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0월호 일터기후정의공론장] 발전소가 멈추는 자리,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일터기사

발전소가 멈추는 자리,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 발전노동자와 함께하는 기후정의 집담회 후기

이가린(회원, 기후정의팀)

발전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먼 길을 달려 부산으로 향했다. 지난 9월 10일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에서 열린 ‘발전노동자와 함께하는 기후정의 집담회’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비정규, 하청 노동자들이 겪는 고용불안과 노동자건강권 실태를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가톨릭노동상담소 김도아 활동가의 사회로 문을 열었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숙견 상임활동가가 좌장을 맡았다. 패널로는 발전HPS지부 박규석 지부장, 일진파워노동조합 김철진 위원장, 한전KPS비정규직지회 김영훈 지회장이 함께했다. 하동, 태안 등 화력발전소에서 주로 정비와 유지 보수 작업을 담당해 온 이들이었다.

‘희망 고문’

집담회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표현은 ‘희망 고문’이었다. 하동 1호기는 원래 올해 6월 폐쇄될 예정이었으나, 국제 정세와 정부 판단에 따라 약 9개월이 연기되어 2027년 3월로 폐쇄가 미뤄졌다. 2, 3호기 역시 폐쇄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될지 명확하지 않다. 문제는 폐쇄 관련 일정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겐 공식적으로 통보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도, 원청인 발전사도 정확한 일정을 알려주지 않으니, 현장 노동자들은 소문에 기대거나 노동조합이 스스로 파악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폐쇄가 미뤄질 때마다 “이대로 조금 더 가지 않을까”는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가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한다. 한 발전소 노동자는 이를 두고 ‘희망 고문’이라 했다. 폐쇄 직전까지 정원을 유지해야 하는 발전소의 특성상 폐쇄 당일 자정까지 인력이 필요하지만, 다음날이면 갑자기 그 인력이 필요 없어진다. 그 사이 사전 대책을 세우기도 어렵고 고용 문제는 손쉽게 하청업체로 떠넘겨진다. 20년, 30년을 이 일을 한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각자도생을 강요한다. 불면에 시달리고, 가족에게조차 상황을 제대로 털어놓지 못한다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빼앗기고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발전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정작 이들과 논의는커녕 제대로 된 계획조차 공유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그 전환의 한복판에 선 사람들을 이토록 고통 속에 세워두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화가 나고 답답했다.

위험은 어떻게 아래로 흘러가는가

노동자 건강권 문제도 심각했다.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 중 1, 2차 하청 노동자에게 발생하는 산재 재해율이 원청의 몇 배에 달한다는 통계가 이야기되었다. 2인 1조로 해야 할 작업을 혼자 감당하다 목숨을 잃은 김충현 노동자의 사건은 위험이 어떻게 고용 구조의 가장 아래로 흘러내려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대책위에서 제시한 요구안이 해결되지 못하고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원하청 산재 발생이 원청의 경영평가에 반영이 되기에 사고를 은폐하라는 압박도 공공연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은 이런 구조 위에 또 위험을 얹었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더운 미분기(석탄을 곱게 분쇄하는 기계) 정비 작업, 마스크를 쓰고 잠깐 들어갔다 나와도 코 주변이 새까매지는 열악한 환경. 일진파워는 35도 이상이면 작업을 중지하고 이온음료를 제공하며 보건관리자를 채용하는 등 진전된 작업환경도 보여주었다. 반면 한전KPS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소송 이후 온열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원청과 휴게시설이 분리되어 더위를 피할 시설조차 마땅치 않은 처지였다. 3명의 패널은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적정 인력 확보와 함께 고용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직접고용과 정규직화, 공공성 강화가 공통된 요구로 모였다. 이 당연한 요구들이 왜 이토록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힘을 얻지 못하는지, 나는 자꾸만 되묻게 되었다.

밀려나는 사람들, 그 뒤의 더 큰 그림

집담회 내내 떠나지 않은 또 하나의 생각은 폐쇄와 전환을 둘러싼 이 절박한 이야기들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정의로운 전환은 구호로 등장하지만, 그 한복판에 선 사람들의 고용과 건강은 늘 뒷전이다. 왜일까. 서울로 가는 동안에도 이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919기후정의행진에서 ‘메가프로젝트 저지’가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에 함께했다. 반도체 팹 확장과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에 예산을 쏟아붓겠다는 계획, 그리고 그 속도전을 위해 노동시간 규제를 풀고 필수 공공재인 전력과 용수를 자본에 몰아주겠다는 흐름. 발전소 노동자들의 고용불안도, 폭염 속 건강권도, 재생에너지로의 공공적 전환도 결국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자꾸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행진 도중, 대열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이 큰 소리로 물었다. “메가프로젝트가 뭐예요?” 짧은 찰나였고 나는 선뜻 설명하지 못해 아무 대답도 못한 채 그를 지나쳤다. 걸으면서 그 질문이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에게는 이토록 절박한 이야기가 일반 시민들에게는 처음 듣는 낯선 단어였다. 메가프로젝트는 우리끼리만 심각한 이야기인 걸까.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이 바빠 이런 상황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최소한 이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라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 시민의 질문이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와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알 수 있게 하는 일, 낯선 단어를 낯설지 않게 만드는 일을 말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후위기 앞에서 탄소배출을 증가시키는 석탄화력발전소는 축소해야 한다. 다만 그 전환이 누구의 삶을 딛고 이루어지는가를 물어야 한다. ‘발전소는 멈춰도 노동자의 삶은 멈출 수 없다’는 목소리처럼, 정의로운 전환은 발전소와 지역에서 노동하고 사는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 나는 정확히 정의로운 전환으로 가는 해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부산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행진에서 마주한 시민의 물음을 잊지 않고, 그 순간을 기록하고 함께하며 옆 사람에게 건네는 것. 지금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거기부터가 아닐까 하는 다짐을 해본다.

 

*사진 : 2026.9.10. 석탄폐쇄를 넘어 정의로운전환과 노동자건강권 보장을 위한 과제 집담회 모습. (발전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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