기업이 사무실과 OA시스템, 휴게시설 등에 대한 투자를 개인이 부담하도록 자연스럽게 이전한다. 즉 재택근무는 노동자들을 생산수단을 보유한 유사 자영업자의 형태로 전환하게 하는 물적 토대의 변화를 가져오며, 이는 향후 ‘프리랜서’의 이름으로 일반화될 불안정 노동자로의 ‘갈등 없는 지위변화’의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이것은 디지털 사회라는 기술진보의 이름으로 더욱 촉진될 뿐만 아니라,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타인의 노동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나의 노동권 또한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동의 분할은 노동권의 약화가 아니라 소멸을 야기한다. 분할되고 개별적인 노동권의 실현이란 환상에 불과하며, 코로나로 인한 노동 내부의 격차와 더욱 강화될 디지털화된 정보력은 노동권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통한 생존을 추동한다. 즉 노동이 분할되고 노동권에서 배제된 노동자 계급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안전한 노동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안전한 개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한 요구로서의 노동권은 집단적이고 상호적인 권리에 토대를 두고서 평등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생존을 말하지 않은 채, 노동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생존을 말하지 않은 채, 주장하는 ‘나’의 노동권은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IMF 위기 이후 20여 년간 나의 생존을 위해 다른 노동자들의 해고와 불안정노동을 수용했던 경험을 성찰하지 않는 이상, 코로나 이후 경제적 위기에서 노동자 ‘계급’은 노동권과 함께 소멸할 것이다. 평등한 생존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것이 아니라 국가 안에서, 국가를 둘러싼 투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29일터기사

특집2. 코로나 이후, 재난자본주의를 경계한다 / 2020.05

일터기사

코로나 이후, 재난자본주의를 경계한다

 

최민 상임활동가

지난  4월 13일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문재인 정부 코로나19 대응 비판」(민주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2020-06)을 통해,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지원 조치를 발표했지만, 그에 비해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대책은 매우 부실하다고 비판했다. 금융시장 안정화에 100조원 이상, 코로나 19 피해 수출입해외진출기업에 대한 긴급 금융지원 20조, 36조 이상의 수출활력 제고 방안, 2.2조 원 규모의 스타트업·벤처 지원방안이 발표됐다. 이에 비해,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대책에 새롭게 증액된 예산 규모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재난지원금(14조 가량)을 제외하면 1조 5783억 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고용충격에 대비한 대책도 기존의 고용유지지원금과 일자리안정자금을 확대하는 방식이어서, 해당 제도의 문제점이 그대로 반복된다. 예를 들어, 고용보험 미가입자, 특수고용 노동자,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법적 혹은 실질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총과 전경련은 지난 3월 말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제언”을 통해, 일상 해고를 포함한 노동유연화와 법인세·소득세〮 상속세 인하 등 기업 비용 축소, 규제 완화 등을 요구했다. 코로나 19를 핑계로 대고 있지만, 사실상 재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규제완화 내용이다. 경총과 전경련의 제안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전경련의 경제계 긴급제언 중 노동자 건강 및 안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조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 제언(2020.03.25) ⓒ 전경련

   
코로나19 빙자한 노동시간 연장 시도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노동시간과 관련된 규제 완화 요구가 대거 들어있다는 점이다. 2018년 주 52시간까지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있었지만,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먼저 시행됐고, 겨우 올해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노동시간 제한의 예외가 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대상을 확대하라는 요구가 포함돼 있다. 그리고 노동부 장관은 코로나19와 관련한 지원 때문에 바빠진 금융기관의 경우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빠르게 추진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한 사유를 대폭 늘릴 수 있게 준비해두었다. 원래 인가 대상이던 ‘자연재해,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의 수습’과 같은 제한적인 경우뿐 아니라, ‘통상적인 경우에 비해 업무량이 대폭 증가한 경우로서 이를 단기간 내에 처리하지 않으면 사업에 중대한 지장이 초래되거나 손해가 발생되는 경우’까지 포함시켜놓았던 것이다. 이 개정 내용이 코로나 국면에서 방역업체, 마스크 생산 업체로 적용되더니, 이제 금융기관까지 확대되려는 것이다.

재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도 요구하고 있다. 주52시간으로 노동시간 연장이 제한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요구해오던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 기간 동안에는 주당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데, 그 단위 기간이 늘어나면 연달아 64시간까지 일하는 기간도 늘어난다. 단위기간이 6개월만 돼도, 3개월 연속 주당 64시간 일할 수 있어 뇌심혈관질환이나 정신질환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특별연장근로 인가 확대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 요구는 모두 노동시간 제한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다. 자본이 꿈꾸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아마도 과로와 실업이 공존하는, 일자리 때문에 과로도 감지덕지하는, 그래서 노동시간 제한이 필요 없는 사회인 것 같다.

안전도 상생도 뒷전으로

그 외에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폐지하라는 요구나 화물차 안전운임제도 유예기간 연장 요구 역시 해당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환경을 악화시키게 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지정의 주요 근거는 소상공인 살리기였지만, 그 덕에 마트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단축되었다. 특히 남들 쉴 때 쉬는 ‘사회적 휴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적인 업무가 아닌 다음에야 불필요한 야간 노동, 휴일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의 작은 성과를 없던 것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대형마트가 더 이상 유통업계의 강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코로나19로 대형마트의 온라인 매장 매출액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일부 유통재벌만의 욕심은 아닌 것이, 안동시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한시 철폐가 추진되기도 했다. 생필품 품귀 현상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결국 부결되어 없던 얘기가 되었지만,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유통업계와 경제지들은 안동시에서 규제가 풀리면 다른 지자체까지 확대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자본의 공격은 2020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에도 닿았다. 안전운임제는 낮은 운임으로 인해 과로, 과속, 과적의 위험에 내몰리는 화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제안됐다. 화물노동자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고 지키지 않을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화물노동자들의 과로, 과속, 과적으로 인한 사고 발생이나 도로 손상 등 사회적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재 시행되는 안전운임제는 3년 한시적으로 전체 화물노동자 40만 명 중 6.5%에 해당하는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만 적용되고 있을 뿐이다. 적용대상이 훨씬 넓어져야 한다는 서명 운동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2월까지였던 유예 기간을 코로나 사태 종료 때까지 연장하자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2013년 제정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도, 재계가 무슨 일만 있으면 완화와 유예를 요구해오던 법률이다. 이번에도 역시 화학물질 등록 기간을 1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환경운동연합 등은 이에 대해 “올해 들어서도 서산 롯데케미칼 폭발사고 등 전국 곳곳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여전히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인데, 가당찮은 요구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4월 8일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환경부는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 화평법상 일부 조치를 유예하거나 완화해주었다. 내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화관법상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패스트트랙 품목을 늘리고, 화평법상 연 1톤 미만으로 신규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기업이 환경부에 제출해야 했던 시험자료 제출생략 품목을 크게 확대해주는 것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요구나 안전운임제 유예 연장, 화평법 완화 등은 모두 안전과 상생은 뒷전으로 하고 싶던 기업들의 속내를 보여준다. 재난 상황을 기회로 규제완화의 ‘뉴 노멀’을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어떤 사회로의 회복을 요구할 것인가?

이런 기업들의 요구에 정부가 적극 호응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동부에서 노동시간 제한을 완화하고, 환경부는 화학물질 관리 책임을 느슨하게 해 준다. 기업활력제고 특별법 적용대상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라는 요구에, 정부가 법 개정을 고민하고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원샷법이라고 불리는 기업활력제고 특별법은 기업 인수합병을 쉽게 하는 법인데, 정부 스스로도 이 법에 따라 사업 재편을 위한 기업 인수합병이 활발해지면 중장년층 실직자들이 양산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한국판 재난자본주의가 펼쳐질 수 있다.

전쟁, 자연재해 등과 같은 재난이 사회를 덮쳐,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자본이 즉각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한 약탈 행위를 재난자본주의라 한다.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도 한 예다. 국가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로 ‘쇼크’를 받은 한국은, “개방하고 민영화해야 국가 부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를 ‘쇼크 독트린’으로 받아들인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확대, 상시적 구조조정과 불안정 고용이 한국사회의 ‘정상’이 되었다. 구조조정 후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1998년 크게 증가한 자살률은 이후로 20년째 떨어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인한 감염자 수, 재난지원금만 바라보다 지난 과오를 되풀이 할 수 있다. 경기활력 제고를 앞세운 규제 완화, 일자리를 볼모로 한 노동권 후퇴, 노동관계법 개악이 슬금슬금 진행되고 있다. 고통분담이냐 노동자 사이의 연대냐, 기업 살리기냐 고용 유지이냐, 어떤 기조로 이 시기를 넘어서느냐에 따라 앞으로 마주할 20년이 달라질 것이다.

39일터기사

특집1. 코로나19가 촉발한 물음,노동안전보건의 뉴노멀, ‘K-산재예방’은 가능한가? / 2020.05

일터기사

코로나19가 촉발한 물음, 노동안전보건의 뉴노멀, ‘K-산재예방’은 가능한가?

 

박기형 상임활동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 사회 불안정 노동의 면면들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을 가동했다. 하지만 거리두기가 삶에서 확보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확진자들의 동선이 한때 이슈가 되었다. 장거리 녹즙 배달을 하는 구로 콜센터 직원이나 슈퍼마켓 배송과 음식점 서빙 등 투잡을 뛰던 이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잠시 멈춤’을 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거리두기를 하자며 장려한 재택근무 및 유급 휴직, 유급 돌봄 휴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는 먼발치의 얘기였다.

더욱이 물류·운송이 늘어남에 따라 오히려 노동강도가 증가하는 곳들이 생겨났고, 심지어 코로나19 사태 초기 급작스러운 배송량 증가에 과로사한 쿠팡맨도 있었다. 이렇게 코로나19는 늘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불안정 노동의 문제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강력한 방역 조치를 취한 결과, 지난 5월 6일 다행히도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의 기간을 끝내고, 생활방역 체계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여전히 감염 및 확산의 위험이 존재하지만, 일상으로의 복귀, 즉 일상의 회복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도래할 세계의 과제, 가치의 재정립

그러나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사람들도 많다. 우선 세계 전체 차원에서 보면, 여전히 코로나19 사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계속해서 확진자 증가 추세가 이어지며, 미국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는 사망자 증가 추세 또한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프랑스와 같이 G20에 속하는 국가들에서조차 마스크 지급 등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는 100여 년 전인 1918년에서 1920년 사이에 발병했던 스페인 독감과 가장 큰 차이로 지적된다. 스페인 독감의 경우엔 흑사병처럼 엄청난 사망자를 내고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등 사회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에서 피해가 컸다. 하지만 코로나19는 한 사회 내에서 불안정 노동을 드러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과 유럽 등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에 타격을 가했다. 그로 인해 곳곳에서 국제 질서의 변동, 나아가 이 세계를 오랫동안 떠받치던 사회 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전망하거나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불확실성의 증대를 지적하기도 한다. 이는 정부의 재정투입, 정부 지출 증대와 관련한 논쟁에서 두드러졌다. 이전 경제 시스템에서는 인과성을 중시했다. 일정한 제약 조건에서 어떤 변수가 달라질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어떤 정책을 어느 수준에서 시행할지 정할 수 있었다. 예컨대, 정부 지출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정부지출의 수준을 일정하게 예측해서 제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업률, 인플레이션율 등의 경제 지표를 놓고서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지표의 변화를 예측·통제하는 등의 경제관리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아 경제 시스템의 변화가 더는 계산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위기를 일으킬 경제적 위험들이 무엇인지, 그것이 언제 어디서 실현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계산불가능한 위험, 즉 불확실성이 증대했다. 이로 인해 이제는 주식시장의 주식가격, 외환시장의 환율 변동 등 경제지표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기가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변화는 경제 위기에의 대처 방식 자체를 변경할 것을 요청한다.

이 비판에 따르면, 어느 수준으로 위험을 관리할 것인가, 어떤 관리 수단이 적합한가 하는 질문은 의미 없어질 것이다. 이제는 불확실한 위험에 맞서 무엇을 가장 우선해서 지켜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무엇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된다. 물론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기존의 경제 시스템을 구성 및 운영해온 논리, 즉 리스크 관리의 관점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기존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는 위기의식, 이대로는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더욱더 강하게 심어주었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가치 자체를 문제 삼게 되었고, 가치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   지난 5월 2일, 38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 ⓒ 호나라

 

노동안전보건에서의 (뉴)노멀

코로나19로 촉발된 이러한 뉴노멀에 대한 요구는 노동안전보건영역에서도 유효하다. 혹자는 한 번이라도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노멀’인 적이 있었냐고 되묻기도 했다.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는 산업재해가 일상이었다. 매일같이 7명이 출근했다가 퇴근하지 못했다. 늘 삶의 위협을 감수하고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한국의 일터에서 정상적인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면,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정상적인 것이 항상 일어나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면, 만연한 죽음이라고 답했을 것이고, 만약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규범적 상태를 의미한다면, 한 번도 정상적이었던 적은 없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일상으로의 복귀, 정상으로의 회복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미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일상 곳곳에 잠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언제나 위험은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차별받는 이들에게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이 이러한 문제를 더욱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내 주었을 뿐이다.

그렇다. 산업재해는 언제나 극적인 방식으로만 주목받았다. 사망사고라는 형태를 띨 때야 비로소 회자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더구나 산재사망사고는 작업자 개인의 실수로, 안전보건관리자나 현장 책임자 몇몇의 책임으로 축소되거나 심지어는 은폐되었다.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조사하더라도 물리적 요인, 직접적 원인에만 집중하는 한계를 보였다. 위험의 외주화, 장시간 노동 등과 같은 일터의 구조적 위험은 그대로 남겨졌다. 안전설비 미설치와 같은 물리적 예방책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곳이 허다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와 ‘K-방역’이 노동안전보건 의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노동자들은 죽음의 일터라는 ‘일상적 재난’ 상황에 처해있다. 코로나19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 체계적인 검사·조사는 다른 국가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왜 철저한 방역조치만큼 산업재해에 대한 철저한 예방조치가 취해지지 않는가? 위험으로부터의 거리두기와 잠시 멈춤은 가능하면서, 왜 일터에서의 작업중지는 이뤄지지 않는가? 재난에 맞선 국가와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은 왜 일터의 문턱 앞에서, 노동자들의 목숨 앞에서 늘 멈추는 것일까? ‘K-산재예방’은 정녕불가능한가?

생활방역으로의 전환을 앞둔 지난 4월 29일, 이천 물류센터 건설 현장에서 화재로 인해 38명 노동자가 사망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중이지만, 계속해서 비교되는 또 다른 참사가 있다. 바로 2008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다. 동일한 지역이면서, 작업 현장 상황과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점 모두 유사했다. 당시에도 폴리우레탄폼 작업에 따른 폭발·화재 위험과 샌드위치 패널로 인한 상황 악화가 지적되었다. ‘

법제도 상으로도 폴리우레탄폼 작업과 용접·용단 등 화기 작업을 분리해서 진행할 것, 부득이할 시 비산 방지 커버 등 안전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도, 어떤 예방 조치도 없었다. 공정 분리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샌드위치 패널이 타면서 뿜어내는 유독가스를 예방하기 위해서 샌드위치 패널의 사용금지 등의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자재비용이 부담되었기 때문이리라.

결국 현장 관리·감독이 부실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물류창고 건설 현장도 다른 건설 현장과 마찬가지로, 최소 비용으로 빠른 기간 내에 공사를 완료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공사 기간 연장, 해당 자재의 사용금지, 다른 물품으로의 대체 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이유로 위험을 눈감아줬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냥 눈감아준 것은 아니다.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니, 위험 정도와 사고 발생 가능성을 계산해서 관리하면 된다고 보았다. 그러니 관리부실이 먼저 지적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관리만 잘하면 되는 문제인가?

코로나19 이후, 위험은 예측하고 관리할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사회에서 위험은 복잡다단한 관계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위험은 여러 요인의 복합적 작용을 통해 실현된다. 그에 따라 참사·사고·위기의 원인을 특정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 이럴 때 위험을 예방하는 우리의 자세는 특정 원인을 통제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천 물류센터에서 불이 난 것은 폴리우레탄폼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가 화기 작업으로 인해 폭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적 원인을 밝혔다고 해도, 왜 동일한 사고가 반복되었는지 답할 순 없다. 나아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이러한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 위한 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

이러한 산업재해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이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제대로 된 예방대책을 수립 및 시행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관점을 바꿔야 한다. 어떤 위험을 어느 수준으로 어떻게 예측·통제할 것인가라는 위험관리의 질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물음은 이윤과 안전을, 삶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사회적 가치로 삼을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생명과 안전을 가치 있는 것으로 내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사회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노동안전보건의 (뉴)노멀이다.

26일터기사

[공동규탄성명] 아시아나비정규직 농성장 철거를 규탄한다! 서울시와 종로구청과 경찰청은 사과하고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하라!

활동소식



출처: 노동조합 

<공동규탄성명> 
 아시아나비정규직 농성장 철거를 규탄한다!
서울시와 종로구청과 경찰청은 사과하고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하라!

어제(6/23) 오후 4시 종로구청과 경찰은 아시아나 금호문화재단 앞에 있는 아시아나하청노동자들의 농성천막을 강제철거했다. 최소한의 행정대집행의 절차인 영장 제시도 없이,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의 고통은 외면하며 종로 거리 한복판에서 대낮에 물리력으로 쫓아냈다. 

이번만 벌써 세 번째 천막철거다.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5월 11일 해고된 후, 5월 15일 금호문화재단 앞에 농성천막을 차렸다. 금호문화재단은 KO 같은 아시아나항공의 재하청업무를 수행하는 회사의 100%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하청노동자들의 인건비로 수 십 억원을 배당받고 있다. 그런데고 사측은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통한 해고 회피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농성을 시작하자마자 종로구청은 집회 신고된 농성장이었음에도 천막을 불법적치물로 간주하며 도로법 위반이라며 5월18일 철거하였다. 도로법 위반를 근거로 한 천막철거는 법적 쟁점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종로구청은 5월 26일 갑자기 종로 일대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 상의 집회금지구역으로 지정하였다. 그를 근거로 6월 16일 새벽 6시반 단 3명의 노동자가 있을 뿐인 천막을 두 번째로 철거하였다. 근거법만 바뀔 뿐 농성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농성장을 철거했기에, 철거의 목적이 감염예방이 아니라 금호문화재단이라는 항공재벌에 대한 노동자들의 항의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종로1가 금호문화재단 앞은 서울시가 정한 집회금지구역이 아니라는 점, 농성이 시작한 지 10일 후에 감염병예방법을 내세우며 종로구청이 집회금지 구역으로 새로이 지정하였다는 점, 당시 집회금지 구역으로 지정할 만한 사건이 해당 지역에 없었다는 점, 농성 초기에는 도로법을 근거로 철거한 점 등은 이러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한다.  

무엇보다 이번 농성천막 철거는 감염병예방법의 공백을 근거로 한 기본권 침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민주주의와 인권에 위협을 가하는 사건이다. 무조건적인 집회 전면금지와 철거는 과도한 기본권 침해로 공권력 남용이다.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농성자 평상시 10~50여명 정도의 소규모 인원이며, 피케팅이나 집회도 안전을 위해 집회참가자들 전원이 마스크나 손소독제를 사용하는 등 보건위생 규칙을 지키고 있음에도 감염병예방법을 근거로 원천적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국제인권기준에도 맞지 않다. 

이미 지난 4월 14일 유엔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 클레망 블레 특별보고관은 “COVID 19 위협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막아서는 안 된다”며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 10대 원칙을 발표하였다. 클레망 블레 특별보고관은 “새로운 법적 조치가 인권을 존중하도록 보장”해야 하며,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권리 침해의 구실로 사용되지 않도록” 국가는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프랑스에서 인종차별 시위를 경찰이 막은 사건에 대해 프랑스행정법원은 “집회 시위에 대한 금지는 현재의 보건위기 상황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집회와 시위의 권리는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라며, “모든 시위는 보건위생 수칙을 지키고 사전에 당국에 집회사실을 신고하고 공공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지 않는 한 허용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감염병예방법에 집회금지의 대상과 절차, 기준 등이 없는 허점을 악용해 무조건적으로 집회를 금지하며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중앙 정부 및 지방정부의 대응이 모든 사람의 동등한 건강권과 생존권을 확보하는데 실효적이려면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집회를 무조건적으로 금지하여 노동자, 시민의 목소리를 차단하기만 한다면 코로나19 대응책은 실패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으로 그 제한에 있어서도 비례성과 최소침해의 원칙을 따라야 하나, 행정고시 하나로 즉시 강제력을 행사하는 점은 조속히 시정돼야 할 것이다.  

이에 인권․종교․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행정권력 남용으로 정리해고된 아시아나하청노동자들을 세 번이나 철거한 서울시와 종로구청, 경찰청을 규탄한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의 결과가 힘없는 약자에게 더 가혹한 현실에서 정부가 이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탄압하려 했다는 점은 더 심각한 문제다. 실제 직장갑질119가 전문설문기관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발생한 5개월 동안 실직, 소득감소, 감염위험 모두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 등에게 집중 됐다. (소득감소 정규직 17%, 비정규직 52.8%, 특수고용직 67% 경험) 문재인 정부는 항공업계에 수조 원을 지원하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기업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더니 항의집회마저 막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나아가 천막을 강제 철거한 서울시와 종로구청, 경찰청장은 이에 대해 사과하고 감염병예방법을 악용한 기본권 제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2020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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